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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이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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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순간적인 일이었다. 벼랑진 강변의 언덕을 무거운 배낭을 지고 내려오다가 뗏목위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왼쪽팔로 뗏목의 위를 짚었다.
순간, 내 왼쪽팔의 손목과 연결되어있는 긴 뼈가 완전히 빠져버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빠졌던 뼈는 다시 원 위치가 되어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래,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의 행진은 계속될 뿐이다!
그러나, 시간은 곧 나에게 극명한 사실을 고한다. 나의 불행은 이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고… 곧 팔이 부어 오름과 동시에 고열과 통증이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다. 혁대에 왼쪽 팔을 걸고 또 다시 뗏목여행은 계속되었다. 또 다시 비는 쏟아지고 나는 지옥의 행진을 계속했다. 팔은 터질 듯 부어 오르고 고열과 계속되는 통증에 결국 나는 뗏목을 포기했다.'
낙동강은 부산을 지나 태평양으로 이어진다. |
내가 대학 2년생이던 1980년 7월, 경상북도 상주의 북쪽, 경천대 부근의 낙동강변에서 시작한 이 뗏목여행은 달성군의 한 낙동강변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나는 이 여행을 위해 서울 롯데호텔 신축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2.7m x 2m의 크기로 17cm두께의 통 소나무 11개를 오직 나일론 줄과 밧줄로 엮어서 만든 이 뗏목은 엉성해 보이지만 자연스럽게 강물의 흐름에 따라 삐걱거리며 흘러갔다.
거센 장마비로 수많은 지류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은 사나운 파도를 만들어 나를 춤추게 하고, 급류 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절벽 앞에서는 뗏목과 바위와의 충돌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삿대를 이용해 바위를 두드리며 뗏목을 밀어내야만 했다.
판단 실수로 얕은 물의 모래밭에 뗏목이 걸려버리면 엄청난 무게로 꼼짝 안 하는 뗏목을 다시 본류(本流)속에 집어넣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만 하고, 다리 밑을 지날 때면 교각의 주위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강물 때문에 긴장하기도 했다.
멍한 채 내려가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때로는 텃세를 부리며 나의 앞길을 막고 덤벼드는 시골의 젊은 악동들에게 시달리기도 하지만, 강변에 있는 수박밭 옆을 지나갈 때면 결코 강 쪽을 보지 않는 원두막의 주인 몰래 수박서리를 하기도 했다.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 수많은 별과 밝은 달빛아래 오직 풀벌레 소리만의 고요한 낙동강을 흘러내려 갈 때면 나는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 나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구미시를 지나 경부 고속도로가 지나는 대교를 지나 강물의 흐름이 급격히 변하는 곳에서 어이없는 사고를 당하고 삼일 간을 버티며 계속하던 나는 결국 여행을 포기하고 강변에 앉아 그저 무심하게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뗏목을 바라보았다.
나의 두 눈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가 저것을 타고 부산까지 간다면, 그 다음은 대마도, 그 다음은 일본, 그 다음은 태평양, 그 다음은.......
정말 가난한 집안, 갈길 잃고 방황하는 나,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나는 그저 떠나고 싶다. 그저 내가 갇혀있는 이 조그만 공간을 뛰어넘어 저 땅 끝까지, 저 바다 끝까지, 그리고 저 하늘 끝까지 가보고 싶다.
이번 여행의 첫번째 목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
2007년 8월14일. 서울 공덕동 집을 떠나 나는 인천항을 향해 달린다. 자전거에는 25kg의 짐이 실려 있다.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는 비는 먼 길 떠나는 나에겐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가는 도중에 길까지 잃어 헤맨 끝에 가까스로 중국의 천진(天津)행 페리를 탄다. 내가 뒤로 했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선실 창에 비쳐진 파도 위에 겹친다. 내가 고독한 여행자의 삶을 계속하듯 그들 또한 그들대로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끝없이 자유를 꿈꾸고 좌충우돌 온몸으로 부딪고 세계를 굴러다니며 살아왔던 지난날이었다.
결코 후회 없는 삶이라 자부해 왔건만, 결국 허무와 무기력이 나의 온몸을 짓눌렀던 지난 몇 년간의 삶으로부터 나에겐 분명 새로운 변화를 위한 도전이 필요했다. 변화란 그저 생각만으론 결코 오지 않는 것으로, 죽음을 무릅쓴 모험 없인 결코 변화라는 대가를 손에 쥘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나를 붙들고 있었던 구태의연한 모든 것을 박살내고 또 다른 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나를 시험해 보고 싶다. 이를 위해 자전거 세계여행은 거의 완벽한 대답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도 세계일주는 내가 10대와 20대 초반에 가지고 있었던 아주 간절하고 소중한 나의 꿈이 아니었던가!
나는 또 외로운 방랑자가 되었다. 나는 또 주체할 수 없는 자유와 깊고도 깊은 고독을 누리게 되었다. 자, 무엇이, 그리고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또 주체할 수 없는 자유와 깊고도 깊은 고독을 누리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