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바이크패킹 이벤트, 투스카니 트레일 참가기
에디터 : 엄기석
사진 : 엄기석

지난 5월,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주에서 열린 세계 최대규모의 바이크패킹 이벤트인 Tuscany Trail(www.tuscanytrail.it)에 참가하였다.
Tuscany Trail은 토스카나 지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로마 시대의 아름다운 자연과 중세 중심지 등 아름답고 독특한 풍경을 두루 둘러볼 수 있는 길이 470km, 상승고도 6,500m의 루트로 구성되어 있다.
줄지어 있는 이탈리안 사이프러스, 시골 집, 중세 마을, 응회암을 깎아 만든 거리, 대리석 채석장, 햇볕이 잘 드는 섬에 상쾌함을 주는 수정처럼 맑은 바다, 이 지역만의 독특한 음식과 우수한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라이딩 루트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닌 중세 및 르네상스 역사 중심지로 유명한 볼테라(Volterra),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시에나(Siena), 몬탈치노(Montalcino), 몬테리지오니(Monteriggioni), 피엔자(Pienza) 및 카스틸리오네 델라 페스카이아(Castiglione della Pescaia) 등의 중소도시를 지나간다.

투스카니 트레일의 메인 스폰서인 Montura, 이번 원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Tuscany Trail의 특징


매년 거의 5천명에 가까운 라이더들이 참가하는데, 특징적인 것은 '기록경기'가 아닌 '그룹라이딩'이라는 것이다. 출발 날짜만 있을 뿐 시간이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루트의 GPX파일을 제공하지만 루트를 제대로 라이딩하였는지 아무도 체크하지 않는다.
숙박 업소를 이용할 수도 있고, 전기자전거도 참여할 수 있다.이러한 포용성과 유연성이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훌륭한 음식과 더불어 Tuscany Trail이 세계 최대의 바이크패킹 이벤트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에 이벤트 역사상 최초로 4명의 한국인이 참가하였다. Tuscany Trail은 이탈리아 아웃도어 자전거 의류 브랜드인 Montura에서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Montura(www.montura.kr) 의류를 수입하는 ㈜오르고의 이용인 대표, 박기성 도봉산 산악구조대장, 그리고 코리아에픽라이드 운영을 맡고 있는 필자(엄기석)와 박성진으로 구성되었다.
이탈리아 Montura와 ㈜오르고에서 이번 이벤트 참가 신청부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팀은 시차적응도 할 겸, 본격적인 Tuscany Trail 참가 전에 일정 여유를 가지고 이탈리아 북부의 Garda 호수의 일부 구간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로 계획하였다.
Garda호수를 한바퀴 돌 수 있는 바이크패킹 루트인 'GranGarda'가 있는데, 우리는 호수 북쪽편의 가장 험하지만 경치가 좋은 Ledro구간을 라이딩하였다.
Garda호수에 접한 캠핑장에 캠프를 마련하고 길이 약 50km, 상승고도 1,400m인 루프 코스를 라이딩 하였다. 이 구간의 최대 경사도는 21.6%, 내리막 경사도도 38%에 달하여, 일행 중 그래블바이크 2대는 내려올 때도 끌고 가야만 했다.

Garda 호수 북쪽의 Ledro 부근

토스카나 지방으로 이동해서는 스트라데 비앙케(Strade Bianche) 대회의 일부 구간을 2일 동안 라이딩하였다.
넓게 펼쳐진 구릉에 목초와 밀밭, 포도밭이 이어지고 언덕 위에 자리잡은 오래된 저택으로 이어지는 진입로 양옆에는 좁고 길게 자라는 이탈리안 사이프러스가 줄지어 가로수를 이루는 풍경을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어 마치 윈도우 바탕화면 안에 들어와 라이딩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라이딩 도중에는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주인공 막시무스의 집으로 유명한 장소도 지나간다. 막시무스의 아이가 아빠가 돌아온 줄 알고 뛰어나오는 장면에 나왔던 곳이다.

과거 군사용으로 사용하던 도로를 자전거와 트레킹에 활용하고 있다.

이탈리안 사이프러스 가로수가 인상적인 토스카나 풍경

필자의 바이크패킹 세팅. 취사 장비도 준비했지만 재보급 여건이 좋아서 사용하지 않았다.


Tuscany Trail 라이딩


우리는 총 470km의 루트를 대략 하루에 100km씩 라이딩하여, 5일에 걸쳐 완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루트의 초반은 지중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한낮에는 더워져서 바닷물에 잠시 몸을 담그기도 하였다. Pescala를 지나면서 루트는 내륙으로 향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중간에 마을이 거의 없다시피하여 보급에 유의하여야 한다.
당초 계획으로는 Pescala를 조금 지난 120km 쯤에서 캠핑하려했으나, 코스가 전반적으로 쉬운 편이어서 라이딩 속도가 빨라 이른 오후에 Pescala를 지나 계속 라이딩을 이어 나갔다.
 결국 첫날, Paganico까지 약 150km를 라이딩했다.   사실, 훈련량이 부족한 나에게는 좀 무리가 되었다.   주최측이 사전 협조를 해 놓아서 Paganico의 커뮤니티센터 풀밭에서 캠핑을 할 수 있었고, 파스타와 맥주도 저렴하게 팔고 있어서 식사, 샤워, 캠핑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투스카니 트레일 첫 날, 지중해에서 해수욕도 즐겼다.

