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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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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01일 月 맑음
58.9 km운행. 야영. 울란차부 동쪽 10km지점 감자밭 옆 41도02'37,54+113도13'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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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차부에서는 남쪽으로 가는 길 G208도로부터 동쪽으로 가는 길 G110번도로로 갈아타기 위해 좌회전해야 한다.
G110번도로를 타면 장지아커우까지 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 다음에는 팔달령에 있는 만리장성을 넘어 베이징으로 입성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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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도시에서 그 맥을 잃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시를 통과하면서 길을 잃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중국사람들의 지도판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가 갖고 있는 구글지도 복사본은 발행년도가 언제인지 알길이 없다. 택시 기사들에게 길을 물어도 이사람 저사람이 다르게 일러준다. 공안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울란차부에는 낮 4시경에 도착하였다. 110번도로를 찾았으나 도로표지판이 없다. 지역 사정에 맡길 수 없어 결국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로 했다. 중국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공용어 몇 마다로 길을 물어간다는 게 쉽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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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람이 가르켜 준 길을 가다가 이상하다 싶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면 엉뚱하게 길을 잘 못 들었다고 다른 길을 일러준다. 공안경찰에게 물어보니 또 다른 길을 가르킨다. 그렇게 길을 헤매다가 도시를 빠져나와 동쪽의 새로 뚫린 4차선도로를 선택하였다. 날은 어두워졌는데 덮친격으로 아내의 트레일러 타이어가 펑크 났다. 펑크를 수리하고 있는데 자전거복장을 제대로 갖춘 여성라이더가 저녁운동차 달려오는 걸 보았다. 자전거꾼 끼리의 인사를 하였다. 울란차부에 이런 정도의 자전거동호회가 있다는 것이다. 반가웠다. 그러나, 그녀도 영어를 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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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보는 것도 여행이다. 길을 잃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던가!
어두워지기 전에 큰 길에서 벗어나 야영터를 잡는다는 게 감자밭 옆이다.
눈에 보이는 데까지 감자밭이다. 강우량이 부족한 탓안지 고랑마다 물호스를 묻어 인공급수를 하고 있었다. 감자꽃이 정다웠다. 감자밭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는 풍경 그 너머로 저녁해가 알맞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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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02일 火 맑음
38.9km운행. 시골 마을에서 야영 40도59'26,62+113도32'45,09
길을 잃고 고생한 날이다.
그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니 이내 작은 2차선 도로가 되고 길도 형편없이 투덜거린다. 아차 싶었다. 조금 더 가다가 마을을 만나 아쉬운대로 먹거리를 구입하고 멀리 보이는 고개를 향해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비포장도로다. 분명한 것은 이 길이 110도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뒤돌아 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다.
15톤 석탄 트레일러 트럭 여러 대가 가파른 고개 아래 멈춰서서 쉬고 있었다. 트럭운전사들에게 길을 물었다. 길을 잘 못 든 것은 자명한 데 어디서 빠져나가는 길을 만나는가가 관건이다. 더위에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스스로에게 울화가 치밀었다.
6km 비포장 고개를 올라야 한다고 트럭 기사들이 일러준다. 고개를 넘어도 좋은 길을 알길이 없다. 뒤 돌아가자는 아내를 달랜다.
"우리가 누꼬?! 늑대들이 아이가!"하면서 "이까짓 고개 쯤이야!"로 고집을 부렸다. 아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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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가면 이틀 안으로 만나게 될 자운팀을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마음에 걸렸다. 자운팀, 자운님과 트리스탄 둘이서 내이멍구투어를 하고 있는 데 110번도로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끈질기게 고개를 넘었다.
트럭도 힘이 겨워 쩔쩔맨다. 고개를 오르다 힘에 겨워 쉬면서 점심을 먹었다. 석탄트럭이 가파른 오르막에서 골골 된다. 다시 언덕을 올랐다. 석탄을 가득 싣고 가는 3륜트럭을 추월한다. 길이 워낙 울퉁불퉁하다 보니 트럭조차 기운을 쓰지 못하는가 보다. 고개를 넘어서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을 지나치는 데에 커다란 석탄트럭이 넘어져 있다. 물 웅덩이처럼 깊게 패인 곳에 트럭이 들어서면서 균형을 유지하지 못해서 트레일러의 무거운 석탄이 넘어지면서 엔진차까지 넘어간 것이다. 아뿔사! 만약에 우리가 트럭 옆에서 운행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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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장정들이 모여들어 석탄을 퍼 내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길을 물었다. 이 길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20km를 가면 110번도로를 만난다고 하였다. 우선이 이 길에서 벗어나야한다. 몽골고비에 비하면 좋은 길이지만 트럭과 함께 이런 길을 달린다는 건 걱정스럽다. 이 길은 트럭을 위해 새로 건설되고 있는 길인 것 같았다.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길이다.
마을 사람들이 일러준대로 사잇길을 따라 큰길에서 벗어났다.
길을 잃고 가는 이런 시골 길이 진짜길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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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더위에 미류나무의 매미는 짝을 찾느라 노래를 부르고 마을의 개들은 나무 그늘 아래서 죽은 듯이 낮잠을 자는 그런 길이다. 왠일인지 앞바람도 불었다. 산을 넘느라 써버린 기운 때문에 힘이 없었다. 화를 내는 데에도 기운을 썼으니 기진이다. 기진에 앞바람을 맞으니 일찍 캠프를 하고 싶었다.
내이멍구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을 몇 곳 지나고 어느 마을에 닿으니 알맞은 공터가 눈에 들었다. 거기서 캠프를 하기로 하였다.
지친 마음에 부지런히 텐트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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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치는 공터 옆에는 큰 집이 있었다. 창문이 빼꼼이 열리더니 소녀가 나타나 우리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그냥 싱긋이 웃어주었다. 그녀도 웃음으로 대답을 한다. 텐트가 다 세워질 즈음에 소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인사를 하는데 서툴지만 영어를 한다. 대학교 1학년인데 방학이라서 집에 와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금방 그녀와 친해진다. 집에 함께 가더니 물을 길어온다. 지나가던 농부가 찾아왔다. 소녀가 통역을 대신 한다. "몽골에서 자전거로 여기까지 왔으며 앞으로 베이징을 거쳐 한국으로 간다."고 설명을 하는 것 같다.
눈이 휘둥그레진 농부는 집에 가더니 식구들을 데리고 왔다. 소문에 소문이 났는지 수 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우 하고 몰려왔다. 밥을 차려놓고 먹을 때였는데 식사를 할 수가 없다. 불을 피우는 스토브가 신기한 지 요리조리 살펴보는 노인네에서부터 아내에게 치아가 예쁘다고 부러워하는 아낙네들이며, 꼴망태를 메고가던 아이들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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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어머니를 소개하면서 들에 양떼를 몰러 간다고 떠났다. 소와 당나귀를 들에서 몰고오던 노인들이 다녀가고, 처녀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이 다녀갔다.
마을에서 이렇게 환영(?)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아졌다.
길을 잃기를 잘한 것이다.
전화기에 전파가 잡히지 않아서 자운팀의 운행을 알 수 없다.
아마도 내일부터 110번도로를 탄다면 통화가 가능하리라. 몽골고비중국을 자전거로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한국의 자전거친구들과 만난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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