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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박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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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6일(金) 야영. 하웨이이 옆 쉼터(코바 48km전)
닌갠 → 야영(코바 50km전)
06:35 4.5℃
아침식사 스테이크,식빵,계란후라이,사과,야채,짱아치,된장국
08:05닌갠에서 출발
09:15휴식 커피
10:15휴식
11:15-11:33휴식 오렌지쥬스,요구르트
12:10-13:20점심식사 도로옆 닌갠 47km후방 스테이크,식빵,계란후라이
14:10휴식
15:15휴식 오렌지쥬스
16:15휴식
16:50휴식 파워바
17:20쉼터에서 야영 코바 50km전방
남위:31°31.9 동경:146°21.1′
저녁식사 된장국,스테이크,밥,짱아치,야채
최고속도21.6
평균속도13.7
운행시간6.16.58
주행거리86.53
누적거리1157.7
탁자 하나와 물 탱크(주의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빗물이라서 먹을 수 있음, 끓여서 먹을 것!) 그리고 쓰레기통이 달랑 있는 쉼터.
17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였다. 하나 뿐인 탁자를 차지하고 나니 잠시 후 카라반을 끌고 호주인 노인 부부가 쉼터로 들어와 옆자리에 차를 세운다. 아웃백에서는 빗물을 최고로 쳐 준다. 오늘 머무는 쉼터는 무척 양호한 편이다. 쓰레기 통까지 있다니!!! 물이 있고 또 함께 캠핑하는 이웃이 생겼으니깐!
어제, 오늘 연 이틀 기찻길 옆을 나란히 달려 왔는데도 어쩐 일인지 기차가 다니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오늘 처음으로 저녁 여섯 시쯤 화물 차량을 30대쯤 연결한 엔진 두 대 짜리 기차를 보았다. 캠프 장 옆으로 기차가 지나갔다. 워낙 변화가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위로 받을 수도 없는 사정에, 땅덩어리도 텅 비어 있어서 기차 지나가는 것 보고도 심심풀이와 얘깃거리가 된다. 창민이와 둘이서 멍하니 기차 구경을 하였다.
타조처럼 생긴 야생 에뮤 |
도중에 야생 에뮤를 처음 보았다. 한 쌍이 의젓한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애뮤의 사진도 찍었다.
인생은 흐르는 것이다. 누워 있어도 흐르고 걷고 있어도 흐르고 비행기를 타고 있어도 흐른다. 나는 자전거 바퀴 위에서 흐르고 있다. 흘러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깨닫는 순간 인생은 이미 인생이 아닌 것이다. 흘러가 버린 것이다.
도로에는 캥가루, 애뮤, 토끼... 수 많은 야생동물이 차에 치여 죽어 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죽어서 아름다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살아 있으므로 생명이 흘러가고 그 흐르는 선율 위에서만 고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죽어서 아름다운 것은 전태일 청년 밖에 없다.
리튬건전지를 12볼트 팩으로 만들어 온 것이 주효하다. 세운상가에 있는 MTB친구 권병기 사장의 제안으로 구입한 것인데, 크기가 A형 건전지 정도인 3볼트짜리 리튬건전지 4개를, 직열로 연결하여 12볼트로 쓸 수 있도록 팩을 만들었다.
연결 단자를 고안하여 휴대용 무전기와 실내등을 쓸 수 있게 하였다. 자동차 실내등 소켓을 개조하여 12볼트 야영등을 만들어서 쓰고 있는데 조명용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25와트 짜리 승용차 전구를 써서 캠프를 하면서 책도 읽고, 요리도 한다.
리튬 3볼트짜리 100개를 사서 4개씩 직열로 묶어 25개의 팩을 만들었다. 가격도 아주 싼 값에 해주어서 10만원 밖에 들지 않았다. 리튬건전지는 방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해도 문제가 없으며 가벼워서 성능이 매우 만족스럽다.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나는 이번에도 비상용 통신으로 쓸려고 휴대용 무전기(캔우드 사의 FM 2중밴드 TH-78A)를 갖고 왔다. 그러나 아직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도중에 만나는 호주인들마다 관심과 격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사막구간에서의 고행과 위험을 미리 염려해 준다. 내일 낮에 통과하는 코바(Cobar)를 지나면 약 300km 가량을 지나가야 마을이 나타난다. 오늘을 포함 4일을 더 야영 해야 할 것 같다.
물, 식량, 그리고 추위와 더위를 모두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의류들, 야영장비 등을 점검하고 자전거도 손질하였다. 짐은 더 불어나고 있다. 물,물,물.
