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고비사막에 들어서다.
에디터 : 박규동

2011년 07월 05일   火   맑았다 오후에 흐리고 바람 저녁에 비
테렐지 - 47도55'45,80+107도26'39,27     47km

착하고 맑은 날이다.
모든 게 좋다. 바람도 잔잔하다. 초원에는 햇볕이 반짝이고 구름은 양떼를 따라서 고개를 넘는다.
아!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사막에 일렁이는 시간과 그 시간을 담아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을 고비를 나는 얼마나 그리워 했었던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나는 내 나이조차도 잊고 말았다.



양 떼가 나타나 하늘에 양털구름을 반영해 놓는다.


모든 게 순조로웠고 행운은 우리 편이었다.
바람이 불었으면 하고 생각을 하면 바람이 불었고, 꽃을 보고 싶다고 주문을 외우면 꽃밭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렇게 테렐지를 출발하여 사막으로 향했다.

거북바위 앞에 섰다.
증명사진을 찍었다. 거북이가 없는 웃음을 참느라 등이 오므러드는 것 같았다. 바타가 흰늑대와 불근늑대의 사진을 철컥철컥 찍어댄다. 우리도 250분의 1초만에 셔터를 열고 빛상자에 웃는 얼굴로 담긴다.  이 추억은 고스란히 사막처럼 고비가 될 것이다. 나는 믿는다. 우리도 고비가 될 것이라는 것을 !

거북바위 앞에서 증명사진


독립투사가 숨어서 지냈다는 동굴 앞에서 바타와 불근늑대

야크 종류의 소떼


위성도시 나례

길가에서 파는 아이락을 사서 마셨다.

바타와 헤어지는 인사로 몸을 서로 안았다. 그가 그립다.

테렐지국립공원을 벗어나는 1km짜리 언덕을 만났다.
우리가 무거운 트레일러를 끌고 그 언덕을 오르는 것을 바타는 어제부터 걱정을 하였었다. 그는 주문처럼 "운이 좋으면 트럭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했고 트럭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타났다. 괜찮다는 우리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바타는 우리의 트레일러와 자기의 자전거를 트럭에 얻어타고 꼭대기로 올라갔다. 자전거만 타고 가볍게 꼭대기에 도착하니 바타는 빨리도 올라왔다며 좋아한다.

바타와 헤어져야 하는 삼거리는 울란바타르 동쪽 30km 쯤에 있다.
위성도시 나레가 멀리 보이는 곳이다.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나서 우리는 헤어졌다. 사례를 하고 싶었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래서 예비로 가져갔던 자전거장갑과 바람막이 한 벌을 건네 주었다. 그것도 사양하는 것을 기념의 선물이라고 떠 맡겼다. 이별의 포옹을 하는데 들었든 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한국에도 자주 온다고 하였으니 다음 날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었다.

바타! 고마워!! 사랑해!!!
 
공동묘지가 있는 언덕을 비스듬이 비켜 갔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구름이 뒤 따라 왔다. 오늘 운행하는 구간은 비가 내리는 지역과 비가 내리지 못 하는사막의 중간지대이다. 습도가 있는 스텝지대는 햇볕이 뜨거워지는 낮에 기온이 상승하면서 상승기류가 구름을 만든다. 포화상태가 되면 구름은 비를 내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구름이 바람을 타고 우리의 뒤를 쫓고 있었다.


공동묘지

길조차도 외로워졌다.
스텝을 가로지르는 실낱같은 줄기의 아스팔트 길이 우리의 앞과 뒤를 외롭게 이어주고 있다. 외롭지 않으면 그게 무슨 자전거여행이겠는가!
길은 외로웠고 나는 그 길을 얼마나 그리워 했었던가!
외로움 뒤로 바람이 휩쓸며 따라왔다. 아내도 나도 바람으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래 바람따라 가는 길이 고비가 아니던가!
 
