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파리와의 전쟁이 시작되다.
에디터 : 이호선

내가 그 동안 지나쳐 온 여느 도시들과 결코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도시일 뿐인 시드니의 거리를 걷다가 나의 발길은 어김없이 차이나 타운으로 향한다. 두 말 필요 없이 조금은 더 친근하고 마음이 편한 곳이기 때문이다.
"어, 해괴망측한 사람이 서 있네?!"
차이나 타운 입구에 기이한 행색을 한 사람이 훌라 후프를 돌리며 서 있는데 그의 앞에 놓여 진 모금함에는 상당한 돈이 들어 있고, 그의 대ㆍ세계인 메시지를 읽어보니 그는 78세의 한국인 아저씨다!

시드니, 차이나 타운의 명물이 되어버린 '백 남철' 아저씨.
세계를 떠도는 외로운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가 공교롭게도 내가 묵고 있는 Back Packers Inn의 룸메이트이다. 야무진 꿈과 신념을 가지고 격렬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78의 나이테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도전하는 삶, 행동하는 삶은 언제나 건강하고 아름답다.



'백 남철' 아저씨는 공교롭게도 나의 룸메이트다.

"여러분들, 올 해 78세인 나는 한국전에 참전해 다리에 부상을 입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UN의 도움과 함께 북한과 싸웠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남북한 통일을 간절하게 염원하고 있고, 나의 꿈은 남북통일이 된 후, 북한에 교회를 짓고 그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이런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를 돌며 모금운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 당신의 따스한 마음이 절실합니다. 고맙습니다."
코리아 타운도 아닌 차이나 타운에서 만난 특별한 한국인에 나는 속수무책 감동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78세의 나이에 훌라후프를 쉬지 않고 돌리고 서 있는 그가 위대해 보인다. 많은 유럽의 관광객들이 그와 함께 사진을 찍고 헌금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또 내일을 기약하며 차이나 타운을 떠나 김밥과 떡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 온다.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길 건너편의 한국식당에 손님들로 바글바글할 즈음, 내가 있는 방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다름아닌, 그 특별한 한국인 아저씨가 아닌가?!
그는 지칠 대로 지친 몸과 치렁치렁한 많은 장식들을 힘겹게 이끌며 들어 오더니 빈 내 옆의 침대 위에 무너질 듯 주저 앉는다. 하지만 강한 신념에 찬 그의 얼굴표정엔 조금도 구겨짐이 없다.
그, '백 남철'씨는 6.25동란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고 충청도의 금산 전투 중 총탄이 정강이를 관통했다. 전쟁 중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썩어가던 다리로 수 년간을 고통 속에 보내야 했지만 운 좋게도 그의 다리는 큰 흉터만을 남긴 채 완치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중ㆍ고교와 학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50살이 넘어 모든 가족들과 함께 호주로 이민(이민 25년 째)을 오게 되었고, 그의 4남 2녀 자식들은 모두 호주에서 성공적인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손자가 이미 14명이나 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영문성서의 귀절들을 줄줄 외고 있다. 그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훌라후프의 '돌리고 돌리고'를 세계 각지를 돌며 하루 10시간씩 10년 동안 해오고 있다 하는데 "놀라운 세상"에 등장해야 할 '놀라운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가 이 기행(奇行)아닌 기행을 10년이나 해 오면서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과 떨어져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의 특별한 퍼포먼스는 가는 곳마다 반응이 좋아 상당한 금액이 모였고 그는 북한의 현 체재가 무너져 통일이 되어 자신의 꿈이 실현되는 날만을 오매불망 학수고대하고 있다. 78세 아저씨라고 하기엔 전혀 믿어지지 않는 몸매와 몸놀림을 보이며 자신의 야무진 꿈을 위해 불굴의 의지와 신념으로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을 격렬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나는 머리 숙여 존경의 예를 갖춘다.
'백 남철' 아저씨, 만만세!

시드니의 중심 가를 빠져 나와 호주 횡단의 긴 여정을 앞두고 한 바탕 심호흡을 한다.

