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태미의 아침 식사 대접
에디터 : 이호선

미국에 피어 있는 무궁화



주유소 뒤의 벤치에서 오늘밤 머물러도 좋나요?
연일 계속되는 펜실베니아 산행으로 가까스로 유지해 온 나의 체력과 정신력은 완전히 바닥이 났다. 나는 펜실베니아에 들어온 후 단 한 명의 크로스컨트리 바이커는 커녕 단 한 명의 로컬바이커(Local biker)도 만 나질 못했다.
나는 그저 자전거 타고 휘적휘적 이웃집에 맥주 마시러 가는 아저씨와 영희네 집에 가는 철수를 본 것이 고작이다. 내가 그 동안 도로에서 만난 크로스컨트리 바이커들도 펜실베니아를 넘어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의 북미횡단의지를 확인이라도 해보려는 듯 펜실베니아의 산길은 끈질기게 나를 물고 늘어진다. 레이시빌(Laceyville)을 지나자 나는 이미 어둠에 갇혀 버렸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자 걸프(Gulf) 주유소의 네온이 어둠을 밝힌다.
나는 어제 하룻밤 신세를 진 엑손(Exxon)주유소의 경험을 되살려 우선 주유소 뒤편으로 가서 나를 위한 장소유무를 체크한다.
'역시 있구나, 있어!' 뒤편에는 넓지 않은 지붕아래 목제 벤치가 있는데 다가가 보니 그 사이즈가 나의 신장에 맞춘 듯 꼭 맞지 않는가?! 이젠 주유소 직원이나 보스에게 허락만 맡으면 된다.
주유소 안에 들어가 주스와 샌드위치를 하나씩 집어 들고 캐셔 앞으로 간다.
'어라, 웬 다이앤 키튼(Diane Keaton,추억의 백인여자배우)이 여기 서 있는 거야?!'
간결, 명료, 그리고 눈부신 미소를 가진 캐셔 태미(Tammy)에게 나의 간략한 이력을 소개한다.
입이 딱 벌어져 있는 태미(Tammy)와 보스 아줌마에게 야영할 만한 곳의 추천을 부탁하자 난데없는 부탁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선수를 친다.
주유소 뒤의 벤치를 지칭하며 머물러도 좋으냐고 물으니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당근이지!!"

나에게 눈부신 미소와 아침식사를 선사한 나와 동갑내기, 사랑스런 태미(TAMMY)

내가 아침 살테니까 6시에 꼭 저 식당으로 와
벤치를 향해 가고 있는 나를 태미가 불러 세운다.
"나를 따라와 봐, 저기 도로의 바른 쪽 편에 황색 가로등 바로 아래에 식당이 있어. 나는 이곳에서 10까지 일을 하고 내일 아침 6시부터는 저 식당에 있지. 내가 아침 살 테니까 6시에 꼭 저 식당으로 와야 해!"
정확하게 아침 6시에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녀는 마치 지금 떠오르고 있는 태양처럼 찬란한 미소로 나를 반긴다. 이미 식당 안에는 서너 명의 손님이 자리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스위트 캐롤라인(Sweet Caroline)'이 아침을 깨운다.
손님이 한 두 명씩 계속 이어지며 그녀의 걸음과 손놀림이 빨라진다. 하지만 틈틈이 나에게 다가와 이것저것을 묻는 가운데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 사진첩을 나에게 보여준다. 25세 된 그녀의 딸은 이미 결혼을 했고 16세 된 한 덩치 하는 그녀의 아들은 화가가 되고 싶어 미대에 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들의 아버지가 사진에 없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이혼을 하고 혼자 살아가고 있음이다. 그녀는 미대에 가려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며 새벽부터 낮까지는 식당, 그리고 오후부터 밤 10시까지는 주유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가는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맹렬하게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숨가쁘게 살아가면서도 태양같이 눈부신 미소를 확실하게 소유하고 있는 그녀에게 거듭해서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말이야, 도대체 너는 몇 살이냐?!"
"나 말이야? 나는 오십한 살이야!"
"뭐라고, 51살?!? 장난치지마!!"
"정말이야!!!"
"나는 한 30대 후반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나이와 똑 같은 51세라고?!! 기가 막힌다. 51세 아저씨가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고 있다고??! 넌 지금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쓰고 있는 거야!"
그녀는 갑자기 그녀의 두 손으로 나의 두 볼을 마치 어린애에게 하듯 두들긴다.
"너는 예쁜 얼굴만큼이나 참 사랑스러운 여자야!"
그녀는 갓 구운 오트밀 쿠키를 봉지에 넣어 나에게 건네주며,
"내가 너에게 이-메일 보낼 테니까 너도 나에게 이-메일 보내야 돼! 암만해도 너와 나눌 얘기가 너무 많은 것 같아."