멀찌기 축산농가가 보이는 초원 위에 텐트를 지었다.
바람을 붙잡고 통사정을 하면서 겨우 겨우 텐트를 세웠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고안하여 준비한 대형 덮게 타프가 자전거와 텐트를 강풍으로부터 바람과 비를 잘 막아 주었다. 스텝의 초원은 90%가 허브식물이다. 바람결에 촉촉한 허브향이 비에 젖어 날린다. 오늘같은 날에는 모든 냄새가 향기롭다.

압력솥에 흰밥을 짖고 장아찌와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바람이 고비를 몰고 왔다.
스텝 위에서 자는 야영의 첫 밤을 바람에 맡겼다.
추워서 가벼운 다운자켓과 패딩바지를 입고 잤다. 바닥에는 폼 메트 위에 써모레스트 에어메트를 이중으로 깔았다



*** 몽골은 북동 아시아 고원지대에 있는 면적 1,564,116제곱km, 인구 300만 명의 나라다. 서쪽 알타이 지방으로 문화가 흘러들었다는 게 학설이다. 울란바타르를 중심으로 북쪽은 강우량이 비교적 넉넉한 삼림지대이고 남쪽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지대이다. 희토류를 포함한 광물자원의 매장량이 많아 세계10대 자원보유국에 속한다.
***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산다. 25%가 유목민이다. 나머지 25%는 반유목민으로 도시와 시장경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 인구의 50%가 라마불교도이다. 샤머니즘 6%, 이슬람이 4%이며 최근에 기독교도가 조금씩 증가세에 있다.
*** 1인당 GDP는 2227$(2010)이다.
***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98%이다.
*** 화폐 단위는 투그릭Tugrik이다. 환률은 한국 원화와 비슷하다.
*** 시간대는  UTC+8.  한국보다 1시간 늦다.
*** 인터넷 도메인    .mn
*** 국제전화     +976



2011년 07월 06일   水   흐리고 바람이 세다.   캠핑 46도50'06,98+107도47'55,67
포장도로에서 순풍을 만나서 약 100km 이동.

바람이 세기도 하지만 춥기도 하였다.
북풍이 불었다. 어제 오후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은 고비의 특성에 따라 거칠고 차가웠다. 다행히 5시, 6시 방향 바람이라 우리는 순풍에 돛단 배처럼 아스팔트도로를 질주했다. 울라바타르로부터 300km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초이르까지는 포장이 됀 상태이다. 이렇게 바람을 타면 내일에는 초이르에 들어갈 것같다.
사막에서는 더위와 추위를 한꺼번에 견디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사막에서 7월에 다운자켓을 입어야 하다니 누가 믿어줄지 모르겠다.


캠프에서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아침밥을 짓고, 식사 후에 짐을 꾸리기까지는 약 두 시간이 걸린다.   
점심으로 주먹김밥을 준비하였다. 당분간 씻는 것은 미뤄야한다. 음식을 만들고 마시는 물만 하여도 하루에 7리터 정도가 든다. 1.4리터 짜리 물통이 다섯 통이 드는 셈이다. 캠프지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 곳까지 가려면 계산을 잘 해야한다. 초이르까지는 이틀 분량의 물과 음식을 준비해 가기로 하였다.



복장은 상의로 다운자켓을 져지 위에 덫입고 하의는 긴 겨울바지를 입었다.
헬멧에는 볕가리게를 쒸웠다. 반장갑에 오클리 투명렌즈를 착용하였다. 아내도 나와 같은 사양이다. 아내는 더위를 나보다 더 타는 체질이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날씨의 변화에 대응하는 대체적인 방법은 같다.

텐트를 쳤던 초원에서 나와 도로에 오르자마자 속도는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훨씬 빨라진다.
바람은 그의 길을 가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지만 같은 길에서 만난 것이다. 비겁하게 우리는 바람의 힘을 빌려서 쓰기로 한다. 사막에서 비겁해지는 건 대수다. 비겁해 질 수 있는 명분은 수두룩하니까 말이다. 바람 덕에 평지에서도 툭하면 시속30km가 넘는다. 모든 길이 내리막처럼 느껴져 둥근 지구에서 내리막으로만 자전거를 타는 것 같다.
바람이 강하다 보니 오히려 쉬는 게 더 무섭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바람의 속도를 자전거의 속도에 담고 가기 때문에 풍속을 느끼지 못 하지만 자전거에서 내리기만 하면 그 풍속이 사람을 후려 갈긴다.

