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떠나 멕시코에 들어오다.
에디터 : 이호선

뉴욕, 중국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뉴욕에 도착한 뒤, 이제껏 8명이 한 방을 쓰는 중국인 숙소에서 제2라운드 매치를 위한 워밍업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오래 전 뉴욕에서 10년 동안 있으면서 결코 알 수 없었던 리얼한 한국인들의 삶의 스토리를 본의 아니게 접하게 된다.
세계 최대의 인간시장인 뉴욕의 삶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특히 많은 비(非)백인 이민자들은 더욱 뜨거운  열기와 끈적거림의 여름을 헐떡거려야 하고 더욱 심각한 체감 온도로 뼈 떨리는 추위의 겨울을 겪어야 한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한 들, 여전히 언어와 백인 주도의 방어벽은 두텁고 높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미국경제의 불황으로 사회전반적으로 전혀 여유가 없는 가운데, 이민자들은 하루하루의 삶이 길고 무겁기 만하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한인사회의 살림살이는 더욱 궁핍해져 갈 뿐이다.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중국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오직 소규모가 대세이던 중국의 비지니스는 이제 완전히 전세를 뒤집어 엎어 대규모의 그것이 되어 있다. 이제 한인 경제는 더 이상의 구태의연과 안일로 일관하기에는 주위상황이 너무 급박해 보인다.

내가 3주간 머물면서 때론 추락을 거듭하고, 때론 수상(水上)으로 부상하려고 몸부림치는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경험했던 중국인 주택.
중국인 주인 아줌마는 수십 명이 우글거리는 불법 숙박업소임을 은닉하기 위해 방의 모든 창문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그녀는 젊은 기둥 남편을 거느리고 수 십 명의 희망 없는 이들을 담보로 세금 없는 날 돈을 게걸스럽게 집어 삼키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단 돈 만원의 숙박비와 더불어 5,000원으로 하루 두 끼가 해결된 하늘아래 최고의 보금자리였다.


도박에 올인하는 한인들
20여 명의 소속불명의 중국인들과 살고 있는 이 중국인 주택 안에, 그리고 손바닥만한 천정을 같이 하는 바로 나의 방에 3명의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나의 뒤통수를 제대로 한 방 먹고 만다.
내가 중국을 오랫동안 여행하면서 경탄을 마지 않았던 것은 바로 중국인들의 트럼프와 마작놀이에의 전 대륙적인 열광이었다. 그들은 모이면 그 놀이를 즐긴다. 그것에 너무 열중한나머지 음식을 주문한 나에게 종종 귀찮다고 인상을 쓰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도박성향 또한 경탄의 수준이 아닌가?!
지금 나의 방에 있는 3명의 한국인들은 바로 그림같이 폼 나는 드라마 '올인'을 숭배하고 실감나게 연기하며 '올인'같은 삶에 '올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수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또한, 비록 트럼프나 기계가 아닌 '화투'를 사용한 것이었지만, 이 놀이에 심취했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 환갑의 나이까지 수 십 년 간을 그 놀이에 심취한 결과로 나를 포함한 모든 가족에게 돌아 온 것은 끈기가 없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정부미 쌀조차 없어 수제비로 연명하는 극단의 궁핍 된 삶이었고, 셀 수 없을 만큼 일어난 어머니의 심장정지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의 폐부를, 그리고 나의 온몸을 뒤흔들며 끝내는 눈시울을 젖게까지 했던 영국밴드, 애니멀스(Animals)의 '해 뜨는 집(The House of Rising Sun)'은 지금까지도 나의 영혼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내가 그들과 상당수의 날들을 같이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의 도박(이곳에선 카지노로 일괄 명료하게 요약된다)인으로서의 삶과 그 스토리는 한국에서 내가 겪었던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수 많은 한국의 도박인들의 결론까지 이르는 풀스토리와 단지 너 댓 개의 형용사가 다를 뿐으로 그 내용이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들의 삶의 터전과 가족들은 이미 오래 전에 풍비박산되었고, 이제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최후의 장소까지 와 있어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듯 초연하게 웃으며 또 다른 오늘의 'Good Luck(행운)'을 꿈꾸며 또 다시 '카지노'행 버스에 몸을 던지는 그들의 삶은 태양이 떠오름을 계속하는 한 계속 될 것이다. 그 어느 쪽이 먼저 멈출지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그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인생 답안지' 위에 나의 아버지가 남겼던 단 한 줄의 문장은 커녕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삶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의 말처럼 인생은 도박일지 모른다. 카지노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의 한국인들의 심각한 삶의 현장이 된지 오래다.

