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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이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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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의 날씨는 한국과 너무 똑같다. 아침엔 쌀쌀하고 낮엔 더울 정도로 따뜻하다. 3년 전 (2007,8월)북경을 향해 이 길을 달렸을 땐 지옥 속의 질주였다. 2008 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전국의 도로는 신설 내지는 보수공사로 흙먼지가 천지를 뒤덮었다. 도로변에 쌓인 먼지로 앉기조차 불가능했다.
천진, 북경을 비롯한 하북 지방에서 하늘의 별을 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중국 땅에 두 발을 내 딛자마자 나는 뱃속 편하게 중국인 뱃속이 되기로 순순히 타협을 보았다. 나의 끈질긴 생존을 위한 적응본능은 또 다시 확실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 했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밥짓는 냄새가 진동하던 우리의 정든 땅.
고기를 삶고 찌고, 육수를 위해 잡뼈를 욹어내는, 그리고 야릇한 향기의 소스냄새가 나의 비위를 잠시 비틀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 그것이 내 고향의 그것처럼 아주 구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북경 시청 위생과 소속의 청소 차량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는 '엘파마' |
김 빠지고 싱거웠지만 나는 또 Geat China, great 모주석 앞에 다시 서고 말았다. |
고기를 삶고 찌고, 육수를 위해 잡뼈를 욹어내는, 그리고 야릇한 향기의 소스냄새가 나의 비위를 잠시 비틀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 그것이 내 고향의 그것처럼 아주 구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
중국의 도로는 여전히 심각한 경적의 공연장. 거의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고 태연하게 눌러대는 중국 운전자들의 만행. 그것은 분명 대 국민 테러. 중국을 여행하며 나는 또 한국욕의 달인이 된다. 한국에서 주저하던 욕들이 무차별, 습관성의 경적 앞에 조건반사적으로 튀어 나간다. 서글픈 반격이다. 텅 빈 당연이 꽉 찬 의식이 되고 다시 꽉 찬 당연이 되기까지 아직도 수 많은 세월이 필요 할 것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쉬지 않고 불어대는 황사바람. 어차피 고비를 넘으려면 이 같은 예행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리라.
창핑(昌平)을 지나자 마자 경치가 바뀐다. 거의 단조로운 일직선의 지평선에서 변화무쌍한 많은 굴곡의 산들이 나의 앞을 가로 막는다. 기온은 떨어지고 날씨는 심술궂다. 굽이굽이 넉넉치 않은 산길을 오직 트럭들만이 요란스럽다.
양칭(Yangqing)으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간다. 좁은 2차선에 초대형 트럭들이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교차하며 나를 위협한다. 위험천만한 어둠 속을 나는 천천히 걸어간다. 밝은 달 아래 높이 걸려있는 초대형 다리 밑에서 나는 우연찮게 흐르는 시냇물을 발견하고 주저 않는다. 차디 찬 물이지만 하루의 먼지를 씻어 낼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줄을 잇는 대형트럭들의 교차하는 라이트와 경적, 그리고 엔진소리를 자장가 삼기로 결심을 하고 잠을 청하며 얼렁뚱땅 하룻밤을 때운다.,
러시아, 몽골에서부터 내려오는 중국이라는 거대 용광로의 화력 지원용 물자들. 초대형 트럭들의 행렬이 끊어지지 않는다. |
내몽고에 가까워오면서 전형적인 건조지대가 시작된다. |
고비사막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
세수를 잊은 나에게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는 행복함에 뱃속의 포만감까지 선사했던 황사+흑사(석탄가루)속의 젊은 천사들인 20대초반의 부부식당. |
새벽이라 쌀쌀하다. 가벼운 몸풀기를 하고 어제와 전혀 변함없는 길을 걷는다
양치질과 큰일을 느긋하게 보려고 중국석유(Sino Pec) 주유소의 물이 있고 깨끗한 신 화장실을 향하는 나의 앞을 한 덩치 하는 여자직원이 막고 서며 손으로 가르키는 곳은 반대편 구석에 있는 구 화장실. 들어가 보니 수도꼭지조차 없고 나란히 뚫려 있는 변기에는 하늘로 치솟은 변의 탑이 찬란하다. 그녀의 단호한 판결에 승복을 하고 나는 떠난다. 그녀의 특권처럼 보이는 그것도 작은 시간의 흐름이 지난 후엔 그저 하품 나는 보잘 것 없는 일상이 되고 말거야. 그저 'No problem!'과 'Thank you!'로 너무 충분한 그 때가 곧 올 거야.
양칭(Yangqing)을 지나면서 점점 거세지는 바람. 천진과 북경을 지나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나를 스쳐 지나가던 자전거와 30cc 오토바이 겸 자전거들의 제 1선이 완전히 붕괴되며 자취를 감추고 중량급의 오토바이만이 거센 바람과 맞서며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고 있을 뿐으로 곳곳에 많은 풍력 발전기가 포진하고 있다. 양칭부터 장지아코우(Zhangjiakou)까지 석탄광산이 자주 출몰하며 황사에 흑사까지 나의 숨통을 조여온다. 코를 풀면 단단한 퇴적암 두 개가 나의 코에서 굴러 떨어진다.
