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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쇠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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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만 갖으면 서울 어디에서나 성곽을 볼 수 있다. |
진리를 검증할 수 있는건 실천뿐이다.
실천으로 얻은 경험은 철(哲)이 되어 사람마다 개성과 신념으로 자라난다. 우리는 경험한만큼 사색하고 판단한다. 경험이 모자라면 어리석음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탐험은 진리의 폭을 넓히는 실천이다.
실천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사색의 폭이 궁하고 실천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란 실천이 쌓여서 모아진 진리의 정수다.
두 바퀴 수레, 자전거를 타고 역사의 현장 서울성곽 북쪽 부분을 돌았다. 혜화동에서 북악산을 올랐다가 인왕산으로 해서 서대문-서소문-남대문으로 내려왔다.
몇 주 전에 시작한 "서울성곽을 자전거로 돌아보자"던 꿈을 완성한 것이다.
한옥으로 꾸며진 혜화동주민센터 |
와룡공원 상단부 |
오늘, 우리를 안내할 첼로님과 트리스탄은 지난 여름에 서울성곽을 걸어서 돌았던 경험이 있다.
서울성곽은 걸어가는 것보다 자전거로 가는 게 더 어렵다. 서울성의 진산 네 곳,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오르내리는 길의 경사가 만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전거 통행을 제한하는 일부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 가는 길과 자전거로가는 길이 다르지만 대체로 걷는 길이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길이었다. 남산과 북악산, 인왕산의 일부 구간은 도로를 타고 멀리 돌아갈 수 밖에 없기도 했다.
걸어서든 자전거를 타든 출발은 동대문이 좋다.
시계방향으로 돌든, 반대방향으로 돌든 동대문은 서울성곽을 돌기 위한 출발지로 좋다. 전철1호선 동대문역 6번 출구로 나오면 자그마한 광장을 만난다. 거기서 모여 의논을 하고 떠날 수 있다. 동대문이라 불리우는 흥인지문은 유적의 소실 없이 고스란히 원형대로 남아있는 보물1호이다.
자전거 통행이 금지된 구간이다. |
석축의 규모가 클 수록 공법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
통행금지 구간을 피하여 다시 도로로 내려왔다. |
북악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성곽의 줄기 |
동대문에서 11시에 모였다.
모처럼 파스텔님이 오셨고, 인천에서 인디고님과 트리스탄, 무림리에서 바람개비와 불근늑대, 흰늑대 그리고 첼로님 하여 일곱이다.
한옥으로 됀 혜화동주민센타에 잠간 들렸다가 곧장 성곽을 따라 붙었다. 북악산 줄기로 오르는 성곽은 경사가 깊어지면서 계단을 놓았다. 자전거를 들거나 끌었다. 성곽길을 따라 걷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전거를 타거나 끌면서 삼청터널 상부까지 왔지만 북악산 정상부를 오르기 위해서는 출입허가를 받아야 했다. 자전거는 통행이 금지란다. 등산로를 따라 삼청각 앞으로 내려온 다음 다시 도로를 따라 북악산길을 올랐다. 팔각정에서 잠간 쉬고 자하문까지 내려와 소문난 '자하손만두'에서 점심을 먹었다.
산모퉁이 카페 |
산모퉁이 카페 마당에 있던 석상의 미소 |
첼로표 테마여행은 언제나 미술관을 지나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나서 부민동의 여러 곳을 들렸다. 일요일에는 쉰다는 xx미술관, '산모퉁이카페', 이어서 백사계곡까지..... 다시 인왕산길을 따라 내려온 후, 홍난파기념관에도 잠시 머물렀다.
도시로 내려오면서 성곽은 땅에 묻히거나 건물에 깔려서 사라졌다.
서대문터에서부터 서소문터-남대문-남산까지는 굵직 굵직한 대형 건물이 성곽을 흔적도 없이 삼켜버렸다. 모를 땐 모른척 했지만 알고 찾아나선 마당에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성곽의 초석으로 집을 지은 모습도 보인다. 성곽을 담으로 쓰고 있는 집들도 있다. 그런 모습 중에는 정부의 건물도 많다. 일제시대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성곽의 흔적은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지경이다. 지금까지 정부에서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의문이 들 정도이다.
타 버린 숭례문은 또 어떤가?
지금까지 많은 부분을 복원하였다고 하지만 아쉬움은 끝이 없다. 복원보다 보존이 더 손쉬운 것을 모른단 말인가?
인왕산에서 서대문으로 내려가는 구간 |
홍난파 기념관은 성곽 바로 옆에 있었다. |
성곽의 일부를 깔고 앉은 건물의 담 |
성곽 위에 집을 짓고 살다가 다시 대형 빌딩을 지으려는 공사형장이다. 문화재관리청은 예산만 축내는 책상머리들 뿐인가? |
성벽을 허물어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이 적지 않다. |
서대문과 서소문 터는 대형 빌딩으로 들어찼다. 이제와서 우리는 그 책임을 일제에 돌리고 있다. |
성곽 위에 나란히 들어선 대형 건물들 |
왼쪽에 보이는 창고가 남대문 복원공장이다. |
다음에는 서울성곽을 걸어서 돌아보고 싶다.
후손들을 위해 성곽을 건축하고 뿌듯해하였을 우리의 선조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북창동에서 돌솥밥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시청앞에서 헤어졌다.
고마워요! 첼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