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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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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12일 金 맑음 오후에 흐림.
68.9km 운행. 여관에서 숙박. 39도37'30,45+116도57'13,82
길은 나에게 참된 세상을 열어주었다.
언제부터인지 나에게 길은 고향이었다. 거짓과 진실이 공존하는 현실이며, 헌 과거와 새 미래를 섞어 놓은 곳이다. 고비의 모래바람도 길이요, 헤베이의 석탄가루도 길이었다. 고행의 파편과 기쁨의 가루들을 뒤집어쓰고 달려온 길을 귀한 줄 몰랐다가 베이징을 지나면서 이제사 그 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는 도시보다 길이 좋다. 길보다 자전거길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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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을 떠나 티앤진으로 간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 것이다. 길 끝에 집이 있다는 걸 안다.
베이징에서 티앤진까지는 길이 좋다. 티앤진항만까지는 약 200km이다. 부지런히 달려서 내일까지 항에 닿았으면 좋겠다. 모레 아침, 일요일에 인천으로 가는 배가 있단다. 11시에 출항이니까 늦어도 아침 9시까지는 항만에 닿아야겠다.
잘 닦여진 길 G103번도로를 따라 부지런히 달렸다. 70km를 달려와 헤시우젠에서 여관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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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13일 土 흐린 날.
84.1km 운행. 호텔 숙박. 39도04'37,12+117도21'18,56
티앤진-인천 간 여객선은 일요일과 목요일 주 2회가 있다.
내일, 일요일에 배를 타지 못하면 4일을 부두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생긴 것이다. 아침과 점심을 빵으로 해결하며 열심히 달려왔다. 사진 찍을 시간이 아까웠다. 하긴 그 길이 그 길이다.
피로가 겹쳐 지칠만도 할 터인데 아내는 잘도 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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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달렸다.
비스타호텔에 들었다. 3성급이다. 내일 새벽에 떠날 거라며 모닝콜과 자전거 보관을 부탁하고 체크인을 하였다. 한글로 "비스타호텔"이라고 쓴 게 반가워 들었는 데 직원들이 모두 친절하게 대하여 주었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가족들이 보고싶다.
산친구와 자전거친구들도 보고싶다.
2011년 08월 14일 日 흐림.
35.6km 운행. 티앤진-인천 간 여객선에서 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준비를 마치고 5시가 다 돼서 호텔을 출발하였다. 호텔 직원들이 사진을 찍자고 하여 기념촬영도 하였다. 새벽바람은 상쾌하였다. 9시까지 40km를 달려서 여객터미널이 도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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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좋았다.
시간도 충분하게 남았다. 그러나 항만을 10km 남겨 둔 어떤 도시에서 길을 잃었다. 도심에서는 시내교통의 복잡함 때문에 쉽게 길을 잃는 편인데 오늘은 도로공사로 인해 어디론가 길을 돌아 가야하는 형편이 생긴 것이다. 도로안내표지가 없었다. 몇번을 시도해 보았지만 갈 수록 방향을 잡을 수 없다. 마음이 급하니까 더 얼키는 것 같다.
오토바이를 타고가는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다행히 영어를 조금했다. 그러나 그의 손짓으로 길을 찾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어리버리하고 있는데 그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면서 오토바이로 앞장을 선다. 5km 쯤 왔을까 큰길을 만나 이제는 찾아갈 것 같았다. 그도 잘 가라는 손짓을 하고 오토바이를 돌려 뒤돌아 갔다.
1km를 더 왔을 때에 우리는 또 다시 길을 잃었다. 그때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천사처럼 날개를 달고서! 아무 말 없이 그는 또 앞장을 섰다. 드디어 항만에 도착하였다. 굳이 국제여객터미널 앞에까지 바래다 준 그가 웃으며 돌아가려고 했다. 붙잡아 세우고 고맙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10km를 안내하여 준 우리의 마지막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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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표를 구입하고 출국수속을 하였다.
2인실을 구하지 못하고 6인실을 얻었다. 그거라도 어딘가 하면서 고마웠다. 6인실은 남여가 구분이 되어서 아내는 옆 방에 자리를 배치받았다.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싣기 위해서 우리는 직원에게 부탁하여 남들보다 먼저 수속을 받았다.
긴 사다리 트랩을 두 번씩 오르내리며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객실이 있는 층으로 옮겼다. 나중에 직원들이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따로 보관해 주었다. 안심이 되었다.
