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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장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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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오르막도 있지만 내리막도 있다.
몰튼 피크닉(Moulton Picnic)이 열렸다. 피크닉에 참석한 장성환 '스트리트H' 발행인의 참가기를 들어보자. |
이노이즈의 스탭으로부터 몰튼 피크닉에 초대를 받았다. 홍대앞 동네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홍대부근에서 벌어지는 색다른 이벤트에 참가해보라는 권유였다. 몰튼 자전거도 없는 내가 몰튼 피크닉에?
결국 이노이즈측의 배려로 행사 하루전 르벨로 서교점에 들러 피크닉 참가용 몰튼을 렌트했다. 단 이틀의 렌트임에도 전체적인 점검과 조정을 해주는 섬세한 배려에 몸둘 바를 모르다가 닥친 시승타임. 미니벨로라면 이미 다른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터라 가벼웁게 시승! 앗! 이게 아닌데. 뭔가 어색하고 낯설다.
결국 숙달된 조교(르벨로 매장 스탭)의 시범과 교육을 받으며 시승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조그맣고 귀여운 미니벨로라고 얕보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전방 브레이크는 핸들에 부착되어 있었지만 후방 브레이크는 페달을 역회전 시키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2단 변속인데 기어를 바꾸는 장치가 핸들에서 보이지 않았다. 페달을 역회전 시키되 아주 살짝만 시키면 변속이 된다는 스탭의 말에 시도를 해보았지만 브레이크가 걸리기 십상이었다.
얼마간의 시험 탑승을 마치고 홍대앞의 사무실로 향했다. 미니벨로에 2단 변속치고는 언덕길을 제법 수월하게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음~ 좀 비싼 몸값을 하는군 하는 생각도 잠시 신호등에 걸려서 잠시 정차를 하려면 안장에서 발이 땅에 닫지 않아 영 엉성하고 위태롭게 내리게 된다. 날씬하고 아담한 녀석이 길들지 않은 망아지 마냥 까탈스럽다.
간신히 사무실에 올려다 놓고 내일의 코스를 검토해본다. 노을공원에서 2시부터 시작이란다. 노을공원이면 월드컵 경기장 근처고 강변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타고 가면 되겠군. 평소 걷기운동하면서도 익숙한 코스니 별문제 없겠다. 이런 방심이 바로 다음날의 재앙으로 이어질 줄 이때는 정말 몰랐다.
다음날 피크닉 당일 행사 1시간 전인 오후 1시. 불볕 더위가 내려쬐는 홍대앞에서 미키 이마이의 음악과 나이키 GPS를 아이폰에서 작동시키고 몰튼 TSR2의 페달을 밟고 출발을 했다. 당인리발전소를 지나 절두산 성지를 계단으로 가로질러 강변으로 내려섰다.
이때까지는 상쾌했다. 잘 닦인 자전거 도로를 달리자니 강바람도 시원하고 속도감도 나고 좋구나. 그런데 합정역 출구를 지나 망원 유수지를 지나쳐 가는데 노을 공원으로 나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어... 이상하다.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구글맵으로 살펴보니 가양대교가지 가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페달을 힘차게 밟고 가노라니 상암동 출구 팻말이 보이는게 아닌가. 여기다 싶어 방향을 틀어 터널을 나가자 마자 계단이 앞을 가로 막는다. 다행이 자전거 바퀴 홈이 설치되어 있어 몇 개를 올라가자니 산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으악... 몰튼이 가볍기에 망정이지 기절할 뻔 했다. 중간쯤 올라가니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더 이상 산으로는 올라갈 힘이 없기에 비포장도로를 타고 가기로 한다. 포장도로만 쾌적하게 달려오다 비포장도로라니... 웬걸. 예상보다는 많이 덜컹거리지 않는다. 몰튼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자동차용 서스펜션을 만들던 회사인지라 서스펜션이 뛰어나다는 이노이즈 스탭의 설명이 떠올랐다.
