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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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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올해로 결혼 40주년(Ruby Wedding)을 맞았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부부로 이만큼 지내 온 것에는 우리 두 사람의 노력도 있었지만 신의 보살핌이 필경 있었으리라 여긴다.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연결하여 준비를 했다. |
동행한 대원들과 셀파, 포터까지 어울려 양을 잡고 창을 마시며 춤추고 노래 불렀다. 모닥불이 한창일 때에 사다가 들고 온 은혼식 기념 케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쿡이 현장에서 밀가루와 땅콩으로만 만든 투박한 케익이었지만 세상 어떤 케익보다도 마음에 들었었다. 사다와 셀파들이 같이 쓴 예쁜 축하 카드도 함께 들어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였고 우리는 참 가난 하였었다.
신혼여행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식이 끝난 후 우리 신혼부부는 택시를 타고 수원 성곽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이었다. 그 때 기억으로는 택시를 타는 것 조차도 호사가 아닐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었으니 은혼식, 금혼식 때에는 멋진 여행을 하자는 것이었다.
40년이 지나 우리는 60대가 되었다.
아들 셋에 며느리 둘, 손자가 셋, 손녀가 한 명이다. 화목하고 따뜻한 가정을 이뤘다.
지금은 어머님을 모시고 광릉숲에서 둘째 아들 내외와 은서, 승찬이 손자들과 4대가 오손 도손 살고 있다.
몽골고비 사막을 넘어 아시아 대륙횡단을 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
고비사막을 건너는데 따른 위험요소는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만류하는 이웃과 친척들의 부탁도 만만치 않았다.
여러 가지 사정이 우리의 계획을 지연시켰다. 만류와 사정과 경비조달이 많은 이유 중에 들어 있었다. 경비가 마련되고 나니 애초에 떠나려고 하였던 6월이 지나 버렸고, 9월~10월에 원정을 하기에는 내가 얻은 정보가 부족하였다.
그렇다면 아시아대륙 여행을 떠나기 전에 훈련으로 아내와 전국일주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아내와 전국일주 자전거 여행을 하자는 생각은 이미 12년 전에 한 것이었다.
1996년 여름에 나는 아들 세 명과 3개월 간 연달아 각각 의미 있는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 해 8월에 큰 아들 성민이와 자전거로 백두산(중국측 장백산)을 오른 다음 이어서 둘째 아들 영민이와 뉴질랜드로 가서 스키여행을 하였다.
그런 다음, 뉴질랜드에서 돌아오는 편에 호주에 내려서 그 곳에서 공부하고 있던 막내 아들 창민이와 호주대륙을 두 달 동안 자전거로 횡단하고 3개월만에 집으로 돌아 온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생각이, 이제는 아내와 자전거여행으로 전국일주를 하면 보기에 좋을 것 같았다.
8월 첫주부터 전국일주를 떠나자고 한다. 이 복더위에! |
이 복더위에! 그러나 어찌하랴!
이번 여행은 이미 아내에게 헌정하기로 작심한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