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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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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
민박집 마당에서 아침을 지어 먹고 길을 나섰다. 용두암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서쪽으로 나아갔다.
해안도로를 들어서니 갑자기 자전거 여행자들이 늘어났다. 2명에서 5~6명씩 떼를 이뤄 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같은 의미를 갖고 자전거를 타는 무리를 만났으니 괜히 신이 나고 보는 사람마다 반갑다. 모두 20대 젊은이 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더 신통해 보이는 모양이다. 어디서 왔느냐? 며칠째 냐? 짐이 무겁지 않느냐? 하며 궁금해 한다.
해안도로를 들어서니 갑자기 자전거 여행자들이 늘어났다. |
열 시가 지나고 나니 11시 방향 남서풍이 불기 시작했다. 날이 뜨거워질 수록 바람은 세차게 기승을 부렸다. 트레일러를 끌면서 맞바람까지 받으면 "죽음"이다. 더구나 해안도로는 굴곡이 만만찮았다. 심한 언덕은 1x1단으로 낑낑거리며 올라야 했다.
바다는 역시 제주도가 좋다. 넘실대는 파도와 초록에 가까운 바닷물에 반한 내 영혼은 나를 떠나 바다로 뛰어들더니 파도에 휩싸인다. 아내의 기분도 함께 춤을 춘다. 이만하면 바람과 싸워 얻은 게 더 많은 것이다.
바다에서 파래 냄새가 피어 오른다.
아침에는 한라산이 꼭대기까지 보였다.
허리에 구름이 걸쳐 있다. 지난 날, 아내하고는 정상까지 두 번을 올랐었다. 나는 등반훈련이니, 스키등반이니 하면서 여러 차례 한라산을 올랐던 경험이 있다. 때로는 바람이 불었는데 맥킨리의 윈디코너보다 더 강했던 기억이 있다. 30년만에 내린 폭설이라고 하여 스키를 메고 부랴부랴 한라산을 찾아 오면 눈은 땅 아래서부터 녹아 스키를 탈 수 없게 되기도 하였다.
기상을 예상하고 판단할 수 없는 곳이 한라산이었다. 그래서, 훈련에 좋았다.
나는 젊은 날에 알피니즘에 물들었던 추억이 있다. 숱한 고통과 희열을 함께 나누며 고산준령을 등반했던 그 산친구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나!?
바람이 분다.
선인장 가시가 타이어를 뚫고 튜브를 펑크 나게 한 것이다. |
이런 저런 생각으로 페달을 밟고 있는 데 아내의 자전거 앞 바퀴가 펑크 났다. 해안도로는 연이어 바다를 만나면서 가는 길이다. 그 주변에 선인장 밭이 많았다. 그 선인장 가시가 타이어를 뚫고 튜브를 펑크 나게 한 것이다.
제주도의 서쪽 모서리를 돌아서는 한경을 지날 때에는 바람이 극에 달했다.
이대로 가다간 모슬포 항에서 마라도를 다녀오려던 계획은 차질이 날 거 같다.
저녁 길로 다녀 오지는 못하더라도 마라도에서 하룻밤 자고 올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
모슬포 항에는 저녁 5시쯤에 도착하였다. 마지막 배도 끝났고 내일은 첫 배가 아침 10시에 있다고 한다. 시간을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양주에서 응원 라이딩을 하려고 내려오는 처제와 최서방을 부산에서 15일 오전에 만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이 12일이니까 내일, 모레 14일 저녁 배를 타야 한다. 아무래도 마라도는 포기해야겠다.
모슬포 항에서 동쪽으로 2km가량 가다가 바다와 길 사이에 있는 동네 정자를 만났다.
저녁을 해 먹고 텐트를 쳤다. 아내와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