불행중 다행으로 간신히 길을 찾아 가니 노을공원 입구에서 제지당한다. 이쪽 입구는 경사가 가팔라서 자전거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옆쪽 도로를 통해 난지천 공원쪽으로 우회하라는 공익청년의 말을 듣고 좌절한 채 코스를 바꿨다. 조그만 언덕을 넘고 나니 숲속길에 완만한 내리막 경사다. 인적도 드물고 시원한 바람이 반겨준다. 아아. 서울에, 홍대부근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숲향기를 만끽하며 꽤나 오랫동안 내려가니 노을공원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인다. 언덕길을 간신히 올라 지정 주차장으로 갔다.
멀리서 뙤약볕에서도 참가자들 기다리는 이노이즈의 자전거 보관 스탭이 반겨준다. 자전거를 맡기고 받은 번호표는 25번. 비오듯 흐르는 땀을 타올로 닦으며 맹꽁이 전기차(유료)에 올라타니 녹색이 우거진 언덕길을 힘차게 올라간다. 최종 정류장에서 내려 캠핑장 쪽으로 걸어가니 멀리 몰튼 피크닉 플랜카드가 보인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도착하니 피크닉 스탭들이 반가이 맞아주며 미리 준비된 이름표와 몰튼 티셔츠를 선물로 준다. 이미 푸짐한 바비큐는 시작되었고 시원한 캔맥주와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며 참가자들, 관계자들과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노라니 산넘고 물건너 올라온 보람이 느껴진다. 살인적인 햇볕아래서 먹거리며 진행을 하느라 분주한 피크닉 스탭들을 보니 그늘에 앉아 대접받기가 미안할 정도다.
잠시후 피크닉의 테마인 몰튼에 대해 이노이즈 측 스탭분들이 차례로 나와 몰튼 실물과 함께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이어서 이노이즈 스탭의 사회로 피크닉의 하이라이트인 조별 게임이 진행되었다. 가벼운 투호로 시작해서 여러종류의 도구로 제기차기, OX 퀴즈까지 다양한 게임들이 준비되어 있어 참가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특히 OX퀴즈는 몰튼의 역사, 성능, 에피소드 등으로 이루어져서 몰랐던 사실들을 재미있게 알게되는 기회였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지 모른다고 벌써 피크닉을 끝낼 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우면서도 이 시간이 기다려졌던 것은 바로 자선경매와 경품추첨 시간이 마지막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자전거 용품이 경매로 나왔다. 특이하게 문자로 투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재미를 더했다. 비밀을 보장한다던 사회자의 말과는 달리 투찰자 번호가 노출되면서 지인들간에 알아보는 바람에 비밀아닌 비밀 투찰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유쾌한 경매가 되었다. 경매물품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에 등장한 몰튼 자전거. 시중소매가의 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나온 것이다. 이틀동안의 동고동락을 통해 약간은 익숙해진 몰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렌트했던 하얀색의 몰튼과 같은 기종이어서 그랬을까. 내 손은 어느새 전화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소매가 대비 저가에 나왔다고는 해도 가격이 크고 이미 몰트너들이었기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치열하지 않은 경쟁으로 낙찰에 성공했다. 화이트 몰튼은 나와 어떤 인연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경매금은 자선에 쓴다지 않는가. 행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품 추첨에서 자전거 보관번호 25번으로 3등에 당첨되었다. 경품은 디마리치의 저지. 역시 화이트 몰튼이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자신을 탈 때 입을 옷까지...
준비된 모든 행사가 끝나고 단체사진을 찍는 순간 길었던 오늘 하루가 떠오른다. 잘못 고른 코스 덕에 초반에 고생은 했지만 결국 여러 가지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일이 그럴지도 모른다. 오르막도 있지만 내리막도 있다. 살면서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나의 애마 화이트 몰튼을 올라타고 강변을 달려보리라. 바람을 마주하고 달리면서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내리라.
*장성환(홍대앞 동네잡지 <스트리트H>발행인-2009년부터 스트리트H를 창간해서 홍대앞의 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월간으로 담아오고 있다. 최근 3주년 기념호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