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비에 무너져 내린 도로
에디터 : 이호선

치난데가(Chinandega)시(市)에서의 8불 여관과 여관

치난데가의 여관 종업원.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영어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나를 만나 한 번이라도 혀를 더 굴릴 수 있게 되어 아주 즐거운 표정이다.

온두라스의 후반부터 시작된 대책 없이 깨지고 파여진 도로가 니카라구아에 들어서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햄도 최악의 도로상황에 치를 떨고 있었다. 도로의 곳곳에 십대소년들이 삽을 들고 구멍 뚫린 도로에 흙을 갖다 부으며 도로의 왼쪽 오른쪽에 한 명씩 긴 삽 자루의 삽을 흔들어대며 주로 운전자가 노인과 여성인 차량으로부터 그 사례금을 구걸, 내지는 협박을 하고 있다.
명분(名分) 좋은 삽을 든 백주의 날강도들이다. 자전거여행자인 나에게는 그 빛나는 명분(名分)의 삽을 들이대지 않으니 그저 감사무지로소이다!

치난데가(Chinandega)시(市)에 들어서자, 어둠은 이미 나의 온 몸을 무겁게 찍어 누른다. 시 입구에 있는 주유소직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결국 싼 여관의 소재를 파악하고 어둠 속에 숨어있는 싼 여관을 찾아낸다. 150코르도바로 약 8불이다. 니카라구아에 들어오니 대중택시가 현대의 소형차인 악티즈(Actiz)와 Kia의 비스트로(Vistro)다. 기아의 봉고트럭도 아주 많이 보인다.
기아의 봉고트럭은 멕시코를 비롯한 모든 중미지역에서 심심찮게 나의 눈을 때리며 지나간다. 한국인 전무지역에서 마치 한국인을 만난 듯 반갑다.

중미의 나라에서 시골과 도시를 불문하고 아주 자주 보이는 자전거 인력거.
길고도 고단한 또 다른 하루가 이미 시작되었다.

밤이 깊어짐에 도로의 행인은 거의 없으나 도로의 구석구석에 야릇한 여인들이 서성거린다. 중미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저녁 7시경이면 하루의 상황종료다. 특히 변두리지역은 치안부재로 사람의 왕래가 정지된다.
멕시코를 시작으로 과테말라, 엘 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구아를 지나오는 동안 너무 많은 집총인(執銃人)들을 보아 총이라면 입에서 신물이 날 정도이다. 은행은 열외로 치고, 좀 크다 싶은 상점에서부터 집어 갈 물건도 없어 보이는 공사장까지 라이플을 든 경비들이 어깨 힘주고 서 있다. 그들의 수입은 관심 밖으로, 이곳에서 제일 폼 나는 직업이 경비들인 것 같다.
그들이 총을 들고 서 있는 동안은 최소한 어깨에 힘 콱콱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도시는 도시대로 총이 판을 치고 시골은 시골대로 마체테(만도)가 판을 치니 정말 어이없고 연방 실소가 터질 일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활짝 열어 재낀다. 수도인 마나구아(Managua)를 향해 달리지만 니카라구아의 도로가 심각하게 개판이다.
'넘버 원'도로가 어찌 이 지경까지 방치되고 있는가?! 이제서야 구간구간 수명을 다한 아스팔트를 모두 긁어내는 공사를 하느라 흙 먼지까지 온 몸에 뒤 집어 쓰며 달려야 한다. 한시라도 정신 안 차리고 한 눈 팔거나 눈을 감았다가는 어떤 끔찍한 상황을 만날지 모를 심각한 지경이다.
'마나구아'를 얼마 안 남기고 계속되고 있는 오르막길을 엉기며 오르고 있는 동안 어둠에 완벽하게 잡혀 버렸지만 도로변으로 여관도 없는 작은 마을이 계속되고 야영을 할 만한 곳은 더더욱 걸려들지 않아 그저 어쩔 수 없이 앞을 향하다 마침내 어둠 속의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문제는 도로가 정신 없이 깨져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엉금엉금 자전거를 끌고 내려간다. 간신히 마나구아 시(市)에 들어서서 여관을 찾는다. 도로의 오른편에는 근사한 호텔들과 고급식당들이 줄을 잇는데 도로의 건너편 쪽은 정반대로 지저분하고 어두컴컴하다. 내가 찾고 있는 여관은 바로 건너편에 있다.
어둠 속의 골목을 뒤진 끝에 "Hospedaje(Hostel)"을 찾아내 들어가니 50대 후반의 야간 종업 인이 200코르도바를 불러 실갱이 끝에 50코르도바를 깎아 결국 150코르도바(8불)에 합의를 보고 그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악수를 청하니 나의 손을 뿌리치며 간다. 그가 챙길 50코르도바가 하늘로 날아 오름에 그는 분한 것이다.

