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도너 박종하, 로드 위에서 한계를 넘어 꿈을 달린다.
에디터 : 박창민 기자

란도너(Randonneur)란 무지원 무보급으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장거리 라이딩에 나서는 이들을 말한다. 짧게는 200km 길게는 1200km가 넘는 거리를 GPS와 자전거에 실은 짐만을 믿고 로드를 달리는 이들이다.
그런 란도너들의 모임인 '한국 란도너스(http://www.korea-randonneurs.org/ )'는 지난 2009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회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박종하'라는 이름은 그 존재감이 확실한 회원 중에 하나다. 올해도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그의 자전거 이야기를 들어보자.


란도너에 대해 설명

란도너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200km 이상의 거리를 지원없이 자력으로 라이딩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매 4년마다 8월에 파리-브레스트-파리(PBP)라는 1200km의 브레베가 열려, 전 세계 란도너들이 모이죠. 브레베는 공식적으로 열리는 대회를 의미합니다.
거리는 200km부터 시작되는데, 정식 브레베는 200, 300, 400, 600km가 가장 기본적이고, 길게는 1000, 1200, 1600km 등의 장거리 브레베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200, 400, 600km를 한 해에 모두 다 하게 되면 수퍼란도너가 되는데, 요즘은 많이 늘었습니다.
거기에서 조금 더 하면 KR5000이 있는데, 그것은 수퍼란도너를 해야 하고, 플레쉬라고 팀대회가 있는데, 직접 설계한 코스로 360km 이상을 달려야 합니다. 최소 3인에서 5인이 참가하여 3명 이상이 완주해야 하며, 어디서 출발하든 광주에 도착해야 합니다. 광주에 아침 9시까지 들어가면 되는데, 7시 전에 도착하지 않게 라이딩을 설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점심식사를 하죠.
그리고, 1200km 브레베나 SBS(서울-부산-서울) 1000km 중 1개를 완주하고, 나머지 브레베나 등록된 퍼머넌트 코스를 포함해 그해에 5000km 이상 라이딩 하면 KR5000 라이더가 됩니다.
저는 이번주에 1200km를 다녀오면 KR5000이 끝나게 되며, 올해 KR5000은 약 20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매 4년마다 열리는 PBP(파리-브레스트-파리)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그 당해에 수퍼란도너가 되어야 참가 자격이 주어집니다. 지난 PBP는 참가자가 3000명 정도 되는 대규모였으며, 42시간 대에 완주한 라이더가 나올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라이딩에 참가하는 라이더를 란도너(Randonneur), 대회를 란도너링(Randonneuring) 또는 브레베(Brevet)라고 부릅니다.

지난 2015년 열린 PBP, 다음 PBP는 2019년에 열리게 된다.


자력으로 장거리 라이딩을 가는 매력

자전거 대회를 많이 다니다 보면 대회도 재밌지만, 장거리를 타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대회는 항상 스피드 경쟁으로 긴장되고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혼자 장거리 라이딩을 하는 것을 도전하게 되었고, 2015년 3월에 서울 200 브레베를 처음 참가했습니다.
란도너링은 비경쟁 장거리 대회인데, 남의 도움없이 자력으로 타는 것이어서 매력이 있습니다. 도로만 타는 것이 아니라, 시골길과 임도도 타면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죠. 누군가는 여행처럼 타기도 하고, 또 빠르게 레이스처럼 타기도 해서 자기에게 맞게 라이딩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좋습니다.
요즘은 브롬톤이나 스트라이다로 도전하는 새로운 라이더들도 늘어나고 있고, 산악자전거로만 참가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 외에도 마라톤에서 서브쓰리를 하신 분들, 트레일런으로 산악종주를 하시는 분들 등, 각 스포츠의 고수분들이 많이 참가하기도 합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200개가 넘는 브레베가 열리며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고, 태국은 겨울에 장거리 브레베를 하기 때문에 해외 참가자들이 많아서 기록으로 1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브레베는 많이 가는 편입니다.
해외 브레베를 갈 때는 여행자보험으로 보험증서를 대신하여 사용하면 됩니다.



CP를 기준으로 달리는 란도너링

모든 라이딩 기록은 '한국 란도너'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데, 글로벌 본부는 프랑스에 있습니다. 첫 참가를 위해서는 한국 란도너 웹사이트에 회원 등록을 하고,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게 될 자신의 고유번호를 부여받게 됩니다. 란도너 등록비는 없고, 연회비(1만원)와 브레베 참가비를 내야 한다.
브레베를 출발하기 전에 보험증서 확인부터 검차를 하게 되는데, 라이트, 후미등 2개, 반사조끼, 발목밴드 등을 확인하며, 면책동의서에 서명하면 출발을 할 수 있다.
브레베 중간에 CP(체크포인트)에서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보통 편의점을 CP로 하여 도장을 거기서 찍어서 다음 CP로 이동하게 됩니다. 편의점은 24시간 운영되고, 잠시 쉬면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라이더나 편의점에 모두 좋은 것이죠.

