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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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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7일 土 비
한반도마을에서 비를 피해 집을 빌려 쉬었다.
가을비가 모질게 내렸다.
야영장에서 아침을 먹다가 비를 맞은 것이다. 허겁지겁 밥그릇과 냄비를 들고 비가림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바로 옆에 민박집이 있어서 처마 밑에 좁게 앉아 밥을 마저 먹었다. 내친김에 방을 빌리기로 했다. 여름 철이라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빗줄기이지만 가을에는 체온을 급격하게 낮추는 탓에 갈길을 포기하고 하루를 쉬기로 하였다.
사실, 쉬는 것도 쉽지않은 선택이다. 24시간을 어떻게 보낸단 말인가?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비가림이 될만한 곳으로 옮기고 우리는 빌린 방으로 들었다.
방을 하나만 얻은 것이다. 마찌님과 하비님이 흥정을 잘 하여 돈도 절약하고 시간도 얻은 것이다.
하비님이 주인집에서 밀가루를 얻어다 김치전을 부쳤다. 산전수전 다 겪은 5060세대들에게 이런 건 쉬운 일인지 모르겠다.
한 쪽에서는 심심풀이 고스톱이 펼쳐젔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김치전의 추억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고마워요!
참, 달콤한 휴식이었다.
자운님, 오이쨈님, 인디고뱅크님, 하비님과 나는 10여일 씩 되는 전국투어를 여러번 했던 친구들이라 이젠 서로간에 흉허물이 없다. 오늘은 자운님의 부인 마찌님이 함깨 하지만 마찌님도 품이 넉넉하여 그만이다.
점심을 먹고나서는 윷놀이를 했다. 놀이의 달인 오이쨈님이 100원 짜리 동전으로 윷을 삼았다. 동전 하나에는 색종이를 오려붙혀서 백도도 만들고.......
두 사람씩 세 편을 만들어 벌린 윷놀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서로 물고 먹히는 상황이 얼마나 희한한지 다 이겼다고 장담하던 말도 백도로 잡히는가 하면, 동전윷을 작은 컵에 넣고 흔들다가 던지는 대목에는 온갖 너스레가 다 나온다. 꼭 초등생 같다.
이런 동화의 세계를 만들어 준 친구들에게 우정을 보낸다.
오후에 비가 약간 주춤하는 사이에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었다.
비에 촉촉하게 젖은 단풍이 더 운치가 있어 보였다.
내일은 별똥별님이 기다리는 단양까지 가야 한다.
한반도마을- 정선-조양강-가수리-동강-영월-고씨동굴-단양.
100km가 넘는 먼 길이다.
2012년 10월 28일 日 흐린날.
한반도마을-단양. 별똥별님이 주선한 수련원 숙소에서 자다.
하루 쉰 벌로 아침 7시에 한반도마을에서 단양을 향해 출발하였다.
두 시간 빠른 출발이지만 단양까지는 약 100km이다. 동강을 지나 언덕과 고개를 여럿 넘어야 하며 영월에서 단양까지는 국도를 타야한다.
열심히 달려보자!
동강을 마시면 자유가 자란다.
물과 침묵과 단풍이 가을을 국경으로 나란히 서 있다. 침묵과 단풍은 혁명처럼 나부끼고, 강물은, 동강은 자유를 상징하는 듯 가을의 국경을 넘어 어디론가 흘러간다. 나도 따라 흐른다.
조양강 건너 정선읍내 |
아! 동강 |
동강을 마시면 자유가 자란다. |
나는
동강에 오면 그게 어느 계절이든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내 영혼이 역마살에 중독된 느낌이다. 25여 년 전인가, 동강에서 처음 공기주입식 카누를 타고 레프팅을 했었다. 어라연을 비롯한 여러 급류에서 배가 뒤집히며 물을 마셨었다. 그때 마신 물이 내 영혼을 자유케 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자유란 죽기로 해야 닿을 수 있는 거리란 걸 안 것이다.
