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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쇠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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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12일 맑음 대왕암-호미곶-포항 90km
대왕암, 신라 문무대왕 수중릉 |
세상의 모든 신(神)들이 여기 대왕암 앞 바다에 다 모인 듯 하였다.
천막을 두드리고, 바람을 흔들고, 파도가 몽돌을 굴리고, 갈매기가 뜨악하게 짖어댔다. 밤이 길면 길수록 신들의 축제는 야단이었다. 그 긴 밤에 나는 이승의 무엇이 안타까워 가슴을 졸였는지 모르겠다.
구름을 헤치고 떠 오르는 태양은 이미 신이었다.
태양신을 바라보며 나도 천막에서 일어났다. 산장지기님이 스토브에 불을 붙이고 밥솥을 올려 놓았다. 제 각기 분주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문무대왕능이 잘 보이는 곳을 골라 제상을 차렸다. 상이래야 그저, 방수포를 깔고 북어 한 마리에 막걸리 한 병이다. 두 번 절을 올리고 자작나무님이 지어온 제문을 내가 목청껏 읊었다.
"유세차
단기 4344년 1월 12일 오늘
쇠말패 대장 박규동과 대원들은
이 곳 감포 대왕암에 다다라
동해의 호국룡이신 문무대왕님의 깊은 뜻을 되새기며
모든 산하를 굽어살피시는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자전거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모든 길들은 오르막의 땀과 내리막의 기쁨으로 가득하며
자전거 위에서 바라보는 모든 풍경들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인간의 속도로 펼쳐지나니
이러한 길 위에서의 경험으로
세상살이의 모든 희노애락이 결국은 하나의 평안임을
그리고 세상 모든 만물이 마침내 하나의 바탕 위에 피고지는 꽃임을 깨닫게 하여주시고
또한 오늘 우리를 옭아매는 대립과 미움을 걷어내고
평화와 통일이라는 두 바퀴를 힘차게 굴려갈 수 있기를
우리가 힘겹게 북풍한설을 맞으며 저어가는 이 길이
북녘을 지나 만주의 고토를 잇고 언젠가 그 길 위에
우리의 바퀴자국을 남기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나이다.
천지신명께 비옵건대 모든 가난한 이웃들의 눈물에 무감하지 않을 따뜻한 마음과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명철한 지혜와
자신의 뜻을 의지로 관철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하는 건강을 모두에게 주시옵소서
거듭 비옵건대 신묘년 한해도 서로 화합과 사랑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고
모두 무사한 여행이 되도록
비록 적고 보잘것 없사오나 이제 이 술 한잔에 우리와 착한 이웃들의 모든 소망과 정성을 담아
지극한 절로써 올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흠향하옵소서.
단기 4344년 서기 2011년 1월 12일 쇠말패 일동"
안전운행 기원제를 올린 후 기념사진 |
제문을 소지한 다음 다시 큰절을 올리고 각자 마음에 두었던 소원을 빌었다.
"간절히 바라나이다.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해 주소서!"
오늘은 포항에 닿는 날이다.
호미곶을 둘러가는 먼길이다. 포항에서는 아이스짱이 마중을 나오기로 하였다.
우리가 나아가는 31번국도와 925번지방도는 동해안에서 만나는 전형적인 바닷길이다. 작은 언덕을 오르내리고, 구비 구비를 애돌아 가는...... 그리고 오른쪽에서는 늘 파도가 철석이는 길이다. 몇날며칠을 달려도 싫증이 나지 않을 길이다.
양포 어딘가에서 오이쨈님이 "야! 찐빵이다!"라고 뒤에서 소리를 친다. 그 소리에 다섯 대의 자전거는 약속이나 한 듯이 정거를 한다. 허름한 찐빵가게에서는 물을 끓이는 김이 배가 고프도록 피어 올랐다. 찐빵에 만두까지 요기를 한다. 맛있다! 이런 게 맛이란다.
찐빵집 안에서 |
양포를 지나면서 인디고뱅크님이 옛 이야기를 한다.
해병대에 입대하고 이등병을 달고 첫 배속을 받은 곳이 여기란다. 소대본부가 있었던 곳을 지나는데 퀀세트가 콩크리트로 바뀌었다고 하며 상기된 모습이다. 바다도 달리고 바람도 달리고 자전거도 달린다.