란도너의 규정은 평속 15km/h입니다. 이 규정은 600km 이내의 브레베에 적용되고 있는데, 쉬는 시간을 포함한 시간입니다. 예를 들면, 200km는 13시간 30분, 400km는 27시간, 600km는 40시간 등이 됩니다.
600km의 경우는 초반에 많은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잠 자는 시간을 줄여서 달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쪽잠을 자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을 많이 이용하게 되는데, 좋은 버스정류장은 문을 닫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그런 곳을 찾으면 정말 좋죠.

이 외에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자력으로 해야 하고, 참가자가 아닌 라이더와 드리프트를 하면 안 됩니다. 참가자들끼리는 드리프트가 가능한데, 페이스가 잘 맞는 라이더와 만나게 되면 긴 시간동안 함께 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브레베를 완주하면 브레베 카드를 프랑스에 보내고, 그것을 확인하여 연말에 자신에게 보내줍니다. 저는 지금까지 3년 동안 완주증이 50개가 넘습니다. 완주메달도 구매할 수 있는데, 200, 300, 400 메달이 따로 있고, 수퍼란도너 메달이 있습니다. 수퍼란도너는 메달에 연도가 있기 때문에 매번 구매하는 편입니다.


200km는 단거리

란도너링를 많이 하다보면 200km 정도는 그냥 워밍업 수준의 라이딩이 됩니다. 보통 시즌 초반에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장거리 라이딩에 나서면, 워낙 짧은 시간에 극한 라이딩을 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밤에 잘 보이지 않아서 도로가 패인 곳을 보지 못해 휠이 깨지기도 하고, 스포크도 부러지고, 안장레일이 부러져서, 안장가방을 핸들바에 묶어서 60km 이상을 안장없이 가기고 하고, 체인이 끊어지거나 슈즈의 다이얼이 깨진 적도 있습니다.
체인을 4000km 정도에 한번 교체하는데, 거의 한달에 한번씩 교체하는 편이고, 브레이크 패드도 올해만 4번 교체했을 정도입니다. 1200km 브레베를 타고 나면, 입고 있던 옷도 수명을 거의 다하는 수준이 됩니다.

600km 이상 브레베를 할 때는, 밤에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달리게 됩니다. 모텔에서 잠을 자는 게 가장 좋은데, 옷이 없기 때문에 알몸으로 잠을 자죠. 그런데, 비용을 아끼려고 3명 정도가 방을 같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전에 SBS할 때는 비가 너무 와서 5명이 한방에서 잔 적도 있습니다.

지난 백두대간 챌린지에 나선 박종하씨의 자전거


서울 600 + 설악그란폰도?

작년에 서울 600을 하면서, 설악그란폰도를 중간에 완주하는 생각을 했었죠. 서울 600을 출발해서 조침령을 넘고 상남면을 지나는데, 설악그란폰도 출발 일정에 맞추어 출발지인 상남면에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설악그란폰도를 탔습니다. 그란폰도 완주는 했는데, 브레베 완주를 위해서는 시간이 안 되어서 서울 600은 DNF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600km는 넘게 탔고, 하루에 설악그란폰도의 메디오폰도와 그란폰도 코스를 모두 탄 날이었죠.

또, 백두대간 챌린지 퍼머넌트를 하고 나서, 바로 TDK를 참가한 적도 있는데, 백두대간을 하고 3일 쉬고 TDK에 출전해서 몸이 좀 혹사 당했었죠.

전에 SBS 브레베를 할 때였는데, 낮에는 따뜻했지만, 가지산을 넘을 때 밤에 0도까지 떨어져서 추워서 고생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핫팩을 다리에 다 집어넣고 갔는데도 다음 CP인 경주에 도착했을 때 너무 추워서 힘들었었죠.

이렇듯, 할 때마다 이번이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하는데, 다음에 더 어려운 일이 생기니까 매번 더 힘든 경험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추억이 되죠.


라이딩에 필요한 물건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여분 튜브 2개 정도, 펑크 패치, 공구 세트, 체인링크, 오일, 패드 크림, 바세린 등이며, 바세린은 비가 오면 옷과 피부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 외에 워머와 바람막이, 비상약과 진통제, 비타민, 아미노바이탈, 보조배터리 등도 가지고 다닙니다. 그리고, 저는 CO2보다 펌프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핸드펌프를 가지고 다니는 편입니다.
CP는 보통 70km에서 길게는 120km 정도 되는데, 저는 보통 200km 코스면 CP에서만 쉽니다. 보급식을 챙겨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CP에서 음식을 구매해서 짐을 줄이고 있습니다.



해외 장거리 출전, 그리고 투어링도 하고 싶다.