2월 13일, 일요일 아침이다. 하늘은 찌푸리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텅 빈 거리를 가로질러 호주 서쪽 끝의 도시, 퍼스(Perth)를 향해 달린다. 4,000km의 여정이 될 것이다. 비는 살금살금, 그러나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도로는 중남미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게 완만한 편이지만 은근하게 나의 무릎근육을 혹사시킨다. 놀라운 것은 자동차전용도로(Motorway)를 비롯한 모든 도로에서 자전거주행이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것으로 경찰순찰차의 출현에 신경을 끊어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호주를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도로상에서 적지 않은 괴물들의 가공할 고함소리가 이어진다. 고약하기 짝이 없는 환영행사다. 북미를 횡단할 때 한두 번 겪던 것을 불과 수 km달리는 동안 몇 차례나 경험한다.
역시 청정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이곳 젊은이들의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넘치는 건강과 야성에 감동할 뿐이다. 빗물에 흠뻑 절어 작은 호숫가의 공원에 들어가니 단 한 곳, 작은 지붕이 있는 테이블과 벤치가 보이는데 불행하게도, 그곳에는 한 가족이 비가 오고 있는 가운데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내가 그저 나무 밑에 서서 나의 얼굴 위로 흘러 내리는 빗물을 하염없이 훔치며 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둠은 소리 없이 다가와 빗물과 함께 호수주변을 촉촉하게 적신다.
서 있는 다리에 쥐가 나고 무릎이 꺾이려고 할 즈음, 그들 승용차의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헤드라이트가 켜지며 나의 길고 긴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끝이 났다. 나의 소유가 된 작은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긴 안도감과 함께 자유를 만끽한다. 비가 어둠을 적시고 내 마음을 적시고 있는 가운데, 나는 벤치 위에 앉아 텅 빈 마음으로 하염없이 어둠을 바라다 본다.

'비의 나그네'
작은 호수 공원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 있는 구조물이 단 하나 있으나 비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족이 이 구조물을 독차지하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나무 밑에 또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하염없이 자리 나기를 기다린다.
나의 애절한 기다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3명의 남녀 꼬마들은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을 재촉하는 부모의 외침을 무시한 채 그들의 놀이를 계속한다.
"얘들아, 제발 부탁이다! 이제 그만…… 내 사정 좀 봐 둬!"


짙은 안개 속에서도 새벽은 어김없이 깨지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다행히도 비는 멎은 듯하다. 시시각각으로 어둠이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는 가운데 키가 큰 한 젊은 여자가 멀찌감치 떨어져 나의 주위를 한 바퀴 돈다. 근처의 민가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 중 하나이거니 생각하며 나의 짐 정리를 계속하고 있다가 나는 인기척에 깜짝 놀란다. 어느새 나의 주위로 다가온 그녀는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와 나의 자전거를 샅샅이 훑어보다가 사라진다.
"허-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아침이군!"

시드니를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도로주변은 텅 빈 초원이 이어지고 한국의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Outback Steak house)'로 날아 갈 소들과 양들이 그 곳을 지키고 있다. 호주횡단을 하루라도 빨리 해치우겠다는 의지로 막무가내 달리고 있던 나에게 불길한 일이 연속으로 터진다. 시드니에서 간신히 얽어 놓았던 뒤 짐받이의 지지대가 완전히 부러져 떨어져 버리며 허공에 버둥거린다.
'이젠 어쩔 수 없다.' 무거운 짐을 앞 가방으로 모두 옮기고 가벼운 것만을 뒤로 옮겨 놓으며 최후의 버티기를 시도한다.

"저기 저 시커먼 놈들 좀 봐 봐!"
"제 내들이 한국에 와서 ‘아웃 백 스테이크’가 되는 거지!"

앞이 무거워져 제대로 전진을 하지 못하는 자전거를 막무가내로 밀어 부치며 달려가던 나는 앞 바퀴의 휘청거림을 온 몸으로 감지하고 자전거를 급히 세운다. 이번엔 오른 쪽 앞 짐받이 대의 지지볼트가 부러져 튕겨 나가며 가방전체가 출렁거린다. 방법은 하나,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리마의 철물점에서 사 두었던 가는 철사를 몇 겹으로 꽈서 지지대 자체를 묶어 버린다.
4,000km 중 겨우 200km정도를 달렸을 뿐인데 자전거는 이미 최후의 순간에 가깝게 다가와 있다. 불행의 연타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내 조카, 규상이가 준 모자와 작은 나침반까지 분실했다. 리마에서 시드니 행 비행기표를 사면서 휘청거렸던 내가 호주의 높은 물가에 또 다시 뒤통수를 보기 좋게 얻어 맞고 그나마 믿고 믿었던 '엘파마'까지 '넉 아웃'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링의 코너에 몰려 정신 없이 두들겨 맞고 있던 나의 입가에서 뜻밖에 내 자신도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가 번져 나온다.
"이제부터는 오기(傲氣)요, 독기(毒氣)다! 군대 용어로는 악(惡)이요, 깡이다!"
자, 해 보자꾸나! 준비해 온 철사는 얼마든지 있다.
"엘파마여, 부탁이다! 퍼스(Perth)까지만 버티어 다오!!"
배터스트(Bathurst)의 작은 공원에서 힘겨웠던 하루에 구두점을 찍는다.

