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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이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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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박차고 일어나 상쾌한 하루를 시작한다. 아스팔트 길을 씽씽 달려 도도마 시의 외곽으로 빠져 나와 단지 수 백m를 지났을까?!!
"어~엉! 이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야?!" 부드러운 검은 비단길이 가위로 싹둑 잘려나가고, 옛날 쌀 가마니같이 거칠고 먼지 풀풀 날리는 누런 도로가 꼴사납게 일그러진 표정의 우리를 향해 박장대소를 하고 '이 주일'의 오리궁둥이 춤까지 연출하고 있질 않는가?!
갑자기 내 눈 앞의 세상이 누렇게 변하며 온 몸에 기력이 없고 그저 망연자실 서 있을 뿐이다.
"아! 어떻게 달려 온 262km이더냐?!!"
어쨌거나 영문을 알고 싶어 100여m 앞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향해 수 만근같이 무거운 페달을 젓는다.
"얌보(Jambo: Good Morning)! 어……내가 듣기로 도도마(Dodoma)에서 아루샤(Arusha)까지의 도로가,……"
나의 말이 방금 시작되었을 뿐인 시점에서, 양복을 말끔하게 갖추어 입고 이 무리의 중앙에 서 있던 잘 생긴 40중반의 사나이가 다짜고짜 나에게 들이댄다.
"당신은 Jesus를 믿는가?! 나는 목사, 윌리암(William)이요. 만일 그대가 아직 Jesus를 믿고 있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Jesus를 믿으시요! Jesus는 이 세상 유일의 신이요!"
"?@#?$%^&*?!!"
도대체 목사라는 이 친구는 제 정신인가?! 길에 대해서 묻고 있는 나에게-그것도 외국인인 나- 나의 애타는 도움요청은 완전히 묵살한 채, 난데없이 신앙을 들이대며 강요하고 있는 이 위인은 분명 두 눈 벌겋게 뜨고 있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다. 도대체 그 무엇이 그대의 작지 않은 두 눈을 가로막아 눈 뜬 봉사로 만들었는가?! 그대처럼 고귀한 신분이 아닌 농부, 목동들도 내가 자전거를 그들 앞에 갑자기 세우고 그들에게 다가가면 비록 말은 안 통해도 "무슨 문제 있냐?!"는 제스처로 나에게 배려를 한다.
그래, 나는 Jesus, 알라(Allah)를 비롯 그 무엇도 믿지 않아! 나는 한국의 명산, 서울의 인왕산 기슭에서 태어나 숱한 무당들과 보살할머니, 그리고 인왕산 도사들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고 들으며 자랐지. 그대가 신봉하고 있는 신(神)만이 유일하며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대 소관으로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남에게 강요하고 억지 쓰지는 말게나. 믿음과 신앙이란 분명 개인적인 것이고 믿는 사람 맘이지. 믿음과 신앙에 우월과 열등이 어디 있고 등급이 어디 있는가?! 내가 사는 동네에는 Jesus가 전혀 안 먹히는 일본인을 미개인으로 선을 그으며 알 수 없는 우월감에 살아가고 있는 진상도 있다네! 나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역시 '동양철학'의 얘기들이 듣기 편하고 친근하지. 하지만 내가 어릴 적부터, 정확하게 고등학생, 목숨을 걸만큼 심각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나(Myself)"와 "바로 지금(Right Now)"뿐이네! '나(我)'자신의 심각한 부르짖음에 눈감고 귀 막고 '나'자신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치며, 신의 이름을 걸고 신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기보다는 고독 속에 '나'자신과 마주앉아 솔직 담백한 대화로 담판을 지으며 살아 가고 싶네. '나'에겐 그 어떤 명분도 없어! 내가 전부이고, 내가 모든 것이기에. 나는 한 인간의 탄생, 그리고 나의 탄생에 대해 그대들처럼 거창한 명분과 의미를 만들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 또 다시 태어나 영원 무구한 삶을 계속하겠다는 탐욕도 결코 소유하고 있지 않지. 나는 단지 나를 이 세상에 떨구어 준 나의 부모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고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그럴 것이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심각하기 짝이 없다네. 이미 '지나간 바람'이 되어버린 과거에 집착해 두리번거리며 뒤돌아보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일을 밤새워 걱정하고 예상하며 동분서주하다가 정작 심각하기 짝이 없는 '지금 이 순간'을 유기 방치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며 끝내 나를 산 송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네! 나의 심장이 멎는 그 순간까지 철저히 나를 믿고 사랑하며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불살라 태우며 나의 부단한 의지와 단련으로 순간 순간의 나의 삶을 관철시켜나가는 것이야.
