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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쇠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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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이런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면!
호수에서는 물안개가 피었고, 기러기는 아침을 노래했다. 나그네가 고대광실이나 황금투구에 대한 탐욕을 잊어버릴 수 있는 청명한 아침이다. 강따라 낮은 곳으로 가는 길목에서 맨발로 호수를 밟을 수 있는 아침이다.
532번 충청북도 지방도로. (주석, 도로번호의 끝자리 수가 홀수이면 남북을, 짝수이면 동서를 오가는 도로임.)
충주호의 북쪽 언저리를 감아돌아 숨겨진 오지 마을을 연결하고 있는 도로이다. 금성에서 서쪽으로 약 40km가 아직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이다. 고도차 100~200m를 넘나드는 고개가 매 km마다 도사리고 있었고, 길에 파여진 구덩이를 메우려고 깔아놓은 자갈이 끝 없이 이어지는 길이다. 고통과 우려, 낭만과 재미가 매 km마다 교차하는 황토길이다. 먼지가 풀풀 날렸고 땀은 등을 타고 내렸다.
몇 시간째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배가 고팠다. 점심을 사 먹으려던 계획은 오지에서는 무용이었다. 식당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밥과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해도 물이 없었다. 남은 물이라고 하여도 각자 물통에 들어있는 마실물이 조금 있었을 뿐이었다. 뜸뜸이 나타나는 오지 마을 어느 모퉁이에서 새로 지은 듯한 가옥을 발견하고는 물을 얻으려고 주인을 찾았다. 인심 좋은 집주인이 자기 집 베란다에서 취사를 해도 좋다기에 얼씨구나 하고 즉석에서 밥을 하고 라면을 끓였다. 꿀맛이었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단돈리 159번지 김기웅(010-9017-0761)씨 댁이다. 앞으로 민박을 칠 예정이란다. 호수가 바라보이고 쉬원한 바람이 불었다.
돌담과 우물이 들어섰던 마당이 그대로.... 떠난 자리 |
인심 좋은 김기웅씨 댁 베란다에서 취사를 했다. |
투덜되는 자갈길을 멀리 달려오면서 걱정스러운 게 있었다.
오이쨈님의 트레일러 연결장치가 또 고장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하나요, 김남중 기자의 패니어 고정장치에 대한 불안이 둘이다. 김기자의 패니어는 고장이 나더라도 짐을 여러 트레일러에 나누어 실으면 해결이 되겠지만 오이쨈님의 트레일러 연결장치의 고장은 수습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을 염려하여 어제 연결부분을 보조용 슬링 테잎으로 여러 번 묶어 보강은 하였지만 내리막에서는 괜히 마음이 쓰였다. 다행스럽게 트레일러는 잘 따라와 주었다.
엉뚱하게도 내리막 길에서 사고가 났다. 내 핸들바백에 넣어두었던 카메라가 백이 통채로 떨어지는 바람에 카메라 렌즈가 망가진 것이다. 80-200랜즈를 따로 갖고간 게 있어서 랜즈를 교체하였지만 그 동안 좋은 풍경을 많이 담아주던 28~75 렌즈를 잃게되어 아쉬웠다.
대원들 중에서 경험이 적은 바람개비님이 예상보다 훨씬 잘 달려주어 고마웠다.
아무리 긴 고개라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느리게라도 꾸준히 오르기만 하면 먼저 간 사람과 불과 5분이내의 차이로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자전거에서 내려서 쉬거나 걷다보면 선두와 20~30분이나 그 이상 늦게 도착하게 된다.
임도 수준의 자갈길을 가면서도 바람개비님이 언덕을 모두 쉬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올랐다. 팀의 평균속도가 높아졌다.
낮 3시 경에 지긋지긋한 자갈길을 벗어나 포장도로를 만났다.
어찌나 기쁜지! 낭만이 두 배로 늘어났다. 평균속도를 시속20km로 끌어 올려 동량-청주에 닿으니 저녁6시. 굶주린 배에 저녁을 거하게 먹자고 고깃집에 들었다. 김남중 기자는 충주에서 귀가하기로 하여 버스터미널에서 헤어지고 우리는 김기자가 추천한 가금에서 야영을 하기로 하였다.
버스터미널을 떠날 때에는 완전히 어두웠다. 저녁을 먹었으니 저녁 취사를 할 시간도 벌었다고 하면서 모두 전조등을 밝혔다. 이번 여정에서 처음으로 야간 라이딩을 하였다. 탄금대를 돌아 가금의 중앙탑공원까지 12km를 단숨에 달렸다.
스치는 밤바람이 두어 잔 마신 신선주 덕에 상큼하였다.
식당 종업원이 알려준대로 중앙탑공원은 야영을 하기에 좋았다.
식수와 화장실이 가까운 잔디밭에 천막 집을 지었다. 10m 동쪽에 남한강이 유유히 흘렀다.
신혼인 김기자는 떠나면서 와인 두 병을 사 주고 갔다. 자리가 넉넉한 보라매님의 텐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와인을 나누었다.
"사람은 같이 살아 보아야 안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남남이 같이 살아볼 기회는 무척 어렵다. 그러나 캠핑은 같이 살아볼 좋은 기회이다. 하루고 이틀이라도 같이 살아보면 상대를 해석하고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폭이 넓어진다. 그래서 캠핑을 함께 하고나면 가족처럼 친해지기 마련이다. 쇠말패의 끈끈한 정이 캠핑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강이 늙지 않는 것처럼 행복도 늙지 않는다.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보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더 늦게 늙을 것이다. 오늘처럼 아름다운 길을 자전거로 달린 사람들은 강물처럼 늙지 않고 오래 오래 살아갈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