니카라구아의 수도, 마나구아(Managua)에서 어둠 속을 뒤져 찾은 150코르도바(8불상당) 여관(Hospedaje).
50대 후반의 야간 종업원은 그가 요구한 200코르도바를 끝내 150으로 깎고 만 내가 악수를 청하며 내미는 손을 뿌리치고 뒤 돌아서 나갔다.
내가 깎은 '50'량은 바로 그가 챙길 부 수입이었다.
오스페다헤(Hospedaje:단어 첫머리의 H는 묵음 처리되고 j는 'h'발음된다.)는 호스텔(Hostel)을 의미한다.


멕시코를 비롯해 모든 중미 권 나라들의 아주 상습적인 시골풍경.

코스타리카의 국경.

리바스(Rivas)를 지나고 국경인 페니아스 블랑카스(Peñas Blancas)까지 365km의 위험천만의 길을 달렸다. 또 넘어야 할 국경, 이번엔 코스타리카(Costa Rica)다. 입국사무소에 들어가 스탬프를 받고 바로 옆에 있는 은행에서 100불을 바꾸니 5만 코로네(Colones).
국경을 지나 수도인 산 호세(San Jose)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로 나타나는 라 크루스(La Cruz)시(市)까지 평지가 계속되지만 갓길이 겨우 30cm정도에 불과한 비좁은 왕복 2차선의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대형트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스치듯 지나가며 나의 숨통을 조이더니 한 술 더 떠 비까지 쏟아진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지금 대형 태풍이 코스타리카를 향해 다가 오고 있단다.
비에 흠뻑 젖은 채 리베리아(Liberia)시(市)에 도착해 Hospedaje(Hostel)을 발견했으나 20불이다. 코스타리카의 물가는 다른 중미지역의 물가를 훌쩍 뛰어 넘는다. 식사 한끼가 5천원, 6천원으로 내용면에서 우리나라보다 더욱 비싸다.

태풍의 접근으로 낮이나 밤이나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이젠 비싼 여관비와 식대보다도 날씨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아침에 하늘이 결단을 못 내리고 뭉그적대고 있는 틈을 타 빠른 동작으로 여관을 나와 숨 죽이고 달린다. 다음에 등장한 작은 시(市)인 바가세스(Bagaces)입구에 있는 간이식당 앞에서 자전거를 세웠는데 식탁에 앉아 뭔가 먹고 있던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내가 씹고 있던 음식을 입에 머금은 채 "치노(Chino)-중국인!"를 반복하며 낄낄대고 있다.
'아침부터 또 시작이네…'
내의 부글대는 속을 마른 침을 넘겨 겨우 진정시키고, 중국인 씹고 고기 씹으며 연신 즐겁기 만한 그의 자랑스런 면상(面上)을 향해 "멕시카노(Mexi- cano)!"를 내 뱉자마자, 그는 잠시나마 까닭 모를 행복감에 만취해 짓고 있던 꼴 사납게 우아한 표정을 가래침 뱉듯이 가차없이 땅 바닥에 내 뱉아 두 발로 뭉개버리고는 쥐고 있던 식탁용 나이프와 포크에 부당하게 필요 이상의 힘을 주며 분연히 부르짖는다.
"나는 코스타리카 인이다!"
"허 어, 아저씨, 아저씨! 나도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 이거든!! 그대가 멕시코인 되는 것이 그토록 불쾌하듯, 나 또한 그대의 무지한 선택에 의해 중국인 되는 것이 아주 불쾌하지. 그대들 모두는 말도, 글자도, 그리고 먹는 음식까지 같지만 우리들은 음식과 언어조차 완전히 달라!"
'만일 그대와 내가 링 위에서 만났다면 그대의 경멸적인 웃음이 고통의 신음소리와 후회의 탄식으로 바뀌었을 걸세.'

