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디터 : 이호선
|
맹렬히 하루를 달려 다음 나라인 엘살바도르(El Salvador)를 20여km 남겨 놓은 지점인 아순시온 미타(Asuncion Mita)에 도착해 8,000원의 여관을 어김없이 집어 내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어디든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서민들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오케이. |
과테말라에서도 예외 없이 검은 재킷과 검은 바가지의 '할리 족'들이 일요일 아침의 평화와 느긋함을 인정사정 없이 산산 조각 내며 막무가내로 그들의 주말과업을 감행한다. |
코레아(Corea)에 환호하는 도로변 노점상의 여인들. 일종의 우리의 호떡인 뿌뿌사(Pupusa)는 약간의 치즈나 팥고물을 안에 넣고 후라이 판에 익힌 것으로 이들의 중요 아침 메뉴이다. |
힘차게 불어대는 닭들의 기상나팔소리와 함께 일찌감치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국경은 되도록 이른 시각에 넘어 어둠이 오기 전까지 새로운 나라의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해 놓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2시간 여를 달려 엘 살바도르의 국경에 도착하니 아침 9시 반이다. 뜻밖에 국경 통행세가 없다. 멕시코에 입경할 때는 20불을, 그리고 과테말라에선 2불을 지불했다. '뜻밖에'는 그것 뿐이 아니고 하나가 더 있는데 이곳에서의 상용화폐가 미국달러이다. 새로운 나라들을 지날 때마다 환율계산과 환전의 신경전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미국달러는 이미 익숙해 있어 마음이 아주 가볍다.
이미 수 차례에 걸쳐 국경을 넘고 있지만 뚜렷이 다른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달리고 있다. 거의 한결같이 계속되고 있는 도로변의 풍경에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똑 같고 먹고 있는 음식조차 거의 변함이 없으며 사람들 또한 모두 그 사람들이니 말이다.
엘살바도르(El Salvador)의 수도인 산 살바도르(San Salvador)를 향해 지도도 필요 없이 도로표지판에 시선 집중하며 1번 국도인 CA1을 타고 달린다. CA1은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Pan American Highway)로서 북미, 중미, 그리고 남미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이지만 어딜 가나 여유 없는 왕복 2차선 도로일 뿐이다.
과테말라와 엘 살바도르의 국경. 국경지대는 양쪽나라의 사람들의 왕래가 왕성하고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
엘 살바도르에 들어서면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장례 행렬이 나를 앞 선다. 오늘이 길일(吉日), 아니면 흉일(凶日)?!?! |
도로를 달리다가 수 차례에 걸쳐 장례행렬을 통과한다.
'도대체 오늘 무슨 날이기에………'
장례차량은 한결같이 밴으로, 뒤 문이 열린 채 관이 들어가 실려있고 차량 앞 부분의 지붕에 어김없이 달려있는 확성기로부터는 장송곡이 틀림없는 한 여성가수의 슬픈 색조의 노래가 반복해서 흘러 나오며 도로변의 사람들을 숙연하게 한다. 아주 천천히 굴러가고 있는 장례차량 뒤로 죽은 자의 가족과 친지들이 따른다. 조금은 색다른 모습이라 기억해 놓으려고 카메라를 들었으나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머뭇거리고 있는데 차량의 앞에서 행렬을 이끌며 걷고 있는 직계가족들이 찍어도 괜찮으니 어서 찍으라는 제스처를 계속해 황당함을 금치 못하며 사진을 찍는다.
수도인 '산 살바도르(San Salvador)'를 30km정도 남기고 또 다시 본격적인 문명(文明)을 향한 오르막 길이 시작된다. 산 살바도르를 수 km남겨 논 지점인 뉴에보 산 살바도르(Nuevo San Salvador)에서 어둠과 허기짐에 굴복하고 캄캄한 뒷골목에서 찾아 낸 7불짜리 여관의 입구에는 서너 명의 짙은 화장의 아줌마들이 서성거린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워와 겹쳐 산 살바도르를 빠져 나가기 위해 또 한 바탕 진땀을 흘리지만 그다지 길게 계속되지는 않았다.
