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땅끝, 포르투갈
에디터 : 이호선

교차로의 교각아래서 빗속의 하룻밤을 지샌 후, 뻣뻣한 몸을 추슬러 300m정도 달려가니 뜻밖에 오리온의 파란 유로깃발이 나를 차갑게 맞는다. 내가 달려야 할 유라시아대륙의 마지막 나라, 포르투갈의 영토 안에 나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나는 유럽국가의 국경을 넘을 때마다 '오리온제과'의 선전간판을 본다(?!)


포르투갈의 국경지대에는 최소한의 검문소 잔해조차도 없다. 보이는 도로 표지판조차도 스페인의 그것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포르투갈어는 스페인어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다. 도로도 들판도 스페인의 그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이곳의 집들은 스페인보다는 조금 더 단정하게 칠해져 있는 것 같다. 마치 스페인의 형제 같은 이웃, 포르투갈. 스페인의 국경을 넘자마자, 스페인의 요새 마을인 바다호스(Badajoz)에서 오직15km 서쪽에 위치하는 포르투갈의 요새마을, 엘바스(Elvas)시(市)가 나타난다. 곳곳에 옛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 밑으로 차나 사람들이 드나들며 고금(古今)의 공존을 느끼게 한다.
또 다른 나라에 들어왔다는 기대감과 설레임도 잠시, 또 다시 시작되는 하늘의 무자비한 횡포로 리스본(Lisboa), 그리고 땅 끝 마을(Cabo Da Roca)까지의 길은 자전거를 탄 가련한 국제무숙자(國際無宿者)를 너무도 초라하게 만들고 만다.

결코 충분치 않고 빈약하기 그지없지만, 나에게 찢어지고 꾀죄죄한 우산이라도 뻗어주는 이는 그나마 가로수나무 한 그루뿐이다. 나무 밑에 그저 하염없이 서있을 뿐이다. 비는 마치 아스팔트 위에 구멍이라도 내려는 듯 대지를 짓이기고 있고, 천둥번개는 천하를 호령하며 하늘을 갈기갈기 찢는다.
우비를 입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나와 자전거는 완전히 물에 불고 물이 되어 흐른다. 이 와중에 뒷바퀴에 펑크가 나며 자전거는 순식간에 길바닥 위에 벌렁 나자빠져버린다. (비가 오는 날엔 펑크가 잘 난다.) 불행은 항상 더블, 트리플 펀치로 함께 날아온다. 비속에서 펑크 난 뒷바퀴의 튜브를 교체한다. 차들은 이미 초죽음이 되어있는 나의 온 몸에 무자비하게 물 함지박의 세례를 퍼부으며 도도하게 사라진다.(이것은 분명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요!!)

연일 퍼부어 대는 비속에서 나는 하늘의 횡포에 항거하기위해 지붕이 필요했다. 허허벌판에서, 그나마 나에게 온정을 베푸는 꾀죄죄한 건물의 잔해. 나는 이렇게 '노숙자 임시 움막'에서 삼일을 버티면서 하늘의 '무자비(慈悲)'를 견뎠다. 최소, 이틀분의 비상식량을  항상 비축하고 다녔기에 나의 생존 또한 계속되었다.


스페인 국경에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까지는 240km에 불과하다. 느긋하게 맘을 먹고 가자꾸나. 나에겐 매정한 비 일지언정 잔뜩 말라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지에게는 '신(神)의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비가 오면 그저 맞으면 될 것이고, 또한 젖은 몸과 물건들은 말리면 될 것이다. 이 넓은 천지에서 신장 170cm, 63kg의 이 작은 몸 하나 비를 피할 곳이 없다면, 그저 맞고 나도 비가 되면 될 것이다.

