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티븐 맥그레고(Steven MacGregor)
"내가 매번 자전거에 탄 어른을 볼 때마다, 나는 더 이상 인간 경주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다" - H. G. 웰스
자전거의 발명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에서 일곱 번이나 우승한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의 말에 따르면 자전거 경주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한번도 높은 인기를 누린 적이 없다. 알프스나 피레네 산맥을 넘어 자전거를 타는 행위 - 1000W에 이르는 힘을 내야하고 팀 타임트라이얼에서는 시속50km이상으로 타야 하는 - 와 같이 자전거 경주 선수들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다.
자전거 디자인은 흥미로운 일이다. 자전거 경주 선수들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은 자전거 차체 디자인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과 같다. 그 다양한 의도와 목적에도 불구하고 자전거의 기본 디자인은 5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고 있다. 소재와 기계 구조의 혁신, 그리고 다양한 반복을 통해 진화할 수 있는 디자인 접근법만이 최대의 해결책일 뿐이다.
1493년 다빈치가 자전거와 비슷한 기계 구조를 스케치한 적이 있지만, 독일 발명가 칼 폰 드라이스(Karl von Drais)가 1818년에 자전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이 후 첫 번째 페달 자전거(아래 사진 2)는 스코틀랜드의 대장장이 커크패트릭 맥밀란(Kirkpatrick Macmillan)이 1983년 발명했다. 그리고 19세기 말 두 가지 주요한 혁신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전거를 탄생시켰다.
영국의 로버 자전거회사(Rover Cycle Compan)는 초기 자전거들의 특징인 큰 앞 바퀴와 동력전달장치 대신에 뒷바퀴가 체인 구동 장치가 장착된 더 안전한 디자인의 자전거를 처음 생산한 회사 중에 하나이다. 이후 1880년대 후반 또 다른 스코틀랜드 사람인 존 던롭(John Dunlop)이 압축공기를 넣은 고무 타이어를 제조한 것 역시 자전거의 역사에 있어 큰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존 던롭 덕분에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보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당시의 열악한 도로 사정과 딱딱한 타이어로 인한 심한 흔들림 때문에 사람들이 자전거에 붙인, ‘뼈 분쇄기(bone-shaker)’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시간은 사실상 멈추었다; 비록 복잡성과 정교함이 증가해왔다고 하더라도, 자전거는 거의 120년 동안 똑 같은 핵심 디자인을 유지해왔다.
사진1. 1943년의 다빈치의 스케치 사진2. 맥밀런의 페달 자전거(크랭크를 가진 보다 진보된 페달은 나중에 프랑스에서 발명되었다.) 사진3. 체인 구동 장치가 없었던 1870년대의 초기 자전거는 커다란 앞 바퀴와 수동변속기가 필요했다.
전체로서의 자전거와 부분으로서의 자전거
오늘날 자전거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 우선 기본적인 요소는 미국의 에어본(Airborne)과 스페인의 오르베아(Orbea)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자전거 프레임과 이탈리아의 캄파뇰로(Campagnolo)와 일본의 시마노(Shimano)가 경합을 벌이고 있는 변속장치, 키시리움(Kysirium)과 US 헤드(US HED)가 선두주자로 나선 바퀴가 있다.
그 외 오늘날 자전거를 구성하는 주요한 장치들은 페달과 안장, 의자받침, 핸들바, 체인, 카세트, 체인휠, BB(바텀 브라켓), 브레이크, 바퀴통, 봉, 헤드셋, 포크(forks) 등이 있는데, 이 부품들은 모두 시스템의 각 부분에서 능률을 최대한도로 이끌어내기 위기 위해 고도로 전문화되고 정확하게 설계된 요소들이다.
특히 사이클링에 있어서의 자전거는 다른 접근법을 갖고 사고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 일반 자전거는 인간의 보행을 보다 효율적이고 안락한 행위로 변환하는 기계이지만, 사이클링에 있어 자전거는 인간에게 엄청난 고통과 피로를 안겨주는 고문 도구이기도 하다.