11시에 티앤진항을 출발하였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중국동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한국생활의 어려운 면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말 한 마디라도 잘 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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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가끔 비가 내렸다.
2011년 08월 15 월 흐림 밤에 비.
18km 운행. 한강변 화양대교 부근에서 야영 37도32'34,88+126도53'41,38
광복절이다. 아내와 내가
긴 자전거여행을 마치고 중국에서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대한민국의 인천 땅을 다시 밟은 날이다. 오후 3시에 인천국제항을 통해 입국하였다. 인천에 살고있는 인디고뱅크님과 부인 인디걸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나니 세관의 문이 활짝 열리는데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인디고뱅크님과 인디걸님님의 반가운 미소는 영원히 잊지 못 할 것이다.
몇 년 전에 블로그 이웃으로 만난 인디고 부부, 지금은 함께 자전거여행을 즐기는 50대의 부부, 인디고블루의 색감을 무척 좋아 한다며 밝게 웃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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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님이 사 준 삼계탕을 늦은 점심으로 먹었다.
맛도 맛이지만 쳥결하고 착한 대접을 받으며 먹는 우리의 음식은 비길 데 없이 자랑스럽다. 이런 걸 문화라 했던가!
인디고님과 헤어져 자전거로 서울을 향해 달렸다.
한강의 둔치를 들어서니 반가운 모습들이 펼쳐진다. 흐린 날인데도 자전거를 타고 나온 사람들이 많다. 모두 산뜻한 유니폼에 좋은 자전거를 타고 있다. 우리말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날이 저물어 화양대교 부근에서 야영을 하기로 하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오이쨈님 부부와 노마드님과 함께 서울의 첫 밤을 맥주로 마신다. 정을 마시고, 대한민국에 취하였다.
아내의 트레일러에 꽂힌 깃발에는 "ULAANBAATAR-北京-서울"이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울란바타르에서 출발하여 북경을 거쳐 서울로 간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그 메세지를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렸다. |
국가의 국민으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그것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말이다. 모국어로 말하는 친구들이 옆에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밤 늦게 비가 내렸다.
2011년 08월 16일 火 흐린 후 낮부터 비.
11.8km 운행. 서울시청 앞까지 자전거로 온 다음 마중나온 둘째 아들 부부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다.
우리의 한강에서 아침을 맞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다.
간밤에 내리던 비는 멈추었으나 계속 흐린 날이다. 아침밥을 만들고 있는데 오이쨈님이 오셨다. 부인 당근쨈님이 집에서 만든 반찬을 갖고 온 것이다. 아침을 푸짐히게 먹고서 서울시청을 향해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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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야만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원효대교를 건너 전자상가 앞에서 기다리던 막내 아들 창민이를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마중을 나온 아들이 내 가슴을 뿌듯하게 해 준다. 창민이가 앞장을 서서 우리는 그의 뒤를 따랐다. 서울역을 지나 시청 앞에 닿은 시간이 12시다.
선배 청호님, 국민일보 김남중 기자님, 첼로님 그리고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환영을 해 주었다. 청호님은 꽃다발까지 준비해 오셔서 사진을 찍어 주셨다. 김남중 기자님이 반가운 마음으로 점심을 샀다. 특별한 자리에 늘 함께 해 주던 첼로님 등과 헤어져 둘째 영민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무림리로 돌아왔다.
아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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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심양면으로 협조해 준 설륜악 회원님들에게 감사한다.
***사막에서 모래와 더위를 견디고 있을 때에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주신 많은 친지들에게 사막의 바람을 선물한다.
***몽골, 고비, 중국 곳곳에서 우리를 도와 준 천사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여행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기를 끝까지 쓰도록 관심을 가져주신 블로그 이웃님들에게 감사한다.
***사막에서의 일정을 블로그로 중계하여 준 둘째 며느리에게도 사랑을 전한다.
***뼈에 금이 간 왼쪽 팔목은 아직도 통증이 남아있지만 더 나빠지지 않은 것이 고맙다.
***사막에서 일었던 소갈증은 아미랄을 0.5mg에서 1mg으로 섭취량을 늘리고 나서 증세가 가라앉었다.
***우리의 여행을 후원하여준 웹매거진 <바이크매거진>에 감사한다. http://www.bikem.co.kr
***카메라는 3대를 갖고 갔다왔다. Nikon7000에는 80-200mm 렌즈를, Sony 100V를 추천해 준 정훈채사장에게 감사하며, 아내는 루믹스 LX3을 사용하였다.
여행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