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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이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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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몬트리올. 그래도 중심가만큼은 눈이 거의 제거된 상태이나, 하늘은 또 다시 노하며 눈을 내린다. |
몬트리올 상공에서 내려다본 도시 전체는 완벽한 흰색의 도화지 위에 검은 줄들이 그어져 있을 뿐이다. 온몸의 힘이 쭈-욱 빠지면서 나는, 사정없이 무너져 내린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대륙의 차갑고 거센 바람이 비행기를 맹렬하게 환영한다. 종이비행기 속의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사방을 찌른다. 미쳐 날뛰는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로코 로얄 에어(Maroc Royal Air)'의 파일럿은 완벽한 랜딩을 한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과 박수가 끝없이 이어진다. 브라보!!
공항을 나서자마자 차갑고 매서운 대륙의 바람이 나의 온몸을 할퀴며 달려든다. 이미 캄캄해진 대륙의 도로를 나는 달린다. 도로만 빼고 완전히 눈의 나라, 설국(雪國)이다. 사람 허리 높이의 눈이 온 대지를 덮고 있다. 다운타운까지 가는 길은 너무도 추웠고 길었다. 나는 차이나타운 근처의 싼 모텔을 찾아 삼일을 묵으면서 추위적응을 한다.
퀘벡(Quebec)주에 있는 몬트리올은 모든 사람이 불어를 말한다. 영어는 제2 외국어인 것이다. 불어는 아주 유창하나 영어를 떠듬거리는 캐나다인들이 종종 목격된다.
캐나다 제2의 도시, 몬트리올은 내가 과거10여 년간 있었던 뉴욕의 거리와 분위기가 아주 흡사하다. 비록 뉴욕에 비해 훨씬 작지만,......
도로를 달리다가 만나는 '자전거메신저(Messenger)'-'자전거 퀵 서비스'-가 나의 가슴을 터트릴 듯 벅차게 한다. 자전거메신저는 원래, 뉴욕시(市)의 명물로 세계의 도시로 전파되었다. 수많은 세계의 회사들이 모여 있는 맨해튼에서 하루 발생되는 '서류배달물건'은 실로 엄청나다. 이 배달물건들의 대부분이 '자전거메신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나 또한 뉴욕시티에서 많은 세월을 자전거메신저로서, 맨해튼의 높고도 빽빽한 빌딩의 숲을 누비고 다니면서 서양화가로서의 성공을 향해 숨 가쁜 삶을 살지 않았던가!
도쿄에 이어 뉴욕의 거리를 구르면서 나는 '옐로 캡(영업용 택시)', 밴, '메트로 버스' 등과 수없이 접촉사고를 당했다. 자전거의 차량과의 접촉사고는 반드시 앰뷸런스의 사이렌으로 결말이 난다. 나는 아스팔트 위에 맨몸의 슬라이딩을 할 때마다 태연히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뉴욕시의 법률은 자전거를 차와 동일시한다.(보도에서 자전거에 받혀 뒤로 넘어지며 노인이 사망한 사고 이후로 자전거의 위상이 네발의 차들과 똑같이 격상되었다.) 자전거가 보도(步道)를 침범하는 순간, 지나는 보행자들의 입으로부터 실로 무지막지한 악담의 총탄과 총성이 허공을 산산조각 낸다.
뉴욕시(市)에서는, 자전거는 반드시 차도(車道)에서 차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야 한다. 그래서 사고는 속출하고, 나 자신도 차량과 박치기한 피투성이의 메신저들을 종종 목격했다.
또 눈이 내린다.
유럽의 땅 끝 마을, 그리고 모로코를 달릴 때만 해도 달리면 달릴 수록 나의 고향 땅과 멀어져만 갔지만, 이제 대서양을 건너 북미대륙으로 넘어와 캐나다 횡단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내가 달리면 달릴 수록 나의 고향 땅과 가까워진다.
퀘벡주(州)와 온타리오주(州)를 달리는 동안, 왼쪽으로는 바다와도 같은 세 호수가, 오른쪽으로는 중, 소급의 수천 개에 달하는 호수들과 강, 개울, 연못이 계속된다. 또한 끝도 없이 소나무의 숲과 산이 계속된다. |
4월 5일, 드디어 나의 캐나다 횡단이 시작된다(5.000KM). 캐나다의 자연은 상상을 초월한다. 퀘벡과 온타리오주(州)를 달리는 도중, 4월말까지 나는 2번의 눈보라(Snow Storm)에 걸려 열흘 가까이 텐트와 농가창고 속에서 꼼짝 못하고 잔뜩 웅크린 채, 겨울잠 자는 곰이 되었다.
퀘벡주(州)와 온타리오주(州)의 경계지인 뒈 리비에르(Deux Rivieres)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몇 방울의 비를 신호탄으로 순식간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하지만, 나의 '절대행운'은 계속되어 숲 속에 난데없이 위풍당당 서있는 빈 창고를 발견한다. "출입금지"의 경고는 이미 나에겐 '무의미'의 낱말! 쉼 없이 눈은 내린다. 문틈으로 내다본 세상은 눈의 제국.