트레일러 튜브를 헤비듀티로 교환하고 림의 껄끄러운 부분을 테이프로 발랐더니 오늘은 펑크없이 잘 왔다. 내 자전거 트래스밋션 뒷 드레일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워낙 섬세하여서 주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 체인이 심하게 마모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기도 하다. 자전거가 멈춰서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텐트 옆에 조명등을 켜면, 켜자마자 불빛을 찾아 나방과 모기, 풍뎅이 등이 몰려 든다. 불 주위를 너울 거리며 춤을 추며 날아다니는 나방이거나 커피잔에 빠져 헤엄을 치는 풍뎅이나, 파일바지 위로 침을 놓는 모기거나 다 흐르는 생명인 것이다.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도 학이나, 저어새나 기러기처럼 보면 그 날개 짓이 썩 괜찮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잠자리 준비를 위해 조명을 텐트 안으로 옮기고 나면, 나방과 풍뎅이는 불빛을 쫓아 다짜고짜 텐트에 박치기를 한다. 그 소리가 마치 텐트에 우박이 쏟아지는 것 같다.
오늘은 제법 구릉쯤 되는 언덕을 몇 개나 오르내리며 왔다. 평원을 오래 다니느라 언덕 오르기를 잊어버린 지 오래인데 차라리 언덕과 내리막 길이 있는 게 낫겠다 싶다. 언덕의 어려움도 즐기고 내리막길의 속도도 재미있으니까.
09월 7일(土) 야영. 도로변(윌캐니아 240km전)
야영 → 코바 → 야영(윌캐니아 240km전)
06:10 0.5℃ 맑음
08:00캠프지에서 출발
08:37-08:40비로인해 트레일러의 덮개를 씌움
08:57휴식
09:35-09:55자전거로 여행하는 켄 에버렛씨를 만남
10:40-11:05식사 도로옆 코바15km전방 스테이크,식빵,계란후라이,오렌지쥬스 20℃ 구름
11:30휴식
12:30-13:30코바(Cobar)도착
점심식사 테이크어웨이식당 햄버거,콜라식사비$10.40 구입품 스테이크고기 베이컨 BBQ소스 계란 버터 파 식빵 쥬스 요구르트 바나나 셀러리$60.10
14:32휴식 바나나,커피
15:20휴식 오렌지쥬스 26℃
16:00휴식
16:20도로옆에서 야영
윌캐니아 240km전 남위:31°31.2′동경:145°36.6′
저녁식사 된장국,스테이크,밥, 짱아치,야채
최고속도26.6
평균속도13.3
운행시간5.38.33
주행거리75.15
누적거리1232.9
69세의 켄 에버렛 할아버지를 만났다. |
09시 35분에 켄 에버렛(Ken Everett), 69세 할아버지 자전거꾼을 서로 마주보며 달리다 만났다. 자전거꾼끼리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운지. 황금 같은 시간이지만 한 30분쯤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질랜드 사람으로 호주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중이란다. 자전거 얘기, 도로 얘기, 물 얘기, 바람 얘기. 자전거꾼답게 아기자기한 정보를 많이 준다.
"브로큰힐에 가면 자전거방이 괜찮은 게 있다. 도중 물탱크가 어디어디에 있다. 카라반파크 어디는 비싸고 어디는 싸고 깨끗하다."
등등.
허 참! 그 나이에 그런 발상이 가능한지, 나처럼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집멀미꾼인가?
나도 그 나이에 그런 발상이 가능할까? 종일 켄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달렸다.
내 주변에는 집멀미꾼들이 많다. 역마살이 끼여서인지, 쏘다니지 못하고 집에 갇혀 있으면 소화불량에 정신이상(?) 증세까지 나타나는 방랑쟁이들이다. 오지를 찾아 동가숙서가식 하면서 오히려 사는 재미를 느끼는 꾼들 말이다.
밤에는 별 볼 일 밖에 없다. 남십자성과 인디케이터, 은하수. 은하수를 보다니! 금성, 카시오페아, 달이 없는 밤이니 더욱 별이 반짝인다.
텐트자리는 야생동물이 나다니는 황야, 그러나 도로변이라는 안도감. 18시가 넘으니 바람이 잠잠해진다. 아침 11시쯤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이 오후 2-3시에 강해졌다가 그 여세가 18시까지 간다. 내륙이 햇빛에 의해 더워지면서 일어나는 대류현상이겠지.
별 볼 일 밖에 없는 별볼일 없는 밤이다.
일찍 자고(19:30) 일찍(05:30) 일어나야지.
지나가는 차량들의 소음이 자장가처럼 들린다. 피로가 겹쳐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안배해야겠다.
코바를 지나와서 거센 북서풍을 맞으며 서쪽으로 진행. 오후 4시경에 일찌감치 캠프를 하였다. 오후 2-3시 사이에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분다. 바람을 피해 아침 일찍 운행하는 계획을 세워야겠다.
서울 사람들, 내 사랑하는 서울 사람을 꿈에서 만나자!