구룡포에서 복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호미곶까지는 길이 신작로로 개발되면서 곧고 편편하게 만들어져서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였다.
호미곶은 영일만 남쪽에 삐죽히 동쪽으로 튀어나온 꼬리 모양의 끝자락이다.
남한에서는 동쪽 끝인 셈이다. 동쪽 끝이라 하여 동쪽이 더 가까운 곳이다. 해도 가깝고 시간도 빠른 곳이다. 새해 아침에는 해맞이를 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오늘은 텅 비어있었다.
31번국도에서 925번지방도로 접어들면서 |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 |
925지방도로를 따라 호미곶을 벗어난 시간이 4시를 넘었다.
대동배리를 지나면서 제법 부대끼는 고개를 하나 넘었다. 꼭대기에서 쉬고 있을 때에 아이스짱으로부터 전화가 았다. 고개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아마도 자전거를 타고온 모양이다. 자전거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고개를 신나게 내려가니 조그만 마을 앞에서 아이스짱이 기다리고 있었다. 껴안고 만남을 축하했다.
"히말라야니스트 아이스짱을 소개합니다!" 나는 대원들에게 아이스짱을 소개하였다. 영일만에 사는 그가 영일만식 정으로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을 껴안으며 포옹으로 인사를 한다.
아이스짱을 만나 포스코 정문 앞에서 |
3년 전에 아내와 둘이서 전국일주 자전거여행을 할 때, 그 때에도 아이스짱은 구룡포까지 우리를 마중해 준 적이 있었다. 시원한 물회를 한 사발씩 사 주고 장도를 격려해 주었던 그 정이 아직도 살아있었다. 그 다음해에 그가 자전거로 포항에서 서울 나들이를 했고, 나도 그를 마중하기 위해 팔당대교까지 나갔던 추억이 있다.
이런 정을 나눌 수 있는 배경에는 산사람들만이 나눌 수있는 정신같은 게 있다. 고산등반을 하면서 고난과의 싸움을 치른 사람들에게 바치는 우정같은 것일 것이다.
누군가 또 찐빵집을 발견하였다.
포항 송도해수욕장까지 밤길을 가자면 든든하게 야식을 해야할 터였다.
아이스짱이 앞장을 섰다. 그는 내일도 청하까지 안내를 하겠다고 하였다. 회사에는 특별휴가를 냈다고 했다. 사위가 어두워진 밤길은 어둠으로 길이 더 멀었다. 둘쑥날쑥하며 고개를 넘거나 해안을 휘돌아 갈 때에는 더러 앞 사람을 놓지는 때도 있었다.
밤길에서 앞 사람을 놓지면 나도 모르게 애가 탄다. 페달질이 가빠지고 숨은 턱에 닿는데 길을 어둠으로 멀고 멀기만 하다. 다시 31번국도를 타고 나면서 가빴던 어둠이 가로등 빛으로 다소 느긋해 진다. 그는 그가 근무하는 포스코 앞을 통과하면서 여기저기를 설명해 주었다. 기념사진도 찍으면서 18km를 더 가서 송도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집에는 거하게 진수성찬이 마련되어 있었다. 물론 과메기도. 신선주를 정표로 나누어 마셨다. 이웃에 있는 그의 후배 내외분도 동참하였다.
우리 대원 다섯에, 짱과 부인, 아들(지난 번에 짱과 지리산으로 자전거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후배(물로 쇠를 자르는 일을 하신단다)와 그의 부인 등 열 명이 거한 저녁을 먹었다.
포항 야경 |
송도해수욕장 솔밭공원에는 눈이 가득하였다.
운이 좋게도 족구장에 눈이 치워져 있었다. 우리 대원과 아이스짱이 함께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짱의 부인과 후배 내외분이 막영지를 찾아 왔다. 취침 전에 치루는 간소한 음주는 우리의 오래된 미풍양속?이다. 정은 이럴 때에 쌓이는 것이다.
나는 아이스짱과 함께 그의 텐트에서 잤다.
산사람 냄새가 텐트 안에 가득하였을 것이다.
야영장에서 기념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