산 비센테(San Vicente)시(市)의 입구를 지나자마자 시작된 짧은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다가 뒤 바퀴의 바퀴살이 부러지는 불길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4시 반이다. 1시간 후면 주위는 이미 어둠 속에 완전 포위되고 말 것이다.
어젯밤 13번 여관방에서 잤는데 13의 저주인가?!
어제 엘 살바도르에 들어 온 후, 지나가는 트럭에 탄 악동들이 던진 먹고 난 과일 껍데기에 어제 오늘 두 차례나 나의 등을 맞아 아주 불 유쾌한 기분이었는데 정말 기운 빠진다. 나는 결국 어금니 질끈 물며 이미 지나쳐 온 산 비센테(San Vicente) 시(市)로 되돌아 가기로 한다. 시(市)가 1 번 국도에서 수 km 깊숙하게 안으로 들어가 있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 결코 유쾌하지 않다.
아열대의 나라답게 비가 심심치 않게 내리며 나의 발걸음을 묶는다. 도로변의 과일가판대의 사장님은 오늘 누구 결혼식, 아니면 장례식에 갔는지 출근하지 않았다. |
많은 이들이 '마체테(만도)'를 멋진 가죽칼집에 넣어 허리춤에 차고 다닌다. |
엘 살바도르의 산 비센테(San Vicente)시(市) 입구에서 화사한 미소로 나를 환영하는 도로 순찰대 경찰들. |
산 비센테 시(市)의 중심가로 들어가 수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의 총구를 의식 할 겨를 없이 싼 여관을 찾아 헤맨다. 묻고 물어 찾아 간 곳이 15불과 25불.
수 많은 동네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묻고 물어 기어코 골목구석에 있는 7불 여관을 찾아 냈다. 그들 말대로 '치노(Chino)' 한 놈이 싸구려 여관 찾겠다고 온 동네를 온통 흔들어 놓았다. 이곳도 예외 없이 묘한 아줌마들이 여관 입구에서 서성댄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밤 그대로 내 팽개쳐 둔 자전거를 수리하기 위해 꿈틀거린다. 방 밖으로 나와 보니 아침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야릇한 아줌마들이 여관입구에 서 있고 남자들이 하나 둘 줄을 잇는다.
자전거 수리 후, 시내를 걸어 돌아 보니 결코 크지 않은 시에 온통 성당이고 적지 않은 수의 허름한 병원들이 있는데 환자들로 바글바글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세상 어느 곳에 가도 병원에는 환자들이 넘쳐나고 의사는 최고의 인사(人士)다.
여관에 돌아 오니, 아침에 목격했던 그 풍경이 계속되고 있다. 내가 있는 이곳은 바로 매춘 업소로 아침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가 중요 영업시간인데 저녁이 되어 어둠의 시작과 함께 여관은 절간으로 바뀌고 나는 고독한 수도 승이 되어 고요를 응시한다.
싸구려 여관을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뒤 흔들어 놓았던 산 비센테(San Vicente)시(市)에도 어김없이 새벽이 깨지고 태양이 떠 오른다. |
저녁 5시 반경부터 시작된 길고 긴 어둠의 행렬은 새벽 5시경이 돼서야 비로소 뜸해지다 순식간에 동쪽하늘 위로 흩어져 사라져버린다. 또 짧지 않은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산 비센테 시(市)를 나와 1번 국도로 다시 진입하기 위해서는 아주 급경사의 길을 기어 올라 와야 한다. 새벽부터 땀을 온 몸에 뒤집어 쓴 채 다음 시(市)인 산 미구엘(San Miguel)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헌데 도로가 엉망 찬란하다. 차도는 그런대로 이나 정작 내가 달려야 할 갓길이 형편없이 깨지고 구멍이 나 있어 나의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이런 길을 달렸다가는 '엘파마'의 내일을 결코 보장할 수 없는 심각한 사태에 처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런 내리막 길은 주행 불가다. 차량들과 함께 달리는 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데 도로 위의 흰색 경계선조차 없고 왕복하는 차량, 특히 대형트럭 들이 엄청나게 많으니……
그렇다고 내가 양보만 하고 있다가는 이곳에서 석양을 맞이 해야 할 판이다. 결국 차도의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다 간발의 차로 나를 스쳐 지나가는 대형트럭의 강력한 장풍에 휘청대다가 끔찍한 갓길로 밀려 떨어지려는 순간, 나는 어쩔 수 없이 급 브레이크를 잡는다.
