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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쇠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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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따라 벚꽃 라이딩 |
우주에서 자전거가 굴러 다니는 행성은 지구뿐이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 자전거! 이 시대에 지구에 태어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행운에 나는 늘 감사한다. 행복한 장난감, 자전거를 타고 섬진강에 꽃구경을 다녀왔다. 벚꽃과 배꽃, 동백꽃이 한창이었다.
하동까지 차를 타고 가서 솔밭공원에서 자전거로 바꿔 탔다.
4월 4일(토) 낮 12시. 하동을 벗어나면서 재첩국을 파는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내와 나를 포함하여 일행은 여덟 명, 또 다른 한 명은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화개장터까지 오기로 하여 모두 모이면 이번 쇠말패의 여행은 아홉 명이다. 최서방 부부, 용석이네 부부, 순호님, 겨울바람님 그리고 남중님과 우리 부부이다.
예순이 넘으면서 나도 꽃이 좋아졌다.
특히 봄에 피는 꽃들이 좋다. 삭막한 겨울을 씻고 화사한 꽃으로 옷을 갈아입는 세상이 좋아서일 거다. 봄 꽃에는 기가 넘쳐 흐른다. 꽃을 보며 기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를 받게 된다. 그 기는 희망보다 더 큰 행운을 가져온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이웃 여러분들도 쇠말패따라 섬진강 봄기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매실농원을 하는 매화향기님을 만났다. |
블로그 이웃 중에 'coffee4471'님이 계신다.
4471님의 소개로 또 다른 이웃 '매화향기'님을 알게 되었다. 하동 먹점골에서 매실농원을 하는 매화향기님이 섬진강을 여행하게 되면 꼭 들려 가시라는 초대가 있었다. 자전거로 오르기에는 조금 버거운 3km의 급경사를 올라야 하는 고민이 있었지만 우리는 일단 다녀 가기로 하였다. 언덕길 중간쯤에서 매화향기님이 차를 갖고 오셔서 고맙게도 모두 차를 타고 농원까지 올랐다. 지난 달에 새로 지은 황토 방 집에서 정성과 마음이 가득한 대접을 받았다. 다과와 감주에 이어 바로 만든 쑥떡은 입을 벌어지게 하였다. 마무리로 나온 꽃잎을 띄운 대나무 차의 향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이버 세상에서 알게 되어 참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눈 정담은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다.
꽃보다 사람이다!
먹점골에서 내려와 악양벌로 향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곳이다. 악양벌에 파랗게 보리 싹이 올라있다. 배꽃과 벚꽃이 절정이지만 그 꽃들은 눈에 나서 보이지 않고 자운영이 보석처럼 벌을 덮고 있다. 벚꽃축제를 맞아 최참판댁은 인산인해다. 최참판댁에 입장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곧장 화개장터로 달려갔다.
화개장터는 아직도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
나는 자전거를 타고 토성의 궤도를 돌고 싶다.
내가 죽고 난 후에 나는 영혼이 되어 내 자전거를 타고 우주로 날아 가리라!
토성이 마음에 든다. 토성의 행성 궤도도 좋겠지만 위성 궤도도 재미날 것 같다. 같이 갈 친구가 있다면 지금부터 함께 훈련을 해야겠다.
토성에는 봄에 무슨 꽃이 필까?
화개장터로 가는 궤도에는 수많은 차량이 몰려 '멈추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밀린 차량행렬의 길이가 10km도 넘는다. 그러나, 자전거는 밀리지 않는다. 차량 수 백대를 추월하며 가는 재미가 토성궤도를 도는 것만큼 신난다. 자동차 안에서 이런 말이 들려 나온다.
"맞아! 이럴 때에는 자전거를 타야 돼!"
화개장터로 가는 궤도에는 수많은 차량이 몰려 '멈추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
화개파출소에 들려 작년에 친절을 배풀어 주었던 조영남 소장을 찾았으나 그는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단다. 자전거를 파출소에 주차하고 찾아간 장터는 가수 조영남의 '화개장터'처럼 "없을 건 없고요 있을 건 다 있었다." 최서방이 용케도 주막을 찾아냈다. 해물파전을 시키고 막걸리를 마셨다. 도중에 버스로 온 남중님이 주막으로 찾아왔다. 오래 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막걸리표 얼콰한 기분으로 쌍계사계곡 화개천 우측 도로를 따라 오늘의 숙소인 길손민박(055-884-1336)을 향해 출발이다.
