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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쇠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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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2일 月
속골 대륜동-서귀포-516도로-성판악-관음사 야영장 43km
텐트의 문을 열자마자 앞 바다에 떠 있는 범섬이 구름을 잔뜩 이고 있다.
낮은 파도가 물거품을 일으키며 해안의 몽돌을 씻고 있었다. 바닷새들의 자지러지는 재잘거림도 아침을 상쾌하게 열어 주었다. 만족한 아침이다.
여행 사흘째, 오늘은 성판악까지 올라서 야영을 하고 다음 날, 한라산 산행을 할 참이다.
스토브에 불을 붙이고 압력솥을 올렸다.
2인용 밥은 물잡기가 쉽지않다. 조금 넉넉하게 한다는 게 늘 진밥이 되기 일쑤다. 북어채를 손으로 뜯어 잘게 나누고 국을 끓인다. 마른미역을 한 웅큼 넣고 된장과 다시다로 간을 맞추면 그만이다. 김치와 멸치조림으로 반찬을 한다. 나이든 남자 둘이 만든 아침상이 그럴 듯하지 않은가!
부지런한 사람은 벌써 올레를 걷는 이도 있다.
얼른 짐을 챙기고 길을 나선다. 오늘은 하루 종일 30km가량 오르막 길을 올라야 한다. 서귀포 시내에서 빵과 라면을 샀다. 오이쨈님이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하여 붕어빵처럼 생긴 것을 하나씩 먹었다. 길가에 앉아 이런 걸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나이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지나는 이들이 나이값이나 하라고 핀잔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조차도 들지 않는 것이다.
자전거여행은 체면 치례를 거덜나게 하는 미약이 있는 것 같다.
516도로는 지도에 국도11번으로 표기돼 있으나 제주 현지 도로표지판에는 1131번으로 표시되어 있다. 도로에서 만난 동백 |
516도로는 자전거여행자에게 경관이 뛰어난 순례의 길이었다. |
516도로는 한라산의 동쪽 산허리를 감돌아 제주와 서귀포를 연결하는 주요 간선도로이다.
고도 약 900m나 되는 성판악까지는 올라가는 길이다. 지루하고 하염없이 힘들게 올라야 하는 이 길도 자전거여행자들에게는 순례의 길이다. 자전거여행자들에게는 길이 곧 성지인 것이다.
낮 2시 반에 성판악에 닿았다. 그러나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도중에 음식을 사 먹을 데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간식으로 준비하였던 빵을 먹은 덕에 성판악까지는 올랐다.
국립공원관리소에 문의했더니 성판악지역에서는 야영이 통제된다고 하였다. 관음사코스 입구에 있는 야영장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점심을 굶은 채 관음사를 향해 페달을 다시 밟았다. 17km의 내리막 다음에 5km의 오르막이 있었다. 마지막 2km를 남겨놓고는 500m마다 쉬었다 걷다를 반복하였다. 배가 고팠다.
관음사 가는 길 |
관음사 야영장에는 어두워서 도착하였다.
헤드렌턴을 켜고 텐트를 지었다. 7-11편의점에서 사 온 소시지를 구워 밥과 함께 먹었다. 밥을 먹고 소주를 한잔 한 다음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고단했다.
2010년 11월 23일 火
관음사 야영장-등산-탐라계곡-삼각봉대피소-백록담-삼각봉대피소-탐라계곡-야영장
길은 얼어 있었다.
냉장보관 돼 있었던 그리운 추억도 길따라 하나 하나 발끝에 걸렸다.
구름과 함께 올랐던 어리목과 성판악 길, 산악스키 훈련으로 찾았던 탐라계곡과 어슬렁오름 능선 길, 비행기를 전세내어 한라산을 찾았던 한국등산학교동창회원들, 눈과 진달래와 바람을 맞으며 함께 정상에서 맞았던 아내와의 기쁨.....
위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친구 라충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같은 소원 중에 하나가 한라산 등정인 것을.....
내년 봄에는 그의 소원을 이뤄줘야지!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맡아 준 세븐일레븐 편의점 |
9시에 출발하였다. 늦은 감이 있다.
자전거와 트레일러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부탁하여 맡겼다. 부지런을 떨었지만 어제의 무리한 일정 때문인지 늦잠을 잔 것이다.
근 20년 만에 오르는 한라산 등산이다. 오이쨈님에게도 의미있는 등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등산화의 끈을 조여 매는 맛이 나는 좋다. 모직 양말 두 켤례를 겹쳐 신고 트렉스타의 중등화를 신는다. 이번 여행에서는 등산을 염두에 두고 처음부터 등산화를 신고 자전거를 탔다.
발바닥에 닿는 지구를 느끼는 맛은 등산이 최고다. 가쁜 호흡에 맞추어 걸음을 내딛는 조화로운 걸음걸이는 나의 미학이다. 돌투성이 길일 수록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이 민감한 반응을 한다. 그 섬세한 반응이 나는 좋다.
습하고 얼어 있는 길에서 미끄러지며 걷는 느낌은 더 좋다. 숲이 주는 착한 냄새는 비교할 게 없을 만큼 좋다. 호흡이 심해질 수록 숲냄새는 가슴 깊숙히 스며든다.
500, 700, 1000m, 1500m, 1900m
고도를 올려갈 때마다 새롭게 만나는 나무들의 변화무쌍한 모습도 턱없이 좋다.
12시 전까지 삼각봉대피소를 통과해야 정상으로 가는 길을 허락받을 수 있단다.
산악용으로 개발되어진 모노레일을 이용하여 짐을 나르는 모습 |
삼각봉과 대피소 |
마른 모습의 백록담 |
성판악에서 오르는 등산객들 |
평생을 한 직장에 다니신 오이쨈님의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낮 1시에 정상에 닿았다.
백록담에 물이 비어 있었다. 이렇게 마른 모습은 처음이다. 20여 차례 한라산에 올랐지만 이렇게 물이 빈 백록담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오이쨈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날이 좋았다. 바람이 한 점도 없어다. 이런 날은 복받은 사람들만이 누리는 혜택이라고들 한다. 오늘 정상에 선 사람들은 평소에 적선을 많이 한 사람들일 것이다.
"여보! 나 정상이야! 나 당신 칭찬해 줘야해! 나 장하지?"
옆에서 50대 여인이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내려오는 길이 등산이다.
체력이 소진되고 무릎은 아프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등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산을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누군가 전화를 받더니 "전쟁 났대요! 전쟁! 연평도가 불바다래요!"라고 외친다. 덜컥하는 가슴에 못 하나가 와서 박힌다.
폭우로 사라진 용징각대피소 터에서 |
전화기를 갖고 있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내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사변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아내 곁에 있지 못했던 것이다. 자꾸 마음에 걸린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실제상황"일 때에도 나는 미국에 있었다. 잠깐이긴 하여도 아내와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우리는 그리워했었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와서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분에 못이겨 말로 흥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도 그런 말을 했다. "여보! 당신은 꼭 이럴 때마다 먼 곳에 있어요?!"
아침에 봐 둔 알맞은 야영 장소가 생각났다.
야영장 사용료를 받으러 온 국립공원 직원에게 취사장을 사용해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하였다. 마침 야영객이 우리 둘 뿐이라서 30평 넓은 실내 취사장을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취사장 안에서 취사를 한 다음 텐트까지 친 것이다.
늦도록 라디오를 들었다.
취사장에서의 야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