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전거 여행, 방바닥에 배깔고 떠나보자.
에디터 : 김수기 기자

자전거와 여행.

여행이라는 말은 살펴 보면 나그네 려(旅) +갈 행(行)이 붙은 말로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을 말한다.
이와 유사한 말로 관광이 있다. 볼 관(觀) + 빛 광(光)으로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함'을 의미한다. 두 말의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요새 들어 관광이라는 말은 이동수단을 이용해 관광명소에서 인증용 단체사진찍고, 대부분의 시간을 쇼핑에 할애하는 '묻지마 관광'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점에서 자전거는 여행과 찰떡궁합이다. 주변 볼거리를 충분히 볼 수 있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속도에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자연친화적인 이동수단이다.

'자전거 여행',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바이크 라이더에게 꿈이자 로망이다.
막상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지만 결단력의 부족, 시간을 내기 어려운 현실 등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나기가 어렵다.
우리에게 시 경계만 넘어가는 라이딩이라도 감지덕지다.

여행을 떠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면서도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해결방법은 바로 자전거 여행기.
바이크매거진에도 여러 여행가의 여행기가 있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 비치된 여행기도 많다.
여행기에 좁게는 국내 여행, 넓게는 특정 해외 국가나 대륙을 선정하여 떠난 여행, 해외 여행 종결자인 세계일주를 목표로 하는 여행 등이 있다.

왼쪽부터 아메리카 로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세계일주여행도 좋지만 북아메리카대륙 중에 미국을 주제로 달린 여행기 3편을 소개해볼까 한다.
아메리카 로드, 라이딩 in 아메리카,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제목만 봐도 '자전거'로 '미국'을 여행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각기 다른 연령, 직업, 여행 경로, 여행 목적, 가치관 등을 비교해 보며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누가 더 잘 쓰고, 더 재미있게 여행했고, 누가 더 힘들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아메리카를 달려봤던 라이더다.

먼저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작가 홍은택씨는 40대 언론인 출신으로 백수가 된 기념(?)으로 아메리카를 달렸다. 그가 택한 코스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개발한 자전거 코스인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이다.

아메리카 로드의 여행 코스인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

다음은 아메리카 로드. 작가 차백성씨는 50대의 건설업체 임원 출신으로 50대의 저력을 널리 알리고자 미국을 택했다. 그의 여행은 세 파트로 미국 서해안과 중부 내륙, 하와이로 나눠진다.
라이딩 in 아메리카의 문종성씨는 20대 청년으로 내면에 있는 자신의 열정을 찾고자 미국을 찾았다. 그의 코스는 홍 작가와 비슷하게 서진하지만 남쪽으로 처지는 경로다.

라이딩 in 아메리카의 여행코스

홍은택씨의 여행기는 여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 차백성씨는 이동경로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 문종성씨는 여행 중에 만난 사람 이야기가 주를 이뤄 3권 모두 각각의 재미가 있다. 차백성씨와 문종성씨의 여행기에는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겪고, 준비한 여행팁을 알려주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왜 3명은 여행지를 미국으로 정했을까?'다.
미국만큼 넓은 대륙도 있고, 자전거의 본고장을 찾는다면 유럽도 있고, 정말 힘든 라이딩을 각오한다면 아프리카 대륙도 있다.

아름다운 나라인 '美國'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여행기를 다 읽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한 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기후와 지질학적 환경,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며 다양성을 갖춘 문화, 그런 미국을 찾아온 다국적 라이더와의 만남, 아웃도어를 즐기는 미국인 덕에 캠핑이 수월한 점, 한국보다 라이더에게 우호적인 점 등이 미국을 찾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미대륙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지형과 기후, 다인종, 다문화 등으로 라이더를 유혹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또는 국경을 따라 도는 미국에서의 라이딩 거리는 한반도에서 맛보기 힘들다. 장대한 라이딩 중에 만나는 대서양, 아팔란치아 산맥, 록키 산맥, 대평원 그리고 태평양은 미국 본토를 가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뿐이다.

약 한달 간의 여행기에서 대륙성, 해양성, 고산, 사막, 스텝 등 다양한 기후를 만나고, 해발고도 3,000미터 이상을 넘나드며 다양한 인종의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은 미국 외에는 없어 보인다. 더군더나 세계 정치, 경제의 중심지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미국은 최상의 자전거 루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행 중에 만난 다양한 사람과의 에피소드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대부분은 호의적인 인물이지만 자전거 라이더의 공분을 느끼게 하는 '공공의 적'도 등장한다. 물론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질질 흘리며 정신을 쏙 뺄 정도로 추격해오는 견공도 등장하고.
그래도 라이더에게 호의를 베푸는 천사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가 그 호의를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지만, 자전거를 좋아하는 나에게 반문을 해본다.
'나도 과연 그들처럼 라이더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 따뜻한 정을 줄 수 있을까?'
'자전거를 타면서 위협하는 자동차를 원망했지만, 자전거를 원망하는 보행자를 생각해본 적 있나?'
'속도 위주로 타다 보니 주위 풍경을 제대로 못 보는 건 아닌가?'

여행이라는 것은 뜻밖의 사람, 새로운 만남을 가지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를 뒤돌아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안장에 앉아 타인을 바라보지만 자전거 여행은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처럼 자기성찰을 위한 수행이 된다. 끝없이 펼쳐진 도로에 홀로 페달을 돌리다 보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 했을까?' 또는 '난 왜 그랬을까?'에서 시작한 물음은 '나도 그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나 '나도 그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결과를 낳는다.
인생의 모범답안은 없지만 최선의 답을 찾고자 한다면 자전거 여행을 떠나자.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여행하는 바이크 라이더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아도 한마을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마을은 아마 세계에서 유례없이 가늘고 긴 띠 모양일 것이다. 6,4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따라 공동체를 이뤄나간다.'(홍)

'여행 중 터득한 것 중의 하나는 어떤 난관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그리 대단한 불행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눈높이를 낮춰 담담한 마음을 가지고 시간이라는 해결사에게 맡기면 된다.'(차)

'여행은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 새로운 사람과 사물을 만나면서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 유쾌한 일탈이다.'(문)


꼭 미국을 여행하고자 하는 라이더가 아니더라도 세사람의 여행기를 읽으면 짧은 여행이라도 어떻게 해야 알차게 할 수 있는지 도움이 될 것이다.  
추워서 밖에 나갈 엄두를 못내는 라이더여, 따뜻한 방바닥에 배깔고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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