멕시코행 그레이하운드에 몸을 싣고
나는 드디어 멕시코 행 그레이하운드(Greyhound) 버스표를 샀다. 맨해튼의 42가에 있는 포트 오쏘리티(Port Authority) 버스터미널에서 멕시코의 몬테레이(Monterrey,멕시코의 국경을 조금 지난 곳)까지 몇 번의 갈아 탐을 거쳐 52시간 후 도착한다.
요금은 218달러이다.
밤 9시 45분, 버스는 예정을 30분 앞당겨 출발한다. 버스는 순식간에 허드슨 강을 넘어 뉴저지의 땅을 달린다. 바로 강 건너의 화려한 맨해튼의 야경이 서글프고 허무하기 만하다. 버스는 맹렬한 속도로 서쪽의 시카고를 향해 달린다. 내가 달려 왔던 길을 다시 버스로 달려간다. 정말 묘한 기분에 어색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버스자체가 나에게 참으로 낯 설기만하고 수십 명의 일행과 함께 달리고, 휴식을 위해 함께 내리고 하는 일 모두가 정말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다.
미대륙을 횡단했던 그 동안, 나의 가슴을 심각하게 뒤흔들었던 수 많은 아름답고 고독한 영혼들이 하늘의 별들이 되어 나의 머리 위에 반짝인다.

4발의 총성이 들리고
시카고, 맴피스, 댈러스, 라레도(Laledo,미국의 국경도시) 4번의 갈아 탐을 거듭한 끝에 멕시코 국경을 넘어 누에보 라레도(Nuevo Laledo,멕시코의 국경도시)의 버스터미널에서 최후의 버스인 몬테레이(Monterrey)행 버스를 기다린다. 이미 시각은 새벽 1시다.
청천벽력 같은 4발의 총성이 고요한 밤하늘을 산산조각 냄과 동시에 3대의 픽업트럭과 한대의 장갑차가 쏜살같이 거리를 질주한다. 픽업트럭에는 운전석에 2명, 짐칸에 4명의 철모에 방탄조끼, 그리고 자동소총으로 완전 무장한 멕시코 군인들이 두 눈을 번뜩이며 사방을 경계한다.
그렇다, 멕시코 정부는 지금 마약조직과의 심각한 전쟁 중이다. 말로만 듣던 그 치열한 전쟁터에 내가 지금 서 있는 것이다. 버스가 팽팽한 긴장과 깊은 어둠을 뚫고 겨우 나타난다.
버스가 달리고 있는 황량한 국경도시의 대부분의 집들은 대문 이외에 또 한 겹의 철망의 울타리가 쳐져 있다. 새벽 5시 반경, 버스는 종착역인 몬테레이에 도착한다.

엘파마, 너는 완전 용가리 통뼈야!
짐칸이 열리자마자, "어이 x x !!"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오고 말았다. 순순히 누워있는 '엘파마'의 두 바퀴위로 한 바퀴에 하나씩 상당한 무게의 큰 여행용 백이 올려져 있지 않은가?!
어느 X자슥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했단 말이냐?!
눈앞이 캄캄하고 한 숨만 나올 뿐이다.
간신히 두 개의 바위덩어리를 밀어 내 버리고 초 죽음인 '엘파마'를 끌어내리고 비닐포장을 열어 몸의 상태를 가슴 졸이며 점검해 본다.
"어이, '엘파마'! 너는 역시 느그 이름값을 하는군. 너는 완전 용가리 통뼈야!"
나는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엘파마가 글쎄 전혀 아무 일이 없이 태연해요!!

중남미 여행 시발점인 몬테레이(Monterrey)를 지나 국도85번을 타고
다음 시티인 리나레스(Linares)를 향해 빗길을 달린다.


멕시코 지도를 손에 들고 힘차게 달려간다
버스정류장을 나와 제일 먼저 'OXXO'라는 편의점에 들어가 멕시코 로드 맵(Road map)을 90페소에 산 후, 도로변의 행상에게서 빵 한 개와 커피를 사먹고 주행 방향을 잡기 시작한다.
자, 이제 달려 보자꾸나. 제 2회전이 이미 시작되었어.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여 있고 간간히 비를 뿌리고 있는 가운데 나는 85번 국도를 타고 동남방향으로 달려간다.
도로 변으로는 상당한 높이의 산들이 이어지고 산중턱에는 어디에도 안개가 아닌 비구름이 어김없이 걸려있다. 동쪽의 걸프 만의 뜨거운 공기가 멕시코의 높은 산들을 만나면서 생기는 구름이고 비임에 두말의 여지가 없다. 도로의 경사는 완만하나 도로의 커브들이 상당히 급하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도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비록 지난 52시간 동안 버스에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온 몸이 굳어 있지만 나는 속도를 낸다.
뉴욕에서 새로 사서 설치한 거리측정기가 모든 것을 입력했음에도 정작 달리는 동안 거리가 변함없이 00000이다. 그저 울화통 터지게 시간만이 깜빡인다. 결국 나는 핸들에서 그것을 빼어, 밟아 뭉게 버리고 싶은 심각한 욕구를 정말 도 닦는 심정으로 간신히 진정시킨 후 가방 속에 쳐 넣는다.
이제 다시 이정표와 로드 맵을 보면서 덧셈 뺄셈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변함없이 마름과 젖음을 계속하고 있는 도로 위를 엘파마는 힘차게 달려간다.

