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복통에 시달리다.
에디터 : 이호선

오늘은 정말 힘겹다. 어제 밤 베피아스의 집에서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를 못했다. 이어지는 혼란스런 꿈으로 수도 없이 눈을 떴고, 퀵 샤워조차 하지 않고 잠자려고 했던 나는 결국 한 밤중에 일어나 가지고 있던 물로 밝은 달빛아래 샤워를 해야 했다. 나는 역시 숲 속이 자유롭고 마음이 편하다.

베피아스가 들고 있는 것이 스루샤(Slusha)인데, 중남미 인들에게 마체테(Machete:만도)가 있다면 아프리카 인들에겐 스루샤가 있다.
골프 채같이 생긴 조잡한 쇠칼이지만 정작 날은 없다. 무디기 짝이 없지만 골프채를 휘두르듯 휘둘러 무성한 억새풀밭을 초토화시킨다.

근육에 힘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땀을 비오 듯 쏟아가며 힘겹게 달리고 있는데 2 명의 모터사이클 여행자가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그들 모두는 두 말 필요 없이 백인들 일 텐데 두 명 중 한 명은 분명 여자다. 두 모터사이클의 양 측면에 2개의 예비타이어가 묶여 달려있는 것을 보면 그들 모두는 장거리 대륙횡단 여행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잠시 주행을 멈추고 물을 마시고 있는데, 한 줄기 강력한 바람과 함께 나의 앞으로 흑철마(Black Ironhorse)가 위풍당당 멈춰 선다. 철마를 탄 기사의 붉은 투구가 열리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꿈처럼 속삭인다.
"Are you O.K?!"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자, 뜨거운 태양 속을 엉기듯 달리고 있던 나의 앞에 바람처럼 나타나 따스한 그녀의 마음을 나의 손에 꼭 쥐어주곤 한 줄기 바람이 되어 꿈처럼 사라져 버린 흑 철마를 탄 붉은 투구의 여기사, 벨지움(Belgium)의 여인, 이사벨(Isabel)!

철마를 탄 여기사(女騎士), 이사벨(Isabel)은 이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어 나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벨기에(Belgium) 여성으로 그녀의 또 다른 동료와 함께 그녀의 나라, 벨기에를 떠나 유럽과 아프리카 전역을 여행 중인데 나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쳤던 그녀가 결코 쉽지 않은 되돌림을 감행하며 나에게 달려 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정상적인 숨쉬기 운동에 심각한 장애를 느낄 만큼 감동을 먹고 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용감함에 경의를 표하는 나에게 그녀는 작지만 야무진 그녀의 손을 내밀어 그녀의 따스한 마음을 나의 손에 꼭 쥐어 준 뒤, 바람이 되고 꿈이 되어 순식간에 나의 시야를 떠났고, 나는 아스팔트 도로 위의 당치도 않은 한 그루의 작은 바오밥(Baobab)이 되어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Holding out for a hero/ Bonnie Tyler

모든 선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모든 신들은 다 어디로,......
우리는 영웅이 필요해요.
산꼭대기 하늘 맞닿은 곳 위로,
번개가 바다를 가르는 그 너머로,
그 어디에선가 우릴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고 믿어요.
그리는 끝내, 그는 바람과 추위와 비와 폭풍과 홍수를 뚫고
번개처럼 달려와 우리들 옆에 서 있지요.

작은 타운, 이소카(Isoka)에 다다르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많은 아이들이 넓은 운동장에서 제대로 된 축구공으로 제대로의 축구를 하고 있고 여자애들조차 공놀이를 하고 있다. 온 동네에 생기와 활력이 넘쳐 흐른다. 이들에게 공은 쫓아야 할 꿈이고 염원이며 골(Goal)이다. 지금, 아프리카의 청소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축구장과 축구공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인 동네 펌프장. 한 담배를 피우며 유유자적하고 있던, 지금 멋진 펌프질의 연기를 하고 있는 이 진상은 내가 카메라를 꺼내 펌프 쪽을 향해 사격자세를 취하자, 바람처럼 날아 와 장화까지 신고 여태껏 동네사람들을 위해 봉사의 펌프질을 계속하고 있던 붉은 셔츠의 소년을 막무가내로 밀어내며 펌프 대를 잡는다.(그의 왼손에는 아직도 그가 피우고 있던 담배가 쥐어져 있다.)
동네의 한 아줌마가 그를 야무지게 치 받는다.
"이 파렴치한 놈아! 세상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야! 제발 인간이 되라!"