신앙이란 자기 자신만의 신성한 것으로 그 어떤 구실과 명분으로도 강요돼서는 안 되는 걸세, 더구나 그대처럼 상대를 무시한 일방적인 강요는 사람을 분노케 한다네. 그대가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대의 총명한 두 눈동자를 뒤덮어 그대를 눈 뜬 장님으로 만들고 있는 부당하기 짝이 없는 콩깍지를 제거하는 일일세!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대고 있는 악마 같은 비포장도로 앞에서 절망하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심기일전(心機一轉)의 의자가 되어 준 작은 식당, New Sheraton과 영악스런 주인 아가씨. "우리에게 절망은 없다!" |
결코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잠시 걷다가 도로변에 있는 작은 식당이 나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며 끝내 실소를 터트리게 한다. "New Sheraton!" 입구에 서 있던 한 아가씨가 상큼하고 야무진 목소리로 나를 반긴다.
"Welcome to Tanzania, welcome to New Sheraton!"
이 곳에서 뜨거운 '차이'와 '차파티'를 먹고 있는 동안, 충격지수의 수치가 조금씩 내려가고 숨가빴던 나의 마음에 느긋함이 다시 찾아 든다. 이 아가씨에게 물으니 크지 않은 타운, 바바티(Babati)까지 260km가 역시 비포장도로라고 한다. 비포장도로, 총 522km는 서울-부산간의 거리로, 내가 지금 완벽한 비포장의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심기일전, 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거칠고 먼지투성이의 도로 위에 선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이외에는 다른 해답이 없다.
황토 빛 도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여름철 비가 쏟아질 때 빗물이 흐르면서 도로표면이 물결처럼 파여져 도로 위를 달리면 나와 엘파마는 전신이 휘둘리고 출렁거린다. 결국 동네 바이커들이 출렁거리는 도로 위에서의 파도타기를 포기하고 좁은 그들만의 루트를 개척하며 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전거도로가 생겨버렸다. |
도로주변의 풍경은 변함 없이 황폐하고 깡 말랐다. 이링가(Iringa)시 주변에서부터 아루샤(Arusha), 케냐와의 국경지대인 나망가(Namanga), 그리고 케냐의 나이로비(Nairobi)시까지 1,000여 km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이 '마사이 왕국(Masai Kingdom)'이라고 한다. 오직 가축을 방목하며 초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한 마디로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그들의 삶은 심플 라이프(Simple life)의 전형으로,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프라이드(Pride)로 그들만의 전통을 고수하며 초원과 숲 속을 지키고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유목 종족답게 역시 무슬림으로 이 지역엔 오로지 이슬람 사원만 존재한다. 이런 마사이(Masai)의 땅에도 변화의 바람이 예외 없이 불어 와, 마사이들은 도로변의 마을로 내려 와 식당에서 쌀밥에 콩 수프와 야채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콜라와 맥주를 마시고 모빌 폰을 두드린다. 많은 가축들을 기르고 있는 그들은 경제적으로 결코 빈곤해 보이지 않는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기 값은 여전히 결코 싸지 않다.)적지 않은 마사이들이 모터사이클이나 승용차를 타고 초원을 누빈다.
많은 마사이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진출하며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듯하지만 이 왕국을 지키고 있는 대다수 마사이들의 의식은 아직도 아득한 전설 속을 헤맨다. 이 곳은 이 나라 정부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지역이지만 곳곳에 붙어있는 이 나라 대통령의 포스터 앞에서 주민들은 대통령사랑, 대단한 민족적?(종족적?) 자존심, 그리고 불타는 애국심을 부르짖으며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창조한다.