첫 날 캠핑한 Paganico 마을의 캠프촌

샤워를 할 수 있고, 파스타와 맥주도 저렴하게 제공된다.

둘째날은 비교적 상승고도가 높은 편이어서 라이딩 거리를 길게 잡기 어려웠다. 그러나 수많은 중세 도시 마을을 지나가므로 보급 여건이 좋고 볼거리도 많은 편이다.
며칠 전 스트라데 비앙케 라이딩 때에도 지나갔던 Montalchino, San Quirico val d’Orcha, Pienza, Buonconvento와 같은 중소 도시들을 다시 지나갔다. 레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점심은 레스토랑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여 여유있는 식사를 했고, 커피도 빼 놓을 수 없었다.   

와인의 고장 토스카나에서도 Brunello di Montalcino 와인으로 유명한 Montalchino 인근을 지날 때에는 여러 명의 클래식 사이클리스트를 볼 수 있었는데, 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회 중인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Eroica Montalchino'라는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었다.
Eroica는 1997년 시에나 지방의 작은 마을인 키안티의 가이올레에서 Giancarlo Brocci가 시작한 이벤트이다. 첫 번째 이벤트에는 92명의 라이더가 참여하였고, 자갈길에서 빈티지 자전거를 타면서 코피(Coppi)와 바탈리(Bartali)의 영웅적인 사이클링을 회상하고, 원시적인 웅장함 속에서 피로를 경험함으로써 스포츠의 핵심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데 가치를 두는 사이클링 이벤트이다.
그래서 이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는 자전거는 1987년 이전에 생산된 것으로 페달 클립과 타이어 폭에 대한 규정도 있으며, 의류, 액세서리에도 클래식을 추구하는 일정한 제한 규정이 있다.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는 이벤트가 현재는 전세계에 16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라이딩하면서 Eroica 라이딩 루트를 나타내는 표지판이 자주 보인다.
둘째날은 Buonconvento까지 108km, 상승고도 2,000m를 라이딩 하였다.

흰색 석회암 길로 유명한 지역

흰색 길이라는 뜻의 Strade Bianche 대회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둘째 날, Eroica 대회에 참가한 라이더들을 만났다.

셋째날, Buonconvento에서 Siena로 향하는 루트는, 낮은 구릉지대에 목초와 밀밭 포도밭이 펼쳐지는 아주 한적한 길이다. 구릉 의 높은 곳에 오르면 사방이 다 펼쳐져 내려다 보였다. 멋진 풍경이 펼쳐진 곳에서는 얼굴을 모르는 다른 참가자라 할지라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넷째날, San Gimignano에서 출발하여 얼마 안 가서 Castelvecchio 보호구역의 산을 넘어가야 했다. 경사가 가파르고 노면이 매우 험한 편이어서 계속 끌고 올라가야 했는데, 나무 그늘이 우거져 있어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이제 앞으로는 이렇다 할 고개가 없어서 마음이 편해졌다.

45km쯤 가면 Lajatico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은 Andrea Bocelli의 고향이다. 그래서 그런지 7월에만 3개의 Andrea Bocelli 음악회가 있다. 작은 시골 마을 답게 광장에 인접한 식당에는 오랜만에 넘쳐 나는 사이클리스트들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골목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니 관광지 음식이 아닌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맛 볼 수 있었다.

경쟁 레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여유 있게 식당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루트의 끝부분은 다시 지중해로 나와 해안과 나란히 달린다.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온 데다 한낮이 되니 햇살이 따가웠다. 그러던 중 한 농가 앞 입간판에 'Cold Beer'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참을 달리다가는 젤라또 가게에 들러서 젤라또를 먹고 라이딩을 했다. 시골의 젤라또 가게 앞에 있는 녹슨 자전거를 자세히 보니 무려 'Bartali'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이탈리아 자전거 영웅 Gino Bartali(1914~2000)의 이름을 딴 자전거이다.
꼬모(Como)호수, 벨라지오(Bellagio)에 있는 기살로(Ghisallo)성당에는 바탈리가 1949년 Giro di Francia에서 탔던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다.

중세 마을을 자주 지나게 된다. 이곳은 San Quirico d’Orcha 마을이다.

시에나 광장

Andrea Bocelli의 고향인 Lajatico

기살로(Ghisallo)성당에는 바탈리가 1949년 Giro di Francia에서 탔던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다.

모든 라이딩에서 다 왔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다.
다 왔다고 보급을 게을리한 데다, 복잡한 도로에 지루하게 직선으로 뻗은 포도밭 농로길은 라이딩 막바지에 이른 몸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인생이나 라이딩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석양빛을 받으며 피니시를 하고 한 잔의 맥주를 들이키는 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다.

협찬 :  (주)오르고 (www.montur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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