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디터 : 박규동
|
1996년 9월 22일(日) 야영. 도로변(킴바 53km전)
포트오거스타 → 야영(킴바 53km전)
아침식사 닭백숙,밥,야채,우유,짱아치
07:20포트오거스타에서 출발
08:15휴식 16℃ 맑음 북풍중
09:12휴식 레몬에이드 17℃ 맑음 북동풍강
10:02휴식 바나나,우유 21℃ 맑음 북동풍강
11:03-11:30 점심식사 도로옆 포트오거스타48km후방 식빵,계란후라이,스테이크,요구르트,레몬에이드,커피 23℃ 맑음 북동풍강
12:48휴식 26℃ 맑음 북동풍강
13:55휴식 레몬에이드
14:42-14:57휴식 수박,바나나,식빵,우유 27℃ 맑음 북동풍강
15:50휴식 레몬에이드 27℃ 맑음 북동풍강
17:00도로옆에서 야영 킴바53km전방
남위:32°56.0′동경:136°55.3′
저녁식사 된장국,스테이크,밥, 짱아치,야채,닭국물 20℃ 구름 북동풍중
*부주의로 인해 속도계의 오늘 내용이 지워짐.식사전에 보아둔 기억으로 내용을 적음.
평균속도14
운행시간7.12
주행거리102.1
누적거리2225.6(누적거리는 변동없음)
고향에 가고 싶다!
지금처럼, 자전거를 타고 뒤에 꼬리차 트레일러에 고향 친구에게 전해줄 선물 몇 가지를 싣고서 그렇게 고향에 가고 싶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도 가 보았고, 자가용 승용차를 처음 구입했을 때도 가 보았고, 새 차를 바꿔 탈 때마다 잘난 체 고향에 갔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전거를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
며칠 걸릴 것이다. 소백산 죽령 고개도 넘어야 하고 바람도 맞겠지. 비가 뿌리면 어떠냐. 몇 날, 몇 일을 페달을 밟아 고향에 가고 싶다. 앞산과 뒷동산에서 똥개 워리와 함께 뛰어 놀던 그 길을 오늘은 자전거로 달려가 보고 싶다. 황새골 가는 길, 양지말 고개를 넘으며, 학교 가던 논두렁길을 옛 동무와 자전거를 타고 달려 보고 싶다.
하염없이 페달을 밟으며 오늘도 장승처럼 고향을 지키고 있을 친구 강좌민을 생각한다. 그들이 보고 싶다. 동춘이, 성일이, 성호, 두영이, 오원이, 동율이, 국연이, 정자, 암으로 일찍 저승객이 된 중익이도.
이제부터는 흔적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세월에 실린 욕심을 비우고 고향을 살자.
개인 밤하늘에는 반달이 떴다. 고향 옹천도 비추고 있을 저 달빛. 달맞이 놀이에 얼마나 신이 났었던가! 깡통불놀이를 하던 어릴적 동무들. 그 쥐불놀이에 태워 먹은 무명 솜바지, 무 구덩이에서 몰래 빼먹은 토종 무우의 얼음같은 꿀맛, 보름날 밤에 집집마다 다니며 훔쳐먹은 오곡밥, 열 살이 넘도록 발가벗고 술래잡기 하던 여름날의 장터마당, 골목길의 돌 담장과 노적가리.
장난감이 없던 시절의 우리에게는 동네 전체가 장난감이었다. 전쟁 때 주어 모았던 실탄, 화약, 그런 것들로 총알을 만들고 유사 수류탄을 만들어 새도 잡고 개울에서 고기도 잡았으니깐.
그 동무들 지금은 다 무얼 하는지 보고 싶다. 이 걸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곧장 고향에나 가야겠다.
오늘은 4시에서 5시 방향 바람이 불어주어서 고맙게도 102km나 왔다.
