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디터 : 박규동
|
낙 동 강
양우정
낙동강 700리
몇 굽이더냐
눈물이라네
태백산(太白山), 골짜기
어린 초부(樵夫)의
그 슬픈 노래 싣고
고이 흐르지
에-헤루 흘러서
어데를 가나
원정(願情) 말할 동무 찾아
흘러 가지요
삼락강변공원의 자전거길 |
나쁜 아내는 없다.
어리석은 남편이 있을 뿐이다. 내 어리석음이 아내를 개고생시켰지만 그래도 아내는 싱글벙글이다.
무슨 영화를 맞겠다고 아내를 자전거길로 내몰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아무 사고없이 낙동강의 끝, 을숙도까지 온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밤새 바람이 모질게 불었고 비도 내렸다.
말리려고 널어 놓았던 빨래는 다시 젖었고 설거지를 미뤄 두었던 냄비와 압력솥에는 빗물이 흥건하였다.
그러나, 아침을 맑게 해 주는 것은 언제나 아내의 미소다. 그 미소에 당할 수가 없다. 나를 당당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원천이다. 그 기운으로 일어나서 날씨를 살핀다. 구름이 다소 높아지면서 비가 그쳤다. 거센 남풍은 계속해서 비구름을 실어나르고 있었지만 틈새를 훔쳐 밥을 짓고, 빨래를 헹구고, 텐트를 걷었다.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서 낙동강 둔치에 난 길을 따라 마지막 남은 남행 길을 달렸다.
뒤따르던 아내가 "저기 좀 보세요. 오른쪽에 연꽃이 만발이에요!" 하길레 쳐다보니 천 평도 넘어 보이는 큰 인공호수에 각양각색의 연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카메라를 트레일러에서 꺼냈다. 200mm 렌즈로 바꿔 달고 조용히 꽃들에게로 다가갔다. 11시 즈음이다. 연꽃이 활짝 피기에 매우 적당한 날씨다. 높은 구름이 해를 가렸고, 바람은 다소 서늘하였다. 피기에 좋은 날이었다. 아내와 나의 낙동강 마무리를 축하라도 해 주는 듯 연꽃은 화려하였다.
우리에게 이런 복이라니!
소나기를 피해 서 있는 자전거와 트레일러 |
사상을 지날무렵 어디서 왔는지 먹구름이 삽시간에 나타났다.
아내가 곁눈질로 보아 두었던 롯데마트로 피신하였다. 마트 입구의 넓은 처마 아래에 이르자마자 소나기는 쏟아졌다. 30분 동안에 50mm는 내렸을 것이다. 아내가 사 온 빵으로 요기를 하면서 마트의 유리문 안에서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바라보는 것도 운치가 있었다. 소나기가 수그러질 때를 기다렸다가 길 건너 편에 보아 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또 다른 소나기가 한 차례 더 쏟아졌다. 비가 그쳤을 때는 신이 났다. 부리나케 을숙도를 향해 달렸다.
최종 목적지 을숙도에 닿았다.
토사가 섞인 누런 강물이 섬을 삼킬 듯 흐르더니 어느덧 바다로 사라져 갔다. 강이 바다가 돼서야 비로소 낙동강이 되는 것이다.
을숙도는 강이 만든 섬이다. 강원도와 경상도의 산간 곳곳에서 흘러내린 토사를 낙동강이 실어 와 낙동강 하구에 쌓으면서 삼각주 형태의 섬을 만든 것이다.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낙동강하굿둑기념탑 앞에서 정말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아내는 어디를 바라보았고 나는 만세를 불렀다. 만세! 대한민국 만세! 를......
내가 살아서 다시 못 올 땅이다. 을숙도!
낙동강하굿둑, 바닷물의 역류를 막아주는 갑문 |
낙동강을 마무리 하고 우리는 다시 경주를 향해 북상하였다.
화명에 와서 비를 피해 화신중학교 주차장에서 잤다. 2층부터 교실로 만들어져서 1층을 주차장으로 쓰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50m쯤 떨어진 곳에 수도꼭지가 있었다. 밥을 하고 잠자기 전에 다리와 발을 씻었다.
내일은 양산에 인디고뱅크와 그의 아내 인디걸님 오기로 한 날이다. 몹씨 보고 싶다.
그 다음 날은 봉님을 언양에서 만나고.....
화명 화신중학교 주차장에서 |
낙동강여행은 얼떨결에 경주여행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경주에서는 내가 좋아 하는 첼로님이 안내를 맡을 것이다. 역사와 현대를 훤히 꿰고 있는 그의 해설이 기다려진다.
경주에서는 응원부대로 열다섯 명이나 온다고 했으니 그 아니 기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