내 경험으로 쌍계사계곡의 벚꽃은 우리나리에서 제일이다. 수령이 오래되어 나무의 크기만큼 열리는 꽃이 장관이다.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쌍계사가 어울려 있는 풍수지리도 한 몫을 한다. 그리고 다른 곳보다 꽃 소식이 이르다.
쌍계사 앞 마을에서는 벚꽃축제에 따른 부대 행사가 벌어져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야외 콘서트장을 찾아 무료로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꽃바람에 흥이 더 하니 토성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벚꽃축제에 따른 부대 행사가 벌어져 있었다. |
민박집 아저씨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인심을 써 주었다.
자전거를 아래 층 빈 가게에 넣어두라는 것이다. 작년에는 건물 밖에 세워두고 밤새 혹시나 했던 생각이 있어서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더구나 내가 타고 간 엘파마 Fantasia는 카본 재질로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 느낌으로는 영혼이 되어 토성으로 갈 그때 타고 갈 자전거로 찜이 된 상태이다. 카본의 특성상 잘 썩지도 않고 질기기 때문이다.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간수하는 게 상책이다.
다음날 아침 일곱 시에 밥을 먹고 반에 출발하여 쌍계사계곡길을 내려왔다.
어제와 달리 화개천을 건너 북쪽으로 난 길이다. 이 길의 벚꽃은 섬진강 전체에서도 또 제일이다. 아침에 더 좋다. 벚꽃 굴다리를 지나가면서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서슬 퍼런 선비도 시 하나쯤은 남기고 가야 할 명품 경관이다.
토성에 갈 때에 벚꽃 씨앗도 가져 가야지!
화개장터에서 19번 국도를 만나 우회전하면 구례로 가는 길이다.
자전거가 평등하듯이 꽃도 평등하다.
자전거는 타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자리를 허락한다. 공부 많이 한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자전거를 탄다고 하여도 자전거는 힘 안들이고 저절로 가는 법이 없다. 가난하거나 사기꾼이라고 해서 더 힘들지 않는다. 만약 대통령이 자전거를 타는데 그게 힘 안들이고 저절로 간다면 그것은 이미 자전거가 아니다. 자전거가 나눠주는 그 평등의 분배가 나는 좋다.
꽃의 평등은 나무랄 데가 없다.
자동차를 타고 간 사람에게나 자전거를 타고 간 사람에게나 꽃의 모습은 한결같다. 남루한 거지에게나, 사형수에게 조차도 꽃은 덜 예쁘지 않다. 소녀에게 예쁘듯이 엄마에게 예쁘고 할머니에게도 예쁜 것이 꽃이다.
평평등등한 게 자전거요 꽃이다.
봄에 19번 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된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섬진강 꽃길이다.
"가 봤어? 안 가 봤으면 말을 하지마!" 개그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내가 한 수 더 뜬다면 "자전거 타고 가 봤어? 자동차 타고 가 봤으면 말을 하지마!"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동에서 구례까지다.
구례군청에 들려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남쪽으로 되돌아 가기로 하는데 이때에는 섬진강 서쪽에 난길 861번 도로를 따라가는 게 좋다. 19번이 경상도 쪽이라면 861번은 순전히 전라도 쪽이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는 길이다. 861번 도로에는 벚꽃나무가 아직 어리다. 그러나 조용하거나 오래된 전통 가옥들이 있어 선비 같은 느낌이 난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문척이다.
여기서도 면 단위의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파전에 막걸리를 한 잔 하였다. 술에 취하고 꽃에 취하면 자전거도 시인이 된다.
861번 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니 쌍계사계곡으로 가려는 차량들이 화개장터를 중심으로 꽉 밀려있다. 해결의 방법이 없어 보인다. 유일한 해결책은 자전거를 타는 것인데 말이다.
다압에 와서 재첩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어제부터 자전거를 탄 거리가 90km이다. 약 10km를 더 가면 다시 하동이다. 점심을 먹고 홍쌍리매실농장 앞을 지나 하동에 닿았다.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나서 뒷풀이로 솔밭공원을 산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