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사랑했던 햇빛의 땅, 프랑스
에디터 : 이호선

잔해만 남은 국경검문소를 넘고 서너 개의 연이은 터널을 넘자마자, 긴 비취와 함께 몬테카를로, 니스가 나의 눈을 부시게 한다.
휴양도시답게 많은 호텔, 카페테리아, 그리고 거리엔 많은 은퇴한 노년의 휴양객들이,.....
안티베(Antibes)의 소나무 숲에서 야영을 한 후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며 새벽을 달려, 나타난  칸느(Cannes)에서 맞은 일출


유럽의 국경은 고유한 국기대신, 푸른색바탕 12개의 금빛 오리온의 별들이 있는 유로의 깃발아래, 그저 적혀진 국명(國名)으로 경계 지워진다.
프랑스국경에는 그래도 국경검문소로 쓰였던 콘크리트의 건물이 남아있다. 국경을 넘어 한참을 달리다가 그저 지나치는 것이 뭔가 찝찝해 다시 돌아와 그 건물 안을 들여다보지만 그 건물 안에는 오직 쓰레기뿐이다.(나의 속셈은, 내 여권위에 기념품인 스템프 라도 받고 싶은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비행기로 국경을 넘으면 세관체크에 여권체크 등으로 아주 까다롭지 않던가?! 하지만 차나 자전거로 국경을 넘으면 바람처럼 거침없이 통과한다. 그 누구도 나의 무단 침입을 막지 않는다.
유럽은 그야말로 하나가 되었다. 허나 그 하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낱개의 조그만 '하나'들은 자기만의 단단한 개성과 향기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도로는 끊기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지만 도로표지판과 간판의 글, 그리고 사람들의 언어는 순식간에 완벽하게 변한다. ‘글로벌리즘’의 가장 확실한 모델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여행자들을 최고로 편하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이태리의 끝 부분부터 시작되던 많은 휴양도시가 프랑스령의 해안이 시작되면서 그 절정을 이룬다. 길고 긴 비취 위에 눈부신 햇빛이 작열한다.
곧, 그 유명한 니스(Nice)해변이 나타난다. 해변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조깅, 산보, 자전거 하이킹, 그리고 일광욕을 즐긴다. 또 다시 나타나는 칸느(Cannes). 내가 서있는 이 땅은 이미 태양의 제국!

산레모(Sanremo)를 지나 이태리 최후의 타운, 벤티미그리아(Ventimiglia)의 시가를 뚫고 나와,  프랑스 정벌을 앞두고 국경으로 통하는 경사진 도로를 바라보며 달콤한 한 모금의 물과 심호흡으로 전열을 가다듬는다.


큰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먼저 직행하는 곳은 대형 수퍼마켓이다. 프랑스에 들어서자 나는 체인점인 '에드(Ed)'라는 100% 할인 수퍼마켓을 발견한다. 보통 2~3일분의 치즈, 소시지, 식빵, 비스킷, 그리고 야채주스를 사서 가방을 빵빵하게 해놓고 달린다.(한국의 물가수준이다.) 주로 많은 노인들이 ’차 띠기‘로 사간다.

세잔, 졸라, 그리고 헤밍웨이를 매료시켰던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의 완벽한 날씨와 정취를 즐기려는 많은 청춘남녀와 관광객들로 거리는 넘치고 있다. 분수대 옆 구석에 외롭게 서있는 실물크기의 세잔의 동상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그저 물끄러미 거리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단정하게 정장을 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인텔리 청년은, 길을 묻는 나에게 잔뜩 상기된 얼굴로 "노 잉글리시"를 연발하고, 두 손으로는 가위 젓기를 반복하며 종종 걸음으로 도망치다시피 사라진다. 한국에서 자주 목격되던 광경이 이곳에서조차,.......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시의 하나인 아를르(Arles)의 전경을 바라보며 론 강의 다리 위에서 젊은 시절, 나의 최고의 영웅이었던 '고흐'를 위해 한 모금의 물로 건배를 한다.
그의 전기(傳記)를 수도 없이 줄을 치며 읽었고 그의 화첩(畵帖)을 닳고 닳도록 넘기며 보았고 '돈 맥클린(Don Mclean)'의 '빈센트(Vincent)'곡 테이프를 돌리고 또 돌리며, 그를 위해 수도 없이 건배를 했던 나였다. 너무나 치열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고흐!

지금 나 또한 치열한 삶의 주인공이 되어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겠소?! 나 또한 지금 그대만큼 심각하고 치열한 인생을 살고 있다오!
"고흐, 그대가 죽는 날까지 치열한 삶을 계속했듯이 나 또한 죽는 그날까지 치열한 삶을 계속할 것이며 지금의 행진 또한 계속될 것이오. 그대의 위대한 삶과 예술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는 바요."