더 나은 디자인은 이 고통과 피로를 견딜 만한 것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그 결과로 현재는 클립이 없는 페달이 가죽끈을 대신하고 있고, 탑승자가 페달 압력을 줄일 필요 없이 기어를 바꿀 수 있으며, 과거보다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는 데 들여야 하는 힘은 절반 이하로 덜어지게 되었다. 자전거의 각 부품에서 일어난 이 모든 점진적이고 개별적인 향상은 궁극적으로 자전거와 탑승자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불화를 없애버리는 것을 그 목적에 두고 있다.
자전거 그리고 국제사이클연맹
결과적으로 부품 수준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들은 자전거 시스템에 대한 디자인 혁신이 이룩한 것만큼 자전거의 진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외에도 자전거의 진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소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국제사이클연맹일 것이다.
육상경기에서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에게 나이키의 초기 모델인 와플 슈즈를 신도록 강요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 시간 내에 가능한 가장 먼 거리를 주파하는 것이 목적인, 월드 아워 레코드 타임(the World Hour Record) 트라이얼 레이스와 같은 사이클 경주에선 유감스럽게도 가능한 일이다.
사진5. 1972년 멕시코 시티에서 세계 기록을 세운 에디 먹스(Eddy Merckx)와 그의 ‘카니발 (cannibal)’ 자전거 사진6. 2005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의 랜스 암스트롱과 트랙 TTX(Trek TTX)
지난 30년간 자전거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 국제사이클연맹이 공식 경기 기록과 경주용 자전거 조건을 1972년 에디 먹스(the great Eddy 'The Cannibal' Merckx)가 탔던 자전거를 기준으로 다시 수립한 일일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1972년 이후 복잡하게 설계되고 변형된 자전거로 세워진 모든 기록들은 공식 기록에서 삭제되었다. 이 새로운 규정으로 인해 타임 트라이얼 바와 디스크, 트라이 스포크 바퀴는 금지되었고, 설계에 있어서의 기하학적 제약으로 먹스가 멕스코에서 기록을 세웠을 때 탔던 자전거 이상으로 공기역학적인 이점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국제사이클연맹이 자전거의 조건을 엄격히 제한한 이후, 먹스의 기록을 깬 사람은 온드레 소센카(Ondre Sosenka)였다. 그는 먹스의 기록을 0.27 킬로미터 앞서 49.7 킬로미터를 주파해냈다. 그가 탄 탄소 소재의 자전거 ‘모세르(Moser)’의 프레임 형태는 급진적이었고, 안장은 지상에서 위로 상당한 높이로 밀어 올려졌다. 소센카는 이 자전거에 타기 위해 거의 수직으로 팔을 곧게 펴고 타야 했으며, 이는 자전거를 탄다기보다는 ‘비행’에 가까운 것이었다.
국제사이클연맹이 경기용 자전거에 엄격한 제한 규정을 두기 전까지는 자전거 디자인에 있어서 다양한 도전과 실험이 지속되었다. 특히 90년대 초중반은 영국인 크리스 보드맨(Chris Boardman)과 ‘비행하는 스코틀랜드인’ 그레임 오브리(Graeme Obree)가 자전거 디자인에 있어서 서로 경쟁하던 시기였다. 보드맨은 첨단기술과 고비용이 드는 제작 방식으로 접근하였고, 오브리는 자신의 경주용 자전거들을 직접 만들거나, 심지어 가끔 세탁기의 부품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오브리는 후에 국제사이클연맹이 금지하는 주행 자세를 개척하기도 했는데, 이에 ‘턱(tuck: 구부린 두 무릎을 양손으로 안은 자세)’ 자세와 ‘수퍼맨’ 자세도 포함된다.