텅 빈 창고 안에서는 터줏대감인 들쥐 한 마리와 내 식량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매일 이어진다. 똑같이 눈에 고립된 이 상황에서 그와 나의 목숨을 건 식량쟁탈전이다. 빵과 소시지, 약간의 치즈와 약간의 초콜릿, 그리고 비스킷을 조금씩 정확히 등분을 해가며 먹고 있고, 물은 쌓인 눈을 버너로 녹여 먹는다. 얼마 안 되는 식량이지만 잘 때마다 비닐봉지에 꼭 싸서 벽에 걸어놓고 잠을 자지만 혹시라도 바닥에 떨어질까 수없이 확인을 한 후 잠을 잔다.
4월 10일. 이미 4월 중순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캐나다엔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캐나다의 날씨를 내가 우습게 생각한 것임에 틀림없다. 아니야! 내가 우습게 본 것이라기보다는 캐나다의 날씨가 황당한 것이여! 이 곳에 있다가 내가 죽은들 그 누가 알 것인고?!
문틈으로 보이는 하얀 설원은 나에게 건널 수 없는 바다가 되어 끝없이, 끝없이 육지로 향하는 나의 마음에 안타까움과 그리움만 남겨 준다.
2006년의 12월, 나는 제주도의 연안해, 그리고 남해와 제주도 사이의 해역에서 조업을 하고 있는 125톤의 쌍끌이 저인망어선 위에 있었다.
'냉동고 작업을 겨우 끝내고 들어와 식사를 하고 누워 있으면 몇 시간도 안 되어 또 투망과 산더미같이 그물에 끌려 올라온 생선과의 전쟁이 반복된다. 극도의 수면부족과 극한을 넘는 노동량에 선원들 모두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고, 그들 모두는 비수와도 같이 날카롭고 섬뜩한 욕설과 함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지옥에서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배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 이 살인적인 노동판에서 탈출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이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이 배는 지구상에서 최고로 무시무시한 감옥이다.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최고로 악명 높은 그 악마의 섬보다도 더욱 무서운 곳이다.'
나는 갑판에 홀로 남아 아주 멀리서 깜빡이고 있는 육지의 불빛을 바라본다. 제주도는 분명 아니고 거문도일 것이다. 하늘에선 눈이 내린다. 높은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는 배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는 눈은 빙글빙글 돌면서 나를 어지럽히며 차갑게 나의 얼굴을 간지른다. 따스한 불빛이 아른거리는 저 육지는 나에게는 갈 수 없는 나라!
로스포트(Rossport)에서 눈보라를 피해 들어간 빈집의 테라스 밑에서 은신 중, 나타난 주인, 모리스! 그가 준 침낭과 나의 600g의 초겨울용 침낭, 두개로 비로소 나는 제대로의 자세로 수면을 취했다. |
온타리오(Ontario)州의 초대형 호수, 슈피리어 호수(湖水)(Superior Lake)변의 로스포트(Rossport)를 막 지나는데, 이제껏 분노를 삭이고 삭이던 하늘은 드디어 인내심을 잃었다.
차디찬 비를 피해 막무가내로 들어간 한 빈집 테라스 밑에 텐트를 쳤다. 내리던 비는 순식간에 눈보라로 변하며 기온이 급강하하며 대지는 결빙. 마치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완전한 원을 만들며 웅크리고 추위와 싸우던 중, 돌연 돌아온 주인(그의 이름은 '모리스'로 캐나다 철도기관사이다.)에게서 따스한 인조 솜 침낭을 얻어 다리를 뻗으며 생존의 기쁨을 만끽한다. 그는 새로 산 그의 집에 내부공사를 하기 위해 친구들과 잠깐 들렀다. 하루 종일 얼어붙은 물이 녹지 않아 수건으로 물병을 싸고 침낭 속에 넣어 내 체온으로 녹이며 물을 마셨다.
또한 첫날부터 나의 길을 가로막는, 로키산맥에서 불러오는 서풍(西風)은 정말 끈질기게 나의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전진, 전진뿐이다. 바람이 세어 나의 피부는 건조한 나머지 터지더니, 이내 찢어진다.
몇 십km, 때로는100km이상을 달려도 단 한 채의 집도 없이, 오직 숲만이 계속 될 뿐이고, 가끔 나타나는 마을조차도 오직 몇 집에 불과하다. 정말 고독한 행진이다.
아직도 얼어붙어있는 호수 옆을 지날 때면 냉동고 속을 방불케 하는 추위에 온몸은 얼어붙는다. 달리는 동안 발가락이 얼어(나는 무게를 줄이려고 신발도 얇은 가죽의 운동화를 신었다.), 자기 전에 눈 속에 발가락을 쑤셔 박아 문지르며 얼음을 뺀 후, 침낭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발가락이 아프고 화끈거려 잠을 잘 수가 없다.
