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디터 : 최용석
|
꾸뜹 미나르를 배경으로 한 컷 |
오늘의 일정은 자전거 조립이다. 조립하는 일은 별 것 아니지만, 혹시나 예상 못했던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일찍부터 공구를 손에 들었다. 뚝딱뚝딱. 시환, 정환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이 자전거 여행 경험자여서 자전거 조립하는 일 정도는 '식은 죽 먹기'.
하지만 순조롭게 끝나는가 했던 일에, 역시나 문제가 생겼다. 인도까지 운송되는 과정에서 두 대의 자전거가 고장 난 것이다. 정환이의 자전거는 페달이 망가졌고, 성민이의 자전거는 뒤 디레일러(기아 변속부)가 안쪽으로 휘었다. 자전거를 분해해서 포장할 때, 페달과 뒷 드레일러를 분해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설마'라고 생각한 일은 언제나 '역시나' 가 되어서 돌아 오는 것 같다. 부주의에서 시작된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우리는 급하게 델리 인근에 있는 대형 자전거 가게를 수소문한다. 인도에는 우리가 가져온 MTB(산악자전거)가 흔치 않기 때문에 원하는 부품을 찾기 힘들 것이리라. 하지만 발로 뛰면서 열심히 수소문한 결과, 다행히 대형 자전거 마켓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시환, 정환, 성민이 직접 자전거를 가지고 마켓으로 출동. 하지만 이곳에서도 휜 드레일러를 교체하지는 못하고, 응급 조치로 바깥쪽으로 피는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시술 방법은 오로지 힘! 이 문제는 원래 전문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다소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놀랍게도 결과적으로는 No problem의 상황이 연출 되었다는 성민이의 증언. 사실 우리도 휘어버린 디레일러를 원래의 각도로 되돌리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을 걱정해서 자전거 마켓을 찾은 것이었다. 디레일러를 원래의 각도로 돌려놓은 이가 진정한 장인인지는 확인 되지 않았지만, 덕분에 우리의 여행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페달 문제는 여분의 페달을 사고, 페달을 교체하는 공구까지 구입함으로써 상황 종료. 우리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조립이 완성된 내 자전거, 그의 이름은 재두.(한국과 일본을 여행한 베테랑이다) |
부러진 페달. 페달을 분리하지 않아서 화물 운송 중에 무언가의 무게에 눌린 것 같다. |
자전거가 완벽하게 셋팅 되었지만 출발 전 해야 할 일이 한가지 더 있다. 인도에 있는 한국 기업과의 방문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뜬금없이 왜 한국 기업인가? 우리 여행은 단순히 자전거만 타기 위함이 아니다. 만리행은 10여 년에 걸쳐 중국의 각 지역과 티벳, 일본, 유럽 등으로 원정을 다니는 동안, 매번 특정 주제를 가지고 일정을 기획해왔다.
이번 인도팀의 주제는 '인도에 있는 한국 기업탐방을 통한 현지 시장의 발전 가능성 엿보기'이다. 현재 인도와의 CEPA(Comprehensive Economics Partnership Agreement의 약자, FTA와 같은 범주로 이해 가능) 발효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러한 시기에 직접 몸으로 부딪혀 가며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우리 여행의 목적이다.
델리 인근 위성도시라 할 수 있는 노이다(NOIDA)에는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확고한 기반을 잡은 상태이다. 현대 자동차 역시 국위선양의 대표주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지만, 대규모 공장이 인도 남부의 첸나이(CHENNAI)에 집중되어 있어서 거리상 방문 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외에도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인도에서 활약하고 있다. 우리는 우선 인도에서 대표적 성공모델인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견학함으로써,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느껴 보기로 했다.
우리는 운 좋게도 삼성전자 공장 견학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1월 6일 12시에 노이다에 위치한 삼성전자 공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덕분에 우리는 기존 일정에서 이틀을 추가로 델리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기존의 일정보다 델리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져서 주변 도시로 관광을 가기로 결정했다. 목적지는 바라나시(힌두교의 성지로써, 흔히 인도하면 떠올리는 갠지스강에서의 목욕의식과 시체를 태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수기여서 구하기 힘든 기차표를 웃돈까지 얹어서 구입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물갈이 시작. 모두 설사와 몸살 기운으로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몸 상태로 바라나시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발 내일 아침에는 컨디션이 좋아지기만을 기도해 본다.
새벽 2시다. 복통과 몸살 기운에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는 새해를 축하하는 폭죽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알 수 없는 괴성이 들려온다. 시끄러운 소리에 두통까지 느껴진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선잠을 자는 중에 어느 샌가 사람들의 소리가 사라졌다. 이제는 고요한 밤을 맞이하나 했는데, 뒤늦게 개들도 새해를 축하하는지 개 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010년 1월 1일
해가 밝았지만...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시간이 가까워 오지만...
결국 우리 세 명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어제 어렵게 구한 기차표(5명 왕복 기차표)는 50%(약 4000루피=약10만원)라는 거금의 수수료를 떼이고서야 환불 받을 수 있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허공에 돈을 뿌렸다.
'나쁜 놈들, 잘 먹고 잘 살아라!'
괜히 여행사에 화풀이다.
비교적 건강상태가 양호한 시환과 성민은 델리 투어를 떠났다.
'간호나 좀 해줄 것이지. 둘 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사실 있으면 귀찮기만 할 텐데, 마음으로 투정 한번 부려 본다.
세명이 나란히 누워서 물갈이의 고통을 함께 나눈 방 |
모두의 증상은 공통적으로 몸살기운과 설사 및 탈수 증세. 혜진이는 옵션으로 두통까지 호소한다. 물갈이는 원래 이렇게 아픈 것인가? 셋이 한방에 나란히 누워서 끊임없이 잠만 잤다.
역시 집 나와서 아픈 것은 서럽다. 설상가상, 나는 점심 즈음에 간단한 먹거리를 사러 밖에 나갔다가 선자세로 똥까지 지렸다. 이건 지상 최대 완전 굴욕이다. 분명히 방구를 끼려고 관략근을 살짝 열었을 뿐인데, "찍"하는 소리와 함께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
'빌어먹을 관략근. 방구에 속아 넘어 가다니..'
제발 바지까지 새어 나오지는 않기 만을 기도하며, 꿋꿋하게 먹을 거리를 사서 숙소로 복귀, 음식을 침대에 던져놓고 화장실로 직행. 혹시나 냄새를 풍길까 두려워서 초고속으로 이동한다.
'부끄럽다... 내 인생 최대의 굴욕....'
대원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한다. 먼 훗날 언젠가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으리.
감기약과 지사제를 번갈아 먹으며 20시간 동안 누워있었다. 아무리 자도 졸리다. 내일은 괜찮아져야 할 텐데..
그렇게 자고도 밤이라는 이유로 다시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