허허벌판의 도로변에서 내가 발견한 유일한 지붕은 1m폭도 안 되는 생철 판으로 덮여진 오직 2면뿐인 블록구조물. 주변에서 몇 조각의 생철조각을 주어 와서 얼기설기 대고 그 위에 판초를 덮여 씌워 '누더기 노숙자천막'을 만든다.
침낭을 싸놓았던 비닐종이에 뚫린 조그만 구멍을 통해 비가 스며들어 침낭조차 흠뻑 젖어있다.
'젖어도 침낭이다.' 침낭 없인 추워서 잠을 잘 수 없다. 내 몸의 체온으로 말리면서 자는 수밖에,.....
아무리 물 속에 누워있어도 눈을 감고 있으면 잠은 온다. 
누더기 천막에서 며칠간을 꼼짝 못하고 '하늘 님'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고지가 바로 저기건만,......'

유라시아의 땅 끝점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를 향해 마지막 언덕길을 오르던 중, 내가 만난 또 한 명의 '자전거를 탄 국제 무숙자', 아키라 가토 군(君).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우리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전신(全身)에 뻗어있는 실핏줄의 최후까지 경련을 일으키며 공명한다. 마치 피를 나눈 형제처럼 우리는 뜨거운 포옹을 한다.


포르투갈에 들어선 후부터는 완연한 봄날이다. 만발한 벚꽃과 유채꽃 옆을 달리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땅 끝 마을을 향하는 도중, 길 반대편으로부터 달려 내려오는 또 한 명의 자전거 국제무숙자(無宿者)가 나의 얼을 뺀다.
우리는 마치 오랜 고향친구를 만난 듯 얼싸안고 기뻐한다. 그는 2003년부터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국 톳토리현(鳥取 縣)출신, '아키라 카토(加藤)'이다.
파키스탄의 국경을 넘자마자 이란의 땅에서 만난 브라질, 상 파울로 출신의 아더(Arthur)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자전거 세계여행자이다. 그는 2003년부터 매년 6개월에 한 대륙씩 여행을 해 오고 있다. 6개월 동안 한 대륙을 돈 후에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일을 하고, 돈을 모으며 다음 해의 여비를 번다.
그는 지금 유럽여행의 마지막 여정으로, 다시 일본에 돌아가면 또 한 번의 여행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곳은 바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이란다. 우리는 한참 동안 도로변에 서서, 그 동안 대륙을 홀로 달리며 삼켜야 했던 깊은 고독과 노고를 서로의 뜨거운 가슴으로 공명하며, 이제야 비로소 하나하나 되새김질하고 있다.
좁은 길을 막고 서있는 두 작은 영웅에게, 많은 운전자들은 조용하고 얌전하게 서행을 하며 경의를 표한다.
이런 모험적인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시아권에서는 역시 한국과 일본인뿐이다. 솔직히 얘기해서 이런 모험과 도전은 일본인이 한국보다 몇 수 빨리 시작했다. 나 또한 일본인들의 많은 모험담을 읽으며 자랐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모험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지구 위를 달려오면서, 나는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내가 일본인이 아니냐는 질문을 수 없이 받아 왔다. 지금 한국에서 붐인 배낭여행도 결국 일본의 젊은이들이 오래 전부터 해 온 것이 아닌가.

모험이 없이는 결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도 없으며, 또한 변화할 수가 없고 성장할 수 없으며 성취할 수 없다. 모든 창조의 출발점은 '모험과 도전' 아니겠는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곳이 정녕 '유라시아'의 최후의 땅!!"
"나는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2월 24일, 나는 포르투갈의, 그리고 유라시아대륙의 땅 끝점인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에 섰다. 우중충한 흙색의 돌탑이 괴물처럼 서있고 그 위로 흰색으로 칠 해진 돌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그 십자가는 나를 노려보며 악을 쓰고 있다.
”너는 이제, 더 이상 자전거를 달릴 수 없어! 네가 계속 달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할 뿐이야!"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는 이렇게 엄중한 경고와 함께 나를 아주 뜨겁게 환영하고 있다. 내가 가야 할 서쪽은 오직, 거친 파도의 대서양(大西洋)이 가로막고 있다.
이 여행을 시작해서 정확히, 6개월하고 10일 만에, 나는 높고도 큰 십자가 앞에서 엄숙하게 '유라시아' 대륙에 공식적인 구두점을 찍었다.
그리 많지 않은 관광객들과 수 명의 모터바이커들 만이 이 유라시아대륙 최후의 땅을 점령하고 있다.
역시 대서양의 파도는 거세었다. 나는 지금, 저 거친 대서양의 파도를 헤치고 나가 대양(大洋)을, 그리고 세계를 정복해 나갔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선원들과 해군들의 하늘을 찌르는 고함소리와 천지를 뒤흔드는 승리의 함성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포르투갈의 해안도로변에는 수많은 해변의 요새(Torre)들과 과거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누비고 다녔던 수많은 용감무쌍한 포르투갈 해군의 동상과 전함들의 앵커들이 줄을 잇고 서있다. 포르투갈을 달리면서 느낀 것은 포르투갈의 남자들이 다른 유럽인에 비해 아주 왜소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계를 누비고 다니지 않았던가!!!