이소카를 빠져 나가자, 잠시 동안의 생기 넘쳤던 풍경은 이내 지난 밤의 꿈이 되어 버리고 메마름과 황폐함만이 현실이 되어 나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도로변을 따라 두 손에 각양각색의 플라스틱 물통을 든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들의 종착역은 다름아닌 공동 펌프장으로 평행사변체(平行四邊體)꼴의 머리를 가진 대형펌프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고 온 물통으로 어지럽기 짝이 없다. 나도 몰래 멈추어 선 채, 카메라를 꺼내 펌프 쪽을 향해 사격자세를 취하는 순간, 내가 카메라를 꺼내기 전까지 그저 펌프의 외곽을 맴돌 뿐으로 한 담배를 피우며 유유자적하고 있던 한 사내가 바람처럼 날아 와 장화까지 신고 여태껏 동네사람들을 위해 봉사의 펌프질을 계속하고 있던 붉은 셔츠의 소년을 막무가내로 밀어버리고 펌프 대를 잡으며 진지함에 근엄하기 조차한 표정과 포즈를 연기한다.
바로 그 앞에서 동네의 한 아줌마가 그에게 결사적으로 들이대며 야무지게 쥐어박는다.
"이 개만도 못한 인간아! 세상 그렇게 살면 안되지~~! 너는 도대체 언제 인간이 되냐?!!"
주위에 서 있던 소년 소녀들은 그의 비범한 인간성에 상당한 감동을 받은 듯, 입을 벌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살아 있는 '도덕(道德)' 과목수업에 임하고 있다. 비범한 사람들은 이렇게 인종과 대륙을 초월하며 존재한다!

잠비아 최후의 도시, 나콘데(Nakonde)를 70여km 남겨 논 지점, 카피리롱가(Kapililonga)마을에 장이 서는 날이다.(매주 한 번)
아직 이른 시각이지만 상인들이 속속 들어와 자신들의 자리를 잡고 있다.

잠비아 최후의 도시, 나콘데(Nakonde)를 10여 km를 남긴 작은 마을을 지날 때, 어둠은 이미 마을의 구석구석을 감싸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당연히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며 제정신이 아니다. 나를 향해 아우성쳐대는 그들을 무시하고 마을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달려가고 있는 나의 뒤를 세 명의 건장한 청년이 쫓는다.
뭐라고 쉴 새 없이 소리를 질러대지만 영어단어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기에 그들의 알 수 없는 의도를 무시하기로 하고 달린다. 나의 바로 옆에 바짝 붙어 나를 향해 뭔가 지껄여대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상당히 흥분되어 있고 험악하기까지 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들이 나에게 어떤 의도를 갖고 있든, 만일 그들 중 어느 하나가 나나 나의 자전거를 잡고 늘어진다면 사고는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고란 항상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터진다. 다행히 그들은 순순히 나의 뒤로 멀어져 갔다. 그들을 잊은 채 달려가는 나에게 이 번엔 2명의 사나이가 자전거를 탄 채, 나를 쫓는데 그들 또한 영어단어가 완전히 생략된 그들만의 문장을 읊어댄다. 하지만 내 앞으로 언덕 길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시시각각 나의 기억에서 멀어져 간다. 기어가 달려 있지 않은 그들의 쇠 자전거는 언덕 앞에선 무력하기 짝이 없다.
마을을 한 참 지나 도로 위에 어둠과 고요만이 가득해진 지점의 숲 속에서 나의 하루가 멈춘다.

짐바브웨의 로드맵

잠비아의 지도. 잠비아 루사카의 김태윤 사장님의 수첩 뒤에 붙어 있던 지도로 달렸다.

오, 타,탄자니아!

5월 20일, 금요일 아침이다. 아침 9시경 잠비아에서의 짧지 않은 주행을 끝내고 탄자니아의 국경을 넘는다. 사우스아프리카(South Africa)의 프레토리아(Pretoria)를 떠난 지 29일째가 되는 날로 그 동안 2,583km를 달렸다.
비자Fee가 50불이라는 사실에 즐겁기 짝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로는 비자Fee가 100불이었다.

