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원조천사와의 만남
에디터 : 이호선

하루 종일 힘겨운 오르막 길에 시달리다가 반갑게 만난 길고도 무지막지한 내리막 길을 그저 날아 내려 앉아보니 나는 이미 상당히 큰 도시인 파스토(Pasto)의 중심가를 달리고 있다. 여느 마을이나 도시처럼 중앙에 크고 오래된 성당을 중심으로 수 많은 좁은 도로가 얽혀져 있는데 큰 도시만큼이나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도시는 이미 축복과 감사의 계절에 들어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벌써 12월 2일이다.


파스토(Pasto)시(市)의 전경. 10여 km의 무지막지한 내리막 길을 달려 내려 가다 보니,
어느 새 시의 중심가에 서 있었다.

해가 지려면 아직 두 세 시간 정도는 더 남아 있어 나는 그대로 국경도시인 이피알레스(Ipiales)를 향해 또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을 운명처럼 기어오른다.
한참 기어오르는데 노란 바가지를 쓰고 긴 자루의 삽으로 도로 위로 흘러 내린 흙을 걷어 내고 있던 두 분의 도로 보수 아저씨가 다짜고짜 "코레아노(Coreano)-한국인!"을 외치며 크고도 거친 두 손을 나에게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아니, 우째 아저씨들은 내가 한국인이란 것을 아셨어?!!"
"척 보면 척 알지~. 한국인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는 달리 눈꼬리가 치켜올라 있어 조금은 사나워 보이거든!"
나는 마치 인왕산 도사님들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섬찟함을 느낀다.
"우쨌거나 아저씨들의 관찰력은 대단하고 한 마디로 감동입니다. 부디 건강하세용!"
우리는 또 한 번의 뜨거운 악수를 나눈다.
'그러고 보니 이 분들의 눈매가 결코 예사롭지 않아!'

"어이, 한국인!"
다짜고짜 큼지막한 두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슈퍼 관찰력을 가진 콜롬비아의 두 족집게 도사(道士).
"한국인들은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가 있어 조금은 사나워 보이거든."
결코 예사롭지 않은 눈매의 이들은 바로 도로보수 노무자들이다.


파스토 시(市)를 한참 지나 집과 인적이 뜸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 동안 어둠은 어김없이 대지 위에 소리 없이 내려 앉는다. 몇 겹의 구름들조차 도로 위까지 낮게 깔리며 도로 위에 차가운 빗 방울을 뿌려 댄다.
콜롬비아의 후반부부터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아침 저녁으로 상당히 차갑다.
도로의 오른 편 깊숙이 조그만 마을이 어렴풋이 보여 그곳으로 들어가 보려고 비포장의 진입도로에 들어선 순간, 그 마을에서부터 소형승용차가 덜거럭 거리며 힘겹게 달려 나온다. 그 차를 세워 그 마을에 싼 여관이 있는가를 물으니, 그곳에는 '여관'의 '여'자(字)도 없다고 한다.
그 차에는 40 전후의 부부로 보이는 미남 미녀의 아저씨와 아줌마가 타고 있는데 나의 행색을 보고 어렵지 않게 나를 이해한 듯 서로에게 무언의 대화를 주고 받은 끝에, 남자가 나에게 제안을 한다.
"누추하지만 우리 집으로 가지 않겠소? 우리 집은 여기서 1k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요." 나는 그의 차가 너무 적어 탑승을 거부한 채 그의 차를 쫓아가기로 하고 힘겨운 오르막을 이를 악물고 기어 오른다.