가라테사범, 이와오카 신지. 그는 43세로 거의 무도(武道) 불모지와도 같은 이곳에 홀홀 단신 건너와 무도(武道)의 씨를 뿌리고 거두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는 그를 보며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최 순식 관장님을 떠올린다. 최 관장님이 꼭 이와오카와 같은 나이에 바르셀로나의 국술도장을 시작했기에. 우리는 우리의 건강과 꿈을 위해, 그리고 포르투갈맥주 '사그레스'를 위해 '사룻(Salud)!'-건배-를 힘차게 외친다.


나는 다시 똑같은 길을 되돌아 나와 리스본으로 향한다. 거리상으론 아주 가깝지만 실제로 가는 길은 엄청 나를 애먹인다. 모든 나라의 대 도시를 들어가려면 주요 통로는 고속도로다. 자전거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방도로나 국도를 타야 하는데 항상 이리저리 엉켜있어 길을 찾는 것부터 아주 힘겨운 일이다. 켈루스(Queluz)를 통해 겨우 도착한 리스본의 거리는 한산하고 웅장한 그 무엇도 없으며, 나의 마음을 확 잡아 끄는 그 무엇도 없이 그저 평범해 보인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이와오카 신지(岩岡 眞司)씨는 이곳에서 '가라테'를 가르치고 있는데, 큰 매력도 없고 그저 평범한 그것이 오히려 포르투갈의 매력이라고 한다. 그는 나에게 맥주를 산다. 한 병이 두 병이 되고,......결국 4병이 되었다.
그의 메일주소가 Borracho@.......이듯, 그는 술을 엄청 좋아한다. '보라쵸(Borracho)'는 스페인어로 '술꾼, 술주정뱅이'이다. 그와 마신 포르투갈 맥주 '사그레스(Sagres)'는 그 동안 비바람과 고독으로 기력을 잃은 나에게 강력한 피로회복제가 되어 나의 육신을 확실하게 깨운다. 
술을 마실수록 더욱 빛나는 그의 두 눈에서, 나는 불타오르는 무도인(武道人)으로서의 그의 야망을 본다.
서로의 건강을 위해 '살룻(Salud)!'-스페인어로 건강을 의미하며, 건배를 할 때 외치는 소리.

리스본 시내를 헤치며 사람이 많고 관광객이 많다는 곳, 로시오(Rossio)를 향한다. 중국인 가게가 많이 보이지만 차이나타운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규모이다. 이곳 중국인들은 주로 마카오 출신들로 포르투갈어를 잘하고 있다. 역시 이곳도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아랍계 이민들이 많이 보인다. 식당이나 카페들이 줄을 잇고 관광객들도 많이 보인다. 나는 맥주 '사그레스'의 신선하고 상큼한 맛을 가슴에 고이고이 간직한 채 리스보아를 빠져나와 스페인의 최남단으로 향하기 위해 길을 찾는다.

오랜 역사를 가진 세비야에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화가 혼재하며 아주 많은 유적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슬람문화의 '알카사르' 궁전과 세비야 대성당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으로 정교하고 화려하고 장대하다.


