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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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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06일 土 스모그
56.4km 운행. 야영. 40도33'37,55+115도07'29,21
날아갈 듯이 기분좋은 아침이다.
날씨도 보란 듯이 개여 있었다. 주인집의 시어머니는 물을 한 통 길어왔다. 설거지에 세수할 물이란다. 텐트를 접고 떠나려는데 주인집 가족 모두가 배웅을 나왔다. 아이에에게 용돈을 주려고 했으나 한사코 말리는 바람에 포기하였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들이 말리는 속뜻은 어렴풋이 알아차리겠다. 오이, 토마토, 고추 등을 먹고도 남을만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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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길을 나섰다.
석탄먼지가 스모그로 변하여 하늘과 땅에 안개처럼 가득 차있다. 스모그는 화학적 울타리가 되어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이룬다. 사람도 편으로 갈라지고, 풍습과 날씨도 달라진다. 아마 꿈도 서로 다를 것이다. 스모그 울타리가 갈라놓은 것 중에 시간의 벽은 더 두터울 것이다. 베이징이라는 미래의 상징과 고비로 불리우는 과거의 상징 사이에 쌓여있는 스모그 울타리는 두께가 무려 200km가 넘을 것이다.
도시와 시골, 부자와 가난한 자,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과 서로 어울려사는 사람, 과거와 미래를 스모그 울타리는 편가르기처럼 나눠놓은 것이다. 우리는 자전거를 굴리며 스모그 울타리를 지나 미래의 상징 베이징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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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110번도로에 들어서고 나서는 매일 동풍이 불었다.
맞바람이다. 낮에는 맞바람으로 가다가 밤에는 서풍으로 바뀌며 뒷바람이 분다. 앞바람과 뒷바람 사이에서 서로 바람이 부딪치며 상승한 기류가 구름을 만들고, 그러더니 저녁에 비를 내리는 것이다. 번개와 우뢰가 뒤 따른다.
자전거여행자에게 날씨를 읽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만리장성을 넘을 때까지 이런 날씨는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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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고속도로가 지나는 교량 아래서 먹었다.
우리보다 일찍 자리를 잡고있는 노숙노인을 만났다. 먹을 것은 없어도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가벼운 몸매에 선한 눈이 지혜로워 보였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였다. 그도 맑은 웃음으로 화답하였다. 10m 거리에 깔개를 깔고 식은 밥을 먹었다. 오이와 토마토를 그 노인에게도 갖다주었다. 고마운 눈빛으로 여전히 책을 읽는다. 점심을 먹는 우리보다 책을 마시는 그가 더 커 보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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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화에 들어섰다.
정면에 남대문 몇 곱절은 돼 보이는 성문이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 시내를 빠져나가는 길을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다. 역시 선문답처럼 공허하다.
택시기사, 자전거 탄 사람, 양산을 든 여인 ...... 지나가던 전기자전거를 탄 남자가 가까이 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관심을 보인다. 그들끼리 뭐라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전기자전거를 탄 남자가 자기를 따라오라며 길잡이를 자청한다. 길은 도시에서 멋대로 방향을 바꾼다. 그가 아니었으면 길목마다 길을 잃고 헤매였을 것이다.
5km를 더 가서 시내 외곽으로 벗어나는 길을 만났다. 맘좋아 보이는 그는 씩 웃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천사같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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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길 가에는 석탄을 비축해 두는 야적장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해가 저물어가는데 야영할 곳을 찾지 못하고 계속 두리번거리며 나아간다. 비는 뒤따라 오고. 용케도 석탄야적장과 야적장 사이에 7천 평은 돼 보이는 초지를 발견하였다. 얼른 결정을 내린다. 우리가 머물 곳이다.
대체로 길가의 땅은 석탄야적장이 있고 그 뒤로는 옥수수밭이다. 아마도 이 초지는 석탄야적장을 하려고 누군가 사 둔 땅일 것이다. 되도록이면 도로에서 먼 곳에 텐트를 쳤다. 옥수수밭 바로 옆이다. 초원 한 켠에서는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석탄길에서 찾은 절묘한 야영터다.
한참 텐트를 치고 있는데 한 노인이 우리를 찾아왔다.
