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자전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질 수 있어!
에디터 : 이호선

1월 6일 아침 6시경, 2011의 긴 행렬이 이미 한 참 앞서 지나간 도로 위를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도로의 이정표가 '리마'까지의 거리가 792km임을 명시해 주고 있다. 나는 한 참 뒤쳐져 행진을 시작하지만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내어 외친다.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세요!!"

치크라요 시를 벗어나자 또 다시 텅 빈 사막이 시작된다.


다시 팬 아메리카나(Pan Americana)로 나와 리마(Lima)를 향해 엘파마를 다그친다.
헌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국경에서부터 줄기차게 계속되던 사막은 치크라요에서 끝난 것이 결코 아니야! 사막과 모래바람은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어. 아직 내 정신, 내 몸이 아닌 상태에서 집요하고 거세게 불어대고 있는 바람을 필사적으로 밀어내며 전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 나의 두 무릎 관절이 무너져 내릴 듯하다. 하지만 달려야만 하는 것이 오늘의 나의 삶이고 나의 모두 이잖은가?! 톡 까놓고 얘기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짓이란 이 페달 질뿐이야!"

사막을 가르며 힘겨운 항해를 계속하는 동안 나를 아주 놀라게 하는 풍경이 종종 나를 멈추게 한다. 그것은 바로 대규모 농장으로 지하수를 끌어 내 죽음의 땅, 사막을 생명의 녹색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농장번호의 간판이 세워져 있는 농장입구에 많은 버스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있다는 얘기다. 정말 경이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브라보!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 녹색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인간의 무한도전의 현장.
각 집단농장의 입구에는 많은 노동자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들이 줄을 서 있다
북쪽국경부터 시작 된 페루의 사막화는 해안선에서부터 내륙 깊숙이 까지 이미 완벽하게 진행되어 있고 두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다면 어디까지 사막화가 진행될 지 알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내륙 쪽에 있는 높은 산들의 정상까지도 모래뿐이다.
하지만 이 집단농장도 '코끼리 발에 모기 피' 수준으로 잠깐 잠깐 나타날 뿐이다.
어마어마한 인력과 자본이 필요하고 영구적으로 진행 되야 할 페루 국(國) 최대의 프로젝트임에 틀림이 없다.


오후 3시경, 작은 시(市)인 체펜(Chepen)의 한 식당 앞에 발을 멈춘다. 너무도 평범한 메뉴인 세코 데 폴리요(Seco de Pollo: 접시에 끈기 없는 쌀 밥을 퍼 놓고 그 위에 양념 넣고 삶은 닭고기 한 쪽, 완두 콩 푹 삶은 것 두 숟갈 정도, 그리고 삶은 유카 두 조각을 얹어 놓은 것)를 앞에 놓고, 먹기 전에 중남미의 통상적인 향료 겸, 조미료인 레몬을 음식 위에 뿌리고 있는데 한 중년부부가 들어 와 나의 건너 편 식탁에 앉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엄중하게 옐로카드를 빼어 든다.
바깥과 등을 지고 앉아 있다가는 가게 앞에 세워놓은 나의 자전거가 모래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나라, 페루의 치부를 말하고 있는 그녀나 그녀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그녀의 충고를 듣고 있는 나나 야무지게 쥐어 짠 레몬 즙의 그 것처럼 잔뜩 신 표정을 짓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내가 만난 수 명의 국제 바이커들 모두도 페루의 악명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나에게도 많은 주의를 준 바 있다.

놀랍게도, 사막에 나타난 논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작은 시, 파카스마요(Pacasmayo)


또 다른 작은 시, 파카스마요(Pacasmayo)의 한 호스텔에서 밤을 맞는다. 그래도 107km를 달렸으니……
이 시는 해마(Sea horse)가 특산물인 듯 해마조각이 광장을 장식하고 있는데 한 중년사내가 자루를 걸머진 채 나에게 다가오더니 "당신, 분명 한국인이지?!!" "한국인들은 이 것을 아주 좋아 해, 그렇지?!" 그가 자루를 열자 그 안에는 말린 해마가 그득하다. 그는 나에게 얼마나 사겠냐며 막무가내로 들이댄다.
여행 중이라 살 수 없다는 나의 대답에 비로소 잔뜩 들이대던 머리를 쳐 든다. 나는 여태껏 해마, 해구, 해신(?)……은 커녕 '멍멍 탕'조차 먹은 적이 없고 그저 곰탕, 설렁탕을 최고의 건강 탕으로 생각하며 먹고 살아 왔소! 나도 토종 한국인이라 온갖 타령을 다 좋아하는데 그느므 '보신탕, 보양 탕 타령'만은 딱 질색이야!