그 순간 이후, 그는 신명나게 이죽이던 그의 입에 굳게 빗장을 걸어 잠그며 유령처럼 앉아 있다.
손님이었던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말 상대를 하며 본의 아니게 그와 동조했던 식당주인 아줌마는 손바닥만한 식당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아주 어색하고 결코 유쾌하지 않은 공기덩어리를 분쇄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고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듯했으나, 결국 그녀는 한 문장은커녕 단어 한 마디 찾아내지 못한 채 두 눈만 껌벅이며 서 있을 뿐이다.
죽은 듯이 앉아 있던 그는 언제 갔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그대여, 부디 '비바(Viva) 코스타리카(Costa Rica)!' 하게나!
내가 한국인이었으니 망정이지 내가 정말 중국인이었다면 너무 분해서 '분신자살' 내지 '할복자살' 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야, 중국인들은 그대들이 결코 상상하지 못 할 만큼의 대국인(大國人)으로 이 정도에 발광해서 이성을 잃는 일은 결코 없을 걸세.

멕시코에 입경하면서부터 시작된 "치노(Chino):중국인"와의 치열한 신경전은 중미를 거치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처음엔 '내가 중국인이 아니니 신경을 끄자'하고 그저 먼지 털 듯 털어버렸지만 월경(越境)이 거듭될 수록 중남미 인들의 동양인 멸시, 중국인 멸시가 의외로 뿌리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이 지역을 달려 오면서 너 댓 살 정도의 어린애가 나를 향해 "치니토(Chinieto):중국인 꼬마!"를 태연히 부르짖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 가 이번에는 격식 제대로 갖추어 앰뷸런스에 실려 갈 뻔 했다. 이 곳의 많은 이들이 노소남녀 할 것 없이 동양인이 지나가면 "치노"와 함께 자연스럽게 입이 찢어지고 결코 유쾌하지 않은 기묘한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이들의 행위가 어떤 까닭 모를 우월감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뿌리깊고 고질적인 열등감에서 시작 됐는지 나는 도대체 알 방도가 없고, 또한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이러한 경향은 뉴욕에 있는 많은 아미고(Amigo)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야 부르짖는다, "스페인은 위대하다!" 그들이 정복한 민족에게도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향유함만으로 대단한 우월감을 갖게 했으니 말이다. 뉴욕의 F.I.T대학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1년 동안 들었을 때, 두 명의 남미 계 교수들 앞에서 기고만장하던 스페인 본토에서 온 아줌마교수의 모습이 생생하다.

세상이 참으로 좋아져 이들 나라들의 시골 구석구석의 모든 이들도 글로벌리즘(Globalism), 세계화 시대에 발 맞추어 외적인 면에서의 세계상식(Common Sense)을 모두 갖추며 살고 있다.
'리바이스', '리' 블루진을 입고 '나이키', '리복'을 신고 '맥도널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즐기고 있으며 셀룰라 폰을 두드리고 인터넷과 게임을 즐긴다.
'그대들이 세계상식(Common Sense)을 갖추는데 걸리는 시간을 엄청 단축시켜 준 이들이 바로, 싼 임금을 감수하며 저렴한 상품을 만들어 세계상식 보급을 주도해 온 중국인들이니 그대들은 당연히 중국인들에게 경멸이 아닌 감사와 존경을 표해야 되지 않겠어!'

코스타리카에서부터 수풀과 나무들이 더욱 무성해진다.
도로변으로 나의 키 허리만큼의 수풀들이 빽빽해 도로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다.
많은 비가 내리는 까닭일 것이다.
갓길이 거의 없다시피 한 좁은 국도에 대형트럭은 줄을 잇고 비까지 쏟아져 내려 어둠 속의 주행을 포기하고 막무가내로 도로를 빠져 나와 비속에 얼렁뚱땅 쳐놓은 해먹과 전혀 가당치 않은 임시지붕.
빗물에 젖고 빗물을 마시며 밤을 가까스로 넘겼다.


비의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하루 종일 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몸은 비에 젖고 땀에 젖어 불쾌하기 짝이 없다. 한결같이 여유 없는 도로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형트럭들은 끝없이 나를 위협하며 스쳐 지나가고 비는 쏟아져 도로표면은 위험천만으로 속력을 낼 수 없다.
저녁이 되어 비가 더욱 거세져 어둠 속의 주행을 포기하고 도로변의 숲 속으로 빠져 나가보려 하지만 나의 가슴까지 차는 풀과 나무들이 너무 빽빽해 뚫고 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어둠 속에서 도로 바로 옆의 숲으로 겨우 기어나가 지나는 차량들의 불빛에 나의 전모가 낱낱이 들어나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태연한 척 나무에 해먹을 걸고 포장비닐로 하늘을 막고 우비로 차량의 불빛을 조금이나마 막기 위해 안달을 해 보지만 불빛과의 숨바꼭질은 계속된다.
나무들만 서 있으면 해먹 거는 것은 별 문제 없으나 하늘을 막기 위해 지붕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결국 몇 군데로 비가 들이치는 것을 감수하며 밤을 보내는 수밖에.
워낙 비가 오다 보니 모기 눔 스키들은 야간비행을 전면 백지화하고 어딘가에 깊숙이 짱 박혀 있어 몇 숨 놓인다. 밤새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해먹 위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중, 새벽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 왔고 요행히 비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서둘러 모든 것을 정리 한 후 또 쏟아지기 전에 단 1m라도 더 가기 위해서 도로를 달린다.

