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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이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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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땅에 들어오자마자 놀란 것은 스페인의 도로이다. 이곳의 국도는 이제껏 달려왔던 그 어떤 나라의 도로와는 다르게 차도와 갓길에의 구별이 전혀 없다. 즉 도로포장을 할 때 갓길까지 아스팔트를 일률적으로 깔고 단지 차선만을 그 위에 그어 구분을 지어놓았다. |
나는 또 다시 바람과 함께 귀신도 모르게 스페인의 국경을 넘어버렸다. 이렇게 감쪽같이 넘어가도 정말 괜찮은가?!
곧, 피구에레스(Figueres)가 나타나고, 상점에서 콜라 한 병을 산다. "어라, 말이 통한다!!" 지난 몇 달 동안 언어의 불통으로 오직 '무미건조'로 일관하며 메말라 붙어있던 나의 마음과 온몸을, 지금 마시고 있는 차고 짜릿한 콜라 한잔의 그 맛처럼 전율시키며 감동시킨다.
영어가 아닌 현지어로 통하기는 스페인이 처음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질 때 느끼는 기쁨이란 말로 표현하기에는 사용해야 할 문장이 너무나 길다.
나는 콜라를 발명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경의와 찬사를 보냄과 동시에 인간이 말을 가질 수 있게 한 조물주에 감사한다.
'블루' 속에서의 나의 행진은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끝이 난다.
1월 18일 로마의 민박집을 떠난 후, 거의 2주가 되는 오늘은 1월 30일이다. 어둠 속에 입성한 바르셀로나에서 힘겹게 한국 민박집을 찾았다. (한국 음식점 찾기가 북경하늘에서 별 찾기만큼 어렵다.)
불경기와 고물가로 이어진, 삼성을 위시한 한국계 상사(商社)의 철수로 주재원과 그 가족들이 빠져나가 많았던 한국식당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고, 한국인들이 마땅히 할 만한 일자리 또한 없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많은 교포들이 한국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영업 중인 한국식당이 겨우 4개뿐이라고 한다. 또한 태권도를 비롯한 많은 한국 무도도장(武道道場)들도 불경기와 함께 줄어든 수강생으로 줄줄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결국 이곳의 상권은 무너지고 그저 본국에서 오는 한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민박집만이 늘어난 것 같다.(교민 500명)
내가 "남대문 방화"라는 죽음과도 같은 충격을 접했던 마드리드의 민박집에서 만난, '한나와 보현' 그들은 간호대학 4년생으로 유럽여행 중이었다. |
이틀을 쉬었다. 밀린 빨래를 하고 운동화도 빨고 자전거 점검과 함께 튜브의 펑크도 때웠다.
민박집을 만날 때마다 나는 하루에 두 번씩이나 샤워를 하며 뜨거운 물맛과 샤워 후의 날아갈 듯 한 기분을 진탕 맛본다. 그 동안, 숲 속에서 800cc~l리터의 물로 엉망진창의 '퀵 샤워'를 해 오면서, 나의 온몸은 항상 땀과 찝찝함으로 절어있었다.
어제 밤부터 내렸던 비가 겨우 그쳤다. 잔뜩 심통이 나 있는 하늘이 걱정스럽지만 나는 문을 나선다. 나오려는데, 민박집의 40대 중반의 따님이 들어온다. 그녀는 잠깐만 기다리라면서 계란 6개를 삶아 신(辛)라면(!) 4개와 함께 나에게 건네준다. 그녀는 내가 하루 더 있을 것으로 알고 식사라도 함께 할 생각이었다며 아쉬워한다. 그 꾸러미는 '신(神)의 선물'이 되어 내 가슴에 강력한 일격을 가한다.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나를 지탱해주고, 나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음식. 두 달 동안 끈질기게 먹었던 햄, 소시지, 치즈, 비스킷, 식빵, 그리고 우유와 야채주스. |
유럽에 들어와서 매일, 그리고 매끼 변함없이 먹어대고 있는 것이 2,3일에 한번씩 대형 수퍼에서 산 햄이나 소시지, 치즈, 초콜릿, 크래커, 식빵, 그리고 우유와 주스이다. 지난 여러 달 동안 도로를 달리면서 내 머리를 채우고 내 눈앞에 아른거려왔던 것은 주로 먹는 것뿐이었다.