몬테레이 시를 빠져나가자마자 빗길의 커브에서 기록한 아스팔트 위의 슬라이딩.
경미한 사고였으나 그 동안 뉴욕의 중국인 집에서 푹 기합 빠져 있던 나에게
하늘이 날린 명백한 옐로카드.
커브 길에 나와 엘파마는 미끄러져
"어 어 어...........으악~"  반질반질한 급회전의 커브 길에서 나와 엘파마는 거리낌 없는 자유분방함으로 도로를 쓸 듯이 미끄러졌다. 천만다행으로 나의 뒤를 쫓던 차가 안전 거리를 유지하며 서행하고 있었기에 우리 둘은 무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 한참 동안이나 달리지 않아 기합이 빠질 대로 빠져있는 나에게 하늘이 내 보이는 엄중한 옐로카드임에 틀림이 없어!
하지만 내 몸이 상하지 않고 그저 내가 입고 있던 옷만이 시궁창이 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고 하늘에 감사할 뿐이야. 나는 비가 뿌리고 있는 도로변에 한 참 동안 서서 순식간에 길바닥으로 쏟아져 흩어졌던 나의 정신을 주워담고 바로 잡는다. 엘파마는 체인이 빠졌을 뿐으로 여전히 여유만만에 태연자약하다.

하루 종일 산중턱에는 안개 아닌 비구름이 걸려 있어 수시로 비가 뿌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물,물,물 뿐이다.

도로에도 도로변에도 오로지 물,물,물 뿐이다. 침수된 도로와 집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아주 완만한 경사의 도로가 계속되는 가운데 도로 주변은 오직 숲과 소와 말의 방목지일색으로 이따금씩 작은 마을과 가게, 그리고 주유소가 나타날 뿐이다.
평화스럽게만 보이는 이 지역도 역시 전쟁터였다. 이 번엔 앞에 2명, 그리고 뒤에 6명이 탄 3대의 픽업트럭과 또 한 대의 장갑차와 함께 한 순찰대가 도로를 선회한다. 픽업트럭의 짐칸에는 그들의 완전무장도 부족한 듯 빵빵하게 개인소지품이 들어 있는 6개의 배낭도 줄지어 실려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곳의 산과 들판은 풀과 나무로 빽빽한 밀림지대이기 때문에 숲 속으로 튄 마약조직원들을 색출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문득, 2년 전 내가 통과했던 파키스탄의 샌달을 신은 순찰대의 모습이 생생하다. 파키스탄의 지형은 이곳과 정 반대로 풀과 나무가 거의 없는 반 사막, 사막지형이기에 샌달만으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렇게 끔찍스런 순찰대를 두 눈으로 경험하며 자전거를 달리고 있는 이방인 바이커인 나의 마음은 결코 평화스럽거나 유쾌하지 않고 섬찟 섬찟 하기까지 한다.

전국이 비상상태이고, 자전거 여행자는 주요 타깃이다.
또 다시 쏟아지는 비를 피해 달려들어간 도로변에 외롭게 서 있는 구멍가게의 여 주인은 이미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아주 불길한 경고를 아끼지 않는다. 지금 멕시코에선 두 마약조직간에 치열한 전쟁 중인데 전국이 거의 비상상태이다. 이 지역은 아주 위험지대로 해가 지는 8시경부터는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상식화 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나와 같은 국제 바이커들은 주요 타깃이라고 공언을 하지 않는가!!
나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음료수와 비스킷을 먹고 있으나 소화는커녕 목구멍을 넘어갈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멕시코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밤을 보낼 일에 난감해 하고 있다. 도로변엔 오로지 숲과 풀뿐인데 온통 물 천지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린다.
결국 버려진 집이든 안 버려진 집이던 지붕이 있는 구조물을 반드시 찾아야 하는데 찾기가 쉽지 않네. 이 심각한 판국에 총기강도까지 합세한다면 나더러 도대체 어쩌라는 얘기야?! 빗줄기가 약해지자 나는 또 페달을 밟지만 왜 이다지도 페달이 무겁냐?!

국제 바이커에 대한 예우
몇 겹의 구름으로 태양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모르지만 서서히 저녁이 되고 있는 듯,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드디어 첫 번째 시인 리나레스(Linares,가게 아줌마는 아주 위험천만한 도시로 지명을 했던 시)가 나의 앞에 나타난다.
시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궁핍과 황량함이 나의 코를 찌른다. 나는 이미 어두워가는 도로를 달리기보다는 여관을 찾기로 한다. 뉴욕에서부터 5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상태로 오늘 새벽부터 이제껏 달려오지 않았는가. 결코 시원치 않은 시내로 들어서자 거의 유일하게 보이는 호텔간판이 나의 눈을 때린다. 하지만 상당히 큰 호텔로 값이 비싸 호텔 문을 나오려는데 매니저가 그의 방에서 나오며 나를 저지한다.
국제 바이커의 예우로 반 값만 받을 테니 묵고 가란다.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고향 역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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