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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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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발이다. 손녀 은서가 같이 자전거를 타고 축하해 주었다. |
그 날부터 제주도를 돌아오는 날까지 열흘 동안 내 기억의 가운데에는 더위 밖에 저장된 것이 없는 것 같다.
아내와의 첫 만남의 장소에 41년 만에 자전거로 다시 왔다. |
이쯤이었지. 뚝방길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지.
수원 K-13에서 공군 졸병으로 근무하다가 제헌절 외출을 나와 아내를 처녀로 처음 만났던 곳이다.
1967년 7월 17일이다.
그녀의 힘찬 걸음걸이와 맑은 미소에 나는 단번에 빠져 버렸었지.
노랑 개나리꽃 색이 나는 투피스를 입고 있었지.
그 걸 보고 호수 건너 편에서 단숨에 헤엄쳐 왔었지.
조심스레 말을 걸고 보트를 빌려 그녀를 태우고 물 가운데로 나아갔지.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30분만에 나는 이 여자와 결혼할거야 하고 다짐을 했었지......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공터에 텐트를 쳤다. 날은 서서히 저물어 가고 호수는 추억으로 물들어 갔다. 잔뜩 준비한 보따리를 트레일러에서 풀고 압력밥솥에 저녁을 앉힌 후 된장찌개를 끓이며 아내와 눈이 마주친다.
많이 늙었다. 그 곱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비행장 옆 세류동에서 한 달에 700원 짜리 셋방에 살면서 첫 아이 성민이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천국을 얻은 것 같았었다.
수원-여주 간 협궤열차 길 옆에 있었던 인계동에서 둘째 영민이와 셋째 창민이를 만났고......
창민이가 백일이 되던 날 우리는 아이를 업고 안고 걸려서 팔달산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 성곽 길에서 내가 흑백사진을 찍었지. 아직도 그 사진은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업으로 시작한 택시사업이 어설프게 망했던 곳도 수원이고.
나무 배는 보이지 않고 대신에 커다란 오리 모양의 배가 한가로이 석양을 받고 있다. |
내가 아내를 태우고 노를 저었던 2인승 나무 배는 보이지 않고 대신에 커다란 오리 모양의 배가 한가로이 석양을 받고 있다.
추억 창고를 홀랑 뒤집어 놓고 40년 전을 베끼면서 우리는 텐트에서 고단한 첫 잠이 들었다.
자전거로라도 이 곳에 오기를 잘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다시 올 날이 있을까?
아마 마지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