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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최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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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사가르(Sagar)-비디샤(Vidhisha) : 112km
아침에 쌍용 가족 분들과 김치수제비를 같이 먹고, 출발준비를 한다. 이곳의 요리사는 인도인인데 한국음식을 끝내주게 만든다. 도대체 어디서 배운 실력일까. 직원 중 막내인 일주형님이 출근시간을 미루고 끝까지 남아서 우리를 챙겨주신다. 여행 중 먹으라며 김치, 짜파게티, 고추참치, 고추장까지 한 가득 챙겨주셨다.
'허허.. 사양 안하고, 잘 먹겠습니다 !!'
나무 아래에서 휴식중인 소들, 우리도 지난 밤 만큼은 이곳의 소들처럼 잘 쉬었다.^^ |
기분 좋게 출발하려는데 혜진이가 사고를 쳤다. 수첩을 잃어버린 것이다. 단순히 개인 수첩이 아니라 회계장부와 일정기록이 있는 수첩이다. 다행히 어제 공사현장으로 이동할 때 차에 떨어뜨려 놓은 것이 확인되어서, 중요한 기록이 없어지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출근하신 김용구 차장님이 다시 돌아오셔야 되는 불편함을 드리게 된 것. 부주의가 만들어낸 민폐다.
'모두 여행 중반에 접어들면서 마음이 느슨해 진 것일까?'
어제 정환이가 없어졌을 때 성민이가 후미를 지키지 않은 문제(선두와 후미가 핸드폰으로 연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주행 체계가 깨지면 돌발 상황에 대한 판단을 신속하게 할 수 없음), 정환이가 적절한 판단을 못하고 지나치게 많이 주행한 문제(일반적으로 50분 주행에 10분 휴식을 하는 시스템, 게다가 점심시간이어서 10km전방에서 쉴 것이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25km를 혼자 달려나감), 혜진이의 부주의(회계와 일정 기록이 담긴 공공문서(?)분실)까지.
비록 행복한 파티 다음날의 상쾌한 아침이지만, 방으로 조용히 불러서 잘못된 점들을 아낌없이 지적했다. 여행 중 처음으로 형성된 어두침침한 분위기.. 말하는 나도 썩 기분이 좋지 않다.
혜진이의 표정이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도 안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대답을 하라고 다그쳐도 묵묵부답. 남자였으면 한 대 때렸을지도 모르겠다. 참을 인(忍)자 세 개를 내 가슴에 박았다.
혜진아 "대답을 하란 말이야!!" |
결국 차장님께서 직접 수첩을 가지고 숙소까지 돌아오시는 수고를 해 주셨다. 8시 30분이 되어서야 늦은 출발을 한다. 무거운 분위기로 출발하려니 마음이 안 좋다. 하지만 주행 중반에 다다르면서 무뎌진 경각심을 되찾는 것은 필요하리라. 자신의 잘못을 이해했다면 분위기는 금방 좋아질 것이다. 만약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 한다면, 본의 아니게 일방적으로 다그친 내 잘못이리라.
'Anyway, 출발.'
늦은 출발에 마음은 급한데 도로가 어제와 같은 비포장 공사구간이다. 인도의 한 건설회사가 공사를 하는 구간인 듯 하다. 이곳의 공사 현장에서는 흙과 돌이 섞인 것을 바구니에 담아서 머리에 올리고, 도로에 뿌리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옆에서 흙투성이의 아이가 엄마와 같이 작은 바구니에 흙과 돌을 담아서 엄마 흉내를 내고 있다. 여느 아이들은 학교에 갈 시간인데, 이 아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일까.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면 이 아이는 언제까지나 이와 같은 일만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배운 것이 엄마 따라 흙을 나르는 일이라면 몇 십 년이 지나도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측은한 마음이 든다. 슬픈 현실..
공사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쉬고 있는 아주머니 |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세 살 남짓한 아이를 공사현장에 데리고 나왔으리라. |
기계로 하면 금방 끝날 일을.... 일일이 바구니에 흙과 돌을 담아서 옮기고 있다. |
저 아이와 나는 무엇 때문에 다르게 살고 있는 걸까. 세상을 통제하는 누군가가 저 아이와 나의 운명을 별 생각 없이 바꿔놓았다면, 내가 이곳에서 흙과 돌을 나르고 있지 않았을까. 200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는 나. 그리고 하루 동안을 꼬박 일해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을 이 아주머니와 아이. 힌두교의 믿음처럼 저 아이는 전생에 죄를 지어서 이렇게 태어난 걸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전생에 착한 사람이었을까?
주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하층민들의 삶을 보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이 아프지만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선은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 현명하지 않을까. 이러나 저러나 분명한 건, 난 정말 행복한 놈이라는 것.
아침부터 주행하는 내내,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무겁다. 무거운 마음을 떨쳐버리려고 오늘은 있는 힘껏 페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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