사진7. ‘턱(tuck)’ 탑승자세의 그레임 오브리, 이 자세는 후에 금지되었다. 사진8. 1984년에 세계 기록을 세운 혁명적인 자전거, 모세르(Moser) 사진9. 그 다음 해에 시도된 디자인,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 자전거 디자인계에 있어서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사람은 이탈리아인 프란체스코 모세르(Francesco Moser)였다. 모세르는 먹스의 1972년 기록을 추월한 첫 번째 사람이었는데, 그가 탄 자전거는 프레임의 경사가 가팔랐고, 뒷바퀴의 직경이 앞바퀴보다 컸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디스크 바퀴가 채용되었고, 핸들은 끝부분에서 위로 휘어지는 디자인이었다. 모세르의 혁신적인 접근법은 이후 도로를 벗어난 산악과 같은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 따라 자전거의 디자인이 탄력적으로 진화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끊임없는 발명 그리고 발명
국제사이클연맹의 영향력은 현재 단지 사이클 대회 기록뿐만 아니라 자전거 디자인과 제조 분야에까지 크게 미치고 있다. 국제사이클연맹이 수립한 엄격한 기술적 제한들은 수년간 자전거 디자인에 있어서의 혁신적인 시도를 최소화시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 소재의 사용은 자전거의 역사에 있어서 눈부신 혁신을 가져왔다. 자전거 제작에 있어서 탄소의 사용은 지난 몇 년간 큰 증가세를 보였다. 탄소로 인해 자전거는 더욱 튼튼해졌으나 보다 가벼워졌다. 자전거 프레임에 처음 사용된 탄소는 이어 핸들 손잡이와 안장을 받치는 기둥, 물병 고리 그리고 바퀴와 같은 부품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또한 탄소 소재에 대한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적인 측면에서, 또한 역학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디자인이 가능해졌다.
사진10. 캄파뇰로 코러스의 변속장치 시스템
사진11, 12. 2005 캄파뇰로의 레코드의 후미 변속장치와 그 이전 버전
자전거의 기어 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는 전방과 후방의 변속장치와 허브, 연결 레버, 소프로킷, 크랭크, 바닥 크랭크, 안장고리, 헤드셋, 브레이크, 체인이다. 자전거의 작동 시스템은 단순한 형태로 디자인된 그룹과 우아한 형태로 디자인된 그룹으로 나뉠 수 있다. 최근 생산되는 연결 레버는 기어 변속을 간단하면서도 안전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기어 시스템 중 중요한 부속 중 하나인 후미 변속장치는 티타늄과 탄소, 철을 그 소재로 삼음으로써 보다 완벽해졌고, 측면 소프로킷의 새로운 디자인은 체인을 통해 전달되는 트랜스미션 파워를 보다 효율적이고 향상되게 했다. 현재 자전거의 기어 시스템은 10단 변속이 가능하며, 이탈리아의 캄파놀료와 일본의 쉬마노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사진13. 캄파놀료의 레코드 연결 레버 사진14. HED의 삼중 살 카본 바퀴 HED3 사진15. 페달에 장착된 클립은 자전거 주자의 발 사이즈에 딱 맞게 디자인된다.
1992년까지 기어변속기는 자전거의 메인 프레임에 장착되어 있었고 핸들에서 한 손을 떼고 변속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 디자인된 연결 레버는 기어 변속 조작이 보다 쉬워져, 힘을 낭비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브레이크 시스템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자전거를 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탈 거리가 되었다. 이전의 자전거들은 브레이크를 조작하기 위해 핸들을 힘껏 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디자인된 인체공학적 설계의 레버 후드는 이전보다 절반의 힘으로도 브레이크를 완벽히 조작할 수 있다.
자전거 바퀴의 디자인 역시 재료의 혁신에 힘입어 눈에 띄게 변했다. 신소재 개발은 종종 부품 수를 줄이거나 단순한 설계를 가능하게 하여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친다. 탄소가 바퀴의 소재로 쓰이면서 촘촘한 바퀴살은 경주용 자전거에서는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되었다. HED가 생산은 삼중살 방식을 채택한 디스크 바퀴는 빼어난 디자인을 자랑하지만, 자전거 바퀴는 그 어느 때 보다 빼어난 내구성을 자랑하게 되었다.