남진(南進)을 계속한다. 이내, 스페인 땅, 그리고 안달루시아의 중심도시인 세비야(Sevilla)를 지난다. 세비야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이슬람문화와 기독교의 문화가 교차하는 가운데 아주 많은 유적지가 존재하고 있는 듯, 도시전체가 고색창연하고 예쁜 것 같다. 도로나 광장들의 뒤편에 거의 미로처럼 얼기설기 얽혀져 있는 주택가들이 인상적이다.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골목골목을 메우며 지나간다. 여지없이 보도 위에 펼쳐지는 노천카페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최대 축복인 햇볕아래서 여유와 만족을 만끽하고 있다. 역시 TV에서는 여느 유럽의 나라들처럼 축구중계 일색이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축구 외에 투우가 추가된다.

나는 예외 없이 슈퍼마켓 '디아(Dia)'-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체인 슈퍼-에 가서 물자들을 보급하고 먹을 것으로 탱탱해진 내 가방에 흡족한 마음이 되어, 햇볕 쏟아지는 파란하늘밑을 달리며 남쪽 끝인 타리파(Tarifa)를 향해 맹렬한 돌진을 감행한다.

시골길을 달리다가 잠시 페달 질을 멈추는, 마을 곳곳의 바(Bar)에는 아침시간부터 시작된 해장술로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술꾼들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아주 낯익은 모습이다. 술꾼은 역시 동・서양구별이 없다니깐!! 술꾼은 하나!

아주 상쾌한 아침이다. 거친 대서양의 파도 부서지는 소리를 자장가삼아 야영을 하고 순간적으로 나는 자전거 가방을 체크한다.
도대체 어떤 놈이 나의 가방에 구멍을,....?! 그 질긴 가방이 뚫려버렸어! 직경 3cm정도의 동그란 구멍이 나 있다. 이빨로 도려낸 것임에 틀림이 없어!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비스킷봉지의 한 부분이 찢겨지고 그 안의 과자가 갉아 먹여진 것이 아닌가?! 그리고 로마의 민박집'가고파'의 주인아줌마가 주신 미숫가루의 봉지도 찢겨지고 우유가 들어 있던 종이 팩에도 구멍이 나서 우유가 졸졸 흘러내린다.
세워져 있는 자전거 옆에 엉켜있는 나뭇가지로 타고 올라가 누군가(?!) 작업을 한 것이다. 어제 밤 이빨을 닦고 퀵 샤워를 하고 세면도구를 그대로 텐트밖에 놓았는데 그 중에 비누를 빼내어 장난을 친 듯 이빨자국이 선명하다. 들쥐, 아니면 산 토끼?! 그들이 절실했던 것처럼 나 또한 먹는 것에 절실하다. 비록 그들이 입을 댔지만, 나는 그들이 먹고 남은 것 모두를 먹어 치운다.

드디어, 나는 긴 여운의 뱃고동소리를 듣는다. 항구가 다가온 것이다. 스페인의, 그리고 유라시아대륙의 또 하나의 끝점이 다가오는 것이다.

연일 나를 슬픔과 고독으로 몰아가는 흉학한 하늘의 모습. 이미 2월이 지났건만 하늘은 우리나라의 여름장마철의 고약하고 변덕 무쌍한 모습그대로다. 저 하늘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숨죽이고 살금살금 달릴 뿐이다.


세비야시내를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江)에서 만난 스킨헤드의 팀(Tim).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온 친구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고독과 슬픔', 이 한 구절 외에는 어떤 다른 것을 찾을 수가 없다. 정해진 스케줄도 없고, 무엇을 할 것인가 조차 모른 채 그저 정처 없는 여행자인 그의 작고 힘겨운 미소 뒤에 흐르고 있는 깊은 슬픔의 강을 내가 감지한 순간,  어디선가 롤링 스톤즈의 "에즈 티얼즈 고 바이(As Tears go by)"가 나의 가슴을 흔든다.


나에게 한 치의 지붕을 부조(扶助)하며, 삼일 동안 '노숙자 천막생활'을 하게 해주었던 초원위의 유일한 콘크리트구조물을 바라다본다.
가끔씩, 태양이 두꺼운 구름의 커튼을 찢고 뛰쳐나올 때마다 나는 고요한 주위를, 그리고 숲 속을 유유자적 걸으며 질펀한 자유를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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