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디터 : 박규동
|
막국수와 좋은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던 Club Moor |
2008년 8월 20일
아내의 생일 날이다.
새벽 참에 아내를 덥쳤다. 생일 기념이다.
선물을 하나 더 생각해 냈다. 오늘은 어디서 쉬는 것이다. 울진에 가서 쉬기로 하자! 도시가 그립다!
밥을 해 먹고 Club Moor를 나서는 발 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덕신리에서 망양까지 난 해안도로는 자전거여행에 딱이다. 젊은이 용어로 강추다! 바다와 길이 닿아 있는 약 10km의 길에는 어촌의 한가로움과 바람이 살아 있었다. 길도 평탄하였다. 촛대바위 위로 갈매기가 날고 파도는 소리 높이 아내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결혼 40년 여행이지만 어찌 신혼여행이 이만할까?!
시속 10km로 달리면서도 틈이 나면 쉬었다. 구멍가게를 만나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 먹었다.
11시 즈음에 울진 시내에 들어왔다. 맛있는 걸 먹자고 합의한 것이 삼계탕이었다. 담백질 보충이 피로 회복에도 좋다. 길 모퉁이에서 나이 지긋한 사람을 만나 삼계탕 잘 하는 집을 물었다. 한 자리에서 30년을 삼계탕만 전문으로 한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최신 퓨전이라고 권하는 걸 시켰다. 한 그릇에 11,000원 씩 하는 "송이 삼계탕"이다. 탕을 먹는 내내 송이 향이 입 안 가득히 감돌았다. 울진 특산물 중에 대게 다음으로 송이버섯을 알아 준다고 자랑이다.
점심을 먹고 난 다음 아내의 제안으로 찜질방을 찾았다.
찜질방은 젊은 자전거여행자들이 국내여행 중에 잠자리로 많이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위가 궁금했다. 출입구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체인으로 두 대를 서로 묶었다. 작은 배낭과 카메라만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침질방에서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다. 자란 수염이 먼저 눈에 띈다. 수염도 흰색이 많아져서인지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저울에서 체중을 달아 보았다. 3kg이 빠졌다. 피하 지방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아내는 몸무게가 그대로란다.
소금방과 보석방을 드나들면서 다 빠져서 더 뺄 것도 없는 땀을 또 뺐다. 아내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은 모습은 그대로 성감을 자극한다. 잠을 자거나 아내와 한담을 하며 뒹굴었다. 낙원이 따로 없었다!
내가 두 번째 사업에 실패한 게 큰 아들 성민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모든 걸 접고 삼양동 산동네로 옮겨갔다. 서울에서도 아주 가난한 동네였다. 산비탈에 지은 판자집에 작은 방 하나를 세 얻어 다섯 식구가 들었다.
수원에서 두 번, 서울에서도 다섯 번째 이사였다. 직장도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봉지쌀을 사거나 연탄 두 개를 새끼줄에 끼어서 들고 다녔다. 나 몰래 아내는 굶기까지 했다고 나중에 털어 놓았다. 그렇게 힘겨운 세월에서 나와 아이들을 지켜 준 아내다.
그 아내의 예순 살 생일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찜질방에서 노닥거리는 게 고작이다. 자전거여행 중에 하루 쉰다는 의미로 아내의 생일 선물을 대신하려는 내 생각을 아내가 받아 주기나 한 걸까?
오늘은 잘 먹아야 하는 날이라고 아내를 졸라 찜질방에서 외출을 하였다. 낮에 먹은 삼계탕 옆 집에서 보신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탕 속에 고기가 많이 들었다. 맛이 깊고도 좋았다. 국물이 된장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울진 전통 방식이란다. 케익은 생략이다. 대신 내일 먹을 바게트를 샀다. 아침 밥 먹을 식당을 알아 두고 갈 길도 미리 점검해 두고 찜질방으로 돌아왔다.
찜질방에는 화면이 커다란 TV가 있었다.
숙박하는 손님에게는 2,000원을 더 받았다. 담요 빌려 주는 값이란다. TV 앞에 대여섯 명이 올림픽 중계를 본다. 여자는 아내 혼자다. 찜질방에서 잠자는 사람들은 모두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옆에 곤한 잠을 자는 젊은이는 종아리가 새카맣게 탄 걸 보아 그도 자전거여행자일 것 같다. 표정이 우울한 50대 남자는 한 마디도 말이 없다. 우리가 연장자인 것 같았다. 사연의 코드가 틀려서인지 대화의 소통이 없었다.
가끔, 아내가 손가락이 아프다는 말을 한다. 왼쪽 엄지다.
언제 다친 적도 없는데 갑자기 류마티스라도 생긴 걸까? 돌소금 깊숙히 손가락을 묻고 찜질을 하는데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당치도 않은 여행을 꾸려서 아내를 고생 시키는 건 아닐까?
생일 기념이라고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이 아내에게 축하 전화를 해 주었다. 맨 입으로.....
환해지는 아내의 얼굴을 위안 삼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 어제 저녁에 홍사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처음 보기에 선생님은 나이가 많고 사모님은 젊어 보여서 우리는 두 분이 부적절한 관계인 줄 알았어요. 애인이 아닌 담에야 멀쩡한 부인이 이런 고생 길에 따라 나서겠어요."
자라난 수염 탓일 터이다.
내 속도계의 일부 기능이 고장났다. 더위 탓인 것 같다. 속도와 총주행거리는 연산이 되는데 당일거리와 평균속도 등이 깜깜하다. 비와 더위를 너무 먹었나 보다. 출발할 때 적어 놓았던 총주행거리 숫자를 오늘 숫자에서 빼고 계산을 하니 오늘까지 총 1,098km를 주행 하였다.
내일부터는 강원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