잠시 후, 그의 차가 정지하고 그는 나와 엘파마를 어떻게든 그의 차 속에 쳐 넣으려고 막무가내로 공간을 만든다. 워낙 작은 승용차여서 엘파마를 구길 대로 구겨 쳐 넣고 나 또한 몇 단으로 접혀져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동안, 차는 비포장의 좁은 길을 달려 말 한 마리가 외롭게 서 있는 작은 오두막 집 앞에 선다.
집 주위는 목초지가 펼쳐져 있을 뿐으로 고요하기 짝이 없다. 이 시골 동네의 이름이 '라 메르세드(La Merced)'라고 한다.
올 해 43세로 이름이 호세(José )인 그는 그가 살고 있는 나리니오(Nariño)도의 도립(道立)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크라니넷(Clarinet)주자인데, 이 오케스트라의 정식이름은 반다 신포니카 데 나리니오(Banda Sinfonica de Nariño)로서 40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역사가 168년이나 되는 콜롬비아에서는 대단한 전통의 오케스트라라고 한다.
그는 20년의 연주 경력자이고 이미 16년 동안이나 이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라고 하는데 아주 색다른 이력을 또 한가지 가지고 있어 나를 흥미진진케 한다.
그는 내가 지나쳐 온 파스토(Pasto)시(市)의 한 태권도 도장(관장은 현지인으로 5단)에서 최근까지 태권도를 5년 간이나 수련을 해 왔고 이미 붉은 띠까지 확보된 상태이며 그의 11살 먹은 딸조차 태권도를 배웠다고 한다. 그에게 한국은 결코 낯선 동양의 한 나라가 아니고 태권도라는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진 아주 친근한 나라였다.
33세인 그의 아내, 산드라(Sandra)는 세라믹 아티스트(Ceramic Artist)라고 한다. 음악과 미술이 서로 만나 하나가 된 것이다.

음악가 호세(José)와 미술가 산드라(Sandra), 그리고 원조천사, 산디(Sandy)와 마누엘(Manuel).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태권도라는 아주 특별하고 질긴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오랜 친구 같은 존재였다.
내가 콜롬비아를 떠나기 전에 그들을 만난 것은 진정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들의 딸인 11살의 산디(Sandy)와 5살의 아들, 마누엘(Manuel)이 두 팔 벌려 우리를 반긴다. 나는 산디와 마누엘의 등장에 마치 "총 맞은 것처럼" 심장이 멎어 버렸다.
나는 그 동안 적지 않은 수의 천사들을 만났지만 이들은 분명 '원조천사'임에 틀림이 없다.
이들은 해맑고, 순수하고, 영특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다르고 새로움에 대한 맹렬한 흥미와 도전이다. 이들은 1 에서 10 까지, 그리고 A,B,C…O,P,Q…X,Y,Z 까지 노트 위에 적은 후, 나에게 달려 와 각 숫자와 각 알파베트 밑에 한글로 쓰라고 한다.
그들은 내가 써 준 한글을 한 자 한 자 몇 번이고 볼펜으로 반복하며 쓰고 있다. 그들에게 한글은 글자라기보다는 새롭고 묘한 기호나 그림임에 틀림이 없겠지만, 그들은 밤 늦게까지 한글쓰기를 반복한다.

이 어린 소녀와 소년의 새로움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욕구와 도전은 분명 모든 인간의 본능일 것이야.
이렇게 순수하고 왕성한 인간 본연의 욕구가 현실에 찌들대로 찌들어 언제나 귀찮고 피곤한 부모들의, "그것 알아서 뭐 해?! 그것 해서 뭐 해?! 쓸데 없는 생각,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밥이나 쳐 먹고 엎드려 있어!", 상투적이고 무책임한 대응으로 그 떡잎이 생기기도 전에 죽어버리곤 하지.
인간은 '욕구의 동물'임에 틀림이 없어. 인간은 '무욕(無慾)', 즉 만족함의 웅덩이에 몸을 담그자마자 곧 악취를 풍기며 썩기 시작하지.
항상 불 만족하고 항상 부족하기에 조금 더 만족하고 조금 더 채우려는 치열한 욕구 속에 부단한 노력을 거듭 함으로서 결코 썩지 않는 인생, 결코 늙지 않는 인생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이겠지.
세계인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하고(어떤 저울과 잣대를 사용하여 측정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거품물고 논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들 말마따나 삶의 만족도란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즉 병태(얼간이)들의 순위를 정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스님들이 '무욕(無慾)'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치열한 정진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치열한 정진자체가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결코 꺾일 줄 모르고 지칠 줄 모르고 멈출 줄 모르는 인간 본연의 심각한 욕구의 산물(産物)이지 않은가?!