하루 최소 12시간, 최대 17시간까지 자전거의 페달 질을 하다보니 나의 위는 한 마디로 밑 빠진 자루! 먹고 2, 3시간 후면 또 다시 뻥 뚫리며 '공(空)'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네팔과 인디아,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계속 먹어댔다.(먹지 않으면 페달 질을 할 수 없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된장찌개, 육개장, 비빔밥, 설렁탕, 갈비탕, 냉면, 자장면, 짬뽕, 김치, 깍두기 등등 내가 먹고 싶은 음식들이 하나하나씩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간, 이내 사라지지만 항상 내 눈앞에 뱅뱅 돌며 안 사라지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파 송송 계란 탁'해서 김치와 함께 먹는 '매운 한국의 라면'이다.(물론 한 대접의 탁배기가 더한다면, 그것은 천국!)
바르셀로나부터는 산과 들판을 뚫고 산속을 달린다. 역시 유럽의 여느 국가처럼 스페인은 온통 산이다. 내륙으로 들어가자마자 기온변화는 심하고 바람 또한 만만치 않다.
이베리아 반도(Iberia Peninsula)의 정확히 한 복판에 위치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Madrid)로 가는 길은 길고도 멀게만 느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굴곡이 심한 산악도로 또한 나를 지치게 한다.
지중해안과 스페인 내륙을 달리는 유럽횡단은 산악도로와 비바람을 동반한 예측불허의 겨울날씨로 인해 힘겨운 행진이지만, 무엇보다 유럽에서의 행진은 고독, 그 자체이다.
유럽인의 싸늘한 개인주의와 영어의 불통으로 나는 하루 종일 나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도시를 조금만 지나면 영어는 무용지물이 된다.(영어가 한 마디도 안 통한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지 꽤 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아직도 요원한 얘기인 것 같다.
어쩔 수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순찰차가 두 번이나 나를 가로막지만 그들의 인간성 덕인지, 스페인어 덕인지 몰라도 모두 미소와 따뜻한 말로 나를 대한다.(이곳의 경찰은 의외로 정중하고 매너가 있다.)
쏟아지는 비와 강력한 산악의 맞바람, 그리고 가파른 산악도로, '하늘 님'의 절대 환상의 트리플 펀치를 전신에 속수무책으로 맞아가며, 도착한 마드리드!
스페인의 도시에 일반적인 많은 광장들 중, 가장 큰 '마요르 광장'(Plaza de Mayor)은 역사적으로 마드리드의 많은 주요행사가 열린 곳으로, 많은 식당과 노천카페, 행상들과 초상화 화가들까지, 관광객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차다. |
마드리드는 유럽의 수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인구상으로도 유럽 제 4의 대도시라고 한다. 계속 이어지는 동상(銅像)과 함께 플라자가 계속되고 많은 사람들이 노상 카페테리아에 앉아 태양을 즐기고 있다. 햇볕이 너무 좋아 '마조르 광장(Plaza de Mayor)' 근처에 있는 '오페라 역 (Estacion de Opera)' 앞 광장에 앉아 있는데, 한 아가씨가 나에게 다가 오더니 샌드위치와 사과 한 개가 들어 있는 꾸러미를 준다.
오늘이 일요일이다. '노숙자'들을 위해 교회에서 만들어 나눠주는 음식이다. '신(神)의 선물', '신(神)의 축복'은 계속된다.
2008년 2월11일 남대문 방화사건 |
오늘이 2월 11이다. 어릴 적부터, 그리고 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도, 항상 습관처럼, 운명처럼 보며 스쳐 지나쳤고, 내 삶의 일부분처럼 여겨졌던 우리의 그 곳을,......
인터넷으로 본 야후(Yahoo)일기예보가 나를 슬프게 한다. 곧 비가 또 시작된다. 비가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잿빛 하늘에 음산한 날씨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불어댄다. 가자! 오늘의 나의 삶이란, 그저 미련 없이 떠나는 것뿐!
하늘을 몇 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깊은 음울함을 헤치고, 마드리드(Madrid) 시를 빠져 나와,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적 도시로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세 문화가 공존하는 정말로 고풍스러운 도시, 톨레도(Toledo)를 향한다. 날씨가 아주 안 좋아 음침하기 짝이 없는 톨레도를 그저 멍하니 통과해버리고 시우다드 레알(Ciudad Real)을 향해 달리던 중, 손세카(Sonseca)근처의 도로변에 있는 무너져 내린 지하수 펌프장 건물로 들어간다.