나의 몸이 앞으로 넘어가 아스팔트 길 위에 이빨과 입술을 부딪으며 도로 위를 굴렀다. 감사하게도 뒤를 잇던 차량들이 놀라운 순발력으로 나를 밟지 않고 뛰어 넘는다.
나의 손은 이미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의 이빨을 더듬으며 이빨의 이상유무를 체크한다.
4대의 나의 앞니들은 모두 인조이빨로 강력 본드로 붙여진 것들이다. 일본에 있을 때, 이혼 후 연일 '주가(酒家)'에서 '주도(酒道)'를 닦고 있던 중 자전거를 만취운전하며 밤 거리를 휘젓고 헤매다가 어딘가에 쳐 박았고, 그 결과 앞니 4대에 수 많은 균열이 생겼다.
나는 그 이빨로 복싱도장에서 스파링을 계속하던 중, 결국 4대중 양 측면의 2대가 부러져 떨어져 나갔고 정말 강력한 정면의 앞니 두 대는 긴 세월 동안 수 많은 균열을 더하고 푸르게 죽어 있었으나 뿌리가 여전히 살아있어 결국 뿌리를 살리고 총 6대를 브리지(Bridge)시켜 강력본드로 붙여 놓았다.
내가 3년 전 북반구 세계일주를 떠나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나는 이 새로운 앞니들이 꿈속에서조차 걱정스러워 가끔씩 심각하게 하고픈 복싱도장에서의 스파링의 욕구를 짓누르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정말이지 나의 앞니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기면 지금 당장이라도 보따리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라고.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고?!!!"
"어이구, '엘파마'야! 걱정 붙으러 메랑께!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한다!"
나는 비로소 숙명여대 앞에 있는 "청파치과"의 최 국희 원장님께 심각한 마음으로 감사를 들이는 바이다. (지금 '바이크매거진'에서 저의 여행기를 읽고 계십니까?!)
멕시코에 이어 또 다시 사고를 당해 제 정신을 못 차리고 서 있는데 사이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 사나이가 나의 사고를 목격한 듯 황급히 나에게 달려 오며 새로 산 듯한 생수를 나에게 권한다.
"여 봐, 너의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
입술을 손으로 훔쳐보니 정말 피다. 나와 마주한 그의 입에선 술 냄새가 역력하고 그의 숨 소리는 거칠기만 하다.
'그도 음주운전 중이다.'
그는 국경으로 가는 길 1km 이상을 '만도'로 정글에 길을 내듯 차량들 속에 뛰어들어 그들을 밀어내며 나를 앞장 서 안내하며 달리다가 내가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순식간에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나의 시야를 떠났다. 멕시코에서 사고를 당해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통증의 찰흙'이 아직도 왼쪽 어깨에 붙어 있는 가운데 또 터지고 만 사고이지만 결코 얼어붙지 말자.
놀랍게도 중미지역에서도 쌀을 재배하고 있었고, 옥수수의 토르틸랴(Tortilla)만큼이나 많이 소비하고 있다. |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뿌뿌세리아(Pupuseria)-호떡집-에 들어가자마자 주인할머니는 "학권(鶴拳)", "묘권(猫拳)", "취권(酔拳)"의 절묘한 배합으로 나를 연타. |
여행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