혹시 초지의 땅 주인이 우리의 야영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계심도 일었다.
"워 한거뤄! 장지어커우-베이징-티엔젠-한궈.(우리는 한국인이며, 장자구-북경-천진-한국으로)" 라고 우리를 소개하는 한편으로 자전거와 텐트를 가르키며 하룻밤 묵어갈 거라고 공용어를 쓴다.
노인의 표정이 무척 밝다. 노인은 옥수수밭 주인라며 뒷 동네에 산다고 하였다. 오늘 저녁에 비가 내린다고 하여 걱정이 된다며 "어떻게 비를 피하는냐?"고 하였다.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공용어에 필담을 섞어 나누는 대화는 이리저리 뛰지만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그가 아내에게 나이를 묻는다. 아내가 63을 써 보인다. 노인의 눈이 침착해진다. 나에게도 나이를 묻는다. 67을 썼다. 노인은 한동안 말이 없다. 그러다가 땅에 큰 대(大)를 커다랗게 쓴다. 우리 보고 큰 형님이란다. 하! 하! 자기는 61세라며 어쩔줄 모른다.
나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싫컷 던져준 노인더러 나도 그가 알아듣지 못할 한국어를 중얼거렸다.
"당신 참 멋있는데, 왜 이렇게 늙어 보이느냐?" 그는 알아듣지 못했다는 뜻으로 "팅부똥!" 한다. 나도 노인을 따라 "팅부똥?!"하며 절로 웃었다. 정말 큰소리로 서로를 향해 웃어주었다. 손바닥으로 땅을 처 가며 크게 웃었다. 왜 웃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웃었다. 천국에서나 웃을 수 있는 맑고 착한 웃음이었다.
커피를 권하였으나 극구 사양을 한다. 몽골과 중국을 통틀어 지금까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보지 못 했다.
2011년 08월 07일 月 스모그
37.7km 운행. 여관에서 숙박 40도24'52,93+115도29'10,75
석탄먼지가 황사보다 더 무서운 환경이 돼 있었다.
석탄길의 환경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우울하다. 나그네는 며칠만에 이길을 지나버리지만 여기에 살고있는 인민들은 어떡하란 말인지? 아무도 대답이 없다. 모두 이렇게 살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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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좌우에 석탄야적장이 이어지는 길을 자전거로 간다.
석탄트럭의 행렬도 여전하다. 어디서부터인지 알지 못하지만 석탄먼지로 쌓인 거대한 울타리는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하였다. 고갯길도 이어졌다. 500m에서 1km나 되는 짧지 않은 언덕길이 계속 나타나며 심호흡을 요구한다. 대책없이 석탄가루를 마신다.
고장난 뒷브레이크가 오늘은 완전히 먹통이 돼 버렸다.
몽골고비에서 일어난 일이다. 때약볕이 강하다보니 제일먼저 고장난 것이 속도계이다. 속도계는 속도와 거리 등을 합산하여 운행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인데 기온이 40도가 넘으면서 어느날 갑자기 계기판이 먹통이 된 것이다.
며칠 후에는 뒷브레이크를 당겨주는 오른쪽 브레이크 실린더가 물컹물컹해 지더니 브레으크 기능이 조금씩 손상되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는 그래도 뒷브레이크의 기능이 약 10% 쯤은 남아 있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기능을 잃어버렸다. 서울까지 가려면 아직도 500km 가량이 남았는데 말이다.
며칠 후에는 팔달령을 넘은 건데 그 긴 내리막을 어쩐단 말인가? 뒤에 딸린 트레일러의 무게 때문에 그렇찮아도 브레이크에 신경이 쓰였는데,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선다. 어찌되었든 지금으로선 급제동을 할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아내의 브레이크가 고장나지 않고 내 자전거가 고장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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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2시 반에 여관을 만나 운행을 멈췄다.
아내도 나도 피곤한 하루였다.
기온은 34도이지만 습도가 높아지면서 땀이 몸에 배이는 환경이다. 온몸이 석탄가루로 검게 쌓였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석탄가루가 덮친 것이다. 얼굴은 막장의 탄광 인부들처럼 석탄가루 법벅이다. 샤워를 했다. 몸에서 검은 가루가 줄줄이 흘러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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