사막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모래바람 또한 여전히 기세 등등하다. 24시간을 쉼 없이 불어대는 사막의 바람은 아침과 오후 서너 시경까지는 그럭저럭 나의 근력으로 밀어 붙이지만 태양의 하강과 함께 바람의 강도는 확 뛰어 더블 상승한다. 이런 바람의 심술을 알아 챈 후부터 나는 아침 일찍 6시경부터 움직이기 시작해서 오후 4, 5시경에 페달 젓기를 멈추는 일정으로 연일 달리고 있지만 하루 100km를 넘기기가 결코 쉽지 않다.
헌데 말이야, 이 악마 같은 바람이 종종 나를 환호성 치게 하기도 한단 말이야. 마구잡이로 불어오던 바람의 방향이 어느 순간, 달려가는 내 자전거와 좋은 각도로 만나 바람을 제대로 받기 시작하면 평지에서 페달 젓기를 완전 무시한 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마치 돛에 팽팽히 바람을 받아 수면 위를 치며 날을 듯 쾌속 순항하는 요트처럼 신나게 달린다. 내 자전거는 요트가 되고 나는 그 요트의 돛이 되어 버리는 거지. 한 번 가속도가 붙고 나면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스피드로 달리게 된다.

대학시절 요트 부에 1년여 적을 둔 적이 있었지. 경기도의 양수리(兩水里)에 훈련장이 있어 간간히 부원들과 함께, 요트 중 최고로 작은 1,2인용의 딩기(Dinghy)를 타 본적이 있어.
선체보다 훨씬 더 긴 마스트에 펼쳐진 돛이 바람을 받아 달리는 요트는 순전히 바람에 의해 움직인다. 바람이 전혀 없으면 정말 죽을 맛으로 배는 꼼짝도 안 하지만 바람이 불고 이 바람을 돛에 잘만 실어준다면 요트는 정말 겁나게 빠른 속도로 달린다.
요트의 바닥부분인 용골을 뚫고 물속으로 나와 있는 부분으로, 끼었다 빼기를 할 수 있는 센터보드를 끼고 출발을 한다. 이것은 요트가 옆으로 밀리며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판이다. 한 손으로 돛에 받는 바람의 강도를 조절하기 위한 줄인 메인 시트(Main sheet)를 잡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배의 방향을 조절하기 위한 방향키, 러더(Rudder)에 연결되어있는 막대, 틸러(Tiller)를 잡는다.
불어오는 바람을 비스듬한 각도로 돛에 실으면서 풍하(風下)로의 방향전환, 자이빙(Gybing)과 풍상(風上)으로의 방향전환, 태킹(Tacking)을 하면서 달린다. 방향을 바꿀 때마다 양쪽 배전으로 잽싸게 몸을 옮기면서 조작을 한다. 메인 세일 아래에는 붐(boom)이라는 굵고 단단한 가로막대가 있는데 몸을 옮기는 도중 곧잘 머리와 박치기를 하기도 하는데 아주 위험천만한 일로 여기에 맞고 그대로 물속으로 쳐 박히기도 한다.
돛이 찢어질 듯 팽팽하게 된 상태로 풀 세일링(Full sailing)을 하면서 물살을 가르며 달리고 있을 때는 배가 상당한 힘을 받기 때문에 배 밑에 끼워져 있는 센터보드 만으로는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요트가 그대로 넘어가 뒤집히기 십상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몸의 상체를 반대편의 뱃전으로 내밀어 요트의 균형을 취하는 동작을 한다. 더욱 큰 힘을 주기 위해 상체를 뒤로 재껴 상체를 수면과 수평으로 하면서 수면 위를 스치듯 세일링을 계속한다. 이때는 메인 세일에 바람을 최대로 받은 상태로 요트의 속도는 가공할 만하다. 하늘을 정면으로 올려다 보면서 물 위를 스치듯 한 자세를 유지하며 하는 물 위에서의 활강은 오금을 절이게 하는 쾌감을 준다.
사막의 도로를 달리는 동안 종종 결코 길지는 않지만 이런 풀 세일링(Full Sailing)의 행운을 만나게 되면 마치 양쪽 날개에 바람을 이미 받기 시작한 한 마리의 이글이 되어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를 듯한 착각에 빠져버리고 말지.
하루 중 이런 행운을 전혀 못 만난다면 하루 100km의 기록은 꿈 같은 얘기가 되는 거지.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her Cross)의 노래, "Sailing"은 그냥 나를 위한 노래가 되고 마는 거지!

돛은 바람을 타고 기적을 연출하며
내가 갈구해 온 자유와 순수의 나라로 나를 주저 없이,
그리고 통쾌하게 달리게 해주었지.

