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을 따라서, 사람이 흐르는 강
에디터 : 박규동

2010년 08월 03일  강시골-현동-강시골  41km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를 온종일 사로잡고 있는 의문이다. 명상의 시발일 수도 있다. 동물의 시체를 즐겨 먹는 나의 잡식성에 대한 의문도 뒤 따랐다.
밤 늦도록 나눈 그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자꾸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루 두 끼 채식으로 음식하고 명상으로 내면을 밝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의 여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삶의 질인가 아니면 삶의 태도인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길이 막다른 곳에서 바라본 낙동강, 승부에서 구비구비를 돌아 내려온다.

장마가 지났어도 낙동강은 가물었다.

나그네를 붙잡아 놓고 오늘은 자전거를 타잔다.
조영래, 한희숙 내외분은 자전거를 배우겠다는 명분을 세웠다. 기실 우리를 하루 더 잡은 명분이 그럴 듯하여 아내와 나는 자전거에서 짐차를 떼어내고 그들을 따라 나섰다.
고선계곡을 향했다. 휴가가 집중됀 기간이라서 계곡을 왕래하는 좁은 길이 차로 막혀 꼼짝달싹 못한다. 고선계곡을 포기하고 현동역으로 와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랐다. 고선계곡에 비해 낙동강은 한산하였다. 아마도 아연재련소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승부에서 헤어진 내 영혼은 강줄기를 따라 흘러오고 있었다.
강을 따라 길이 끝나는 곳까지 갔다. 내려오면서 다락골로 들었다. 도중에 춘양목 노송이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곳에 아담한 정자가 있어서 쉬어가기로 하였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지만 이 곳은 지리적으로 많이 덥지는 않았다. 간식으로 준비한 생식을 먹었다. 곡식을 빻아 가루로 낸 것인데 요기가 되었다.
그 때 마을 안에서 80대 후반의 노인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셨다.
"보아하니 손이 오신 것같아 대접할라고 자두를 좀 가져왔소." 하시며 토종 자두를 한 소쿠리 내미신다. 우리 일행 다섯은 너, 나없이 감동하여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걸음이 불편하여 목발까지 하신 노인의 인사에 그져 "고맙습니다!"만 연발하였다.
이리저리 둘러본 거리가 41km나 되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을을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겠다고 자두를 갖고 오신 할아버지


50대이면서도 소녀처럼 맑게 짓는 웃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희숙, 조영래 부부

저녁에는 마당에 모기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칼국수를 먹었다.
야채로 국물울 우러내고 곱게 썬 국수를 끓는 물에 익혀 낸 토종 손국수이다. 고향의 맛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 먹었던 고기없는 국수 맛이 이랬었다.
명상에 참가한 여러분으로부터 삶의 태도에 대한 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친 새끼 까치를 보살피다가 지금은 한 식구가 되었다는 XX님, 일류대학을 나오고도 지금은 트럭에 뻥튀기 기계를 싣고 다니며 뻥튀기로 돈을 벌어서 유기됀 개나 고양이를 보살핀다고 하였다. 자전거를 함께 탔던 XX님, 강냉이 장사로 하루를 번 그 돈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한다고 하였다.

밤에 비가 내릴 것 같아 텐트를 걷고 사랑방에서 잤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0년 08월 04일   강시골-현동-재산-명호-청량산   51km

늦은 아침을 먹고 10시에 강시골을 떠났다.
나그네님도 친구가 태워준 차편으로 아침에 강시골에서 합류하였다. 좋은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갈로 길을 나섰다.


현동까지는 내리막이었다.
현동에서 다시 낙동강을 만났다. 지방도로를 타고 임기리로 나아갔다. 조금씩 넓어진 강은 내 가슴까지도 넓게 해 주었다. 뜨거운 햋볕을 피해 찾아간 길가의 정자에는 마을 노인들 네 분이 부채질을 하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니 처녀, 총각이 아니고 나잇살이나 먹은 거 같애!"
헬멧을 벗는 우리를 보면서, 한편 트레일러가 달린 자전거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 환대를 한다.
"지나다가 너무 더워서 잠시 쉬려고 들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암, 쉬었다 가야지! "
"여보게! 총무, 가서 시원한 맥주나 몇 병 갖고 오게!"
그렇게 우리를 맞아준 임기리 노인회원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더위를 식혔다. 어딜 가나 남자들 세계에는 빠지지 않는 군대이야기에서부터 소싯적 연애이야기까지....... 웃음이 더위를 날려 주었다.
갈증이 급힐 때에 건네 준 시원한 맥주 맛을 잊을 수 없다. 오래 건강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인디고뱅크와 하비님을 청량산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다.
간간이 통화를 하면서 길을 맞추며 달렸다.
31번국도에서 933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서 가파른 고개를 만났다. 큰공이재는 오르막이 3km밖에 되지 않았지만 경사가 급했다. 13%가 넘는 데도 있다. 두 번을 쉬고 올랐다. 공이재를 하나 더 넘고 재산 삼거리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시간에는 배터리 충전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손전화, 카메라, 헤드렌턴 등.....

인디고뱅크님과 통화를 하니 약간의 차이로 명호교 앞 삼거리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30분 일찌기 도착하였다. 길 옆에 있는 풍악산영천약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늘 설레인다.
먼발치로 보니 삿갓을 쓴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 쪽으로 달려온다, 뒤에 여자가 한 명.....  인디고뱅크와 하비님이다. 깃발을 날리며!
인디고뱅크님은 어제 영월에 도착하여 홀로 소백산 구마령을 넘어온 것이다. 부석사 앞에사 야영을 하고 오늘 아침에 봉화에서 하비님을 만나 함께 온 것이라 했다. 인디고뱅크님과 하비님이 몰고온 기운이 우리를 다시 힘나게 했다.

래프팅을 하면서 물놀이를 즐기는 젊은이들

청량산 입구

청량산입구까지 왔다.
낙동강이 청량산을 끼고 흐르는 경관은 일품이다. 낙동강이 따로 있거나, 청량산에 낙동강이 없다면 어림도 없는 장관이다.
강을 타고 흐르는 래프팅 무리를 여럿 만났다. 젊음의 웃음소리가 강을 흔들었다.
강물에 엉켜 흐르는 내 영혼도 더 젊어졌을 것이다.

야영은 나그네님의 추천으로 농장겸 음식점을 하고 있는 데서 했다.
닭백숙을 먹고 농장의 대청마루에서 잤다.

땀에 젖은 옷가지를 빨아 널었다. 밤새 마르지 않아도 아침에는 젖은 채로 그냥 입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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