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자전거의 발전 III - BMX의 탄생
에디터 : 바이크매거진

기어 변속 장치가 개발된 이후부터 경주용 자전거의 겉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기어의 수가 5개로 늘어났고, 기어 변속 장치에는 디레일러가 추가되고 앞기어와 뒷기어의 단수가 추가되어 최대 10단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루이종 보베와 스텔라 자전거 

또한 디레일러 산업이 주로 중소 규모의 제조 회사를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장이 어려워지자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었고 소수의 제조 회사만이 살아남았는데 프랑스에서는 생플렉스Simplex와 위레Huret 만이 살아 남았다.

투르 드 프랑스에 스텔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루이종 보베

위레는 스텔라 자전거에 투르 드 프랑스 디레일러를 장착해서, 1955년까지 프랑스의 유명한 자전거 선수인 루이종 보베Louison Bobet가 연승을 하면서 투르 드 프랑스 대회를 장악해 나갔다.

1949년 영국에서는 기어 변속을 조금 더 쉽게 하기 위해서 기존 디레일러와 같이 탑승자가 기어변속을 위해서 적절하게 변속 케이블을 조정하는 것이 아닌 미리 기어 단수가 설정되어 있는 디레일러가 개발되었으며 이를 일명 허큘레즈 허레일러Hercules Heraileur라고 불렀다.

프랑스의 생플렉스가 기술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서 이탈리아의 캄파뇰로사에서는 평행사변형의 그랑스포르트 라는 디레일러를 출시해서 시장을 장악했다.

캄파뇰로사의 그랑스포르트

이렇게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유럽 자전거 시장의 호황기였으며, 카미나드Caminade, 카미 나르장Caminargent, 르 샤미노Le Chamineau, 로열 패브릭Royal-Fabric, 알렉스 싱어Alex Singer, 르네 에르스Rene Heres등과 같은 자전거 회사들이 이름을 날렸다

자전거를 제작하고 있는 르네 에르스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여행용 자전거 제작회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르네 에르스는 1940년부터 수제 자전거를 제작했고 1976년 사망때까지 최고의 수제 자전거 회사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에르스의 딸인 로즈안느 에르스는 여자 자전거 선수로 8번이나 프랑스 선수권을 제패해서 르네 에르스 자전거의 이름을 널리 알렸고, 르네 에르사 자전거 회사는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51년에 생산된 르네 에르스 자전거
2008년에 생산된 르네 에르스의 자전거

1960년대에 들어서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접이식 자전거가 널리 보급된 결과 도시형 자전거의 생산량이 점차 늘어났고, 1962년에는 자동차 서스펜션을 만들던 영국인 기술자 알렉스 몰튼Alex Moulton에 의해서 16인치 바퀴에 앞뒤 스프링 서스펜션을 장착한 자전거를 출시했다. 
 
알렉스 모튼의 자전거

한편 유럽에서 불던 자전거 열풍은 미국으로도 번져서 1960년부터 1966년에 걸쳐서 자전거의 판매량 380만대에서 600만대로 늘어났고 1970년까지 미국인들은 약 7천만대의 자전거가 팔렸다.
1963년에 슈윈에서 개발한 스팅레이Stingray 자전거는 시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경주용 자전거만이 진정한 자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팅레이 자전거

스팅레이는 특히 내구성과 안정성, 점프 시 충격 흡수력이 뛰어나서 10년이 넘는 동안 미국시장을 독점했다. 1968년에 출시된 크레이트Krate 시리즈는 특히 인기를 끌었는데 이 모델은 앞바퀴가 16인치고, 뒤바퀴가 20인치인 비대칭 구조였고 스프링커 포크를 장착하고 뒤쪽의 충격 흡수 장치를 안장 등받침에 연결했다. 
 
옛날 스팅레이와 현재 생산된 스팅레이

스팅레이가 인기를 끌면서 미국의 중산층에게 BMX(Bicycle Motocorss)대회는 매우 인기 있고 고급 스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 미국에서는 청소년들이 좁고 울퉁불퉁한 도로에 모여 대회를 개최했고 이런 경기가 인기를 끌자 정기적으로 대회를 개최해서 페달크로스라는 대회로 발전했다. 1971년에 대 히트를 한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On Any Sunday이라는 영화에서는 젊은이들이 스팅레이를 타고 경주하는 장면이 나왔고, 이 영화 때문에 미 서부에서 수많은 자전거 대회가 설립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영화 E.T.에 나온 BMX자전거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몇몇 자전거 선수들이 자전거를 타고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쿼터파이프'라는 점프대를 활용하면서, 이런 형태의 자전거 경주를 전문으로 하는 선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BMX점프 묘기

캘리포니아의 보브 하로Bob Haro는 새로운 경기형식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기존 BMX를 그만두고 BMX 프리스타일(freestyle)에 빠져서 자유형 경기에는 맞는 특수 프레임을 제작했다.
1983년에는 미국 프리스타일 연합American Freestyle Association이 설립되어 쿼터파이프와 플랫랜드(평평한 지면에서 묘기를 부리는 종목)라는 두가지 종목으로 구성된 대회를 열었다.

2006년 마운틴 듀 액션 스포츠 투어 장면

플랫랜드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사람은 다베 판데르스펙Dave Vanderspeck였는데 플랫랜드 게임에서 판데르 돌기Vander Roll라는 기술을 처음 선보이기도 했다.
 
판데르 돌기

1990년 BMX 경기가 세계 사이클 연맹(UCI)에 공식적으로 편입될 때까지 BMX는 최고의 호황기를 맞는다. 그러나 산악자전거의 출현과 인기로 인해 BMX의 인기는 다소 추춤하게 된다.
  
한편 일본의 자전거 부품회사인 선투어Sun Tour에서는 1964년 노부오 오자카라는 엔지니어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기울어진 평형사변형의 디레일러를 개발해서 세계 특허를 받게 된다. 같은 해에 일본 동경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선투어의 디레일러가 장착된 자전거가 사이클 경기에 출전하게 되면서 선투어가 세계적인 부품사로 도약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일본 회사들은 단순하게 유럽제품을 복사하는 수준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되며 유럽인들도 일본 자전거 부품업체들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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