아주 아늑한 공간이지만, 쥐똥들이 바닥에 층을 이루고 있다. 굴러다니는 판자조각으로 한참을 긁어내고 나의 공간을 확보한 후, 만족의 한숨을 토해낸다. 밖에는 여지없이 빗방울이 떨어지며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오늘이 도대체 며칠이지?!"
"뭐야, 이거! 오늘은 2월 14일, 바로 내 생일이잖아!!!"
분명 봄은 봄인데,.......여기저기서 농부들이 트랙터로 드넓은 밭을 갈고 있다. 젊은이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모두가 장년, 노년의 농부들이다. 모든 일은 기계로 이루어진다. 산과 언덕에 과수나무들이 자라고 그 밑에는 양, 염소, 소, 말 등이 자유 방목되고 있다. 완벽한 낙농업이다. 드넓은 초원에 철책울타리만이 쳐져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스페인의 국경을 넘는 그 순간까지 '하늘 님'은 나에게 결코, 밥 한 톨만큼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나는 그저 비가 되고 눈물이 되어 달린다. 전인권씨의 '행진'을 기도처럼 부르고 또 부르며, 나는 무거운 두 굴렁쇠를 힘겹게 굴리고 또 굴린다.
스페인의 국경마을, 바다호스(Badajoz)를 수십 km를 남기고, 하늘은 나의 발목을 최후에 최후까지 잡고 늘어지며 나를 슬프게 한다. |
포르투갈과의 국경, 바다호스(Badajoz)까지 불과 수십km 남겨두고 강한 바람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진다. 운 좋게도, 인터체인지의 교각이 아주 열렬하게 나를 부른다. 4차선도로 밑의 교각이라 비를 피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된다. 순식간에 기온은 내려가고 교각 밑에서 나는 비닐에 싸 놓은 옷가지를 꺼내 껴입는다. 많은 비에, 내가 앉아 있는 교각 밑으로 여기저기 물이 흘러내린다.
달려가던 경찰 순찰차가 교각 밑에 세워져 있는 내 자전거를 보고 놀란 듯 급정거를 했으나, 교각 밑 높은 곳에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조용히 사라진다. 무거운 자전거를 교각 밑의 높은 곳까지 끌고 올라 올 수가 없어 그대로 놔두고, 텐트와 침낭만을 가지고 기어 올라간다.
그저 무심하게 지나쳐 달려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는 나 혼자'라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새삼스레 되씹으며 앉아 있다. 천둥과 번개가 계속되고, 비 또한 강약을 되풀이 한다. 다리 밑으로 흘러내리는 물 사이에 판초를 깔고, 텐트를 치고 침낭을 깐다.
멀리 도로 건너편의 농가에서 흘러나오는 주황색 불빛이 내 가슴이 쓰라리도록 포근하고 따스하다.
그 동안 많은 길을 달려보았지만 스페인의 도로가 최고인 것 같다. 노견이 차도와 전혀 구분이 없이 편평하고, 넓은 스페인의 도로는, 바이커(Biker)에겐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길이었다.
바르셀로나의 민박집에 들어가니, '배낭관광객'들뿐인 우리의 대학생들 사이에 색다른 인물이.(왼쪽에서 두 번째) 그는 '다카노(高野)'君 으로, 오사카출신의 대학3년생인데 전공이 '소시얼러지(사회학)'라고 한다. |
최순식 관장님의 배려로 한국식당 '산길'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삼켰다. 이 식당은 이곳 스페인방송에도 방영됐을 정도로 바르셀로나에서는 유명한 한국식당이라고 한다. |
바르셀로나의 중심가인, '코르세가(Corsega)'에서 20년간 '국술(Kuk Sul)' 도장을 해 오신 최순식 관장님. 그는 올해, 63세로 이미 완벽하게 무너진 스페인에서 한국무도(武道)의 자존심을 걸고 사범 한 명 없이 많은 수업을 혼자서 소화하시며 고군분투하고 계신다. |
스페인의 남쪽 끝, 타리파(Tarifa)를 향해 달리다가 비바람의 기습을 피해, 튀어 들어간 무너진 지하수 펌프장. 나는 또, 여태껏 그래 왔듯이 이 지구의 이름 모를 한 모퉁이에서 내 생일을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