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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이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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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항상 사람에 의해 실망하고 절망하며, 상처와 고통에 울고 증오한다. |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사이를 왕래하는 '부관페리'에는 대중목욕탕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페리를 아주 좋아하고, 번번이 이용한다. 나는 같은 선실에서 두 명의 외국인을 만난다.
한 명은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의 일본인, 기하시(木橋)씨다. 그는 60대 중반의 아저씨로 은퇴 후, 한국말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6월말부터 8월말까지 경희대의 한국말강좌(고급)를 듣기 위해 한국에 온 분이다. 일본말로 묻는 내 질문에 돌아오는 그의 유창한 한국말의 카운터블로에 나는 완벽하게 넉 다운된다. 그는 한글을 거의 완벽하게 읽고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희대 근처의 하숙집에서 숙식을 하며 강의를 듣겠다는 그의 짐은 달랑 '쬐꼬만' 배낭 하나.(그의 꿈은 자기고향에서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말한다. "한국에서는 은퇴하면 많은 사람들이 할일 없이 거리를 헤매고, 멍하니 공원에 앉아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본인 중 한 사람으로서, 그것이 전혀 독해(讀解)되지 않는 문장이다. 우리는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든다. 쉼 없이 노력하고, 움직이는 것이 강한 일본, 장수의 나라, 일본이 된 비결이다."
또 한 명의 외국인은 미국 보스턴 출신의 타이슨(Tyson Belanger). 그는 이라크전(戰)까지 참전 했던 예비역해병대원이다. 그는 학자금을 마련키 위해 해병이 되었고, 4년 예정의 군복무가 이라크전의 장기화로 2년을 더 연장 복무하게 된 불운의 그였으나, "나는 이제 자유인이다!"라며 함빡 웃는다.
우리는 곧 뜨겁게 하나가 되었다. 그는 U.S.해병, 나는 R.O.K 해병이다.
30대 초반인 그는 하바드대(Harvard Univ.) 정치학과의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꿈은 정치학과 교수.) 그는 일본을 선두로 한국, 중국, 그리고 많은 아시아의 나라들을 돌며 그들의 참모습을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고 한다. 그의 형수가 '한국인 입양아' 출신의 여자라고 한다. 그에게 한국은 조금은 각별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는 나의 세계여행담을 듣고 많은 감동을 받은 듯, 나에게 말한다.
"나는 너를 만나 참으로 영광이다. 너는 나의 영웅이다!"
나의 우상, 조 용필 씨의 노래처럼, "돌아왔다 부산항에!" 정말 자주 들락대던 낯익은 곳, 부산항이건만 이 번엔 아리송하게만 느껴진다. 도로표지판을 비롯한 모든 간판글씨조차도 어째 어리벙벙하다. |
마침내 나는 "돌아왔다, 부산항에!" "돌아왔다, 서울에!"
2008년, 6월19일 아침, 나는 부산항에 도착한다. 부산항 앞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타이슨에게 나는 소리친다. "나는 영웅이다, 그리고 너 또한 영웅이야!" 그는 큰 '할리우드 액션'으로, 두 손의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괴성을 질러댄다.
나는 부산 시내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간다. 많은 간판과 도로 표지판들 위로 보이는 글자들이 아주 색다르고 생소하게 느껴져?!
"나는 분명히, 또 다른 또 하나의 나라를 여행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이 글자들은 분명 한글이야?!"
"그래, 나는 지금 한국을 달리고 있는 거야! 내가 이 긴 여행을 처음 시작한 곳도 바로 이곳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나의 나라에 돌아온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나의 나라, 나의 집을 가기 위해 서쪽을 향해 달릴 필요가 없는 거야! 이젠 북쪽에 있는 서울을 향해 올라가는 것뿐이다."
아, 천자 봉! |
나는 부산항에서 곧 바로 진주를 향해, 진주에서 똑 바로 서울을 향해 달린다.
비록 매년 봄, 몇 번에 걸쳐서 찝찝한 황토의 먼지를 뒤 집어 쓰고는 있지만,
우리의 나라, 대한민국은 아직도 물 맑고 공기 좋고 푸른 들과 산이 계속되는 생명과 축복의 땅이다. 한국은 아직도 변함없이, 그리고 말이 필요 없이 '삼천리금수강산'이다. 한국인 중 많은 분들이 이 사실을 모르며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008년 6월24일 아침, 나는 서울의 시청 앞에 서있고, 11개월간의 지구한바퀴 자전거여행은 끝이 났다. 이제 나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었던 세계일주의 꿈을 거의 30년 만에 실현했다. 뗏목이 아닌 자전거로 11개월 걸려 지구 한 바퀴 마라톤을 완주했다. 30,000km(자전거주행거리: 25,000km)의 여정이었다.
이 여행 중 또 하나의 귀중한 만남인, 주식회사 아이에이치큐(IHQ. Inc)의 안 종혁씨. |
나는 다시, 나를 잉태했고 품고 있었던, 인왕산(仁王山)에 올라 눈부시게 푸른 하늘아래, 생기가 넘쳐흐르는 서울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지난 1년간 나의 몸과 가슴을 부딪고 흔들어대며 지나쳤던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차례차례 줄을 이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가 허공에 흩어진다. 그들과 함께 나의 꿈을 달렸던 순간순간들은 이제 과거의 책이 되어 퇴색되고, 또 그 위로 먼지가 쌓이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든 지구인들의 삶 또한 계속될 거야.
자, 나는 또 자유를 향한 내 삶의 여행을 계속 해야겠지. 나의 호흡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자유를 향한 나의 도전과 행진은 계속 될 것이야.
제 2의 세계일주를 위해 나는 다시 내일 새벽 남산의 계단을 뛰어오를 것이다.
진주에서 서울을 향해 달려가던 중, 함양군 인의면의 한 팔각정에서 얼큰한 우리의 매운 라면을 안주로, 정말 오랜만에(네팔에서 '찬'을 마신 후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우리의 '인의 막걸리'를 나의 입에 부었다. |
두 장의 비행기표, 그리고 네 장의 페리 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