정부의 관심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된 장장, 1,000여km에 달하는 마사이 왕국. 이 지역의 가장 심각한 빈곤마을을 찾아 다니며 스토리를 쓰고 사진을 찍어 세상사람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수호천사인 그는 이 동네 곳곳에 즐비하게 붙어있는, 인자한 미소로 국민들을 바라보고 있는 대통령의 포스터 위에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오버랩 된다. |
배는 고프나 도로변에 마을다운 마을은 나타나지 않고 식당이 전혀 없어 고작해야 '차이'와 '차파티'로 억지만족을 하며 달린다. 작은 가게 하나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한 친구가 차이를 마시고 있는데 결코 예사롭지 않게 허리춤에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차고 있다. 그 동안 아프리카를 달려 오면서 디지털카메라를 소유하고, 또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이 곳의 검은 친구들을 결코 본 적이 없다. 이들이 소지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모빌 폰뿐이다.
이 평범하지 않은 친구는 일종의 Social Worker이다. 정부의 관심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극빈지역이 된 이 곳의 곳곳을 찾아 다니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마을의 사정과 상태를 글로 쓰고 사진을 찍어 그들의 스폰서가 되어 줄만한 선진국의 사람이나 단체를 찾아 연결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인데 엄청 바쁘다고 한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대통령 포스터를 배경으로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의 숨통은 산소가 필요한 듯 답답해진다.
도로는 가지가지의 표정으로 나와 엘파마를 혼란 시킨다. 돌과 왕모래의 길이 나오고, 사막의 모래보다도 더욱 고운 먼지 같은 진흙의 도로가 나오며 나를 혹사시킨다. 이런 길에선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당겨도 자전거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고비사막에서는 길이 없음에 사막을 걸었고, 이 곳에서는 길이 있음에 걷고 있지만 어쨌거나 바퀴는 앞으로 굴러가고 나 또한 전진하고 있음에는 한 치의 의혹도 없으니 그저 감사에 감사할 뿐이다.
하루 종일 걷기와 타기를 반복하며 60km도 채 못 와, 서서히 어둠이 되어가고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니 여인숙이 하나 있다.
New generation guest house! 이곳의 사장님은 악세서리를 위한 돌을 이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는 한국인 사장님들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 달간이나 체류한 적이 있는 한국 통으로 나의 출현에 대단한 환영의 예를 표하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부인들이 절세의 미인이라는 것이다. 여인숙을 장악하고 있는 분이 둘째인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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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도 찬란한 'New generation guesthouse!'
방안을 들여다보니 5,000S(3불)도 결코 되지 않을 초라한 방이다. 전기가 들어오든 아니든 전기 코드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는 방인데, 키가 큰 종업원 청년이 나에게 10,000S을 부른다.
'이런 개 자슥! 내가 이 비지니스를 하루 이틀 하고 있는 줄 아냐?! 정 그렇다면, 나는 숲 속으로 돌아가면 그 뿐이야!'
언어소통이 전혀 안 되는 그를 뒷발질로 내치고 여인숙을 나오는 나를 향해 한 신사가 급히 달려 온다. 이 여인숙과 식당의 사장인 토로(Toro)씨는 한 덩치에 행색 또한 깔끔하다. 그는 한국에 한 달이나 체류한 적인 있는 비즈니스맨으로 내가 한국인이란 사실에 '브라보, 한국!'를 연발하며 호들갑을 떤다. 그는 악세서리에 사용되는 돌을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수입상이 이 동네까지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방값은 내가 예상한대로 4,000S(2불50)! 내가 외국인이라고 미친척하며 이중가격을 책정하는 인사들이 종종 등장해 부풀었던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찌그러트린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토로씨(氏)의 부인들이 예사롭지 않다.
여인숙 옆에 있는 식당을 총괄하고 있는 첫째 부인, 그리고 여인숙을 담당하고 있는 둘째 부인 모두가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인데, 여인숙담당부인을 마주했을 때 나는 하마터면 나의 소중한 넋을 컴컴한 여인숙의 흙 바닥에 빠트릴 뻔 했다.
연일, 내가 고비사막을 걸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걷고 또 걷는 가운데 어느덧 비포장도로의 종착역인 바바티(Babati)타운에 다다른다. 결코 크지 않은 타운이나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것을 보면 이제 비포장도로는 틀림없이 끝난 것 같다.
260km의 길을 위해 나흘 반의 날들을 소비했다. 정오경에 도착해 식당에서 밥 먹고 멍하니 왔다갔다하다가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고 그저 쉬고 싶은 마음에 여인숙을 찾아 그대로 주저 앉는다. 522km의 고행길이 드디어 끝이 났다!