밤늦게까지 연방 터져 나오는 하품을 참아가며 한글에의 도전을 감행하고 있는 5살의 마누엘.
새롭고 생소하기만 한 한글에 대한 관심과 도전의 와중에서도 가랑이 찢기를 결코 잊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누엘은 아빠와 누나의 뒤를 이어 곧 태권도에 입문할 듯하다.
11살의 산디는 이미 범상치 않은 미술적 재능을 보인다.


산드라의 세라믹 아트.

5세인 마누엘이 시도 때도 없이 '가랑이 찢기'를 감행하고 있는 것을 보니 곧 태권도에 입문할 듯 싶다. 이들은 결코 풍요롭지는 않으나 충실하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만들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작은 오두막 집에는 두 개의 방이 있는데 그 중 한 개의 방은 그들의 침실로 두 개의 침대가 놓여 있다. 또 다른 방은 정확하게 둘로 나뉘어져 한 쪽은 호세와 두 아이들의 공간으로 두 개의 작은 책상과 그 위로 두 대의 컴퓨터, 그리고 호세의 작업대(호세는 자신의 악기 뿐만 아니고 다른 취주악기들도 손수 수리를 하고 있다)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들어 서 있고 또 다른 한 편의 공간은 호세의 아내인 산드라의 공간으로 많은 물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나는 산드라의 공간을 빌려 판쵸 용 비닐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침낭을 깔아 나의 잠자리를 만든다. 산디와 마누엘은 늦은 시각까지 똑같이 그릴 수 없는 한글이 나타날 때마다 나에게 달려와 확인을 거듭하며 한글 쓰기에 맹진(猛進)한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산디와 마누엘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하품의 빈도가 잦아 들더니 이윽고, 천사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 집이 고요함 속에 묻힌다. 길었던 나의 하루도 침낭 속에서 그 최후를 다한다.
침낭 속에 누워 두텁게 나를 덮고 있는 어둠을 응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호세와 산드라, 그리고 두 천사로 이루어진 완벽한 팀의 삶, 즉 '가족' 앞에 나의 삶은 순식간에 빈 깡통이 되고 허울좋은 허수아비가 되면서, 나의 전신은 공허함과 몽고의 한풍(寒風)에 난타 당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선택, 나의 삶에 후회는 없어.
고비사막 같은 공허함과 뼈에 사무치는 한기조차 내가 선택한 삶의 대가이고 죽는 날까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내 배낭이다.
인생사(史)에 공짜라는 단어는 없어! 자, 내일을 위해 눈을 감자꾸나.

새들의 야단법석에 눈을 떠 보니, 모처럼 기분이 아주 상쾌하고 개운하다. 지난 며칠 동안 알 수 없는 불면의 밤을 보내지 않았던가.
웬일일까?! 그렇지, 이 곳은 천사들이 사는 곳이야!
산드라가 부산을 떨며 만들어준 아침식사와 커피를 마시고 잠시 그들과 얘기를 나눈다.
호세와 산드라에게도 가족은 역시 그들 인생 최고의 가치다. 여자인 산드라는 다른 여자들과 결코 다름없이 현실적인 고민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도시에서 다소 떨어진, 변두리인 이곳에서 12년을 살아 온 그들은 아이들의 더 좋은 교육을 위해 도시로 가고 싶어한다. 한국의 부모들이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과 한 치의 다름이 없다.
정말 돌아서고 싶지 않은 돌아섬, 돌아서지지 않는 돌아섬을 하지만 나는 콜롬비아 땅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나의 행운에 감사하며 천사들의 집을 뒤로 한다.

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아침공기를 헤치고 콜롬비아 최후의 도시인 이피알레스(Ipiales)를 향해 달린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길고도 무지막지한 총 30km가량의 내리막길 덕을 톡톡히 보며 70여km를 달린 끝에 종착역에 도착한다.
파스토(Pasto)보다는 훨씬 작은 도시이지만 국경도시는 언제나 활기에 넘친다. 어둠의 시작과 함께 기온이 급강하하며 온 몸을 움추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두꺼운 파카나 털 외투를 입고 털 모자까지 쓰며 산타클로스의 계절을 만끽하고 있다. 나는 11,000페소(6,000원)의 여관 방에 온 몸을 던지고 국경의 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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