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간 태안국제꽃박람회
에디터 : 쇠말패

먼 길을 떠나기엔 궂은 날이었다.

토요일엔 비가 내렸고, 일요일 아침은 구름이 낀 날이었다. 자전거여행에는 못마땅했었다. 바람도 불었다. 그러나, 그런 날일수록 자전거여행은 더 재미있을 수 있는 변수가 훨씬 많다. 그 역설의 오묘함 때문에 나는 라이딩 약속을 일기불문으로 정했다.
산악자전거의 재미에는 도로불문, 일기불문, 예측불문의 문을 통과하는 배짱이 포함된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해변에 매년 꽃 박람회가 열린다.

용케도 모래 길은 자전거 바퀴가 빠지지 않았고...


쇠말패의 명품 안내인 첼로님이 미리 입장권을 예매하고 나서 카페 "설륜악"에 공지를 띄웠다. 꽃구경 가자고. 토요일에는 평택호와 안성천 주변의 강 길을 라이딩하고 다음 날에는 안면도로 꽃구경하러 자전거 타고 가자는 것이다. 12명이 참가신청을 했다. 산장지기 부부, 처제와 최서방, 김부장님, 겨울바람님, 첼로님, 무한도전과 오장군님, 이교수님 그리고 늑대 부부다.

17일, 일요일 아침에 태안반도의 몽산포에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를 갈아 탄 다음 안면도 꽃 박람회장으로 출발하였다.
첼로님이 두 번이나 사전 답사를 다녀온 터라 그의 앞장을 따라 나섰다. 썰물로 빠진 백사장으로 일행을 인도하면서 첼로님은 파도 치는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바람은 북서풍이었다. 용케도 모래 길은 자전거 바퀴가 빠지지 않았고 약간 무거운 페달은 바람이 등을 밀어 주었다.
태안의 해변은 모래가 특별했다. 모래 밭에 바퀴가 묻히지 않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들 신이 났다. 파도와 나란히 자전거로 해안을 달리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해변과 도로를 번갈아 타면서 꽃지에 닿았다. 박람회장에 들어 가려고 길에 늘어선 수 천대의 승용차를 제치고 가는 자전거의 힘을 자랑스러워 하면서 말이다.

박람회장에 들어 가려고 길에 늘어선 수천대의 승용차를
제치고 가는 자전거의 힘을 자랑스러워 하면서...

바람은 구름을 동쪽으로 밀어냈으며 낮부터 해가 드러났다.

꽃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꽃이 사람을 구경하는 꼴이다. 바람을 맞아 바람개비가 돌았고, 숭례문이 꽃으로 다시 만들어져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다. 동남아 각국에서 출품된 난초와 먼 곳에서 온 튤립이 보기에 좋았다. 여자는 향기를 따라, 남자는 색깔을 따라 꽃밭으로 흩어졌다가 두어 시간 만에 다시 모여 꽃구경을 끝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서 다시 해변 모래 길을 달렸다.
꽃보다 바람이, 바람보다 모래가 좋았다. 해따라기를 하면서 몽산포에 닿았다.

토요일에는 쇠말패 지기들의 익살에 배꼽이 빠질 만큼 웃었고, 일요일에는 꽃과 향기로 가슴을 채웠다. 해가 가라앉는 태안반도의 해변 길에서 바람을 마시는 일은 심술을 삭이게 해 주었다.

나도 모르게 착해졌다!
2년 전에 태안반도를 뒤덮었던 절망의 기름덩이, 그 기름덩이를 닦아낸 꽃 같은 사람들의 용기로 태안반도도 착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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