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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최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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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인연'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기간에 도서관 화장실에서 우연히 본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달린다"라는 문구에 매료되어서 가입하게 된 '만리행'과의 인연. 이를 통해서 시작된 중국 동북삼성 자전거 여행과 일본 일주 자전거 여행, 지금의 인도 자전거 여행까지. 내 대학생활에서 수많은 가치를 만들어준 나의 인연들이다. 화장실에서 시작된 나의 인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많은 인연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고, 지금 이 시간 성광이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빠하르간즈의 한국인 식당에서 무료하게 서성이던 같은 과 후배, 성광이를 만난 기묘한 인연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인연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아직 성광이를 잘 모르지만, 이미 성광이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수 많은 인도인들이 관광 온 오르차 |
우리는 오전에 오르차 관광을 갔다. 잔씨로부터 20km 떨어져 있는 오르차까지 릭샤를 타고 이동. 다소 외곽에 떨어져 있어서 조용한 시골 마을을 상상했지만, 수많은 인파에 왁자지껄하다. 대부분이 인도인이다. 알고 보니 오늘은 정부가 지정한 휴일이고, 저녁에 축제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복잡한 오르차를 간단히 둘러보고 점심시간을 넘겨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시환이 형이 정말로! 떠날 시간이다. 연로한 나이와 안 좋은 무릎의 핸디캡을 가졌지만 열정만큼은 최고였다. 모두 시환이 형의 한국 행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형도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 힘주어 마지막 악수를 나누고,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
형 없이 저녁을 먹는 내내 정적. 끊임없이 말을 내뱉던 시환이 형이 없으니 어색함이 느껴진다. 앞으로 몇 일 동안은 시환이 형의 빈자리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성광이의 뉴페이스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성광이가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성광아, 잘 해보자'
오르차에서 뉴 멤버 박성광(혜진의 왼쪽)과 함께 |
나뭇잎 접시에 올린 튀김류와 짜이로 점심식사. 보기보다 맛있다. |
시환이형이 떠나기 전 마지막 만찬이다. |
1월 15일 잔씨(Jansi) - 노우공(Nowgong) 120km
5시 30분 기상. 콘프레이크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가 되어서 출발한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전기가 해질녘부터 들어오기 때문에, 새벽의 어둠 속에서 모두 후레쉬를 들고서 분주했다.
성광이의 첫 주행. 만리행 대원으로서 처음으로 함께하는 의미 있는 순간이다. 이런 의미 있는 순간에, 성광이가 시작부터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리버리 1단계, 짐싸기. 성광이에게 주어진 패니어(자전거 짐받이에 올리는 자전거 여행용 가방)가 선배들로부터 수년간 사용된 뒤 물려 받은 것이어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짐을 너무 못 싼다.
패니어에 짐을 넣고, 그 위로 몇 가지 공동 장비를 올리고 끈으로 꽁꽁 묶는다. 하지만 끈을 잘 못 묶어서인가 계속 느슨해진다. 조금만 주행하면 짐이 떨어지려 한다.
'군대도 다녀온 놈이 이 간단한걸 못하고 있다니'
어리버리 2단계, 넘어지기. 출발 후 5분만에 어딘가에서 들리는 '철퍼덕'. 이건 뭐 넘어지는 소리도 가관이다. '철퍼덕'이라니..
내 뒤로 성광이가 넘어져 있다. 스스로 부끄러운지 쭈뼛주뼛. 자전거를 타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는데, 그냥 웃어 넘길 정도로 멤버들과의 친분을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넘어졌을 때 아픈 것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더 고통스러운 경우도 가끔 있지 않은가. 어쨌든 이 자식 어리버리하다. 뒤를 살피려고 돌아보다가 핸들이 돌아갔다고 한다.
손바닥과 무릎에 상처가 났다. 장갑을 안 끼고 있어서 손바닥에 상처가 크다. 처음 자전거를 타는 놈에게 내가 신경을 너무 안 쓴 듯. 인도에서는 작은 상처에도 감염이 잘 되기 때문에 확실히 소독을 하고 소염제까지 먹인 뒤, 다시 출발한다.
새로운 독수리 5형제가 결성되었다. |
여행 초반부터 호되게 당하는 성광이가 안쓰러움과 걱정으로 주행 내내 눈에 밟힌다.
'하지만 부딪치고 넘어져 봐야지 자전거 타는 법도 제대로 익히지 않겠는가.'
오늘 하루 달린 것 만으로도 육체적, 심적 고뇌지수는 우리가 2주정도 먼저 주행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린다. 어쩌면 어리버리함을 가장한 정말 똑똑한 놈인지도 모르겠다.
'성광이 파이팅!!'
오늘은 차뜨라뿌르까지 140km를 달릴 예정이다. 출발이 지연돼서 다소 부담이 된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급하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하지만 나만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조금만 속력을 내면 내 시야에는 아무도 없다. 다들 느림보다. 특히 성광이가 첫 주행에 적응이 안돼서 많이 뒤쳐진다. 사실 당연한 결과인데, 내가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지만 일정에 대한 압박이 나를 재촉한다.
주행 속도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답답하지만 주변 경치만큼은 최고다. 오전에는 안개가 있어서 시야 확보가 힘들었지만, 안개가 걷힌 뒤 도로주변으로는 유채꽃과 야자나무들이 나의 급한 마음을 달래어준다. 길가로는 멋드러진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고, 따뜻한 햇살은 금새 추위까지 잊게 해주었다. 도로까지 한적해서, 내 마음을 제외한 모든 상황은 OK!
결국 마음을 비우고 주행을 즐기기로 한다.
혼자 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다 보면 금새 한 시간이 지나가고 쉬는 시간이 된다. 첫 주행부터 140km를 달리려 하는 욕심쟁이 대장 덕분에 자전거 위에서 하루종일 스스로와의 싸움을 했을 성광이를 생각하니..
'기분 좋다.'
'이러면 안 되는 건가?'
하지만.. 하루 종일 고생한 성광이 때문에 내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신이 선택해서 시작한 여행이다. 불운하게도 중간 합류 뒤, 첫 주행이 다소 장거리이긴 했지만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볼 수 있겠는가. 통과의례라고 해야 할까. 나는 성광이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오전 안개를 뚫고 주행하고 있는 성광이! |
해질 무렵까지 110km를 달렸다. 성광이가 많이 지친 모습이다. 첫날부터 장거리를 잘 달려 주었다.
"성광아, 더 갈 수 있겠어?"
"뭐, 가야죠. 형!"
이 자식 얼굴은 완전히 울상인데 말하는 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 자전거 타다가 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성광이의 파이팅에 힘입어서 출발을 하려는 순간. 혜진이가 표정이 안 좋다. 사실 혜진이도 오늘 복통으로 주행 내내 고생했지만, 성광이의 그늘(?)에 가려서 어필하지 못했던 것.
혜진이가 도저히 안되겠다고 한다. 주행하는 내내 주기적으로 화장실을 찾아 헤매느라 진이 빠졌다고 한다. 결국 목적지를 20km 앞에 두고 노우공이라는 도시에서 호텔을 잡았다. 500Rs에 두 개의 방을 잡았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방안에 창문 한 칸이 유리없이 덩그러니.
모기가 전세 내고 살고 있는 듯, 사방이 모기다. 내일 20km를 더 이동해서 관광을 하기로 하고, 모두 취침.
'성광, 혜진! 아프고 힘든데도 묵묵히 달려줘서 고맙다. 귀여운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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