맘껏 뛰어노는 소들과 그들을 보살피는 목동이 고비를 지키고 있었다.


기차길이다. 우리의 여정에서 길을 가늠하는 길이다.


고트브도르지(운전석)와 그의 통역, 바람이 세다고 자기의 차 안에서 음식을 대접 받았다.

외로운 길 그 끄트머리 언덕에 승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언덕에 가까워지자 그 차는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어제 바타와 헤어진 후로 처음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센밴오?"
"센밴, 타 센밴오?"
"비 설렁거스...."
"......."
말하자면 "안녕하세요?" "잘 있습니다. 당신도 안녕하신가요?" "나는 한국인입니다." 대충 이런 뜻이다.
그 다음부터는 그는 몽골어를 말하고 나는 한국어로 대답했다. 부호화 됀 언어는 소리만 나고 우리는 몸놀림과 표정이라는 인류공통어를 통해 대화를 한다. 50대로 보이는 그 남자의 의사전달을 내가 해석한 건 이렇다.
"나는 어머님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나 신호가 잡히지 않아 여기 언덕에 올라서 간신히 신호를 잡아 전화를 하는 것이다. 바람때문에 고생이 많아 보인다."
내가 전한 대답은 이렇다.
"바람이 너무 세다. 그래도 아내와 나는 재미있다."
 
그와 헤어져서 5km를 더 왔을 때였다. 그는 그의 차에 또 다른 한 남자를 태워서 다시 우리를 쫓아온 것이다. 우리도 자전거를 옆길에 세웠다. 같이 온 남자는 한국에서 일을 했었다며 한국어를 조금 했다. 고토브도르지는 그가 대려온 한국어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하면서 가끔 영어를 썼다. 젊은 날에 기회가 있어서 미국에서 일을 했다는 이야기와 자기도 이런 여행을 꼭 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췄다. 아까 우리를 보내고 나서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어 통역을 대리고 온 것이란다. 우유와 몽골빵을 갖고와서 먹으라고 권한다.
인류가 지닌 인간성이라는 고귀한 품성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 중에서도 몽골로이드의 인간성이 가장 질 높은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끝없이 맴 돌았다.


델을 입고 오토바이를 탄 사람

차량은 1시간에 서너 대가 지나갔다.
지나가는 차량의 창은 열려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을 통해 팔을 내밀고 엄지를 세워 주었다. 엄지!
사람을 만나기가 뜸하다 보니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가던 남자가 몽골전통 의상 델을 입고 우리 바로 앞에서 멈춘다. 훤출하고 넉넉해 보이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담았다. 또 몽골어와 아내의 한국어가 눈빛과 손짓을 통하여 가고 온다.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다.
어디쯤인지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초이르까지는 외길이라 길을 잃어버릴 걱정도 없다. 없다는 게 이렇게 좋다니!

주유소

건널목 초소에서 맑게 웃는 바트체첵을 만났다.

점심을 먹으려해도 바람이 심하여 마땅한 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기차건널목에서 건널목을 지키는 초소를 만났다. 옳다 싶어 자전거를 세우고 문을 두드렸다.
50대로 보이는 아줌마가 삐쭘히 문을 연다. 우리의 행색을 보더니 으아해 한다. 아내의 손짓,눈짓 언어는 위력을 발휘한다.
"바람이 세서 그러는데 이 안에서 밥 좀 먹고 가도 되겠어요?"
눈치 빠른 간수아줌마는 대뜸 "일단 들어 오세요. 그래요. 쉬었다 가세요" 라고 같은 용어로 대답을 한다.
그녀의 뒤에는 스무 살 쯤 돼 보이는 처녀도 있었다. 바트체첵이라는 그 처녀는 참 맑게 웃었다. 아줌마 독스마의 딸이란다. 무뚝뚝할 것 같았던 독스마는 얼른 마음을 열고 물을 끓이더니  차를 내놓는다.
바트체첵은 그녀가 알고 있는 영어단어 몇 개로 통역을 한다. 말과 몸짓 사이에서 일고 있는 바트체첵의 미소에 나는 홀랑 빠졌다. 어떻게 저런 웃음을 웃을 수 있을까? 감추려고도, 뽐내려고도, 계산하려고도 하지 않는 단순명쾌한...... 설명이 가능하지 않는 말하자면 순수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은 나에게 알지 못 할 마법의 힘으로 전달 되어졌다.
고비가 수 만년 동안 지니고 있는 신비의 에너지가 있다면 아마 이런 웃음일 것이다.
바야를라! 바트체첵!!

