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자전거포와 황일수 할아버지
에디터 : 김수기 기자

어릴 때, 큰 쌀집 자전거를 프레임 사이로 다리를 넣어 탄 추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우스운 이야기겠지만 필자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건 5년 전쯤이다. 어릴 적 기억에 자전거를 탔던 친구들도 없었고, 집 근처에 자전거 가게도 없었던 것 같다. 고향인 부산에서도 그랬지만 서울에 와서도 자전거와의 인연은 없었다. 다행히도 신혼살림 집 옆에 안양천 자전거도로가 있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을 보면 주변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버스로 출근하는 길에 항상 보는 자전거포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가게 중의 하나였다. 자전거를 알기 시작하니 자전거포가 그때서야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몇달 전 자전거포 자리를 세놓는 다는 벽보가 붙더니 결국 한 집 걸러 옆에 있던 쌀가게의 창고로 바뀌었다. 요즘같은 세상에 장사가 될까, 먹기 살기 힘들지 않을까 염려가 되긴 했지만 막상 없어지고 나니 아쉬움이 들었다. 


입덧으로 고생하던 집사람을 위해 찾았던 콩나물국밥집에 주차하면서 본 자전거포가 생각났다.
그새 없어졌으면 어떻게 하나 싶어 일부러 출근길을 빙빙 돌아 확인하러 가니 아직도 있다.
영등포 시장이 근처에 있어서 옛날 짐자전거가 아직도 달리는 곳이라 자전거포가 살아남은 것 같다.
'한일 자전거'라는 자전거포가 많아서 '일한 자전거'라고 이름을 지은 황일수 할아버지의 자전거포다.

내년이면 80줄에 들어서신다는 황일수 할아버지는 자전거포를 한 지 40년이 넘었다고 한다.
현재 가게 위치로 온 건 4년이 됐고, 예전에는 영등포시장통에서 가게를 했다.

용접공이었던 할아버지는 누군가의 자전거포를 하면 돈이 된다는 말에 덜컥 자전거포를 시작했다.
자격증은 없지만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보다 용접을 잘했다고 자랑하는 할아버지는
부러진 자전거도 척척 용접해서 고치니 제법 쏠쏠히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손때묻은 공구를 보니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용접공 출신답게 못쓰는 몽키스패너를 개조해 만든 할아버지만의 공구가 유독 눈에 띈다. 

세월이 지나면서 빵구가격도 올라갔나 보다. 손으로 쓴 '5' 뒤에 숨겨진 숫자가 궁금하다.

펑크 패치로 떼운 튜브가 한 묶음 걸려 있다.
아마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한 손님들을 위한 것이겠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두명의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포를 들렸다.
한사람은 튜브를 떼워달라고 했고, 다른 사람은 자전거를 도둑맞아서 중고자전거를 알아보려고 왔다.
왠지 내가 사람을 몰고 다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어디 보자."

침침한 눈이지만 바퀴 이곳저곳을 보더니...

"타이어 옆이 터져서 타이어랑 튜브랑 바꿔야겠소..."
"허, 이거 참...고물 자전거가 애 먹이네. 자전거값보다 수리비가 더 들어가네."

모르겠다. 자전거값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들어간 자전거를 계속 타는 게 나은지,
아니면 새로운 자전거를 사는 게 나은지.

힘겹게 자전거를 뒤집고, 느리지만 볼트를 풀고, 휠을 빼는 모습에서 40년의 연륜이 묻어나왔다. 

간간히 짐자전거에 바람을 넣으러 오는 아저씨까지 합세하니 자전거포가 북적인다.

황일수 할아버지는 이제 나이가 드니까 사람들이 못미더운지 잘 안오는게 섭섭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힘이 있을 때까지 자전거포를 하겠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공구통은 작업의자 역할도 하는 1인2역이다.
 물이 담긴 대야는 튜브를 교체하는 바람에 쓸 일이 없어져 먼지만 둥둥 떠다닌다.

"구찌가 어디 있더라..."

무시고무(지렁이고무)를 찾는 할아버지는 40년 동안 썼던 캐비넷을 열어본다.

중고 자전거를 알아보러 온 아저씨는 심심했는지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으러 동네 한바퀴 돌러 갔다.

브레이크가 잘 안 먹는다고 하니 케이블과 브레이크 패드까지 교체하기로 했다.
기름때로 원래 색을 잃어버린 공구함에서 뭔가를 찾는다.
서랍마다 부속품이 가득차 열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공구함도 할아버지의 40년 지기다.

수리비가 2만 5천원이 나왔다. 아저씨는 펑크 떼우기만 예상했는지 돈이 모자랐다.

"아저씨, 나 집에 가서 돈 갖고 올테니 좀만 기다려요."
"나중에 볼 일 있을 때 주던가..."

동네가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으러 간 아저씨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아저씨, 이거 얼마요?"    "15만원."
 "너무 남기는 거 아니요? 하하."    "나처럼 싸게 파는 사람도 없어."
"근데, 난 반도 브레끼가 좋은데, 반도 달린 자전거는 없소."  "그럼 이거 타던가?" 
"아, 그거는 여자 자전거잖소."

결국 자전거포에서도 허탕을 치고 돌아갔다.

"아저씨, 아까 남은 만 천원. 근데 브레끼가 뻑뻑하니까 손 좀 봐주소."

중고자전거 알아보러 온 아저씨가 허탕을 치고, 남은 수리비값까지 치루고 간 아저씨가 돌아가니
활기가 넘쳤던 자전거포는 다시 적막해졌다.
할아버지는 또 기약없는 손님을 기다린다.

자전거포 주인의 나이가 들수록, 고물자전거를 고치지 않고 새자전거를 사는 게 더 이득이 될수록 자전거포는 설자리를 점점 잃어버린다. 그제서야 어떤 위기감이 느껴졌다. 남들은 가지고 있는 자전거포의 추억, 더 늦기 전에 나도 만들어 보자고.


당신은 자전거포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위의 기사는 개인적인 용도 및 비상업적인 용도의 '퍼가기'를 허용하며, 상업적인 용도의 발췌 및 사진 사용은 저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