또 다른 작은 시, 치카마(Chicama)의 톨 게이트에 있는 한 매점에 웬…??!
뽀얀 피부에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플라센시아(Plasencia)는 신촌에서, 종로에서 종종 마주 치곤 했던 영희, 꽃순, 영자였다.
등을 보이고 서 있는 하늘색 옷의 아줌마는 펄쩍 뛰는 그녀의 제스처로 사진 찍히기 싫은 그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정 싫으면 비켜나면 되는데 기어코 막고 서서 어쩔 줄 모른 채 안절부절이다.


사막에서는 저 멀리 도로 끝에 한 마을의 모습이 나의 눈에 포착되기 시작해 확실하게 나의 두 손에 잡히고 두 발길에 채일 때까지 거의 10km를 달려야 한다. 피로와 배고픔으로 지쳐 있을 때 이 10km는 나에게 생사를 넘나들게 하는 처절하게 먼 거리이다.
20,30km마다 식당이나 가게가 하나나 둘 정도 나타나며 나를 안심시키고 있지만 종종 이 거리 이상을 달려도 아무것도 안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자나깨나 비상식량과 충분한 물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기야 이곳은 고비사막과는 완전 딴판으로 대형버스가 수시로 나를 스쳐 지나가기에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에 나는 이미 대형버스의 승객이 되어 있겠지만…

간신히 턱걸이를 하며 100km를 달리고 페달 젓기를 멈춘 곳이 작은 마을인 차오(Chao). 페루에 들어와 처음으로 3불짜리 여관을 발견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마을의 유일한 중국음식점을 찾는다.
이제는 머무는 마을이나 도시에서 중국음식점을 찾는 것이 나에게 심각한 희망이 되었다. 30대 후반의 중국인 부부가 하는 작은 중국집인데 주인 남자는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직접 나에게 서빙을 하며 결코 작지 않은 그의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중국말을 건넨다. 한국인이라는 나의 말에 짙은 실망의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 와 태양 같이 밝던 그의 얼굴을 가득 덮는다. 고향친구처럼 친근하게 생각되었던 그의 얼굴 표정이 굳어감에 나의 가슴이 쓰리다.
이곳에 온 지 4년이 된 후지안(Fujian) 출신의 이 들 부부는 중국인이 전혀 없는 이 마을 유일한 중국인으로 중국인을 우습게 보는 이곳에서 어지간히 외로웠으리라. 오죽하면 종업원을 제치고 자신이 직접 음식을 가지고 나왔을까?! 오늘만큼은 내가 그를 위해 중국인이 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우리는 같은 동양인이라는 동질감에 굳은 악수를 나누고 헤어진다.

이른 아침, 운전면허교습장의 풍경이다.
각 코스는 큰 '짱 돌' 들을 집어다가 줄줄이 세워 놓아 만들어졌다.

줄을 맞추어 서 있는 이 조형물의 정체는?!! 반대편에 있는 집 한 채당 하나씩이다.

페루의 지방을 달리는 동안, 도시나 시골마을의 모든 어설픈 건물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게
현대식에 제대로 앞뒤가 칠해진 곳은 성당과 카토릭 재단의 대학뿐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사막을 가르는 험난한 항해가 계속된다. 리마까지 400여km에 불과한 거리이지만 아직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페루의 국경을 넘어 지금까지 700여km를 달려 왔지만 사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나는 50이 넘은 이 나이가 되도록 '사막의 페루'를 결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엄청난 무지(無知)를 일관하며 살아 온 것 같다. 그저 잉카, 펜 풀룻, '엘 콘도르 파사'… 만을 연상했던 페루가 거대한 바다, 태평양의 어마어마한 백사장(白沙場)일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내륙 깊숙이까지 사막화가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분명 엄청난 충격이다.
내륙 쪽에 있는 높은 산들의 정상까지도 완벽하게 모래뿐이다. 이제껏 내가 목격한 페루의 집, 마을, 그리고 도시는 모두 사상누각(沙上樓閣), 사상 촌(沙上村), 그리고 사상도시(沙上都市)였다. 이렇게 심각한 국토의 사막화를 저지하기 위해 정부주도의 대 단위 그린(Green)화 프로젝트가 행해지고 있는 것 같다. 사막에 지하수를 끌어당겨 과수나 나무, 심지어는 벼농사까지 감행하며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 녹색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인간의 무한도전이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꿈의 프로젝트도 아직까지는 '코끼리 발에 모기 피'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인력과 자본이 필요하고 또한 영구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페루 국(國) 최대 프로젝트임에 틀림이 없다.

죽음의 땅, 사막에서도 물만 있으면 이렇게 찬란하게 아름다운 꽃이 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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