오를레앙으로 찾아온 MTB 전국가대표 권영학.
에디터 : 바이크매거진


오를레앙이란 이름으로 찾아온 MTB 전국가대표 선수 권영학(44)씨를 만나다.

 

자전거는 언제부터 타셨나요?

군대 다녀오고 직장생활 하다가 문득, '내가 대한민국에서 1등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걸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한 것이 자전거였습니다.

그때가 이 십대 중반이었는데 벌써 20여 년 전 일이네요.

 

시작할 당시 이야기 좀 해주세요.

그때는 뭐 정보라는 것이 없었죠.

사이클 타는 사람 몇몇 중에서 산악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 막 보급될 때였는데

사실 지금에야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정보가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때는 어떻게, 어디서 타야 하는지 몰라 그냥 몸으로 부딪쳐 터득하는 수 밖에 없었죠.

자전거를 매고 무조건 관악산엘 오르곤 했습니다.

그렇게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탈만한 곳 있으면 타고 내려오고, 아니면 끌고 내려오고 했죠.

국내 대회에 참가해보고 바로 일본 오사카 대회 다운힐 부분에 참가했었는데, 그때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산악자전거는 이렇게 하는구나', '이렇게 연습해야겠구나' 하면서 스스로 터득하며 배웠죠.

선수시절 우승한 모습(93년 학산배 대회)
왼쪽부터 최형보, 권영학, 노기탁

정말 많은 대회에 참가하셨었는데요?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으세요?

국내 크고 작은 대회를 시작으로 세계선수권대회, 월드컵, 미국 내셔널챔피언쉽,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많은 대회에 참가하고 수상하고 했었는데요. 그 어느 대회나 기억에 남지 않는 대회가 없죠.

그 중에 하나 이야기 해 보자면 아무래도 95년에 출전했던 아시아선수권대회였어요.

일본에서 진행된 경기였는데, 산악자전거가 74년에 미국에서 시작하여 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 산악자전거 크로스컨트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지역에서 출전권 두 장을 놓고 벌이는 경기였죠. 그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전무한 일이죠.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전거 관련해 정말 많은 일들을 했었습니다.

항상 자전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까 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랐고, 떠오를 때마다 남들이 무모하다고 할 만큼 실행해 봤으니까요.

사실 산악자전거를 처음 시작한 세대라는 부담도 있고 해서 많은 시도도 해봤고, 많은 도전 끝에 좋은 경험을 많이 얻었습니다.

지금은 크게 두 가지 정도 일을 하는데요, 오를레앙이라는 브랜드로 자전거를 제조, 공급하고 있고 꾸준히 해온 MTB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MTB교실 초창기때 모습(뒷줄 왼쪽에서 여섯번째가 권영학씨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현 국가대표선수인 나상훈 선수의 어린시절 모습도 보인다.


오를레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주세요.

오를레앙은 캐나다(Canada Rimouski)에 있는 지인 쟝(Jean Bouchard)과 공동 상표권자로 만들게 된 자전거 브랜드입니다.

프랑스 100년 전쟁이 일어났던 전쟁터죠, 그때 17세 소녀 잔다르크가 나타나면서 전쟁이 마무리가 되었죠, 사실 한국의 자전거 시장도 전쟁터와 같습니다.

그런 전쟁터에서 내가 어느 정도 잔다르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에 그렇게 지었습니다.ㅎㅎㅎ

대만에서 제조를 하고 있구요, '가격대비 품질은 정말 좋은 자전거'라는 명성을 얻고 싶어서 많은 양을 생산 하고 있진 않습니다.

제가 쭉~ 선수생활도 했고 교육을 통해 많은 동호인들을 만나고 있으니 라이더들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고 바로 적용해 가며 만들고 있습니다.

오를레앙의 공동상표권자인 동업자 쟝(가운데)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권영학 MTB아카데미'라는 카페를 통해 회원들에게 무료교육을 해주고 있습니다.

주로 함께 라이딩 하면서 교육이 진행이 되구요.

무료강습과 동시에 리더쉽트레이닝도 하고 있는데요, 라이딩할 때 리더를 아무에게나 맡길 순 없습니다.

자전거는 곧 안전사고와 직결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 카페에서는 번개(오프라인 모임)도 아무나 못 칩니다.

꼭 리더쉽트레이닝을 수료한 회원에 한해 번개를 관리하게 하죠.

실제 교육이라는 것은 개인 레슨을 통해 이루어 지는데요, 맨투맨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카페회원들과의 단체 라이딩


자전거 동호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요즘은 다들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자전거를 잘 타는 것과 안전하게 타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안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자전거가 질주본능을 겸비한 해피 레저이긴 하지만 그럴 수록 사고도 많기 마련이죠.

아무리 자전거로 인해 행복해지고 건강해진다고 한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치지 않게, 남을 다치게 해서도 안되죠.

가끔 인터넷을 보면 '어디에서 어디까지 몇 분만에 갔네~'하는 숫자에 불과한 결과만 가지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분들을 봅니다.

물론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하시겠지만, 선수가 아닌 이상 경쟁보다 자기성취를 통한 만족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도 사람인지라 타다 보면 언제 어디서건 사고가 날 수 있겠지만 항상 방심하지 않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라이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제껏 그 많은 대회를 나가고 많은 여행을 다니고 했지만 큰 사고 한번 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자전거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거죠.

안전을 최우선으로 즐겁게 라이딩 하셨으면 합니다.


가족이야기 좀 해주세요.

제가 스물일곱 때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자전거를 계속 타고 싶어서 결혼도 일찍 했는데요, 아내가 농구선수 출신이라 이해를 많이 해 줬습니다.

결혼할 때도 '내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게 자전거 타는 것인데, 자전거 타는 한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되겠다'하고 결혼을 했죠, 아내가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지금은 아들 둘과 함께 캐나다에서 지냅니다.

5년 정도 되었는데 아이들이 적응을 잘 해줘서 고맙습니다.

캐나다에서 가족과 함께(아내와 두 아들 재천, 재희)


나에게 자전거는 OOO이다.

자전거요. 자전거는 또 다른 가족입니다.

사실 가족이 떨어져 있어 힘들고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만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런 외로움을 극복하게 해 주는 것도 자전거죠.

자전거도 가족처럼 함께 하면 편하고, 또 삶의 한 부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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