해외 울트라 사이클링 대회나 유럽횡단 4000km 넘는 대회 등에 도전하고 싶고, 자력으로 타는 장거리 레이스에 조금 더 도전하고 싶습니다.
내년에 한국에서 2000km 브레베를 만드는 중인데, 중간에 임도 구간을 넣어서 설계하고 있고, 그 대회도 출전할 예정이다.
호주를 횡단하는 4000km 브레베가 올해 7월과 8월에 열리는데, 1937년 허버트 오퍼맨 경이 13일 10시간 11분에 달린 80주년을 기념한 것입니다. 20일 이내에 달려야 하는 이 브레베도 정말 참가하고 싶은 대회 중 하나죠.


란도너링을 시작하려면?

본인이 평소 라이딩하는 것에 보통 2배 정도는 탈 수 있다고 봅니다. 정말 못할 것 같은 분들도 완주를 하게 되니 정신력이 중요한 거죠. 평상 시 100km 정도의 거리를 평속 20~25km/h 정도 달릴 수 있다면 200km 브레베에 도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을 줄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략 50km 정도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일정에 맞추어 달릴 수 있는 퍼머넌트를 경험이 있는 사람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브레베를 처음 시작하게 되면, 초반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오버페이스를 하는 경우도 자주 생기기 때문이죠.
자전거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잘 하십니다. 매일 라이딩을 하시다보니 구력과 기본 체력이 되는 편이거든요.

300km부터는 업힐이 많아지기 때문에 업힐 연습을 충분히 하고 도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GPS 파일을 보고 달리게 되는데, 처음에는 지도를 보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서 길을 잘 찾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그래서, 처음 참가하는 분들은 미리 코스를 답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페셜라이즈드 앰버서더, 부담스럽지만 고맙다.

스페셜라이즈드의 앰버서더로 활동한 것은 작년 7월부터입니다. 새롭게 출시한 루베(Roubaix)의 컨셉과 제가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앰버서더가 되면서 피팅을 받고 무릎 통증이 거의 없어졌다는 점이 좋았고, 좋은 자전거를 지원받은 점이 기분 좋습니다.
특별히 타이어는 소모품이지만 계속 지원을 받고 있어서 매우 든든합니다. 한달에도 몇번씩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거든요.
새롭게 받은 루베의 경우는, 헤드에 서스펜션이 내장된 퓨처샥을 사용합니다. 어두울 때 노면을 잘 확인하지 못해 충격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매우 편하고, 장시간 라이딩 후 피로감이 확실히 덜해서 좋습니다. 또한, Di2로 추운 날씨에 손이 얼어도 변속이 쉽고, 디스크 브레이크를 사용해 항상 제동력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서 만족합니다.

제일 부담스러운 것 중에 하나는 누적거리를 의식하는 분들이 있는데, 앰버서더를 하다보니 1년에 3만km를 타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저도 그 정도를 타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브레베를 하면서 몸이 좋지 않으면 좀 뒤에 가기도 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뒤에서 가요?'라는 등의 질문을 받으면 좀 부담이 되곤 하죠.
왠지, 항상 잘 타고 남들보다 열심히 타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자전거 위에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다.

1200 브레베를 할 때, 맷돼지가 같이 뛰다가 앞으로 튀어 나온 경우도 있었는데, 맷돼지도 저도 서로 눈을 보고 놀랐죠. 놀란 맷돼지는 뛰어서 도망 가려는데 아스팔트에 미끄러져서 헛발질을 하고, 저는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피했는데, 거의 50cm 정도 차이로 서로 비껴 갔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고라니가 도로 가운데 자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고라니와 부딪혀 완주를 실패한 분들도 계십니다.
비가 온 날에는 도로에 개구리가 많이 나오기도 하고, 하루동안 일출과 일몰, 별을 보며 달리는 경험은 일반적으로는 하기 어렵죠.
자연의 변화를 직접 느끼는 것도 참 좋습니다. 같은 코스를 타더라도 날씨에 따라서 안개가 끼거나 날씨가 좋거나에 따라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거든요.

라이딩 중에 편의점에서 미리 도착한 참가자들이 물이나 콜라를 크게 사 놓고 남겨 두기도 하고, 수박을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고, 유명한 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거나 밤에 함께 치킨에 맥주를 하면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친분을 쌓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봅니다.
시간이 늦어지면 밤을 새거나 이른 새벽에 달리게 되는데, 물안개와 함께 해가 뜨는 모습은 정말 멋진 장관을 만들어 줍니다.

내년부터는 일정을 조금 줄이더라도 여유를 가지면서 조금 더 경험하고, 투어링을 하는 등 자전거 위에서 색다른 재미를 찾을 생각입니다.



란도너스는 직업도 아니고 어떤 수익을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꿈을 향해서 자신의 한계를 넘고 길을 달리다보면 언젠가 그 꿈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 않을까? 란도너 박종하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때론 그런 희망 자체가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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