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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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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07일
하회마을-부용대-지보-풍양-사벌-경천대 40km. 36도32'26.72X128도30'58.36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최근에 안동을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안동시는 자랑스럽게 선전을 한다.
그 문화의 저변에는 예절과 의리를 가르침의 기본으로 하고 있는 유교가 바탕으로 깔려있을 것이다. 예를 다하고 성의있게 살아가는 사람살이의 이치를 깨우친 사람들만이 자신하는 웅변이다. 조상을 섬기고 가정과 이웃을 화목으로 가꾸며 공부를 게으르지 않아 속됨이 없는 오랜 전통이 안동을 지배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이 것이 양반다운 삶을 전통으로 지켜온 안동이라는 세상이다.
과연 그럴까?
그들, 안동사람들은 양반인가?
아침 6시, 하회마을 관리인이라는 사람이 다짜고짜 "빨리 텐트 걷어서 나가시오!"라며 화난 표정을 짓는다. |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아침을 굶은 채 야영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
빨리 텐트 걷어서 나가시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좋은 아침!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어제 그 민박집 주인이 하화마을 관리인이라는 사람을 데려왔다. 다짜고짜
"빨리 텐트 걷어서 나가시오!" 라며 화난 표정을 짓는다."
"여보시오, 화내지 말고 그냥 양반답게 말할 수 없소!"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러십니까?"
"화장실에서 몸을 좀 씻었다고 생 난리를 치는 사람들이 당신네들이요. 그리고 당신 말대로 안동시 조례에 따라 환경오염 때문에 야영을 못하게 한다면 어제같은 대형공연을 폭죽을 수백 발이나 쏘아되는 난장을 어떻게 낙동강 위에서 할 수 있단 말이요? 자동차는 들어오는 마을에 어째서 자전거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거요? 야영장은 없고 꼭 민박만 해야하는거요?"
그는 관리인의 도리를 다하였고 나는 자전거여행자의 섭섭함을 다 하였다.
낙동강 위에 대형 수상무대를 차리고 '부용지애'라는 뮤지컬을 공영한 부용대 앞 강변 |
아침도 만들어 먹지 못하고 하회마을을 떠났다.
둑길을 따라 나오다가 강 위에 설치한 무대를 보니 무대 뒤로 부용대 앞까지 임시로 부교가 걸려 있었다. 부교는 폭이 1m 안팍으로 좁았지만 힘을 모으면 자전거까지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작나무님이 정찰을 갔다오더니 도강이 가능하겠다고 하여 도강작전을 결정하였다.
계단이 있을 때에는 한 사람이 앞에서 자전거를 끌고 한 사람은 뒤에서 트레일러를 들어서 옮겨 주는 형식으로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옮겼다. 좁고 출렁이는 부교를 50m가량 건너고 바퀴가 푹푹 빠지는 모래길을 둘이서 밀고 당기고 하면서 겸안정 주차장까지 오니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뿌듯하였다.
수상무대와 이어진 부교를 따라 강을 건넜다. |
동강작전은 2인1조로 이뤄졌다. |
여기서 취사를 하면 안 됩니다!
겸안정 주차장 앞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다.
옆에는 수도꼭지가 있었다. '옳다구나 여기서 아침밥을 해 먹고 가야겠다'하고 물을 준비하고 짐을 풀려고 하는데, '민박합니다'라고 써 붙인 기와집에서 어떤 40대 남자가 나오더니
"여기서 취사를 하면 안 됩니다! 물만 떠 갖고 조금 더 가다가 다리밑에서 취사를 하시지요!"
풍산 류씨들이 양반이라고 세상을 향해 큰소리치고 있는 하회마을과 부용대에서 이런 몰인사를 접하다니!
과히 쌍놈만 못하다는 생각에 내가 한 마디 했다.
"어째 인사가 돌쌍놈들보다 못하단 말이요!"
1km쯤 오다가 마을을 만났다.
농가 옆에 작은 정자가 있었다. 한산한 곳이라 고픈 배를 채우려고 아침을 준비하기에 좋았다. 옆에 있는 농가에 찾아가 잠시 쉬어가도 좋으냐고 묻고 물을 얻어 쓰기로 하였다.
이런 일은 하비님이 척척이다. 며칠만에 생긴 우리만의 속담이다. "물 만난 하비님!"
안동을 지나면서 낙동강은 강변에 넓은 농토를 만들었다.
토사가 흘러와 쌓이면서 범람할 때마다 유역의 넓은 강변이 옥토로 바뀐 것이리라. 평야에 이뤄진 논 사이로 5km의 직선 도로를 달렸다. 한바탕하고 떠난 꿀꿀한 아침이 한결 가벼워졌다. 구담교를 건너자 작은 마켓이 나타났다. 부족한 식품을 채우고 얼음과자를 하나씩 먹었다. 설레임 커피맛, 내가 좋아하는 찬맛이다.
다시 916번도로를 만났다. 길은 평화로웠다. 길에서는 나쁜 기억을 쉽게 잊을 수 있다. 그것이 나그네의 철학이다. 철없이 떠들고 웃으며 달리다보면 어느새 파랑새가 되는 것이다.
나그네님과 작별하면서 |
지보면 마전리에서 나그네님과 헤어졌다.
나와 아내는 7일 째 여행이지만 나그네님은 보름이 넘었다. 마침 나그네님의 고향 땅을 지나고 있었다. 고향에 들렸다가 서울로 가겠다면서 북쪽 길로 편안하게 떠나갔다. 인디고뱅크, 하비, 자작나무와 바람개비, 아내와 나는 지언교를 남쪽으로 건너 풍양을 향해 페달을 다시 밟았다.