어둠을 뚫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는 동안 어둠 속에서도 이곳의 진상들은 귀신같이 나를 알아보고 "치노, 치나"를 부르짖는다. 식당과 가게주변에는 변함없이 사람들이 파리떼처럼 달라붙어있고 몇 몇 인간똥파리들이 또 나에게 달라붙는다.
아, 인간들! 사랑하는 나의 인간들아, 제발 나에게 자유를 다오!
검은 대륙을 달리기 시작하고부터 나의 자유는 풍지박살나며 진흙먼지가 되어 땅에 짓밟혀 버렸다. 아프리카 대륙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이 땅의 사람들은 나를 잠시도 가만 놔두질 않는다. 아시아대륙에 비해 분명 사람수가 적어 더욱 자유로워야 마땅할 이 땅에 웬 사람들이 끊김 없이 나를 쫓는가?!
이들의 끈질긴 아우성소리와 경멸의 소리는 나의 세계 6대륙완주에의 의지의 강철을 사정없이 갉고 녹슬게 해, 힘겹게 버티고 서 있는 내 의지의 강철은 언제라도 부서져 내릴 태세다. 격렬한 이들의 아우성을 처음에는 나를 향한 뜨거운 환대로 해석했으나, 날이 가고 가면서 이들의 아우성이 결코 예사롭지 않은, 병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South Africa, 짐바브웨, 잠비아에서는 "How are you?", "Good morning?", "Good afternoon?"… 그리고 탄자니아에서부터는 "얌보(Jambo):How are you, Good-morning!" 노소 남녀를 불문하고 나를 향해 부르짖는데 내가 고개를 돌려 확실한 답례를 할 때까지 목이 쉴 정도로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많은 수의 소년들이 달려 쫓아오며 부르짖어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이들을 무시하고 달리면 환대의 아우성은 순식간에 비웃음과 경멸의 깔깔거림으로 전락하고 만다. 환대가 아닌 절규에 발버둥수준으로 나의 전신을 짓누르고 숨통까지 틀어막으며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들은 마음속에 어쩌면 이방인에게 자신들을 알아달라는,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여달라는 관심 내지는 애정 구걸의 간절함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그들의 집착은 막무가내로 집요해서 나의 입에 거품을 물게 한다. 아프리카를 달리면서부터 나에게 간절한 욕구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입산수도(入山修道)'하고 싶다는 것!
552km의 고행길이 드디어 끝이 났다. |
인간은 동물의 일족(一族)이라 먹을 것 먹고 잘 것 자고 나면 또 새롭게 태어나고 살아나지만 정신이 지쳐버리면 대책이 없다. 결국 내가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시간은 바로, 숲 속과 여관방 안에서 하루 1시간 운동하는 동안이다. 한 시간 동안 나 만의 공간에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솔직한 알몸의 내가 되어 내 눈 앞에 마주하고 있는 하얀 그림자의 나 자신을 응시하며 펀치를 뻗는다. 전신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연신 흠치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나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다! '자유'란 '나 자신' 하나만으로 너무나도 충분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그렇게 갈구하고 있는 '자유', 그리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 하지만 여행을 위해 정작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생소한 스트레스와 구속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으며 깐죽대기 시작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자유'를 찾아 세계를 방랑하고 있지만, 진정한 자유는 바로 '나 자신'의 마음 속에 있고 자유를 기필코 소유하겠다는 나의 불굴의 의지 속에 있다. 여행과 방랑은 참다운 인생공부를 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자유'란 하루 단 30분만이라도 완벽한 고독 속에 행해지는 자기자신과의 솔직 담백한 대화를 통해 소유 가능한 것이지만 고독 속에 멍하니 수십 시간을 앉아 있어봐야 자유의 소유는커녕 자유의 냄새조차 맡지 못한다. 타깃이 없는 사격이 허무하듯 매듭이나 포인트가 없는 삶은 공허하다. 나의 몸과 마음은 한 포인트로 집중되어 정돈되고 조여져 '자유'라는 이름의 밸런스를 갖는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켜주는 포인트가 누구에게나 필요한데,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고독 속의 '새도 복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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