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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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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만 방조제 중간 쯤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 네 명의 청년을 만났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들은 소위 철티비를 타고 있었으며 짐도 단촐해 보였다. 헬멧 대신 밀짚 모자를 쓰고 목에 수건을 둘렀다. 어설픈 만큼 용감해 보이는 것은 그들이 젊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가는 길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 했다. 다시 만나자는 기약을 하고 우리가 먼저 떠났다.
트레일러를 끌고 가는 우리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쉬는 시간을 줄이는 수 밖에 없다. 더구나 한 낮에는 자전거를 탄다는 생각만 해도 온몸이 불덩어리가 된 기분이다. 그래서 한낮 더위가 극심한 낮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쉬기로 하였다.
대신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점심 때까지 약 40km를 가고 다시 오후 4시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약 40km를 가기로 했다. 더위와의 전쟁에서 짜낸 나름대로의 전략이다.
그런데 기상청에서 폭염경보를 내렸다고 한다. 아니, 그런 기상예보가 예전에도 있었던가?
더위에 지친 우리로서는 불볕 더위에 휘발유 세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의 운행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기운이 좋다가 점점 나빠지는 대원이 있는 반면, 평범하게 시작하여 갈 수록 적응이 잘 되는 대원이 있다.
자신의 체력으로만 여행을 해야 하는 등산이나 자전거 여행에서는 후자가 성공할 기회가 많은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직은 큰 고개가 없는 평지에 가까운 길이라고 치더라도 고마울 따름이다.
방조제를 달리면서 나는 고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했다. 삽교천방조제 준공식을 마치고 돌아 온 날 밤에 박 대통령은 부하 김재규에게 저격을 당했다.
공과를 따지자면 공이 훨씬 더 많은 대통령이었다. 내가 첫 투표권을 행사한 것이 대통령선거 때였는데 나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았었다. 철이 조금 덜 들었던 나이였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자전거로 달렸던 길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마법을 지녔다.
아산만 방조제나 삽교천방조제는 4년 전 여름에, 산 친구 권병기, 차순왕, 김효정과 함께 자전거여행으로 달렸던 길이다. 4일 간 달려서 복분자주가 유명하다는 고창을 찾아가 술독에 빠졌던 추억이 있다.
낮이 되면 아내는 식당을 찾는데 한 몫을 한다. 식당의 출입문이 열려 있는 집은 에어컨이 없다고 기피한다. 문이 꼭 닫힌 식당을 찾아 가면 시원하게 냉방이 되어 있고 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주인의 눈치를 보며 체온을 식힌다.
정상체온이 보약이다.
요즘 새로 건설하는 도로에는 예전처럼 가로수를 심지 않는다.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서는 서운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10 여 m씩 서 있는 가로수의 작은 나무 그늘이지만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고맙기 그지없다.
햇볕은 쨍쨍, 목이 말라 잠시 휴게소에 들렸다. 휴게소가 깔끔했다.
물을 정신없이 마시고 있는데, 휴게소 사장님이 커피를 한 잔 대접하고 싶다고 하신다. |
자전거 여행의 카리스마는 만사형통이다. 귀족에서 천민까지, 넓은 사람에서 좁은 사람까지, 부자에서 가난한 사람까지, 아이에서 노인까지, 여자나 남자나, 많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까지,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 평등하게 만날 수 있고, 만나고 나면 곧 평등해지는 게 자전거 여행의 순수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