고도 3-4백 미터 짜리 고개 여나 문 곳을 넘고 |
1996년 9월 23일(月) 킴바(Kimba) 카라반파크 카라반 #1
야영 → 킴바
06:30 9℃ 밤에 비. 바람없음 아침식사 식빵,햄,커피
07:20야영지에서 출발 12℃ 구름 서풍약
08:25휴식 귤 12.5℃ 구름 서풍약
09:15휴식 레몬에이드 12.5℃ 구름 서풍약
10:00간식 도로옆 킴바30km전방 식빵,햄,레몬에이드 16℃ 맑음 서풍중
10:50-11:10식사 도로옆킴바23km전방 식빵,햄,계란후라이,스테이크,레몬에이드
12:00휴식 귤 16.5℃ 구름 남서풍중
12:55휴식 파워바 17.5℃ 구름 남서풍중
13:30휴식 식빵,계란후라이 17.5℃ 구름 남서풍중
14:20킴바(Kimba)에 도착 간식; 테이크어웨이 식당 스테이크버거,콜라 간식비 $11.80
물품구입 식빵6개 비스켓2개 쌀2kg 닭1마리 비누1개 치약1개 호두 땅콩 사과4개 치즈500g 우유1ℓ 오렌지쥬스2ℓ$36.80 우표 $27.00
킴바 카라반파크 남위:33°08.9′동경:136°24.8′
카라반 숙박비 $27.00
저녁식사 닭백숙,밥,짱아치,야채
평균속도9.6
운행시간5.59.48
주행거리58.12
누적거리2283.7
돈키호테처럼 가고 있다.
아니 그가 되었으면 싶다. 미쳐 있는 그의 광기가 부럽다.
그가 말을 타고 갔다면 나는 쇠말 자전거 예티를 타고 간다. 짓궂게도 호주에는 대적해 싸울 풍차도 많다. 그리고 승리의 명예를 바칠 나의 둘씨네아가 꽃구름처럼 서울에서 나를 기다린다. 투구 대신 헬멧을 쓰고 창 대신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어느 전장에서 어느 악한과 한판 싸움을 벌릴 건가!
짓궂게도 호주에는 대적해 싸울 풍차도 많다. |
밀밭이 있는 벌판은 겁이 난다. 지난밤에도 비가 쏟아졌고 천둥번개는 돈키호테의 가슴을 뒤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킴바는 밀이 나는 곳이다. 대형 싸일로가 여럿, 모두 밀 저장고라고 한다.
킴바의 싸일로를 공격하여 군량미를 확보하자. 어제는 그 킴바를 공격하기 전 밀밭 한 모퉁이에 텐트를 쳤었고, 우리는 밤새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도록 적군과 한판을 벌렸다.
오늘은 아침부터 풍차가 휘젓는 맞바람을 맞으면서, 고도 3-4백 미터 짜리 고개 여나 문 곳을 넘고, 드디어 킴바에 들어왔다. 돈키호테처럼 초 죽음이 되어서 말이다.
겨우 55km 운행. 짧은 거리였지만 맞바람을 적으로 맞아 밀밭 근처에서 호되게 다투었던 것이다. 열세, 체력의 열세, 혼돈의 미열 그리고 죽은 듯이 킴바 타운에 들어섰다. 그러나 반갑게도 호주횡단 중간지점이라는 표지판이 얼른 눈에 띈다.
반을 온 것이다. 내일부터는 그 반을 빼 가며 가는 것이다. 투구도 벗고, 창도 집어던지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로드하우스에서 스테이크 버거를 시켜 먹고는, 쥐 죽은 듯 조용히 카라반으로 들어섰다.
지쳐서, 지쳐서!
대형 싸일로가 여럿, 모두 밀 저장고라고 한다. |
비에 젖은 텐트, 장비, 침낭 등을 내다 말렸다. |
시작이 절반이라고, 합하면 다 끝난 셈이다. 그러면 돌아가야지. 돌아갈 길도 절반이다.
이왕이면 끝나는 쪽으로 돌아가야지.
시작도 절반, 여기도 절반, 돌아갈 끝 길도 절반.
모두 따져 보아도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절반의 가치는 용케도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비에 젖은 텐트, 장비, 침낭 등을 내다 말렸다. 그 장비를 펼쳐 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