오늘 아침부터 설사와 함께 몸 상태가 난조다. 아무리 설사를 한다 해도 움직이기 위해서는 또 먹어야 한다. 아비규환의 국경마을, 툰두마(Tunduma)를 뚫고 달리다가 결코 식당답지 않은 식당 앞에 멈추어 선다. 아프리카 땅에서 제대로 된 식당, 위생의 개념이 제대로 함축된 음식 찾다간 굶어 죽기 십상이다. 이 곳에선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중국, 네팔, 그리고 인디아의 시골을 지나고 중남미의 시골을 달려오는 동안에도 상황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파리와 바퀴벌레가 당연히 들끓고 결코 밝지도 않은 곳에서 음식이 만들어진다. 무슨 기름이 사용되고 무엇이 음식에 들어가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무조건 믿고 먹어야 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하기에 이들이 당연하고 태연하게 먹고 있는 음식이라면 나도 그들과 똑 같은 마음가짐으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수 없이 난무하는 현대의 건강정보를 마치 현대인의 생존철학으로 굳게 믿고 한결같이 귀중하고 감사한 음식들을 거의 선악(善惡)의 개념으로 가르고 번호를 매기고 있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다.
우리는 난무하는 현대의 건강정보를 믿기보다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몸과 위를 믿어야 한다. 우리의 몸은 동물본연의, 거의 절대적인 적응력과 자연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하루 종일 골머리를 썩이고 수많은 음식과 품목에 OX를 쳐가며 자신의 소중한 삶의 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나 자신과 나의 몸에 믿음을 가지고 모든 음식을 골고루 섭취함과 동시에 나의 몸이 유연하고 무리 없는 소화를 할 수 있도록 부단한 단련과 수행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고 유난히 열이 많아 홍역을 치를 때, 생사의 경계선위를 전전했다. "이 아이는 희망이 없으니 포기하라!"는 의사의 최후 선고를 받기도 하며 유년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주기적인 의사대면과 상습적인 약의 복용으로 일관했다. 의사의 간곡하고 따스한 말과 상습적인 약의 복용에 나의 정신은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17살이 되던 어느 날 갑자기 총맞은 것처럼 벼락맞은 것처럼, 깨닫고 나서 나는 머저리 같은 나 자신에 철저한 반항과 도전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책상서랍 속에 어지럽게 굴러다니던 약봉지들을 철저히 색출해 그것들을 휴지통 속에 쳐 박으며 나의 사전(辭典)속에서 '약'이란 단어와 뜻풀이를 완전히 삭제해버린다.
권투를 시작하고 무덤가와 폐가(廢家)속에서 잠을 자며 방랑에 방랑을 거듭하는 동안 나는 새롭게 다시 태어났으나, 재수(再修)에 삼수(三修)까지 하며 어머니의 가슴에 짙은 멍을 들게 했다. 나는, 나의 특별한 열(熱)체질과 아픈 경험들을 나에게 달려드는 그 어떤 혹독한 질병에도 이겨 낼 수 있는 백신(Vaccine)으로 믿고 확신하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이미 설사를 하고 있던 내가 탄자니아의 국경도시인 툰드마(Tunduma)의 이 식당에서 닭고기를 먹은 후, 구토와 어지러움, 그리고 두통증세까지 나타나 산 송장이 된 채, 식당 뒤의 여인숙으로 직행해 일주일을 보내게 되지만 결국 나는 이 식당에서 닭고기를 제외 한 음식을 먹으며 다시 기력을 찾는다.
비록 파리와 바퀴벌레가 들끓어도 밝은 대낮에는 눈에 보이니 괜찮으나 매일 저녁 예외 없이 정전이 되는 이 지역에서 요리를 비롯한 모든 일이 촛불 하나로 진행되고 있기에 어둠 속의 식사 동안 뭐가 씹힐지 모르니 정신 바짝 차려서 천천히 그리고 꼭꼭 씹어야 한다.

음식만큼은 보시다시피 쥑인다.
1불50-2불의 돈으로 짐바브웨와 잠비아에서 결코 씹어 보지 못했던 많은 야채와 쌀밥까지 먹을 수 있어 설사를 하면서도 행복했다.

닭고기를 주문했는데 밥이 나오고 몇 종류의 야채까지 곁들여 나오며 나에게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다.
"쌀밥까지?!"
탄자니아는 짐바브웨나 잠비아 보다는 풍요롭다는 얘기가 되는가?! 닭다리를 뜯어 먹고 있는 동안 결코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는데 역시 문제가 되고 만다.
나는 이미 아침부터 설사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구토증세의 기미까지 나타나며 혼돈의 늪으로 추락한다. 온몸의 기력이 못에 찔린 튜브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다리가 후들거려, 결국 나는 식당 뒤편에 있는 Guest House로 직행한다.
7불의 여관방에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개인 화장실과 비록 찬물뿐이지만 샤워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데 상당히 깨끗하다. 여관방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 한 바탕 토하고 설사를 한 끝에 침대 위로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나는 비록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혼돈의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필사적으로 구름 위를 걸어 그 식당으로 다시 돌아가, 식당 벽과 내 앞의 식탁 위에서 태연하게 뛰어 놀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바퀴벌레와 쉼 없이 맴도는 파리들을 응시하며 야채와 계란 후라이를 곁들인 밥을 먹는다.

내가 일주일을 보냈던 여인숙(7불)으로 아프리카를 달리기 시작해 내가 머물렀던 여인숙 중 최고로 깨끗한 곳인데 저녁만 되면 주변 지역이 정전이 되어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암흑세상이 되지만 이 곳은 자가발전시설이 있어 나는 아무 불편 없이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렸다.

가운데 서 있는 여인숙 종업원인 젊은 아줌마는 종종 음식까지 해주며 나의 투숙을 환영했는데 이 곳을 떠나는 날 아침, 평소 많은 말과 노래로 일관했던 그녀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며 눈시울을 붉혀 그들을 뒤로 하고 옮기는 나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짐바브웨와 잠비아에서도 그랬듯이 이곳, 툰두마(Tunduma)시 또한 상당히 큰 편의 도시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정전이 되어 도시는 암흑세상이 되어버린다. 식당에서는 촛불 하나로 태연하게 어둠 속에서 요리를 하고 손님들 또한 어둠을 응시하며 묵묵히 음식을 씹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불평 불만을 터트리는 이가 없다.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그리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태연하고 초연하다.
좌우지간, 먹어야 움직인다.
여지껏 여행을 해오면서 배탈과 복통은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났던 당연지사(當然之事)가 아니었더냐?!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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