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현실로 이끄는 기술자, 키스 본트래거
에디터 : 정혜인 기자

트렉(TREK)의 용·부품 브랜드인 본트래거(Bontrager)의 창립자,
키스 본트래거(Keith Bontrager).
그의 이름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인정받게 된 것은, 자전거를 타고 살구 버섯을 찾아 다니거나, 집에서 맥주를 양조하고, 요리하는 등의 일상 속에서 끝없는 연구와 실험을 반복하는 타고난 엔지니어의 기질을 보였던 것이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어 세계적인 개발자로서의 그 명맥을 유지하는 개발 철학이 현재의 그와 세계적인 용·부품 브랜드 트렉의 본트래거를 있게 했다. 


모터사이클에서 사이클로

물리학을 전공한 키스 본트래거가 하나의 독립적인 브랜드의 경영자에서 트렉의 개발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의 자전거 이야기는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 한 창고에서 시작된다.
엔지니어링과 설계를 취미로 즐겼던 당시, 컴퓨터, 엔진 등과 같은 기계를 만지며 엔지니어들과 가까이 지내온 키스 본트래거는, 2행정 엔진(소형 모터장치)을 모터사이클에 이식하는 일을 시작으로 정식 엔지니어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모터사이클을 경주용으로 개조하고 튜닝 하는 등 1970년대 모터사이클 업계에서 유명인이 될 정도로 남다른 실력을 보여왔다.
하지만, 개조한 모터사이클을 시운전하는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사고에 노출된 직종이었던 만큼 주변인들의 불운한 소식 또한 끊이지 않았던 것이 키스 본트래거를 실의에 빠지게 했다.
나아가 그것이 모터사이클이 아닌, 사이클 업계로 업종을 바꾸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터사이클 계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그가 사이클계로 전환한 이유는 주변의 불운한 소식들이었다.


문제 해결의 순간이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가 된다.

유럽 모터사이클 시장에서의 힘든 시간을 겪는 동안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것은 물론, 경제적인 상황까지 악화된 그는 다시 일반 직장인으로 돌아가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귀향했다.
얼마 후 폭스(FOX)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자, 집과 회사 간 약 16km의 거리를 랄리 그랑프리(Raleigh Grand Prix) 자전거로 매일 출퇴근을 해야 했다.
자전거 출퇴근은 그의 건강을 다시 회복시켰을 뿐 아니라, 예전에 없었던 건강한 몸매까지 선물해주었다.
그렇게, 자전거의 매력에 빠져들 무렵 자전거 프레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프레임을 제작함에 따라 휠의 제동력, 포크의 각도 비율 등도 함께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기존에 있던 재고 제품들을 변형하는 정도였다.

개발이 하나씩 이루어지거나 한계점에 부딪힐 때마다, 직접 경주에 참가하는 일도 많아졌다. 당시 경주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만드는 제조공과 라이더들이 골고루 뒤섞여 있었으므로 그가 경주에 참가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경기 참가는 자전거 개발에 문제점 해결과 새로운 모티브 및 아이디어가 되어 주었고, 나아가 자신의 사업을 꾸리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곧, 새로운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가 된다"는 키스 본트래거의 어록처럼 말이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곧, 새로운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가 된다"


혁신을 현실로 이끌 수 있는 이유?

키스 본트래거의 독립 브랜드였던 '본트래거'의 경영 상태는 속 빈 강정과도 같았다.
시대적 상황이나 복합적인 경영 불황 및 경영 미숙 등의 이유로 문을 닫는 사업자들이 부지기수로 발생하던 당시, 그의 브랜드도 높은 인지도에 비해 자금경영이 순탄치 않아 악순환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사업에 대한 이해도나 원칙이 분명하지 않았고, 매년 4백만 달러의 제품을 판매했지만 자금회전이 원활하지 않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개인사업자들의 전형적인 과정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자신의 사업을 도와주던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는 지속된 경영보다 타 기업들의 진보형태와 기업 합병의 연관성을 운운하며, 대기업들과의 합병을 충고했고, 얼마 후, 키스 본트래거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던 트렉에 흡수합병 제안을 수락하게 된 것이다.

그는 더이상 독립 브랜드의 경영자가 아니라, 트렉의 용·부품 브랜드의 기술자로 역할 이전을 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에 대해 "트렉 경영자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얻은 신뢰였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고 말한다.

"기술자들에게 필요한 도구를 주고,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그들은 결국, 혁신을 현실로 이끌어낸다"

현재 그는 본트래거 엔지니어들과 한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특별한 업무체제 없이 같은 작업을 공유하고 있다.
문제해결에 대한 경험이 많고 엔지니어링 분석에도 능한 그가 매일 같이 엔니지어들과 대면하면 얼굴 붉힐 일이 다소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제 성격은 직설적이고 거친 편이기 때문에 저로 인해서 상대방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다. 가끔 엔지니어들이 샘플용 제품을 보내주면 그것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방식"이라며 작업 방식을 설명했다.

그가 전체적으로 관리하되, 필요 시에만 직접 나서서 문제를 전면 해결하는 편이다. 주로 안장과 타이어, 휠셋 등에 집중 관여하고,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그들을 믿고 밖으로 나가 라이딩을 즐기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기술자들에게 필요한 도구를 주고,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그들은 결국, 혁신을 현실로 이끌어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직접 반복하고, 검증을 통한 기술의 신뢰

제동 물리학은 키스 본트래거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 중에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다. 카본 휠셋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새로운 브레이크 패드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누구도 시도 하지 않았던 카본 휠셋에 적합한 브레이크 개발에 몰두했다.
그를 신뢰하는 사내 홍보부서의 후원을 통해 연구를 반복하고, 그에 따라 모터사이클 클러치 판에 마찰력을 가할 때 쓰이는 코르크 고무의 조합비율을 찾아내어 새로운 브레이크 패드에 적용했고, 선수들과 그의 오랜 테스트를 거쳐 첫 번째 카본 휠셋 브레이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또 타이어 설계에 있어서는 튜블리스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가 출전한 다양한 경기 경험을 바탕으로 반복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산악자전거에 적용한 튜블리스 타이어는 혁신적 기술이라고 자부한다.
그는 "앞으로는 로드에서도 튜블리스 레디 휠셋과 타이어를 통해 더 많은 라이더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라며 예측한다.

키스 본트래거는 출전한 다양한 경기 경험을 바탕으로 튜블리스 타이어를 반복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산악자전거에 적용한 튜블리스 타이어는 혁신적 기술이라고 자부한다.


라이딩에 대한 열정

현재 그는 25년 전과 같지 않는 신체적 나이 덕에 자전거 레이스에 참가하지 못해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의 라이딩에 대한 열정은 쉽사리 식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근 캘리포니아에 새로 생긴 트레일을 25번이나 오르내릴 만큼의 열정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 전에는 로드바이크에 신형 휠셋을 장착하고 최고 시속 80km로 달렸을 뿐 아니라, 코너링 구간의 언덕에서 52km/h의 속력을 내며 즐거워한 그는, 몇 년 안에 시속 100km로 달려볼 계획이다.
얼마 전 그는 산타크루즈에서 산타모니카까지 약 563km의 장거리를 경량의 로드바이크로 라이딩하며 행복했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라이딩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높은, 개발에 대한 열정이 지금의 본트래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관련 웹사이트
본트래거 : http://bontrager.com/
트렉 코리아 : http://www.trekbikes.com/kr/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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