하룻밤을 보낸 주유소 뒤의 벤치

1983년 구멍가게와 아가씨의 추억
나는 지금 전라남도의 광주를 지나 대덕을, 그리고 곡성을 향해 걷고 있다. 여느 지방도로와 마찬가지로 전혀 포장되어 있지 않아 지나는 차량이 많은 낮에는 어김없이 모래와 흙먼지를 뒤집어 써야 한다. 밤이 되야 비로소 한가롭게 걸을 수 있다. 주위에 민가나 인적이 전혀 없어 고요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산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걷다가 도착한 곳이 옥과(玉果). 어둠과 고요함 속에 들리는 소리라곤 오직 나의 발자국 소리뿐. 나의 발자국소리는 너무도 선명하고 투명하게 나의 고막과 심장 속으로 뚫고 들어와 나 자신이 섬찟섬찟 놀란다. 내가 고독한 여행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나는 결코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아.
내 머리 위로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내 앞 길을 환하게 비추어 주고 있는 환한 달이 있고 나와 똑같은 배낭을 지고 나와 함께 이 길을 같이 가고 있는 또 한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친구가 있지. 그리고 내가 무거운 고개를 들 때마다 나에게 힘내라고 윙크하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 수많은 별들이 있잖아.
도중에 문재를 넘는다. 옛날의 우리 선조들도 괴나리봇짐을 짊어진 채 죽장에 삿갓 쓰고 이 길을 걸었으리라.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길을 걸었을까?? 아쉬운 것은 다름 아닌 고개 마루턱에 주막이 없다는 것으로 시원한 한 대접의 막걸리가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밤10시경 아주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가 지치고 굶주린 나그네를 멈춰 세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라면과 몇 개의 과자부스러기가 고작인 초라한 구멍가게다. 탁자가 하나 놓여있고 의자가 두어개 있을 뿐이다. 이 첩첩 산골에 난데없이 젊은 아가씨가 나를 맞는다.
나는 부실해 보이는 의자 위에 조심스레 앉아 나의 지친 몸뚱이를 의탁하고 라면을 시킨 뒤 막걸리를 청한다. 한 되라고 하지만 되 반은 되어 보인다. 큰 주전자인데 거의 가득하다.
대학생을 아주 오랜만에 보는 듯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많은 것을 묻는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12시 가까이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하루 종일 12월의 춥고 피곤한 길을 걸었던 나는 뜨거운 라면과 막걸리에 마치 뼈가 없는 해파리처럼 온몸이 풀어져 버린다. 지금 일어서지 않으면 그대로 땅바닥으로 무너져 내려 버릴 것만 같다.
내가 이를 악물고 일어나 배낭을 메려고 하니 그녀는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다. 순간, 방문을 박차고 나타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호통을 친다.
미안한 마음에 잽싸게 가게를 튀어나오는 나의 등 뒤로 그녀는 큰 소리로 외친다, 바로 집 뒤에 초등학교가 있다고.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다. 정문을 들어서자 그저 이층 콘크리트건물에 교실이 10여 개 정도에 불과한 교사(校舍)가 보인다. 교사의 오른쪽으로 조그만 집이 있고 가는 불빛이 힘겹게 조그만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아마도 이 학교의 소사(小事)가 저 곳에서 기거하고 있을 거야. 이렇게 늦은 시간, 그는 자고 있을 것이 뻔하고 내일 아침 그가 일어나 나오기 전에 나는 이곳에서 사라지면 되는 거야.
조그만 운동장을 가로 질러 학교 건물로 다가간다. 현관문을 흔들어 보니 잠겨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 설 수 없지. 건물의 뒤로 돌아 창문을 하나하나 체크해 본다. 그럼 그렇지, 하나가 열려 있어. 열려 진 창문을 넘어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참 미묘하지만 밖에서 자다간 얼어 죽는다. 짐을 줄이기 위해 텐트마저 포기를 하고 침낭 하나만으로 이 여행을 하고 있음에도 놋쇠의 석유버너와 코펠, 겨울 옷 등으로 내 배낭의 무게는 10여kg정도는 됨직하다.