퀘벡주의 숲 속에서 듣는 '절대 환상' 야생늑대의 울부짖는 소리는 잠시 동안 내 심장운동을 정지시킨다. 그들의 진솔하고 심각한 울부짖음에 응답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을 찾지 못해 나는 그저 안타깝고, 마음이 저리도록 아프다. 이 순간, 묘하게도 지난 수십 년 동안 내가 국제방랑자를 전전하며 연락이 끊겨버린, 소중한 나의 옛 친구(서사택, 박성식, 이종율)가 달 속에 나타나 나를 보고 껄껄대며 흐드러지게 웃는다.
사슴들은 떼로 몰려다니고 있으며, 유유히 집 앞의 도로를 어슬렁대고 있는 줄무늬꼬리를 가진 여우는 괘씸하기 짝이 없다.
월 달임에도 불구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변화를 계속하는 날씨 속에서 나는 거의 필사적으로 빈집과 폐차로의 무단침입을 감행해야 했다. 빈집과 폐차가 있는 영토의 입구에는 예외 없이 "출입금지(No Trespassing)"의 푯말과 바리케이드가 나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지만 나의 불법행위는 멈춤 없이 자행된다. |
바다처럼 넓어 끝이 안 보이는 세 개의 초대형 호수(미시간호수, 휴런호수, 슈피리어호수)가 있는 온타리오주(州)를 달리는 동안, 호수로부터 차가운 바람은 계속되고, 호수 위의 하늘은 시시각각, 기괴하고 흉측한 얼굴로 나를 공포에 몰아넣는다.
몬트리올 리버(Montreal River)를 지나 숲 속에서 야영을 하고 출발준비를 완료한 후, 나는 마지막으로 중요한 일과인 큰일을 보고 있다. 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땅을 내려다보며 일을 치루고 있는데, 갑자기 숲 속을 질주해 오는 뭔가에 번쩍 정신이 들며 눈을 든다.
한 여인의 날카롭고 급박한 고함소리가 나의 심장에 박히는 순간, 한 괴물체가 나를 덮치며 내 얼굴을 정신없이 핥아 댄다. 도대체, 웬 놈이냐?! 붉은 빛이 감도는 금발의 이 괴물은 오래 전 개의 영화 '래시(Lassie)'의 주인공이었던 털이 아주 길고 덩치가 큰 '콜리' 종(種)의 개다. 곧 바로 한 중년의 여자와 남자가 내 앞에 '잔인하게' 나타난다.
그녀는, 내 주위를 맴돌며 떠나지 않고 있는 이 개를 나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남자는 차마 눈 뜨고 못 볼 이 광경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지나가 버린다. 하지만, 이 '웬수'같은 개는 내 주위를 계속 맴돌며 내 얼굴을 핥아댄다. 그녀는 이 개를 몰아내기 위해 개의 뒤를 좆아 내 주위를 계속 뺑글 뺑글 돌고 있다. 정말, 죽을 맛이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큰일을 보고 있는 순간은 나뿐 아니고 다른 모든 인간들에게도 가장 은밀한 순간이다. 완벽하게 나의 치부가 노출 돼버렸어! 나를 사이에 두고 개와 개주인 여자와의 좆고 쫒기는 일대 활극(活劇)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나는 그저 눈을 질끈 감고 팔과 두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이 무시무시한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고 또 빌 뿐이다.
자신의 주인과 완전히 다른 족속인 나를, 이 개는 왜 이렇듯 좋아할까?? 아마도 유럽에 이어 이곳 캐나다까지 몇 달 동안 치즈, 햄 등 서양식 식사를 해 왔기에 내 인분(人糞)의 향기가 자신의 주인들 것과 동일하게 생각되어 이렇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는 개라고 치고, 같은 남자가 이곳에 와서 개를 몰아내야 하는데 도대체 왜, 여자가 이곳에 와서 나에게 이렇듯 끔찍스런 고문을 해대고 있는 것이냐고요?!?!
눈을 질끈 감고 쪼그려 앉아 영원처럼 긴 터널 속을 헤매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 아스라이 들려오는, 부드럽고 애정 어린 희망의 속삭임을 듣는다.
"정말 미안해요, 그렇지만 나의 개가 당신을 끔찍이도 좋아하는가 봐요, 그럼 안녕!"
동사(凍死)직전, 나를 구해준 천사, 모리스. 그는 마치 나를 구하려고 온 것처럼 오랫동안 비어져 있던 그의 집에 갑자기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는 캐나다 내셔널리즘의 상징적인 아이콘인 '캐나다 태평양 철도회사' CPR(Canadian Pacific Railway)의 현직 열차기관사이고, 그의 아내 또한 열차기관사라고 한다. |
온타리오주(州_의 테살롱(Thessalon)근처에서 또 다시 바리케이트를 넘어 침입한곳엔, 불행하게도 집은 없었으나, 행운의 폐차가 있었다. 그것도 넉넉한 공간의 트럭! 오직 사슴들만이 유유자적하는 고요한 '천국의 정원'을 나 홀로 독차지하며 여유를 부렸다. 많은 별과 보름달까지 비추며 '극락의 세계'인 듯한 기묘한 밤을 보냈다. |
'휴런'호수가 끝나고, '슈피리어'호수가 시작되는 곳, '솔트 스테 마리(Sault Ste. Marie)'를 조금지난 헤이든(Heyden)을 지나다가 내 눈에 걸려든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