중국 땅에는 없는 것이 없고 안 되는 것이 없다. |
4인 방Out-laws(무법자). 보면 볼수록 경이롭다. 핸들 위에선 오성기가 힘차게 나부낀다. |
장베이(Zhangbei)까지 가는 길은 이미 완전한 건조지대로 바싹 말라 있다.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데 반대 편에서 바람을 가르며 달려오는 4인방 라이더들. 나를 가로 막으며 일제히 정지한다. 그들은 국방색 인민 해방군의 긴 외투를 입고 중국산 진청(Jincheng)125cc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모자와 마스크를 벗으니(물론 헬멧은 없다.,) 50,6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그들의 오토바이에 실려있는 비닐봉지의 짐들이 야영장비들이라고 한다. 그들을 향해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나에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신 나를 향해 나의 동작을 반복한다. 그들은 바람을 부수며 중국대륙을 누비는, 결코 중국 땅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모토 바이크 라이더 들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의 경의를 표하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모험의 불모지인 중국에서 기적같이 피어난 도전의 할미꽃임에 두말이 필요 없다.
메마름과 황량함이 계속되는 가운데 식당을 찾는다. 타는 태양아래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흙 집 속에 숨어 버렸다. 겨우 찾아 배를 움켜쥐고 들어간 식당인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나는 여전히 배고픔을 호소하며 그들을 재촉한다.
"넝 츨 판?!(밥 먹을 수 있는가?!)" 그러나 모두들 굳은 표정으로 그 누구도 나를 상대해 주지 않는다. 한참 만에 한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윗 쪽을 가르키는데 그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 그렇구나?!" 여기는 다름아닌 초상집이다. 문득 나는 2007년 중국을 종, 횡단 할 때 많이 경험했던 광경들을 되새긴다.
이곳은 초상이 나면 우리나라 식품가공회사의 직원들이 자주 쓰는 흰색 위생모에 옷도 아니고 그저 흰색 천을 양 어깨에 걸치고 끈으로 허리에 묶는다. 하마터면 한 대 얻어맞을 뻔 했다. 그저 나의 배고픔에만 집착한 나머지 나의 두 눈은 음식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정말 모르겠는데, 나를 스쳐 지나가는 많은 그들이 나를 보고 한결같이 'Hero(영웅)'라고 하니 어쩌면 좋아?^^ |
나는 이미 내몽고에 .고비의 끝자락이자 시작이겠지. |
시시각각으로 날씨는 전형적인 사막의 그것으로 변하며 심한 일교차를 보인다. 밤하늘은 연일 무수한 별들의 아우성으로 어지럽다.
끝없이 이어지는 단조로운 평지를 달리는 동안 눈꺼풀의 무게를 도저히 감당할 길 없는 심각한 '졸음 운전'이 계속된다. 이미 나는 내몽고에 들어 와 있다. 차량의 번호판이 모두 "몽(蒙)"이다. 내 몽고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몽골 인들은 자신들이 칭키스칸의 후예임에 대단한 자부심과 함께 중국과 중국인에 대단한 혐오감을 품고 있다.
몽고와의 국경이 가까워질 수록 집들은 시야에서 사라지며 주위는 텅 비어간다. 들리는 것이란 오직 바람소리 뿐...
몽고와 국경을 이루는 중국 최후의 시(市)인 어렌호트(Erenhot)를 코앞에 두고 졸음운전 중 무언가와 정면충돌을 했다. 순식간에 엘파마가 무릎을 꿇는다. 과적재차량이 흘리고 간 벽돌에 부딛치면서 태양의 열기로 팽팽해진 튜브가 터진 것이다. 그동안 천진에서부터 일주일을 정말 씩씩하게 달려온 엘파마가 수 차례에 걸친 졸음운전방지를 위한 옐로 표지판의 경고를 무시한 나의 실수로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않은 것이다.
"에이참, 그래서 과적차량이 문제라니까?!!"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막무가내로 들이 밀었던 대지 위의 유일한 집에서 받은 환대. 소 고기와 야채의 볶음, 그리고 흰 쌀밥에 나는 또 한 번 나의 생존에 감사한다. |
수많은 졸음운전방지를 위한 노란 경고 표지 |
수 차례에 걸쳐 졸음운전방지를 위한 옐로카드를 무시한 채 달리다가 트럭이 흘리고 간 벽돌에 부딪혀 첫 펑크를 기록. "과적재는 사고의 원인, 우리 모두 과적재를 삼갑시다!" |
드디어 중국 최후의 땅, 최후의 도시인 어렌호트에 입성한다. 두 마리의 초 대형 공룡이 서로 교차하며 개선문을 이룬다. 도시는 나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깔끔한 현대식건물이 즐비하고 곳곳은 치열한 건설의 현장으로 많은 건설노동자들의 손과 발이 바쁘다. 이 황량한 대지 위에 중국은 원대한 동북공정의 교두보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섬찟함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천천히 시내를 배회하던 중 또 다시 엘파마가 앞으로 엎어진다. 펑크로 튜브를 교체한 지 한 시간도 안 지나서 또 다시 펑크라니?!! 역시 불행은 연타로 온다고 했던가! 나에 대한 환영식이 너무 요란하군.