체인 개발 또한 경주용 자전거의 성능 진화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후면 카세트는 체인과 완벽하게 맞물리도록 새롭게 디자인되었다. 체인은 이제 예전의 9각형이 아니라, 거의 완벽한 원에 가까운 형태로 후면 카세트에 맞물려 자전하며, 이로 인한 자전거의 주행력은 극대화되었다.
하지만 현대 경주용 자전거의 성취와 진보를 무엇보다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페달 압력만으로 변속되는 기어의 개발이다. 마모저항력과 뛰어난 역학적 설계를 자랑하는 롤러체인과 새로운 소프로킷은 파워 트랜스미션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다. 이는 여행용 자전거에도 적용되면서 널리 대중화되었다.
경주라는 전문적인 목적에서 개발되어 대중적으로 확산된 또 다른 예는 페달과 핸들바이다. 투어 데 프랑스의 5관왕인 베르나르 이노(Bernard Hinault)는 1985년 발등을 감싸는 클립을 장착한 페달을 사용하였다. 또 미국투어 챔피언인 그레그 르몽드(Greg LeMond)는 1989년 투어의 마지막 순간에 삼중 바를 사용해 놀라운 성취를 이룩한 또 다른 개척자였다. 샹제리제에서 펼쳐진 비공식 타임 트라이얼에서 그는 삼중 바가 없는 로랑 피뇽(Laurent Fignon)을 8초 앞질러서 자전거 경주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변화하지 않는 디자인, 변화하는 디자인
자전거의 핵심 디자인은 120년이 넘도록 변화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디자인 시스템은 지난 30년간 대단히 복잡해졌다. 또한 소재 개발과 테크놀로지에 있어서의 혁신은 자전거를 끊임없이 진보시켰다.
보다 나은 자전거 개발과 디자인의 혁신은 전문 사이클리스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따라서 어쩌면 일취월장하는 기술과 자전거 디자인의 미래는 국제사이클연맹의 영향력에 의해 크게 제한 받을 수 있는 처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 제조업체와 기업들은 점점 국제사이클연맹의 지배력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 최근에 지가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누군가가 임의로 정한 한계에 접근했거나, 그것을 돌파했기 때문에 혁신을 멈추는 것은 큰 비즈니스 실수일 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진보에 대한 우리의 열망에 반하는 일일 것이다”. 지금도 자전거와 바퀴는 지금도 끊임없이 재발명되고 있다. 우리의 열망이 한계와 제약을 주파하도록 충동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 열망을 억제하기에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테크놀로지와 디자인의 자산이 너무 풍족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맥그레고는 바르셀로나에서 디자인과 테크놀로지, 경영 혁신에 대해 가르치고 있으며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 편집자 주
영국에서 디자인사를 공부 중인 최윤호 독자님께서 본 기사에 대한 오류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편집 회의를 거쳐 최윤호 독자님의 지적을 아래와 같이 명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아울러 위의 기사는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담긴 기사로 디자인플럭스의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기사 내용 중 사실 관계의 오류는 글의 첫머리인 '자전거의 발명'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스티븐 맥그레고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1.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것으로 여겨진 스케치는 이탈리아와 유럽의 자전거사 학회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스케치에 있는 서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닌 그의 제자, 살라이의 것이다.
2. 산림관리원으로 일하던 독일의 칼 폰 드라이스가 발명한 것은 자전거라기 보다는 드레이지네(Draisine)라는 별도의 운송장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3. 페달이 달린 스코틀랜드의 맥밀란 형 벨로시페드(Velocipede)는 영국 내의 연구에서 자전거를 혁신한 운송장치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맥밀란 형 벨로시페드는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며, 그 원리가 지속적으로 개발되지도 않았다.
Originally published by core77.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