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 도착하다.
에디터 : 박규동

2011년 08월 10일     水   맑음
52.9km 운행.       빈관숙박 39도55'44,40+116도25'32,19

간밤에 내린 비 탓인지 하늘이 제법 맑다.
북경의 외곽에서 중심지로 자전거를 달렸다. 나는 베이징이 두 번째이다. 아내는 처음이지만 베이징의 거리가 서을의 한 모퉁이처럼 비슷하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것 같았다.
G110번도로를 따라 갔다. 고속화도로 옆에 저속도로가 있었다. 2차선 편도에 길어깨에 자전거도로가 잘 돼 있었다. 낮에는 지하철 健德門 역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런치세트로 점심을 먹었다. 세계 뭇 도시들이 다 이런 풍경이다. 우리도 도시에 익숙애져 있었던 것이다. 안도감이랄까 뭐 그런게 들었다. 베이징의 중심지 자금성이 가까워지며 교통량이 엄청나게 붐빈다. 그래도 어김없이 자전거도로는 나 있다. 참 고맙다!




자금성을 서쪽으로 돌아 남쪽에 있는 정문 앞에 도착하였다.
휴가철이기도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관광온 사람들이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자전거를 끌면서 걸었다. 우리의 행색이 특별해서인지 어느틈엔가 우리가 국제적인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다. 질문에,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에...... 여름 북경 더위와 더불어 땀을 흥건하게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자금성 내부는 내일 관람하기로 하고 우선 호텔을 잡아야 했다.

자금성 돌담이 튼튼하기도 하다.

우리의 여행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자전거와 외국인을 싫어하는 경찰이 어느 나라에나 있다. 여기서 그런 경찰을 만났다.
무조건 출입금지란다. 자국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데도 말이다.
나중에 영어를 하는 경찰이 와서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딜 가나 유적이 있다.

베이징짜(北京站), 북경역 주변에 있는 유스호스텔을 찾아 가느라 길을 잃고 헤매이다보니 자연스레 시내투어가 되었다.
유스호스텔은 이미 예약이 차 있었다. 자전거여행을 하다보면 호텔을 미리 예약할 수없는 환경이란 걸 안다. 기계처럼 정시에 움직이는 교통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스호스텔을 빠져나오는 데 어떤 청년이 다가와서 빈관을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350위안에 트윈 스탠다드란다. 지방에서는 80위안으로 너댓 배 비싼 편이지만 그러자고 그를 따라 나섰다. 그도 자전거를 타고 앞에서 우리를 안내했다. 3km를 더 가서 빈관을 잡았다. 베이징짜 앞에는 이렇게 숙소를 안내해 주는 호객꾼이 있다. 당국의 인증을 받은 사람인지는 몰라도 팔에 완장을 끼고 있었다.


휴가철이라 숙소 잡기가 어려울 때여서 그저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들이 모여 살고있는 난징지역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민박도 많다고 전해 들었지만 우리는 이번 여행내내 현장상황에 적응하려고 하였다. 그런게 더 흥미롭고 결과도 좋았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작은 뒷골목에서 두리번거리며 현지음식을 골라 먹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아내는 그런 걸 싫다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작은 식당들은 저마다 특색이 있는 음식을 팔고 있었다. 음식의 이름을 몰라도 옆 사람이 시켜서 먹는 걸 보고 우리도 그걸로 시켜 먹곤 하였다. 그러다가 옆에서 식사를 하던 조선족 부부를 만났다. 맥주도 한잔 나누어 마시고 음식과 지리에 관한 정보도 얻었다.

노점상

그때 그때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는 좋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보다 부담이 없어서 좋은 것이다. 현장성 때문에 훨씬 착하게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천사들이 그랬다.

숙소에 들어오니 무더운 베이징의 여름밤이 에어컨으로 시원해졌다.
내일을 꿈꾸며.




2011년 08월 11일   木   맑음, 무더위.
택시를 이용하여 자금성과 주변 관광.   

자금성 관람을 하러 온 많은 사람들

우리 부부에게는 북경같은 도시가 버겁다.
오히려 고비사막이 더 편했던 것 같다. 뒷골목에서 아침을 사 먹는 데도 어리둥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택시를 타고 천안문까지 가는 데도 뭘 잘못했는지 택시를 두 번이나 탔다.
중국어를 모른다고 하여도 이건 아니다 싶지만 택시운전사가 내리고 태우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 같다. 천안문광장에는 택시를 타고 내릴 수 있는 곳도 한정이 돼 있었다. 광장에 들어가는데 공안의 검색을 거쳐야했다. 사람의 쓰나미에 휩쓸려 아내를 놓쳐버리지 않을려고 손을 잡고 걸었다. 이십 몇 년만에 다시 온 베이징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모택동 기념관

천안문을 통해 자금성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를 어느 모퉁이에 있으라고 하고는 나는 관람표를 사러 다녀왔다. 돌아오니 기다리라던 곳에 아내가 없었다. 쓰나미에 휩쓸렸는지, 미모의 아내를 누가 훔쳐갔는지? 애가 탔다. 사람의 바다에서 아내를 다시 만났을 때에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머리 끝까지 오른 화를 참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렇찮아도 무더운 날씨인데 말이다.




자(紫)색 기와와 벽, 기둥은 자금성(紫禁城)의 상징이다.








황제만이 다닐 수 있었던 계단의 용무늬 조각은 230톤이나 되는 한 덩어리의 화강암이라 한다.

자금성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출구는 북쪽에 있다.

자금성 출구에서 본 경산공원

경산공원은 자금성 북쪽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궁의 해자를 파낸 흙으로 만든 인공 산이라 한다. 산 꼭대기에는 만춘정(萬春亭)이라는 루각이 있고 가운데에 금빛 나는 부처상이 있다. 자금성을 보호하듯 손을 모으고 지그시 아래를 내려다 보고있다.

나도 어렸을 때 이런 옷을 입었었다.

경산공원에 올라 내려다 본 자금성

경산공원에서 파노라마로 찍은 자금성

자금성(쯔진청紫禁城) 그 웅장한 궁궐을 보고나서 북쪽에 있는 사람이 만든 산, 경산공원(징산꽁위앤景山公園)에 올라 자금성을 눈 아래로 바라보았다.
사람이 만든 산에서 내려와 다시 사람이 만든 바다 북해공원(빼이하이꽁위앤北海公園)을 둘러보고 나니 하루해가 저문다. 무더운 날씨에 북적되는 사람의 바다를 헤치며 다니느라 어리둥절은 내 나이보다 더 자라고 커졌다. 피곤하고 더웠다.
아내도 관광은 이만하면 됐으니 내일은 티엔진으로 떠나자고 한다. 북경에 겁먹은 것이다.

북해공원은 자금성 북서쪽에 있는 인공 호수이다.
서태후의 여름놀이를 위해 호수를 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이만하다.


세계 제일의 관광도시 베이징의 하루였다.
자전거여행자에게는 과분한 하루였다. 유적을 구경을 하면서 블로그 이웃님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려고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자금성.
자금성은 500여 년 동안 출입이 금(禁)해졌던 적갈(紫)색 궁전이다. 그래서 비교적 형태가 잘 보존돼 있었다. 명과 청 두 왕조 황제들의 터전이었던 곳이다.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큰 궁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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