이번엔 사막의 대자전거 지뢰인 가시이다. 온 몸의 기운이 빠져 나는 여관을 찾는다. 지난 일주일 동안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0원에 괜찮은 여관, '행복여관'에서 그간의 먼지와 노고를 샤워와 함께 시원하게 흘려 보낸다.
서울 시청 앞에서 시작해서 이 곳까지 1055km의 여정이었다.
두 거대공룡이 만든 아주 색 다른 개선문은 바로 어렌호트의 입구이다. |
중국 국경을 넘어 몽골을 향하는 소련 짚 속에서 함께 포개졌던 8명 중 2명의 몽골인이다. 마스크를 한 '운드라'(그녀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와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청년 '무기'. 두 명의 사연은 나중에 공개될 것이다. 이들에게서 속성으로 사사 받은 3단어의 몽골 말 '타세노!-(안녕하세요!), '비 서동수공.-(나는 한국인입니다.) '바이르라-(고맙습니다) 이 3 단어는 고비사막을 넘는 동안 나의 삶을 지탱해 준 서바이벌 몽골어였다. |
오늘이 5월 16일로 일요일이다. 불과 수 km 떨어진 곳에 오성기 휘날리는 중국국경이 딱 버티고 있다. 국경경비원 앞으로 많은 차량들이 줄을 서고 있는데 대부분이 몽골의 번호판이 붙어있는 구 소련 짚으로 작은 공간에 많은 보따리들로 가득하다. 모두가 쌀을 비롯한 생필품으로 중국에서 사가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저지선을 넘으려는 나를 가로막는 경비병. 안 된다는 제스처이다, 영어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에게서 나의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정확한 상황파악을 하기엔 역부족임을 뼈저리게 깨닫고 나서 나는 바리케이트 근방에 쪼그려 앉아 상황분석을 한다.
그저 수백m정도에 불과한, 중국국경을 넘어 몽골국경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차량으로 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몽골차량을 얻어 타고 가야 한다. 하지만 거저는 결코 없다. 몽골인들은 나와 같이 도보나 자전거로 넘으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받고 넘겨준다. 어떤 이는 100미국달러를 요구하기도 한다.
나는 결국 50달러에 합의를 보고 많은 생필품 보따리와 성인 7명이 포개어 타고 있는 소련제 소형 짚에 올라 또 다시 포개진다. 자전거의 짐은 분리해 짚 안에 어거지로 끼워놓고 자전거는 짚의 뒤에 아슬아슬하게 매달았다. 국경입구의 관리는 차량당이 아닌 사람의 머리수로 6원이라는 통행세를 받는다. 입국관리소에서 사람들이 절차를 거치는 동안 차량은 별도의 관리들로부터 짐 검사를 받는다. 길지 않은 공동구역을 차를 타고 건너가 몽골입국사무소에 도착하면 또 다시 똑 같은 절차가 반복된다.
구름이 갑자기 비가 되어 쏟아진다. 힘겨운 월경(越境)이다. 몽골 측 사무실을 빠져 나오자 짚의 승객들은 각자 뿔뿔이 헤어져 그들의 길을 간다. 중국측 국경도시인 어렌호트와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는 몽골 측 국경마을 어렌호트. 그저 황량함 속에 모래바람만이 나를 반긴다. 바로 옆에 울란바타르를 향해 달리는 열차의 역이 있다. 몽고 종단열차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자, 그럼 1060km지점에서 몽골이 시작된다.
마을을 지나자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래뿐인 도로 아닌 도로.
그저 모래밭에 차 바퀴 자국이 몇 개 있을 뿐인 것이 바로 도로다.
그 동안 달렸던 중국의 아스팔트가 한 여름 밤의 달콤한 꿈처럼 아스라하다.
몽고의 울란바타르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 보려던 생각은 시작부터 무모한 꿈으로 판결이 난다.
그나마 힘겹게 굴러가던 자전거가 내가 올라탐과 동시에 요지부동이다.
모래 속에 우리 모두가 가라앉고 만 것이다.
아스라이 보이는 몽골 측 국경마을 '어렌호트'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고비사막의 '무(無)도로'의 도로. 아주 단순 명료하게 고비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가?! |
밝혀지는 고비의 전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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