날이 갈수록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힘은 빠져가고 있으나 짐의 무게는 전혀 변함이 없으니 죽을 맛이다. 어깨가 부서져 내리 것 같다. 배낭을 벗어 쓰레기통에 쳐 넣고 싶은 심정이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온 듯 나는 천진한 소년이 되어 칠판 앞에 있는 교단 위를 서성이다가 교탁 앞에 서서 교실을 둘러본다. 교실 뒤쪽에 있는 학생들의 솜씨자랑을 위한 공간에는 어김없이 그림들이 걸려있고 교실내의 여기저기에는 종이를 오려 만든 많은 종류의 동물모양의 종이 위에 많은 표어와 지침 등이 쓰여 있다.
나는 서울의 '사직 동'에 있는 '매동'초등학교를 다녔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와 공작(工作)을 좋아했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항상 다락방에서 죽은 듯이 엎드려 그림을 그렸어.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뛰어다니며 노는 것 보다는 이렇게 혼자서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나는 좋아.
'매동'초등학교에서는 학교의 미술대표가 되어 전국미술대회를 매 년 몇 번씩 빠짐없이 참가 했지. 딴 학생들이 모두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을 때 나는 남산에서, 경복궁에서, 창경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단 말이야.
교단 위에 침낭을 펴고 누워 침묵의 소리를 듣는다.
밤새 추웠으나 막걸리 덕인지 잘 잔 것 같다. 새벽 5시경, 어둠 속을 움직인다. 창문을 여니 앙칼진 바람이 나의 얼굴을 할퀸다. 창문을 넘어 교실을 나오자 대지 위에는 하얀 주단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눈이 왔다는 얘기야. 간간히 가는 눈발이 나의 얼굴을 간질인다.
하얀 주단 위에 무참히 구멍을 내며 운동장을 건너 정문을 지난다. 어제 짧은 한 겨울 밤의 추억을 만들었던 그 가게에 들어가니 그 아가씨가 놀란 눈을 하며 나를 반긴다.
그녀는 오늘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각 내가 머문 학교에 들어와 나를 찾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녀는 교사(校舍)주위를 몇 번이고 돌아보았으나 나의 텐트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침대접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교실 안에서 자고 있었기에 그녀가 나를 찾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된장을 듬뿍 넣어 끓인 우거지 국과 함께 큰 밥 사발 수북하게 밥을 먹고, 나는 눈 덮인 하얀 시골길을 따라 곡성으로 향한다.
(1983년 12월)


세상이라는 투명한 거울 앞에서 결국 나는 나의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는 '때 덩어리'를 발견하고 소스라친다. 나는 여지껏 나만의 골방에 틀어박혀 앉아 나는 완벽하게 깨끗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아 왔는데………
'Good & Bad'의 명제는 결국 '이해 & 불 이해'의 그것 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그저 자신의 역(役)만 고집하고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의 역이 되어 그저 머리 속으로나마 상대 역(役)의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 인생은 연기이고 우리는 다양한 역을 소화, 내지는 다양한 역할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할거야.
2년 전, 북반구 세계일주여행의 최후의 여행지인 일본에서 부관 페리를 타고 부산에 내려 진해, 진주를 거쳐 서울을 향해 달려 올 때, 쏟아지는 비를 피해 시골의 한 시내의 라면 집에 들어가 떡라면을 시키고 스포츠신문을 읽고 있는 데, 40대 주인 아줌마가 혼잣 말처럼 내 뱉는 말,
"쯪쯪, 비가 오는 데 집에 들어 앉아 있지 저게 무슨 천작 질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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