많은 예술가의 입에, 그리고 책에 오르내려왔고, 그저 부(富)티나고, 아름다운 곳으로 여겨졌던 곳,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미라보거리(Cours Mirabeau)에는 플라타너스나무들이 나란히 줄을 서고, 대로를 따라 많은 식당, 노천카페가 이어지며 많은 젊은 남녀들로 넘쳐흐른다.
이 대로가 끝나는 광장에는 라 로톤도(La Rotonde)라는 대형분수대가 있다.


나를 스쳐지나가는 유럽인들은 쏟아지는 겨울비만큼이나 차갑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것은 서양의 개인주의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동안 아시아와 중동권(圈)을 지나오면서 사람들이 너무 많고, 때로는 그들이 너무 끈적거려 힘겨움을 많이 느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이 홀가분해서 좋기도 하다.
지방도로를 달리는 도중 “봉쥬르?!”를 외치며 손을 흔드는 프랑스 여고생들은 분명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그들의 화장과 패션은 개성의 나라답게 기상천외이나 천박하지 않고 참 예쁘다.

베지에르시(市)에 들어서자, 도로변에서 한 중년의 여자가 팔을 뻗어 나를 막는다. 그녀는 다름 아닌, 조금 전 숲 속의 휴식처에서 만났던 두 커플 중 한 여자이다. 그녀의 손에는 어린애 머리통만한 오렌지가 들려있다. 내 손에 그것을 쥐어주고, 다시 그들의 차 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창 밖으로 손을 흔든다.

2005년 10월초에 나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그리고 부산에서 부관페리를 타고 시모노세키(下關)로 건너가서, 시모노세키에서 다시 자전거로 도쿄(東京)까지 2주에 걸쳐 여행을 했다.
시모노세키에서 히로시마(廣島)를 향해 달리던 중, 나는 한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가지고 나와 버스정류장의 빈 의자에 앉아서 먹고 있는데, 옆에 앉아 열심히 대화를 나누던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할머니는 나를 당연히 일본인으로 생각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일본어로 묻는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그들은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는 몰라도 '역시 한국인은 대단하다'고 하며 나를 잔뜩 비행기를 태운다. 곧 그들을 위한 버스가 멈추고 그들은 'さようなら(사요나라)'를 외치며 버스 안으로 사라지고 버스 문은 닫힌다.
나는 그들의 호들갑에 가까운 '비행기태우기'를 되새기며 나 홀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 문이 열리고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조금 전 나에게 비행기를 잔뜩 태웠던, 그 할머니!! 나에게 달려오더니 나의 손을 꼭 잡고 무엇인가를 손에 꼭 쥐어주고는 잽싸게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버스를 오른다. 손을 펴보니 녹차캔디 3개!!!

'고흐'가 있는 '아를르'를 향해 달리는 도로의 주변지역엔 오로지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도로변엔 고흐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했던 키가 아주 큰 측백나무들만이 서 있을 뿐이다.
나는 측백나무의 가로수 바로 뒤에서 야영을 하는 급박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아침 10시경, 나는 드디어 아를르를 바라보며 '고흐'의 격렬한 숨소리와 절규를 듣고 있다.


지중해연안의 들판은 거의가 포도밭이다. 그리스를 달릴 때는 도로변에 오렌지와 귤의 과수원이 줄을 잇고 있었다. 간간히 마을이 나타날 뿐이고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기 힘들다.
지중해를 따라 계속되는 해안마을들은 정말 아름답지만 건물들의 모양이나 채색들은 그리스에서부터 아주 천편일률(흰색 벽에 주황색 지붕)적으로 단조로워 보인다. 

눈부신 햇빛과 푸른 지중해를 끼고 달리는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풍경은 고독한 여행자에게 콧노래마저 나오게 한다. 맑은 날의 푸른 하늘은 정말 믿을(!!)수 없을 만큼 깨끗한 푸른 지중해의 푸른색과 완벽하게 일치하여 하나-블루(Blue)가 된다.

아를르를 지나 나타난 큰 도시 몽페리에(Montpellier). 미로와도 같이 전혀 여유 없이  계속되는  도로를 가로막고 서있는 크고 긴 석조 건축물(Saint Clement Aqueduct).
도로변에는 유일한 동양음식점, 중국집이 계속된다.


프랑스의 남부해안은 야영을 하기위한 곳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도로주변은 철조망으로 확실한 금이 그어져있고, 그 안으로 허허벌판에 줄을 지어 서있는 과수나무들(거의가 포도나무)뿐이다.
나르본( Narbonne)을 향해 달리던 중, 내 눈에 걸려든 물이 흐르는 다리 밑. 쇠사슬로 봉쇄된 입구를 넘어 들어가 보니, 이미 이곳은 악동들의 아지트인 듯, 그들의 흔적이 흥건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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