코스타리카를 휩쓴 태풍의 영향으로 산이 무너져 내려 도로와 다리가 유실되었다. 이곳의 토양은 붉은 진흙으로 비가 많이 내리면 산이 줄줄 흘러 쏟아져 내린다.
대부분의 강물은 붉은 진흙탕 물이다. 많은 마을이 고립되었고 사상자 또한 많아 코스타리카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나는 5일간 여관에 잡혀 있다가 주행코스를 해안으로 돌려 달려야 했다.


도로를 달리다가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차량의 긴 행렬 앞에 주춤한다. 나는 작은 덩치의 이점을 살려 서 있는 많은 차량들을 앞질러 가 보니 많은 비로 도로 위로 산이 무너져 내렸다. 트럭운전사들은 운행을 포기 한 채, 휴대폰으로 회사에 보고를 끝낸 후 트럭 밑에 해먹을 걸고 긴 휴식에 들어간다.
도로변에 있는 간이식당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T.V앞에 모여 있다. 코스타리카 전역이 많은 비로 산사태가 일어나 도로가 끊기고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는 긴급뉴스인데 코스타리카는 이미 국가재난상태를 선포한 상태로 내가 향하고 있는 수도인 '산 호세(San Jose)' 지역이 제일 심각했다.
나는 심각하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달리다 주행에의 한계를 느끼고 산 라몬(San Ramon)의 도로변에 천국처럼 나타난 Hospedaje(호스텔)앞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코스타리카의 전형적인 숲, 빈 틈이 없이 빽빽한 숲이다.

태풍의 전격 출현으로 주행을 포기한 채 5일간 은신하고 있었던 20$ 짜리 호텔.
대단히 넓은 정원의 개인 주택으로 많은 빈 방을 이용해 여관 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 곳에서 밥을 해주고 세탁을 하며 살고 있는 이혼 녀 아줌마와 그녀의 7자녀들 가운데 장녀인 20세 처녀.
그들의 삶은 그들이 오로지 갖고 있는 두 손과 두 발만으로 지탱하기엔 너무도 무겁고 버거워 보인다


대단한 저택으로 호스텔을 심심풀이로 하고 있는 듯한 곳인데 식사까지 제공하고 있어 5일 동안 꼼짝 안하고 엎드려 있었다. 연일 쏟아지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자적 보낸 꿈 같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지갑은 유리에 찔린 튜브처럼 순식간에 바람이 빠져 버렸다.
희비가 엇갈린 5일 간을 책장 넘기듯 넘겨 버리고 또 다시 페달을 밟는다. 수도인 산 호세(San Jose)를 관통하며 파나마를 향하려던 나의 계획을 바꾸어 내가 이미 지나온 에스파르사(Esparza)로 25km 다시 후진해서 태평양을 끼고 달리는 도로를 따라 달리기로 한다.

놀라울 정도로 도로가 상당히 넓고 갓길도 여유가 있어 한 숨 돌릴 새 없이 또 비가 내린다. 태풍이 지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또 다시 쏟아지는 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나마 도로사정이 좋아 주행을 계속한다. 비 속에 스페인과 북미 계로 보이는 여행객들이 심심찮게 보이고 해안을 따라 많은 콘도와 리조트(Resort)시설이 줄을 잇는다.
마치 모로코의 대서양을 따라 해안선에 줄을 이은 유럽인들의 많은 별장과 콘도를 연상시킨다. 코스타리카는 중미의 어떤 나라보다도 외국인 유치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해 놓은 것 같다.
비 속에서도 가끔씩 건너다 보이는 태평양에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비록 마을은 없어도 도로를 따라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주기적으로 등장해 우중다행(雨中多幸)한 일이다.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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