홍수가 나면 일부러 그 급하고 엄청난 물살을 찾아 서울에서 동강을 찾아오곤 했었다. 그리고 황톳빛 급류에 낙엽 같은 카누를 띄웠었다. 긴장은 머리 끝까지 차 올랐고, 아드레날린은 몸 구석 구석의 말초 신경까지 흥분을 이끌었다.
어느 땐, 배가 뒤집혀 2km가 넘게 차가운 급류를 표류하였고 영월에 이르러 겨우 절벽에 닿아 구조를 요청했던 적도 있었다. 회오리 물살에 몸이 빨려들어가 물 속으로 4~5m를 쳐박히며 나는 임사체험을 하기도 했었다.
이 회오리 급류에서 내가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무리 용을 써도 물살의 힘을 이기지 못 했다. 영혼은 이미 내 몸을 벗어나 멀리 도망을 쳤다. 그러나, 나는 영혼을 놓고 싶지않았다. 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바닥 물흐름을 이용하여 와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강의 물은 내 영혼을 자유케 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강을 여러 차례 다녀갔다.
동강할미꽃이 피는 봄에도, 습도가 높은 여름에도 그리고 단풍이 고운 이 가을에도...... . 역마살이 끝이 아니길 빌면서.
가수리에서 |
9시에 동강의 가운데 마을 가수리에 닿았다.
길은 신병산에 가로 막혀 고성리에서 예미로 넘어간다. 가파른 고갯길 다음엔 고성터널을 넘는다. 길을 헤맨 자운님은 산 꼭대기를 넘었고.
석항리에서 점심을 먹고 영월을 향해 달렸다.
동강(조양강)과 서강(주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는 별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 동강쪽 물이 물반 고기반이라는 어라연 계곡을 돌아올 때에 서강의 물은 단종의 애사가 깃든 청령포를 돌아 왔을 게 아닌가 하고 잠시 상념에 잠긴다.
영월에서 자운+마찌님 부부가 서울로 올라갔다. 내일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바쁜데도 만사를 뒤로 하고 며칠이라도 함께 달려준 두 분, 그 정을 어찌할꺼나! 고마워요!!
88번지방도로는 남한강을 따라 영춘으로 달린다.
충청도에 들어서서 영춘에 이르니 날이 어두워졌다.
단양에서 기다리는 병똥별님과 통화를 했다. 야간라이딩을 해서라도 오늘은 단양에 갈 거라고 말이다.
단양을 약 10km 남겨둔 가곡 어디쯤일까 별똥별님이 1톤 용달트럭을 타고 우리를 마중하러 왔다. 한 밤 중에 갓길도 없는 고수고재를 넘는 것이 위험할 것 같아서라며 맑은 웃음을 웃는다.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별똥별님이 마련해 놓은 숙소로 찾아갔다. 별님의 친구 석파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별님이 충주에서 날라온 맑은 술을 나누어 마셨다. 100km를 넘게 달리느라 찌들었던 피로가 말끔하게 씻겨졌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
강원도와 충청도 도계에 있는 김삿갓 기념비 |
별님이 압력솥에 지어놓은 밥을 저녁으로 먹었다.
저녁 8시 즈음에 별님의 또 다른 친구 지우님이 찾아왔다. 석파님은 그림을 그리시는 화가였고, 지우님은 "스스로 어리석다"고 하셨지만 지덕체가 온전한 선비를 보는 느낌이었다.
20년 전, 그들이 30대였을 때에 조직한 계가 "양산박"이라고 했다.
별똥별님은 그 계에 수괴였었고...... . 그래! 그랬었군. 아! 양산박이라니..... 많은 느낌이 교차했다.
수호지를 통해 내가 좋아했던 백팔 영웅호걸들이 뇌리를 스친다. 그런 호걸들이 우리를 반겨주다니!
오늘은, 꼭, 내가 양산박에 들려 하룻밤을 묵어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