불근늑대, 독스마, 바트체첵

도로 이정표. "98"이라는 건 울란바타르로부터 98km 지점이라는 표지이다.
못 보고 지나기 일쑤다. 그나마 포장도로에서만 볼 수 있다.

물을 길러 갔다온 고마운 경찰

길을 알 수 없으면 우리는 물을 준비했다.
쌀은 5kg을 사서 세 끼밖에 먹지 않았으니 물만 있으면 며칠이고 세월을 잊고 고비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지나는 길에 경찰초소를 만났다. 혹시나 싶어 물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경찰에게 물었다. 영어를 하지 못 하는 경찰은 당황하였고 인류공용어가 바로 소통을 이끌어 주었다. 물통을 들고 있는 나에게 경찰차를 타라고 하더니 수도물이 콸콸 나오는 기차역으로 데려가 물을 구해 주었다.
저녁밥을 해 먹을 물이 넉넉해 지고나니 폭풍도 두렵지 않았다. ㅎㅎㅎㅎ

바람따라 100km를 달려왔다.
저물 무렵에 작은 마을에 닿았다. 집은 두세 채, 버스정류장같은 곳에 작은 델구르(가게)가 있었다. 물도 구하고 이왕이면 그 집 담벼락 옆에 텐트를 치고 싶었다.
담장 남쪽에 텐트를 치면 다소나마 바람을 식힐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델구르 주인 아줌마에게 담장 안에 텐트를 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인이라는 내 소개에 얼굴이 밝아지더니 어디로 전화를 건다. 나도 바타에게 전화를 걸어 통역을 부탁했다.
용의주도한 바타는 우리와 헤어지기 전에 중고 손전화기를 하나 사 주었다. 1만 원 짜리 칩을 하나 사서 꼽으면 한 달 내내 자기와 무료로 통화를 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바타의 통역에 의하면 그 집 아들이 한국에서 3년 간 일 하다가 3월에 귀국하였으며 초이르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하였다.




게르와 화장실과 개

담장 안에 텐트를 쳤다.
저녁밥을 지어서 먹고 있는데 그 아들이 돌아왔다. 금을 캐다가 왔다고 했다. 초이르로 가는 길 황무지에 사금이 묻혀있는 모양이다. 발안에서 용접일을 했다면서 이것저것 반가워했다.
 
바람은 쉴새없이 몰아쳤다.
밤은 깊어가는데 난데없는 문제가 생겼다. 집 안밖에 묶여있던 개들이 짖어되며 서로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낮에는 그렇게도 조용하던 녀석들이 밤에 왠 일인가 싶어 짖어대는 이야기를 엿들어 보았다.
"얘들아! 우리집에 왠 미친 사람 둘이 텐트를 쳤단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데?"
"뭐, 한국에서 왔다나, 사막으로 자전거를 타고 간대나 봐."
"미치긴 확실히 미쳤군! 바람도 장난이 아닌데 그 더운 델 뭘하러 간대?"
"그냥 생각없이 가나 봐!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짓을 하겠어."
"얘! 너라도 한 마디 충고를 해 줘라! 돈들이며 고생을 사서하지 말고 우리랑 내일 풀밭에서 숨바꼭질이라도 하자고!"
"미친 사람들이 내 말을 듣기나 하겠어! 미친 사람은 그냥 두고 보는 게 상책이야!"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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