풍양에서 시원한 콩국수를 먹었다. 얼음이 동동 뜨는!
경천대까지는 약 20km가 남았다. 잊지말자, 배터리 충전!
이거 뱀이 개구리 잡아 먹는 소린데...
날은 덥고 습했다.
사벌면으로 접어들어 916번도로를 타고 가다가 경천대 방향으로 좌회전 하였다. 묵하리.
2km쯤 달리다가 개천가 들마루에서 쉬고 있는 아낙네들을 만났다. 길도 물어볼 겸 나무그늘이 좋아서 쉬어가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러라고 하여 자전거를 세웠다. 아낙이 네 명이고 나이든 남자가 둘이 있었다. 우리 여섯 명이 끼어들면서 마루는 좁았지만 나그네를 맞는 아낙의 심성이 편한 것 같아 모두 마음을 놓았다. 남자 둘도 주민이 아니고 오토바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실 없고 철 없는 농담이 오고가면서 편한 웃음이 일었다. 어쩌다가 내가 방구를 뀌었다. 한 남자가 하는 말이
"이거 뱀이 개구리 잡아 먹는 소린데..... 개구리가 지도 안 죽을라고 이런 소리를 내는기라."
그 소리에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두 번 더 방구를 뀌고 말았다.
"이거봐라, 이거! 뱀한테 꽉 물려 있으면서도 마지막 용을 쓰느라고 이러는기라. 그러니 어쩔거여. 뱀도 먹고 살아야지. 자연의 이친기라!"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정으로 하는 말인 걸 알고는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여행의 즐거움이여!
낙동강 준설을 서두르는 공사 현장 |
경천대공원 인공폭포 앞에서 |
15%만 깍아달랐는데, 몽땅해서 2천원
작은 고개를 넘고나니 왼쪽에 상주박물관이 나타났다.
500m를 더 가서 좌측으로 경천대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경천대는 상주에서 관리하는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공원안내표지판에서 야영장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갑던지 오늘은 여기서 야영 하자는데 만장일치다.
인공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개구리 잡아 먹는 소리 땜에 모두 웃음에 젖었다. 피로한 기색은 보이지 않고 넉넉한 웃음만 얼굴에 넘친다.
야영장에는 샤워장과 개수대가 갖춰져 있었다. 이미 다섯 동의 텐트가 쳐저 있었다. 우리는 도로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동차로 온 사람들은 짐을 옮기기가 불편하여 먼 곳의 자리는 좋은데 비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전거를 끌면서 그 자리를 찾아 들었다. 단풍나무와 서어나무, 소나무들이 무리지어 서 있어서 볕을 가려 주었다. 일찌감치 텐트를 치고 샤워를 한 후 저녁을 지었다.
관리인이 야영장사용료를 받으러 왔다. 텐트 1동에 2천 원씩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텐트는 네 동이었다. 농담삼아 15%만 깍아달라고 하였더니 몽땅해서 2천원만 받아 갔다.
강바람이 조금 불었다.
저녁이 되니 더위도 조금씩 물러가고 신선주는 맛이 있었다.
나누는 우리의 한담은 지구 인력의 중심이 되었다. 구름 사이로 언뜻 언뜻 별이 보였다.
2010년 08월 08일
경천대-경천대
쉬는 날이다.
말복이기도 하지만 쉬기에 날이 너무 좋았다. 쉬어 가자고 하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쌀이 떨어졌다.
다정다감한 하비님이 나섰다. 쌀을 꾸어 오겠다는 것이다. 라면을 아침으로 먹고 떠나자던 계획이 아침 정식으로 바뀌면서 우리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그러나, 하비님이 누구냐? 떠나가는 이웃 텐트에서 남은 쌀을 얻고, 매점에서 두 홉을 더 사서 갖고 왔다. 아침은 푸짐했다.
바람개비님이 어제 갖고 온 춘천닭갈비도 일미였다.
사벌로 장을 보러 가기로 하였다.
인디고뱅크, 하비, 자작나무님 셋이서 빈 트레일러를 두대 끌고 사벌로 떠났다.
바람개비님은 책을 읽고 아내와 나는 모처럼 낮잠을 잤다.
두 시간 후, 장을 보러 갔던 구매팀이 돌아 왔다. 백숙용 통닭 두 마리, 수박, 쌀 5kg, 김치며 풋고추에 상추까지.
경천대(擎天臺)를 보러 나섰다.
사벌은 삼국시대를 전후로 이 지역에 있었던 부락국가였다. 낙동강 유역에 넓게 자라잡은 농경지에 교통이 쉬워서 이 지역은 항상 군웅이 할거하였던 곳이란다. 하늘의 뜻을 따라야지만 백성을 섬길 수 있었으리라!
경천대는 절벽의 맨 꼭대기에 있었다. 경천대 표지판 바위에는 '大明天地 崇禎日月'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고 그 위에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다. 절벽 아래로는 낙동강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낙동강제일경(洛東江第一景)이다.
이곳을 국민관광지로 지정하고 다듬어서 여러 사람들을 편히 쉬게하여 준 상주시의 기획도 마음에 들었다. 야영장과 곳곳에 위치한 정자와 쉼터 뿐 아니라 산 속을 이리저리 돌아 다닐 수 있는 산악자전거코스도 그만이다.
MTB코스를 타고 온 인디고뱅크와 하비님이 더 좋아 한다. 다음에 이리로 1박2일 야영을 오잔다. 그러자고 했다.
경천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
미뤄 두었던 빨래도 하고 고팠던 단백질도 공급하였다.
몸은 이미 불량노인이지만 마음은 소년처럼 맑아졌다.
예약해 두었던 예비일을 마침 맞게 써 먹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