시드니에서부터 계속되던 결코 유쾌하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하루 종일 가랑비가 강약을 반복하며 내려 후덥지근한 날씨에 우비까지 쓰면 정말 짜증스럽기만 하다. '엘파마'는 연신 심각한 비명소리를 내며 헐떡이며 달리고 있는 와중에 파리떼들이. 출몰하기 시작하는데 이 파리떼들이 심상치 않다. 숫자가 엄청나게 많고 막무가내로 달려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 동안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을 지나 오면서 종종 쇠파리들의 공격을 받곤 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고 수 십km를 달리다 보면 자전거에서 떨어져 나가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하지만 호주의 파리는 대단한 근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그 숫자가 너무 많다. 한 번 나에게 달려들면 정신을 못 차리게 나를 들볶아 댄다.

산소탱크, 청정호주의 대기 속에는 보유량을 전혀 측정할 수 없을 만큼의 막대한 숫자의 파리떼들로 완벽하게 오염되어 있는데 그 오염 정도는 거의 재앙수준이다.
이 파리들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그들의 두 손 두 발과 주둥이로 인간의 존엄성을 묵사발 내며 인간들을 날뛰게 만든다.


달려가다가 자전거를 세우면 내 주위에 새까맣게 앉아 있던 파리들이 일제히 나를 에워싸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손과 발, 그리고 주둥이로 사정없이 나의 전신을 빨고 물고 비비고 문질러 대고 나의 눈, 코, 귀, 그리고 입으로 막무가내로 들이 닥친다. 아무리 두 손을 휘둘러 대도 부질없는 짓으로 자신들의 몸이 두 동강, 몇 동강이 나야 비로소 끝이 난다. 호주의 들판에는 소와 양떼들이, 그리고 바람 속에는 수 많은 파리떼들이………
나는 그저 이 파리떼들이 곧 사라질 것을 간절히 기원하며 페달에 힘을 가한다.

아침에 일어나 서 있지만 나는 아직 눈을 못 뜨고 있다.

벌써 나흘째 똑 같은 패턴의 날씨가 계속되며 나를 우울하게 한다. 어둠과 함께 수 많은 별들이 반짝였던 하늘은 새벽이 되면서 밀려드는 구름에 휩싸이며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하루 종일 강약을 반복하며 멈출 줄을 모른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중 남미처럼 도로변에 버스정류소나 과일 가판대 같은, 잠시라도 쏟아지는 비를 피할 곳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나무들조차 별로 없어서 그나마 찢어진 비닐우산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비가 쏟아지든 말든 그저 앞을 향해 달려가는 길밖에 없다.
여전히 악을 쓰는 괴물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중남미에서는 경적은 무차별로 울려댔지만 악을 쓰고 소리지르는 괴물들은 없었다.

카우라(Cowra)의 타운파크에서 지붕이 있는 작은 구조물을 발견하고 페달 질을 멈춘다. 바로 옆에는 노천 수영장이 있는데 하루 종일 비바람으로 저녁이 되어 기온이 상당히 내려가 있으나 전혀 개의치 않고 어린 소녀 소년들의 수영수업이 한창이다.
수업이 끝나고 소년 소녀들이 사라지자 이 번에 는 남녀노인들이 물을 향해 뛰어든다. 역시 수영강국 호주의 수영사랑은 대단하다. 그들이 물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 듯 나 또한 그들과 똑 같은 팬티차림으로 나의 운동을 하기 위해 어둠 속의 잔디 위로 뛰어든다.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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